수상한 자원외교, 결론은 뒤죽박죽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 9월29일 공개한 미국 대사관 전문(2009년 2월26일자)에 따르면, 4조원대에 달하는 이라크 유전 개발권은 구체적인 합의가 안 된 '설익은(prematurely)'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2009년 당시 우리 정부는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이라크 유전 개발권 획득은 석유가 생산되는 '생산 광구'에 대한 첫 계약이자 자원 외교의 주요 성과 중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해 지식경제부는 "이라크 정부와 맺은 석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에는 문제가 없다"라며 발끈하는 모습이다. 양쪽 의견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어 미국과 한국 정부 중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아보려면 양해각서를 체결할 무렵 이라크 정부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9년 2월23일, 이명박 대통령 초청으로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이 서울에 도착했다. 이라크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이라크의 주요 관심사는 한국과의 경협이었다. 한국은 한국대로 에너지 공급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자원 외교를 한 차원 발전시키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당시 탈라바니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라크 건설부의 한 고위 관료는 "한국 방문은 전적으로 한국 측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방한을 결정하기 전부터 누가 가고 누가 안 갈지 말이 많았다. 한국 방문 중에는 이라크 중앙정부 관료와 총리 일행이 자꾸 마찰을 빚었다"라고 회고했다. 총리 일행이란 이라크 총리가 아닌 쿠르드 자치정부의 총리 니체르반 바르자니를 일컫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가운데)이 2009년 2월24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맨 왼쪽은 바르자니 총리. |
탈라바니 대통령은 바르자니 총리와 같은 쿠르드 사람이다. 그러나 쿠르드 자치정부도 그 안에서 남북이 갈려 있어 두 사람은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이런 복잡한 정치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동시에 한국을 찾았으니 온갖 예민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바르자니 총리는 주한 이라크 대사관조차 들르지 않았다. 이라크 대사관이 쿠르드 자치정부의 정통성을 잇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대사관의 한 직원은 당시 혼란상을 이렇게 전했다. "전력부 장관, 건설부 장관, 상업부 장관 등을 포함해 고위급 관료 20여 명이 대통령을 수행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전문이었다. 바르자니 총리는 이라크 대통령 수행단에 속한 한 고위 관료 정도로 표시돼 있었다. 바르자니 총리는 이 점을 매우 불쾌히 여겼고, 이 때문에 대사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사관을 방문하지 않았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체결한 계약 무효"
이들이 방한한 지 이틀 만인 2월24일 양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은 유전 개발과 인프라 건설을 연계하는 사업에 합의해, 총 35억5000만 달러(약 4조2351억원) 규모에 이르는 MOU를 맺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정부가 MOU를 맺은 상대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바르자니 총리였다. 이 MOU가 바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에 나오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는 설익은' 것이다. 주한 이라크 대사관의 한 직원은 당시 양국이 구체적인 합의를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 내부의 사정이라기보다는 이라크 정부 안에서 석유 개발에 대한 교통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드 정부가 독자적으로 석유를 개발하고 외국과 개발권 계약을 맺는 것을 상당히 불쾌해했다."
ⓒAP Photo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 있는 노르웨이 DNO 사의 유전을 지키는 안전 요원들. |
이런 복잡한 배경 속에서 양해각서는 체결됐다. 그해 5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리는 양국 간 장관급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를 하는 것으로 이들의 방한 일정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약속한 5월이 되어도 이라크 정부는 개발권 부여에 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이라크 석유가 한국으로 올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법 때문이다. 석유법이 이라크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쿠르드 정부와 우리 정부가 MOU를 맺었어도 석유를 가져올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쿠르드 정부는 석유법이 통과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중이다. 이라크 석유법은 2007년 의회에 상정된 이후 이를 둘러싼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 정부 간의 의견 대립으로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이라크 석유 콘퍼런스'에서 쿠르드 천연자원부 아쉬티 하우라미 장관은 "이라크 중앙정부가 2011년 6월까지 이라크 석유법 및 석유수익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새 내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라크 정부는 석유법이 통과되기 전 중앙정부의 승인 없이 쿠르드 정부와 체결한 그 어떤 계약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쿠르드에서 현재 조업 중인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향후 이라크 중앙정부의 석유 사업에서 철저히 배제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석유공사는 쿠르드 탐사 실패로 4억 달러(약 4500억원)가량을 날릴 판이다. 석유공사는 2009년 5월 "쿠르드 지역 5개 광구 전체 기대 매장량은 총 72억 배럴이며 만약 탐사에 성공하면 원유를 약 30억 배럴 확보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원유가 발견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쿠르드 바지안 광구에서 하루 평균 200배럴가량을 발견했을 뿐이다. 상업성이 전혀 없는 양이다.
쿠르드 지역에는 석유가 없다?
또 다른 지역인 퀴쉬타파 광구 또한 발견된 양이 너무 적어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했다. 상가우 광구에서는 소량의 가스에 지하수만 잔뜩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600만 달러를 투자한 하울라 광구는 현재까지 쿠르드 정부의 시추작업 승인 보류로 탐사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석유법 통과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쿠르드 지역에 정말 석유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필자가 접촉한 쿠르드 정부의 자원개발부 관리들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이들은 정말 이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이라크 웹매거진 < 더 리포트 오브 오일 > 의 나사르 주베이디 기자는 "쿠르드 정부가 몰랐다고 하기 힘들다. 한국이 쿠르드 정부와 MOU를 작성하기 이전에도 세계 유수의 석유 회사들이 아르빌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들은 빈손으로 바그다드로 다시 몰려들었다. 그들이 두 손 들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은 아르빌에 더 이상 기대할 만한 경제성 있는 석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을 비롯해 서구 석유 재벌 회사들이 이라크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우리 정부도 자원 외교의 부푼 꿈을 안고 이라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껏 성과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명박 정부 자원 외교의 첫 결실로 평가됐던 사업이 3년이 지난 현재 4500억원만 쏟아부은 채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