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호, 이제야 한숨 돌렸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가 처음 달에 내릴 때 교신을 했던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 존슨우주센터의 미션컨트롤센터(mission control center). 그 역사의 장소에는 낡은 컴퓨터와 다이얼 전화기 등 당시의 시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컴퓨터 옆의 원통이 무엇인지 묻자 안내를 맡은 바버라 앨런씨는 “당시의 이메일입니다. 원통에 문서를 넣어 배달했었죠”라고 답했다. ‘이런 기술로 달에 갔다는 사실이 기적 같지요?’라고 반문하는 표정이었다.
같은 건물에는 우주정거장과 우주왕복선을 관제하는 새 미션컨트롤센터가 있다. 여기에선 우주정거장에 상주하는 우주인 2명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대형화면에 생중계되고 그들의 심장박동·체온 등 생체 정보도 24시간 모니터하고 있다.
몇 블록 떨어진 ‘소니 카터’ 무중력 훈련장에선 예비 우주인의 우주유영 훈련이 한창이다. 12m 깊이에 가로 62m, 세로 31m의 거대한 풀 속에 실제와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우주정거장 모형을 담가 놓았다. 물 속에서 우주유영 훈련을 하는 이유는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중성부력을 유지하면 무중력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명의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고 훈련을 하는 가운데 잠수복을 입은 보조요원 5명이 만약의 상황을 위해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우주센터 중에서 유인 우주탐사를 담당하는 존슨우주센터가 요즘 활기를 띠고 있다. 2004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장기 우주개발 비전에 따라 달 정복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지난해 12월 세계 각국의 우주국 관계자와 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달 탐사를 주제로 우주탐사국제회의가 개최됐다. 또 달 탐사와 관련된 발표와 기자회견도 이곳에서 잇따라 열리고 있어 언론의 방문도 잦아졌다.
우주센터 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한 리프키라는 17세의 소녀는 달 정복을 위한 우주비행을 막연한 꿈이 아닌 구체적 목표로 삼고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달에 유인우주선이 파견돼 기지 건설이 시작되는 2020년이면 내 나이가 우주비행사가 되기에 딱 맞는 시기”라며 “우주탐사의 새 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이 리프키처럼 열광적인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 갔던 달에 뜬금없이 왜 또 간다는 거지”라며 시큰둥해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인의 여론도 찬성률이 60%대에 불과하다. 과거 우주탐사에 대한 전폭적 지지에 비하면 매우 낮은 호응이다.
NASA의 대답은 달에 가는 목적이 아폴로 탐사 때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아폴로 탐사는 일종의 탐험행위였지만 이번엔 정착을 목적으로 한다. 마치 남극탐험의 시대에는 그곳에 발을 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만 지금은 남극기지를 만들어 정착하면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양계에서 인간이 그나마 살 만한 곳은 화성임에도 달에 정착하려는 이유는 지구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달은 3일이면 가지만 화성에 가려면 적어도 6개월은 걸린다. 게다가 화성은 지구와 화성의 공전주기에 따라 타이밍을 맞춰야 하므로 2년에 한 번씩만 갈 수 있다. 화성에 갔다 오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린다는 얘기다. 우주정거장에서 축적된 기술로 사람이 우주에서 6개월까지는 체류를 해보았지만 그 이상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3년 이상 우주인이 사는 데 필요한 식량과 생명유지장치, 화성의 중력권을 다시 벗어나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연료를 가져가는 것도 가까운 미래에는 아직 불가능하다. 때문에 NASA는 우선 달에 기지를 세워 지구 이외의 다른 땅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뒤에 화성으로 간다는 계획이다.

