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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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920호 커버스토리로 '만화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만화' 기획특집을 선보였으나 대부분의 기사가 오해와 무지, 잘못된 정보 투성이다. |
ⓒ2007 시사저널 |
나는 데뷔 10년차 만화가다. 이번 주에 나온 <시사저널> 920호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만화에 빠지다'는 오해와 왜곡·무지로 얼룩진 '잘못된' 기사다.
만화계 사람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준과 함량이 모두 미달이다. 특히 주요 꼭지를 담당한 최만수 프리랜서 기자는 만화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갖추지 않고 기사를 썼음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 기자가 쓴 '태권V에 힘내고, 둘리에 웃고'라는 기사의 몇 구절이다.
"부활한 < 태권V >는 최단 기간 최다 관객(70만명)을 동원해 한국 만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 (중략) 1980년대 인기 만화영화 <우뢰매>를 잊지 못하는 성인 마니아들은 <우뢰매> 사이트(www.wooroemae.com)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하 생략)
< 태권V >는 '만화영화'이지 '만화'가 아니다. 만화는 출판 분야고 만화영화는 영상 분야다. 후반 제작 과정이 판이하게 다르며 유통 과정은 말할 것도 없다. < 태권V >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만화영화 (흥행의) 역사를 다시 썼을 뿐이다. 최 기자는 만화와 만화영화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우뢰매>는 실사에 만화를 합성한 '영화'임에도 억지로 만화영화에 구겨 넣어 성인들의 만화 아닌 만화(?)에 대한 추억을 자극한다.
만화-만화영화 구분 못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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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사저널 |
최 기자는 1960년대 한국만화의 궤적에서 <개미와 베짱이>를 한국만화영화의 효시로 언급한 뒤 1969년 용우수 감독의 <홍길동 장군> 개봉에 대해 적고 있다. 그러나 1967년 개봉한 최초의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인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은 쏙 빼고, 아류작에 불과한 용우수 감독의 <홍길동 장군>을 인용한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같은 기사의 1970년대 부분은 '신문에 실리는 네 컷 만화와 만평들도 검열 당하곤 했다'는 글을 빼고는 모두 만화영화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부실하기 짝이 없다. 1980년대는 그나마 만화에 대한 부분이 상당 부분 차지하는데 이것 역시 만화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최 기자는 '서울문화사의 <아이큐 점프>를 비롯해 <영코믹스>, <만화투데이>, <빅펀치> 등이 연이어 창간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영코믹스>, <만화투데이>, <빅펀치> 같은 잡지들은 80년대 중반부터 만화를 줄기차게 보고 10년째 만화작가 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낯설다.
<소년챔프>, <영점프>, <영챔프>, <부킹>, <주간만화>, <매주만화>, <미스터블루>, <트웬티 세븐>, <댕기>, <르네상스>처럼 인기를 누렸던 잡지들은 어디로 가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잡지들만 언급하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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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사저널 |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만화시장은 대본소, 속칭 만화가게가 중심이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사이 <아이큐점프>, <소년챔프> 등 소년만화잡지가 등장하면서 잡지 중심의 시장구조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는 각각 <아이큐점프>와 <소년챔프>의 대표 주자로 만화잡지 시장을 선도했으며, 이들 잡지가 빅히트하면서 우리나라 만화잡지 시장은 급성장하게 된다.
대본소 시절 꽉 막혀 있던 신인 등용이 이들 잡지를 통해 대거 이루어져(물론 그 후 창간된 여러 잡지들을 포함하여) 한국 만화는 바야흐로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드래곤 볼>, <슬램덩크>가 한때 국내 만화시장을 석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만화가 위기에 처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똘이장군>이 홍보만화? 아니다
윤지현 기자는 그나마 최만수 기자보다 정도는 덜하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는 얕은 지식과 취재 수준을 드러낸다. 윤 기자는 '4각의 땅에 보물이 주렁주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만화홍보물도 근래에 들어 속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예전에도 <똘이장군> 같은 홍보용 만화가 있기는 했지만"이라고 쓰고 있다.
만화 홍보는 '만화를 이용해서 특정한 상품이나 주장·정보 등을 알리는 것'을 말한다. <똘이장군>은 군사정권이 어린이들에게 반공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말 그대로 '대중문화를 통한 우민화정책의 산물'이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였다.
이것이 어떻게 '홍보만화'가 될 수 있는지 납득이 안 간다. 게다가 <똘이장군> 역시 만화가 아니라 엄연한 만화영화다.
윤 기자의 또 다른 꼭지인 '망가 비켜라 만화가 나가신다'도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윤 기자는 "일본만화출판사들의 경우 내수시장만으로도 수익창출이 가능해 수출에 미온적이었다"면서 한국만화가 세계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반면 일본 만화는 상대적으로 세계시장에서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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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코믹스 단행본 시장의 80% 이상이 일본만화다. 대만을 위시한 동남아에서는 자국 작가 만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본만화가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내가 2000년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에 갔다가 들른 프랑스의 한 만화 서점 코믹스 코너는 한 면 전체가 일본만화였다. 우리나라 만화는 이현세 작가의 작품 한 질이 유일했다.
일본의 만화 출판사가 해외시장을 스스로 개척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이 일본의 만화를 앞 다투어 수입해 갔기 때문에 굳이 스스로 개척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일본 만화출판사들은 최근 내수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북미시장을 비롯하여 직접 배급 방식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먼 나라 이웃나라>가 최고 베스트셀러? 어느 나라 자료야?
<시사저널> 920호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가장 민망한 코너는 만화평론가이자 언론학 박사 손상익씨의 글이다. 손씨는 '누구에게나 열린 판타지의 상자'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원복 교수의 학습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는 지금까지 500만권 넘게 팔려 건국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현재 시점이 아니다.
2000년대는 1위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외하고,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롯해 < Why > 시리즈 850만부, <신기한 스쿨버스> 700만부, <마법 천자문> 600만부, <서바이벌 만화과학상식> 530만부, <코믹 메이플 스토리> 500만부 등 2위에서 7위까지 아동학습만화가 차지하고 있다. <먼 나라 이웃나라>는 미국편이 50위권 밖에 랭크되어 있을 뿐이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발행한 '21세기 한국인은 무슨 책을 읽었나' 참조).
이 자료에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2000만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나와 있다. 반면 <먼 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에서 출간되기 시작하여 1998년 김영사로 출판사를 옮겨온 이래 20년간 대략 1000만부(고려원 판 400만부, 김영사 판 600만부)가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먼 나라 이웃나라>가 20년간 쌓아 올린 기록을 <만화 그리스로마신화>는 5년 안팎의 짧은 시간에 2배나 달성한 것이다. <먼 나라 이웃나라>를 건국 이래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하기에 <만화 그리스로마신화>의 실적이 너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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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사저널 |
초등학생 남학생은 또래의 여학생에 비해 유난히 판타지를 즐긴다는 표현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데 판타지를 예로 든 것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시사저널> 편집데스크는 대체 이 글을 읽어 보기나 한 걸까?
<시사저널>이 기자들의 파업 이후 외부 필진을 끌어들여 발행을 계속해 오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후, 수준이 좀 떨어졌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이처럼 상식 밖의 글로 채워진 기사들을 커버스토리에 배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찍이 <아이큐 점프>를 창간하여 우리나라 만화잡지 시대를 열고,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을 여러 해 역임하며 오랫동안 한국만화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심상기 <시사저널> 소유주가 이번 커버스토리를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김병수 기자
덧붙이는 글
김병수 시민기자는 (사)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을 지낸 만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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