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비싸면 좋은 PC 인가?...
그런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작성자 dolf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필자는 스마트개짓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용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용팔이'라고 불리는 쇼핑몰에서 일을 합니다.
물론 직접 물건을 팔지는 않습니다만, 부수 업무로서 조립 PC의 견적상담 및 호환성 점검, 기타 기술상담 형태로 고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하는 일 가운데 견적 상담이 있다보니 별의 별 견적 문의를 다 만납니다만,
기분을 크게 상하는 견적이 다름 아닌 '중고생이 내놓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최고급 견적'입니다.
스마트개짓의 기본 성향과 정 반대의 '가난뱅이' 성격인 필자는
이런 견적은 참지 못하는데, 이런 견적을 물어보는 청소년들은 상당수가 '편견과 무지' 때문에 200~300만원짜리 PC 견적을 꺼내듭니다.
굳이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일단 높은 PC 견적을 들이대면서 '비싸요'라고 말합니다.
불필요하게 비싼
PC를 사게 만드는 이런 편견과 무지가 도대체 무엇인지, 견적 전문가(?) 입장에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비싼 부품은 더 오래쓰고 더 빠르겠지?...
전통적으로 이 생각만큼 비싼 부품을 사게 만드는 편견이 없습니다.
PC 한 대 가격이 150만원했던 때도 그랬고, 웬만한 게임 PC를 50만원이면 살 수 있는 지금도 이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로 가장 비싼 부품을 사면 몇 년이 지나도 쌩쌩하게 쓸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비싼 부품이 진짜 더 빠를까요? 지금 당장은 빠르기야 조금 더 빠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더 오래 쓴다는 말은 아니죠.
진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한 마디 던지겠습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인텔의 7만원짜리 초 싸구려(?) 듀얼코어 CPU와 28만원짜리
최고급 듀얼코어를 비교했을 때 28만원짜리가 4배 더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 6개월 정도는 가치를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가격 차이 만큼 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능이 좋다는것도 사고나서 한 1년 이야기일 뿐, 시간이 지날수록 저가형 제품과의 가치의 차이는 좁혀집니다. 한가지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펜티엄 III 450MHz와 800MHz가 있습니다. 이 CPU는 같은 시대에 나오고 팔린 제품입니다. 가격 차이도 당시에는 몇 배까지 났던 제품이죠.
그렇지만 지금 사용자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엄청난 차이가
있을까요? 어차피 여기서 WoW 돌리지 못하는건 똑같습니다. Flash로 도배된 웹 사이트에서 끊기는 것도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고사양 DivX도 역시 정도는 있을지언정 끊긴다는 점은 같습니다.
현재의 사용자들이 하고자 하는 작업에 있어 이 두 CPU는 더 이상 차이를 보이지 못합니다.
5년만 지나면 어떤 CPU나 어떤 그래픽카드도 비슷한 처지가 되고 맙니다.
제일 싸구려 듀얼코어와 최고급 듀얼코어는 지금 보기엔 차이가 큽니다.
나름대로 성능 차이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지금 당장 차이가 있을 뿐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차이가 그만큼 벌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싼 부품보다 더 비싼 부품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성능이 더 낫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사람은 아날로그의 동물이라서 성능이 어느 정도 빨라지면 그 이상은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인터넷을 즐기고 영화만 보는 PC에 80만원짜리 그래픽카드를 꽂는다고 영화가 아이맥스로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싸구려 듀얼 코어로 워드를 치면 300타가 나오는 것이 최고급 듀얼 코어 CPU는 800타가 나오는 일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일본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그 날 까지 없을 것입니다.
■ 무조건 최고! 최고! 최고! 견적 문의를 받을 때 가장 내기 어려운
것이 '최고로 해주세요'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최고'의 뜻은 사람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냥 PC를 있는 그대로 쓰는 사람과 '벤치마크
점수 놀이'를 하는 사람의 '최고'의 기대치는 다릅니다. 물론 전자는 실제 기대치가 낮고, 후자는 꽤 높겠죠. 하나 가상의 예를 들어 보죠.
전 세계적으로 기대를 모은 3D 액션 게임 'IT 도적단 스마트개짓'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1.8GHz급 듀얼코어와 지포스 8500GT, 1GB 메모리를 권장합니다.
사용자 커뮤니티에서는 2.13GHz급 듀얼코어, 지포스 8600GT, 2GB 메모리면 충분히 빠르게 즐길 수 있다는 평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게임을 '최고'로 즐기겠다고 2.66GHz급 쿼드코어와 4GB 메모리, 지포스 8800 울트라를 견적을 뽑고선 '비싸~~'를 외칩니다.