새나 데일 NASA 부국장은 “태양에너지 발전을 위해 항상 해가 비추는 달의 극지역에 기지를 세울 예정”이라며 “다른 나라도 기지를 추가로 건설해 연결할 수 있도록 개방형 구조를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경 4명의 우주인이 1주일간 임무를 수행하고 점차 체류기간을 늘려 2024년에는 영구히 체류할 수 있게 된다. 2027년에는 특수 자동차로 기지에서 먼 곳까지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달의 자원 개발도 가능하지만 운송비를 고려할 때 아직은 경제성이 없다. 당장은 달의 자원을 다른 행성을 탐사할 때 활용하는 데 의미가 있다. 지구는 중력과 대기의 저항 때문에 우주선을 띄우는 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무게를 약간만 줄일 수 있어도 크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로켓 연료와 공기를 만들고 생명유지장치를 가동하는 데 활용할 물을 찾아낸다면 행성탐사의 보급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다. NASA는 2009년 1월 얼음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달 남극을 향해 무게 2t의 충돌체를 돌진시켜 거기서 나오는 파편을 분석할 예정이다.
큰 우주선을 화성에 보낼 때도 달에 기지를 설치하면 여러 차례에 걸쳐 부속을 가져가 조립해 쓸 수도 있다. 우주정거장도 그런 역할을 하지만 우주 유영을 하면서 작업하기는 쉽지 않다. 우주망원경 등 덩치가 큰 물체도 달에 가져가서 조립하면 효율적이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현재호 책임연구원은 “우주선에 한 번에 실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망원경을 달에서 조립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달이 만만한 곳은 아니다. 대기가 없어서 온도교차가 화성보다 심하고 모래알만한 운석이 떨어져도 지구처럼 대기권에서 불타버리지 않고 고속으로 부딪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달 정착에 무엇보다도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바로 먼지다. 달에는 운석의 충돌과 온도 일교차로 인해 암석이 부서져 생긴 미세먼지가 많다. 비나 바람이 없으므로 미세먼지가 씻겨나가 퇴적되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다. 먼지는 우주복과 카메라 렌즈에 들러붙고 베어링이 들어가는 기계장치를 못쓰게 만든다. 아폴로 탐사 당시의 우주인은 먼지가 우주복의 연결부위에 들러붙어 동작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보고했다. 래리 테일러 테네시대학 행성학 교수는 기지 건설부지에 전자기파를 쏘아 먼지를 녹여 덩어리로 만드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위험은 바로 태양에서 나오는 방사선인 태양풍이다. 지구는 자기장에 의해 생기는 ‘밴 앨런 대’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지만 달엔 그대로 태양풍이 쏟아진다. 영국 버벡대학의 이언 크로퍼드 교수(지구과학)는 “우주인은 태양풍으로 죽을 수도 있다”며 “태양풍이 발생할 때 피할 수 있는 대피소를 지하 2m 깊이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달 기지 건설 계획을 발표한 데는 정치적 동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계획이 발표되기 바로 직전 해인 2003년에는 우주왕복선이 두 번째로 폭발하는 참사가 있었다. 미국에서 우주개발은 일종의 신앙처럼 국가를 결집시키는 힘이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땐 아폴로 프로젝트에 국력을 쏟아 국민의 자부심을 이끌어냈듯이 우주왕복선 폭발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하고 실의에 빠진 국민을 분발시키기 위해 다시 원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한편으론 우주탐사 후발주자들이 미국의 달 탐사 업적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1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중국은 2003년과 2005년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에 이어 압축적으로 우주기술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2010년에는 달에 무인우주선을 착륙시키고 2017년까지는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낼 계획이다.
