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가마솥처럼 들끓는다. 더위가 숨을 막는다. 모두가 산으로 들로 휴가를 간다. 하지만 나의 휴가는 좀 다르다. 내가 즐기는 휴가는 그저 내 존재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휴가는 집에서 뒹굴면서 책을 읽고, 고작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다.
올해도 나의 화려한 휴가는 일찍 시작되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한꺼번에 쉬는 날은 무조건 나만의 휴가를 즐겼다. 봄부터 ‘천년학’을 보았고, ‘황진이’도 보았다. ‘천년학’에서 엇갈린 사랑의 슬픔을 보면서 내내 인간의 운명을 생각했다. ‘황진이’를 보면서 가슴 아픈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에 빠졌다.
7월의 더위가 시작될 때는 소설책을 몰아서 봤다. 김훈의 ‘남한산성’, 조정래의 ‘오 하느님’, 신경숙의 ‘리진’을 다 읽었다. 그리고 독후감 쓰는 즐거움을 누렸다. 계속해서 ‘트랜스포머’에 ‘다이하드 4.0’까지 쉴 새가 없었다. 영화와 소설, 그리고 글쓰기까지 나만의 독특한 휴가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의 휴가가 멈췄다. 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숨이 멈췄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휴가가 누군가의 희생이 준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더 이상 대가 없이 즐기는 휴가는 미안하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혔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다. 당시 그 참혹한 사건을 겪어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다.
최근 우리 사회는 김훈의 ‘남한산성’과 신경숙의 ‘리진’을 읽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듯,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현재가 과거에서 온 것이라는 전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는 시간이 남긴 골동품이 아니라, 현재보다 앞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복잡한 삶을 헤쳐 나가는데 과거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여기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주관성을 배제해야 하듯 과거를 보는 눈도 객관적이고 분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서 우연히 발생했다는 소극적인 판단은 과거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고찰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 중요하다.
과거의 사실을 현재 들여다보고 다시 미래로 전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더욱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이 앞서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발견해 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자 임무이다.
광주 시민의 저항도 특정 지역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보는 것은 이러한 임무와 능력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역사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군부독재자들이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관이다. 자신들의 최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원한과 분노를 품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럭저럭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로 물들었던 고통과 상처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감동의 기대도 접었다. 그런데 그 참혹한 역사가 내 눈가에 이슬을 맺게 했다. 올바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 역사의 아픔이 내게 더 감동을 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당시 역사적 사건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주워듣고, 남겨 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당시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다른 역사적 사건처럼 흐르는 역사의 강물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당시 역사의 한 복판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던 민중의 숨결을 직접 들었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 느꼈다고나 할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돈이 없는 노인을 무료로 태워주는 착한 택시 운전사 민우(김상경 분), 그에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며 서울대 법학과 입학이 목표인 고등학생 진우(이준기 분), 둘은 부모 없이 살아가면서도 어두운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형은 택시 운전을 열심히 하는 건전한 청년이고, 동생도 우등생이다. 진우와 함께 성당을 다니는 신애 역시 엄마가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구김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월남 방위 출신 택시 운전사, 별다방 미스김을 좋아하는 제비족,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선생님, 웃는 모습이 넉넉한 신부님, 책임을 다하는 의사. 이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평범하게 사는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상했듯이, 그때의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1980년 5월 18일은 이러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총칼에 희생되었다. 곧 철수하겠다는 계엄군의 말을 믿고 기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다 계엄군의 총탄에 어이없이 죽어나간 시민들. 사랑하는 부모, 자식, 형제, 연인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항했지만, 총칼 앞에서는 힘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가 중요한 만큼 각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 개인은 모두 존엄한 존재이다. 어는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도청에서의 대치를 앞두고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의 형제자매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가두방송을 하는 신애의 모습이 다시 그려졌다. 영화가 끝났지만, 신애의 애달픈 목소리는 내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우리의 형제자매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간 역사의 비극을 잊지 말아 주세요.”라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되어 귀에 계속 들려왔다.
관객들도 여기저기서 그때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역사의 아픔을 이웃의 아픔처럼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그때 가버린 님들의 영혼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러나 1980년 5월 18일, 27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역사를 보면서, ‘슬프다’라는 형용사로 단정 짓기에는 뭔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인했던 5월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뜨겁다’라는 형용사가 더 보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실제로 나는 슬픔보다 몸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을 보았다.
지식인들이 담고 있는 거창한 이념도 없는 사람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뜨거운 사람들이다. 이제는 세월에 젖어 누렇게 빛이 바랜 그 때의 흑백사진을 보면 담담할 줄 알았는데, 그때의 잔인한 아픔이 한없이 나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올해도 나의 화려한 휴가는 일찍 시작되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한꺼번에 쉬는 날은 무조건 나만의 휴가를 즐겼다. 봄부터 ‘천년학’을 보았고, ‘황진이’도 보았다. ‘천년학’에서 엇갈린 사랑의 슬픔을 보면서 내내 인간의 운명을 생각했다. ‘황진이’를 보면서 가슴 아픈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에 빠졌다.