도대체 견적을 내줘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으로 욕 한 번 하고 나름대로 위의 견적을 다운그레이드해서 권장 제원 수준으로 깎아 내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3D 게임은 큰 불편 없이 즐길 수 있는 속도가 30fps, 인간의 눈으로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 60fps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많은 게임이 30fps로 고정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사람이 아니면 전체적으로 30fps만 넘으면 '불편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FPS 게임같이 움직임에 민감한 게임도 60fps면 충분합니다.
현재 주력 PC 부품은 1,024*768 또는 1,280*1,024 픽셀 해상도에서 저 정도의 속도는 충분히 나와줍니다.
물론 모든 3D 옵션을 전부 켠다면 속도가 느려질 수 있겠지만 한 두 옵션만 끄거나 낮춰도 게임에 지장이 없습니다.
실제로 프로 게이머들은 게임을 할 때 불필요한 옵션은 전부 끕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사람은 아날로그의 동물입니다. 사람의 감각 시스템은 민감할 때는 매우 민감하지만, 대체로는 그리 민감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조금 여유 있게 가지면 웬만한 부품으로도 충분히 빠른 게임 PC를 꾸밀 수 있습니다.
'남이 최고'라고 하는 것은 나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내게 최고'인 부품이 진짜 최고인 것입니다.
남이 최고라고 하니까 자신의 감각이 하는말을 무시해버리는 사람에겐 후회와 짜증밖에 나지 않습니다.
■ 한 번 사면 5년은 써야지 이 논리는 PC를 사주는 분 입장에서 많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이십니까?
그런 말은 80년대나 90년대 초중반에나 통하는 말입니다. PC가 무슨 TV나 라디오입니까?
휴대전화는 1년, 길면 3년마다 바꿔주면서 PC는 5년 이상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러분,
휴대전화 기술은 지금까지 겨우 3번밖에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휴대전화의 기술 변화보다 PC의 기술 변화는 더욱 빠르답니다. 휴대전화를 자주 바꾸지 않을지언정
PC는 새롭게 바뀌는 부품들로 바꿔줘야 꾸준히 빠르게 쓸 수 있습니다.
당장 최고의 부품을 모아 PC를 꾸미면 지금 당장은 빠릅니다. 1년 정도는 꽤 행복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보급형 PC와 성능 차이는 줄어듭니다.
보통 2년이 지나면 고급형 게임 PC로서의 가치는 퇴색하며, 4~5년이 지나면 멀티미디어 작업 또한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픽카드는 보통 1년~1년 6개월이면 차세대 제품이 나오며, CPU의 새로운 기술은 3~5년 사이에 나옵니다.
또한 PC의 기본을 이루는 뼈대는 아무리 못해도 10년에 한 번 크게 바뀝니다.
이렇게 기술 변화가 잦은 만큼 당장 최고의 부품이라고 할지라도 6개월만 지나면 평범한 중급 PC로 전락하며, 전체적으로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PC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속도는 중급형 제품과 그리 차이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장 권하는 방법은 당장 최고의 부품을 쓸 돈을 절약해 용도에 맞는 중급형 제품을 산 뒤 2~3년 뒤에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입니다.
예산은 전체적으로 비슷하거나 더 적게 들어가지만, 5년 뒤의 성능을 비교하면 차이가 적지 않게 벌어집니다.
한 번 업그레이드한 PC는 적어도 한 세대 앞선 기술과 성능을 갖고 있지만 당시 최신형은 '당시 비쌌다', '
당시 빨랐다' 말고는 매력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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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쓴 글은 너무나 당연한 내용일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비싼 부품으로 PC를 꾸미지 말고 적당한 것을 고르자'는 PC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달고 사는 말이니까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주장이 '비싼 것을 못쓰는 사람의 울분 토하기'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도 다른 업계에 있었을 때는 보통 사람이 만져보지도 못하는 최고급 PC 부품을 실컷 만지고 살았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꼭 최고인 것이 좋은 것은 아니더라... 하는 사실이 굳어지더군요.
당장 밥을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장 최고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의 견적이라면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당연히 최대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최상의 부품들만 선택해드리고 있으며,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이 아닌 평범한 가정용 PC에 불필요하게 돈을 쏟아 붓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닌 부모님의 돈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자본주의는 소비자가 원해서 물건을 팔았는데 돈에 비해 성능이 안나온다는 욕을 막아주진 못하더군요.
스스로 부품을 골랐으면서 비싼 주제에 성능은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불만을 말하기 전에 스스로 처음에 뽑은 PC 부품이 자신에게
맞는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서 보통 'OK'가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도 크게 딴지는 걸지 않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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