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보수반동의 시대, 친일파가 큰소리치는 세상

YOROKOBI 2007. 10. 5. 22:12
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위기, 한국판 빈체제가 올 것인가?
 
 
대선을 앞둔 요즘 신문들을 보면, 현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평가하면서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 기사가 자주 실린다. 겉으로는 공평무사를 표방하는 언론들이지만 은근히 자신들의 입장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입을 빌려 슬쩍 끼워 넣는 방법은 다들 비슷해 보인다. 특히 ‘참여정부=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비효율적이며 기능이 중복되거나 유명무실한 위원회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과거사관련 위원회에 대한 비판이다. 결국 그들 신문의 주장은 차기 정부에서는 과거청산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하루 빨리 그만두라는 이야기다.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미래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라는 식의 용감한 발상이 전국의 모든 대학의 역사학과를 없애자는 궤변으로 발전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하튼 정부수립 직후 반민특위를 반대하던 이유가 건국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나 지금의 과거청산운동이 미래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나 결국 자신들의 뒷모습에 자신 없는 자들의 옹색한 자기 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들의 염원이 아니더라도 요즘 현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몇 일들을 보면 과거청산에도 레임덕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는 모양이다. 2,3년간 잠잠했던 친일옹호세력들이 올해 들어 물 만난 고기처럼 다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친일잡지 동양지광(왼쪽 위 작은 사진). 박희도 이사(理事)의 이름이 뚜렷하다.

     먼저 삼일절 직후인 올해 3월 20일, 민족대표 33인 유족회가 개최한 ‘민족대표 33인의 재조명’ 학술회의는 주로 변절한 민족대표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희도, 최린, 정춘수 등을 끼워 넣어 복권을 추진하는 자리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특히 조선독립보다는 차선책으로 자치론의 주장하면서 이후 대표적인 친일잡지인 <동양지광> 사장 등을 역임하며 왕성한 친일활동을 펼친 박희도에 대해서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였으나 친일파로 변절한 박희도는 ‘민족을 위한 친일을 주장한 소신친일파’로 평가되는 이광수, 윤치호와 일맥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언제부터 친일파를 분류할 때 ‘민족을 위한 친일을 주장한 소신친일파’라는 항목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며 또 소신을 가지고 한 행위는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대표적인 친일인사들을 복원하려는 이런 행사에 국가보훈처가 후원을 했으니 현 정부의 레임덕을 보는 것 같다. 

     또 다른 사례는 전북 군산 출신의 문학인 채만식의 이름을 딴 채만식문학상 명칭 문제이다. 당초 채만식문학상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이 채만식의 친일행위를 이유로 명칭 변경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해 문학상 운영진은 군산문학상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만 버티면 차기 정부에서는 이 문제가 좀 사그라질 것 이라는 기대 속에서 말이다.

     세 번째 사례는 충남 당진군에서 세운 인태식 공적비이다. 당진 출신인 인태식은 일제시대 홍천과 청주세무서장 등 주요 관직에 올랐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에 의해 발탁되어 국회의원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당진군은 지역 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진군 남산에 있던 친일관료 인태식 공적비를 군유지로 옮겨 놓고 계속 관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는 인태식의 친일행적을 담은 안내판을 세우겠다는 요구했지만 당진군은 이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청주 삼일공원에 있다가 1996년 시민들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좌대만 남은 정춘수 동상을 대신해 그의 공과를 담은 비석을 다시 건립하려는 움직임도 속내는 정춘수를 복권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화성시 역시 계속해서 홍난파 기업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하며, 통영시에는 유치환에 이어 유치진을 다시 복권하려 하고 있다.

수필가 김소운. 소설가 최일남은 그의 친일 경력을 가리켜 "작은 상처가 있어 인간적으로 한층 경도(傾倒)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에 의한 친일옹호행위 말고도 최근에는 이광수, 서정주 등과 더불어 친일문인으로 분류된 김소운의 장남은 한 문학 전문 잡지에 자신의 부친의 친일을 옹호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에 항의하는 글을 올렸다. “2차 대전 중 언론에 발표되었던 글 몇 편을 빌미로 친일반민족인사 명단에 선친의 이름 석자를 올린 민족주의자들에게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한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소운의 부인이자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모두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사실도 언급하고 있다.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으로 유명한 김소운은 1943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내면서 조선청년들에게 지원병을 권하고 있다. “조선에 생을 받은 학도 제군. 내가 하려는 말은 이미 제군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고무 격려하고 천만언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때 충정을 기울여 제군에게 부탁할 말이 한마디 있다. 역사의 부채, 오랫동안 조선민족의 배후에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는 이 부채를 이제야말로 제군의 손으로 청산하여 주기 바란다.”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느껴지는 담백하고 푸근한 감정을 찾아 볼 없는 격한 느낌의 글이다. 

     여하튼 이 같은 유족들의 항변이야 인지상정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과거청산에 대한 학자들의 딴지걸기는 좀 민망하다. 특히 한때 진보적 지식인 반열에 올랐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에도 깊은 연구 업적은 남긴 심지연 교수는 얼마 전 친일과거청산에 부정적인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 “방향이 잘못됐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금처럼 친일행위를 규명하려는 것은 일시적인 분풀이나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친일행위보다 일제에 저항했던 행위가 더 중요하며, 그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

현재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와 예우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가 친일연구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특히 심지연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한 때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나 이후 친일로 변절한 인사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위에서 사례로 언급된 인사들 대부분이 잠시나마 일본에 저항했던 경력은 친일의 죄과를 희석시키는 궤변으로 변태하기 쉽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로선 친일과 독재 그리고 반인륜적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판 빈체제’라고 해야 할까. 빈체제란 공화주의의 시대를 연 프랑스혁명으로 존립의 위기를 느낀 왕정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보수 반동의 복고체제였다. 물론 이러한 반동제체는 현 체제 책임자들의 실책도 한몫을 하고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4월 혁명 직후 민주당의 무능이 5.16 쿠데타의 원인이었듯.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세력들이 다시 준동하는 시대는, 보나마나 또 다시 우리가 경험했던 바로 그 과거일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우리들이 직관적으로 터득하는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친일과거청산운동이 결코 과거지사가 아닌 분명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