일본은 2025년까지 달에 유인우주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이 먼저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데 자극을 받아 달에서만큼은 뒤질 수 없다는 태세다. 유럽우주국은 2024년에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내고 2030년까지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낸다는 계획이다. 미국 화성연구소(Mars Institute)의 파스칼 리 소장은 “중국이 달에 가겠다고 발표했고 유럽도 가기를 원한다”며 “인도와 중국이 달에 가는 동안 우리가 달을 지나쳐 화성에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주경쟁에서 한 번 추월을 당하면 국방기술에서도 열세에 몰리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따라오지 못할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달에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신천지를 탐험하러 오는 후발주자들을 무색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것은 달 탐사의 임무(mission)가 구체적이지 않은 가운데 계획이 발표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은 임무가 먼저 주어지고 그에 맞는 탐사계획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화성에 물이 있는지를 알아낼 임무가 주어지면 화성의 어느 곳에 탐사선을 보낼지 정해지고 또 그에 맞는 탐사선의 설계가 결정된다. 이에 반해 이번에는 거꾸로 탐사할 장소가 정해지고 그 다음에 탐사선을 개발하고 마지막으로 무슨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때문에 요즘에 달 탐사에서 어떤 과학적 성과를 낼 것인가에 대한 학술회의(미션 컨퍼런스)가 잦아졌다.
NASA는 우주왕복선을 2010년 우주정거장 완공과 더불어 퇴역시킨다. 대신 달과 화성탐사용 우주선 개발을 위한 ‘콘스털레이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주인 운송용과 화물운반용 우주선을 각각 따로 만들어 발사한 뒤 우주에서 도킹해 달과 화성으로 간다는 계획이다. 우주왕복선은 원래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선 획기적이었으나 사고가 잦고 수리비가 많이 들어 오히려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게다가 원래 저궤도 왕복용이기 때문에 시속 2만8000㎞의 속도로 지구로 귀환하게 설계돼 있다. 그러나 달에서 지구로 귀환할 땐 시속 4만㎞의 속도가 나기 때문에 우주왕복선의 방열판으로는 공기와의 마찰열을 견딜 수 없다.
오리온(Orion)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될 우주인 운송용 우주선은 캡슐형 모양, 낙하산 귀환방식 등 아폴로 우주선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우주선이다. 오리온 우주선 개발을 수주한 록히드 마틴 휴스턴 지사의 책임자 래리 프라이스씨는 “오리온의 모양은 아폴로 우주선과 비슷하지만 우주왕복선에서 발전된 최첨단의 기술이 구현돼 있다”며 “내부 크기도 아폴로보다 2.5배 가량 큰 6인승”이라고 말했다.
로켓은 우주왕복선에서 사용하던 것을 개량한 형태로 개발될 예정이다. 유인우주선 오리온의 우주인 운송용 ‘에이레스 I’은 우주왕복선의 양 측면에 장착했던 로켓을 발전시킨 5단 고체연료 로켓과 아폴로호에서 사용했던 액체연료 로켓의 개량형 J2X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에이레스 V’는 우주왕복선의 외부 액체 연료탱크에 5개의 엔진을 장착한 형태의 메인 로켓과 두 개의 고체연료 로켓을 달아 129?을 지구 저궤도까지 올려 놓을 수 있다. 보잉의 우주운송시스템 개발 책임자인 미하엘 우드씨는 “화물용 우주선과 우주인용 우주선을 지구 궤도까지 따로 운송함으로써 우주인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며 “다양한 화물을 나를 수 있게 돼 운송시스템의 유연성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달에 기지를 건설하는 데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NASA의 예산안에 따르면 과학이나 항공공학 연구 예산은 거의 변함이 없거나 축소되는 데 반해 우주탐사 예산은 급격히 늘어나 2014년이면 200억달러를 넘어서며 예산의 증가분 대부분이 우주탐사 부문에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 물리학회는 “무리한 달·화성 탐사계획이 중요한 과학적 연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허블 망원경이나 로봇을 이용한 우주탐사가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낸 것을 고려하면 유인 우주탐사 예산은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화성에 물이 있다고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성 탐사 예산을 축소하고 달 탐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난센스라며 혹평했다.
NASA는 옛소련의 로켓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가 “지구는 인간의 요람이지만 영원히 요람에 살 수는 없다” 고 한 말을 이번 달 기지 프로젝트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로봇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직접 몸으로 뛰어드는 것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자칫하면 값비싼 우주관광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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