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워', 마구 까기만 할 영화 아니다

YOROKOBI 2007. 8. 15. 20:52

자기식의 꿈 실현한 심형래, 미숙함 속 잠재력 보여줘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무서운 기세로 흥행을 계속하고 있다. <디 워> 현상에서 특이한 것은 전문가와 일반 관객, 혹은 일반 관객 내부의 의견이 격돌하면서 도리어 흥행을 밀어가는 맹렬한 뒷바람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마케팅의 의도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평론가나 전문 영화인들에 대해, 일반 관객들이 반발하면서 감독과 작품을 옹호하는 양상이 주된 흐름이다.

그동안 심화 되어온 평론가-전문가에 대한 관객-네티즌의 불신이 본격적으로 폭발한 측면도 크다. 심형래 감독이 전문 영화인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척되거나 소외되어 왔다고 하소연 해온 것이 일반 관객들에게 먹혀 들고, 결과적으로는 하소연 작전이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전술이 되었다.

평론가-전문가에 대한 관객-네티즌의 불신 폭발

▲ 영화 '디 워' 포스터
<디 워>는 잘 만든 영화인가, 못 만든 영화인가? <디 워>와 심형래식 작품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답하는 최선의 방법은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측면들을 고루 짚어보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보면, <디 워>는 부족한 점과 탁월한 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불균질한 작품이다.

전문가들이 주로 제기하는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디 워>는 분명 적지 않은 약점을 갖고 있다. 예컨대 시나리오 작법의 ABC와 어긋난다. 영화의 초반부에 중요한 이야기가 인물들의 대사로 주야장천 풀려나가는데, 이는 시나리오 교과서에서 '절대 피해야 할 사항'으로 누누이 지적하는 바다.

이야기의 구조(structure)도 거칠다. 예컨대, 1507년 낭자-도령의 이야기를 2007년 새라-이든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시퀀스 안에 풀어서 흡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또한 용이라는 존재에 대한 느낌은 동아시아 관객과 서구 관객이 확연히 다르다. 그럴 때에는 용에 대한 스토리를 조금 풀어줘야 한다. 즉,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영화 이야기로 번안해내는 교양과 감각 측면에서 아직 경험 미숙을 드러낸다. 군데군데 세련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은 말할 것도 없다.

<디 워> 완성도, 이야기 구조, 연출, 캐스팅 등 부족한 점 적지 않아

연출력 면에서도 너무 평이했다. 컴퓨터그래픽(CG) 아닌 실사 장면에서 커트와 화면의 구성력, 즉 미장센이 빈약하고, 어쩐 일인지 조명까지 TV 드라마처럼 평평해서 입체감이나 깊이감이 없다. 병실에 갇힌 새라가 탈출하기 위해 소동을 부리는 장면에서, 새라와 문 밖의 감시인에게 각각 떨어지는 그림자 같은 경우는 거의 실수에 가깝다. 조명과 카메라 워크가 아마추어 수준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감독이 하는 일은 포 떼고 차 떼고 말하면 미장센인데, 심형래 감독은 그런 측면에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디 워>는 또한 비싼 배우가 돈 값을 하는구나, 반면교사로 가르쳐준다. 주조연을 막론하고 연기가 미숙하거나 어색하다. 단순히 비싼 배우만이 연기 잘하는 것도 아닌데, 캐스팅과 배우 연출 면에서 동시에 약점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반면에 <디 워>가 보여주는 탁월함도 여러 가지 있다. 조선시대 사극도 많이 봤고 CG로 만들어진 괴수-괴물도 많이 봤지만, 그 두 개가 합해지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준다. 성벽 위에서 재래식 무기를 쏘아대는 조선병사들 앞에 괴수 군단이 죽 늘어서서 진군하고, 그들이 쏘아대는 불꽃이 기와 지붕을 무너뜨리는 비주얼은 <반지의 제왕>을 볼 때만큼이나 신선했다. 새로움이란 익숙한 것들의 조합-충돌에서 탄생한다.

컴퓨터 그래픽도 분명 평가해주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ILM이나 픽사,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만큼은 아니더라도, 영구아트무비의 기술력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충분할 만큼은 된다. 고층빌딩을 휘감은 이무기, 막판에 등장한 용의 비주얼은 일급이다.

이 모든 기술력이 전적으로 한국 스탭의 것이냐는 논란도 있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기술이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어디서든 끌어다가 충분한 효과를 내면 되는 것이다. 기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통적 소재와 서구 기술력 접목 등 콘텐츠·시장 전략은 주목해야

심형래 감독의 콘텐츠 전략은 한국 영화계 전체가 참조할 만하다. 전통적인 소재를 서구/ 할리우드와 접목시켜, 신선하면서도 보편성 있는 아이템으로 만든다는 것이 <디 워>의 기본 전략인데, 이것은 상식적일 만큼 타당하다. 그동안 우리가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심형래식 개그의 흔적도 반가웠다. 괴물이 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을 흉내 내다 부딪히는 할머니 모습은 슬랩스틱 개그의 대가인 심형래다운 발상이고 효과적인 에피소드였다.

<디 워>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것은 시장 전략이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기준으로 볼 때 결코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A급 시장용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미국 시장은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극장 수익보다 부가시장 규모가 훨씬 크고, 전체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40배가 넘는다. <디 워>는 B-무비 시장용으로는 안성맞춤이다.

굳이 많은 수의 극장에서 배급하지 않아도, DVD 판매나 대여와 같은 후속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충분히 수익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B급 장르영화나 아시아 소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틀림없이 있기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이 비디오 가게에 <용가리> 비디오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는 말을 유심히 들을 필요가 있다.

<디 워>의 흥행은 또한 마케팅의 승리이기도 하다. <디 워>의 후반 홍보전략을 보면 다른 무엇도 아닌 심형래 자신을 내세웠다. 그의 발언을 ‘애국심 마케팅’이라고 비판하지만, 영화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마케팅이란 일단 관객을 극장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최우선이자 유일한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디 워> 팀은 이 영화의 홍보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고 구사한 게 된다.

심형래 자신을 내세운 마케팅의 승리

향후 심형래 감독이 <디 워>의 성공에 자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나리오 크레딧이 심형래 단독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재고하기를 권한다. 기획과 시나리오에 전문 인력과 돈을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크레딧을 과감하게 양보 내지 공유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심형래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CEO다. 그의 장점을 보다 더 살리는 역할은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제작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인의 목표대로 '세계 최고'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한 사람이 각본-감독-제작 다 하는 시스템은 당연히 무리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프로듀서와 제작자는 말할 수 없이 크고 중요하며 명예로운 역할이고, 다른 무엇과 겸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를 붙인 것도 감상 과잉이다. 개인적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감상이나 소명의식이 가라앉을 때 도리어 힘있는 영화인의 길, 비즈니스의 길이 눈에 들어오리라고 본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심형래씨가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영화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꾸는 꿈이다. 꿈꾸는 자, 꿈을 실천하는 자, 그들에 의해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 산업이 건설된다. 심형래는 자기 식의 꿈을 실천한 사람이고, 그 결과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엄청난 경험과 향후의 잠재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결과물이 수준 면에서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많은 관객들이 그의 집요한 의지와 실천력을 지지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김소희/ 영화 프로듀서
영화 전문지 <씨네21>의 기자-편집장을 거쳐, 영화 제작사인 LJ Film 이사로서 기획 및 해외 비즈니스를 담당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한국영화사와 영화 기획,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영화 기획 및 해외 전략 등을 강의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프로듀서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