7월의 더위가 시작될 때는 소설책을 몰아서 봤다. 김훈의 ‘남한산성’, 조정래의 ‘오 하느님’, 신경숙의 ‘리진’을 다 읽었다. 그리고 독후감 쓰는 즐거움을 누렸다. 계속해서 ‘트랜스포머’에 ‘다이하드 4.0’까지 쉴 새가 없었다. 영화와 소설, 그리고 글쓰기까지 나만의 독특한 휴가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지금 내가 누리는 휴가는 누군가의 희생이 준 선물
그런데,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의 휴가가 멈췄다. 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숨이 멈췄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휴가가 누군가의 희생이 준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더 이상 대가 없이 즐기는 휴가는 미안하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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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포스터. |
영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했다. 당시 그 참혹한 사건을 겪어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다.
최근 우리 사회는 김훈의 ‘남한산성’과 신경숙의 ‘리진’을 읽고,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듯,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현재가 과거에서 온 것이라는 전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는 시간이 남긴 골동품이 아니라, 현재보다 앞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복잡한 삶을 헤쳐 나가는데 과거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여기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주관성을 배제해야 하듯 과거를 보는 눈도 객관적이고 분석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서 우연히 발생했다는 소극적인 판단은 과거를 제대로 볼 수 없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고찰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현재의 해석이 중요하다.
5.18의 진실을 발견해 내는 것은 인간의 임무
과거의 사실을 현재 들여다보고 다시 미래로 전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더욱 개선 발전시켜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이 앞서야 한다. 역사의 진실을 발견해 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자 임무이다.
광주 시민의 저항도 특정 지역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보는 것은 이러한 임무와 능력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역사의 우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군부독재자들이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관이다. 자신들의 최소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원한과 분노를 품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럭저럭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로 물들었던 고통과 상처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감동의 기대도 접었다. 그런데 그 참혹한 역사가 내 눈가에 이슬을 맺게 했다. 올바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 역사의 아픔이 내게 더 감동을 주었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을 광주 민중의 숨결 느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당시 역사적 사건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주워듣고, 남겨 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당시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다른 역사적 사건처럼 흐르는 역사의 강물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당시 역사의 한 복판에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던 민중의 숨결을 직접 들었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 느꼈다고나 할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돈이 없는 노인을 무료로 태워주는 착한 택시 운전사 민우(김상경 분), 그에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며 서울대 법학과 입학이 목표인 고등학생 진우(이준기 분), 둘은 부모 없이 살아가면서도 어두운 기색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형은 택시 운전을 열심히 하는 건전한 청년이고, 동생도 우등생이다. 진우와 함께 성당을 다니는 신애 역시 엄마가 없지만, 아버지와 함께 구김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월남 방위 출신 택시 운전사, 별다방 미스김을 좋아하는 제비족,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선생님, 웃는 모습이 넉넉한 신부님, 책임을 다하는 의사. 이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평범하게 사는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상상했듯이, 그때의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1980년 5월 18일은 이러한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총칼에 희생되었다. 곧 철수하겠다는 계엄군의 말을 믿고 기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다 계엄군의 총탄에 어이없이 죽어나간 시민들. 사랑하는 부모, 자식, 형제, 연인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항했지만, 총칼 앞에서는 힘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27년전의 잔인한 아픔이 뜨겁게 달구는 여름휴가
국가가 중요한 만큼 각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 개인은 모두 존엄한 존재이다. 어는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모든 가치보다 우선한다.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도청에서의 대치를 앞두고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의 형제자매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눈물로 호소하며 가두방송을 하는 신애의 모습이 다시 그려졌다. 영화가 끝났지만, 신애의 애달픈 목소리는 내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우리의 형제자매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간 역사의 비극을 잊지 말아 주세요.”라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되어 귀에 계속 들려왔다.
관객들도 여기저기서 그때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역사의 아픔을 이웃의 아픔처럼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그때 가버린 님들의 영혼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그러나 1980년 5월 18일, 27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역사를 보면서, ‘슬프다’라는 형용사로 단정 짓기에는 뭔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인했던 5월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뜨겁다’라는 형용사가 더 보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실제로 나는 슬픔보다 몸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을 보았다.
지식인들이 담고 있는 거창한 이념도 없는 사람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뜨거운 사람들이다. 이제는 세월에 젖어 누렇게 빛이 바랜 그 때의 흑백사진을 보면 담담할 줄 알았는데, 그때의 잔인한 아픔이 한없이 나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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