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십일조가 폐지된 확실한 증거

YOROKOBI 2008. 9. 15. 11:54

  성경은 증거하기를 하나님께서 세상에 임할 때(새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죄사함을 받는 제사와 성소(건물)에서 드려지는 예물(헌물, 십일조)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히 10장 7절(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헌물과,십일조) 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다.

공동번역 히10장18절( 죄가 용서받았으므로 이제는 죄 때문에 봉헌물을 바칠 필요는 없게 되었읍니다.)

 

십일조와 헌물과 속죄하는 제사 즉 주일성수와  안식일예배 준수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행위임으로 율법주의사상입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세우면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무서운 심판입니다.

 

십일조는 엄청난 것입니다. 엄청나기 때문에 포기하기 힘든 것입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맹위를 가진 십일조. 십일조가 걷어져 어디에 쓰이는 지 구석구석 살펴봐야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야훼는 나를 위해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 했습니다. 일단 성전(교회)를 짓기 위해는 물론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걷어져서도 안됩니다.

 

십일조 말고도 여러 명목의 헌금이 존재합니다. 다듬은 돌에 해당하는 건축헌금도 존재합니다.

폐지해야할 수많은 헌금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십일조 폐지입니다. 십일조 제도는 한국의 돌팔이 교수, 삯꾼 신학자들이 빵 한 조각을 얻어내기 위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3대 근성 (명예-권위-탐욕) 에 눈이 먼 먹사 집단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 범죄행위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십일조는 범죄행위이며 걷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십일조를 걷는 것은 하느(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원과 1%도 상관없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키려면 모두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을 십자가 보혈로 완성하신 예수님 덕분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십일조 [, tithe]

 

중세 유럽의 교회에서 교구민()으로부터 수입의 1/10을 징수하였던 세.

10분의 1세', '10분의 1교구세'라고도 한다. 고대의 유대교도에게 수입의 1/10을 야훼신께 바칠 것을 명한 구약성서의 율법에서 연유한 것인데, 구약시대의 제사의식에 참예하는 유대인들은 형편에 따라 빵과 포도주를 들고 와서 나누어 먹는 정도였다. 서유럽에서 십일조가 처음에는 이를 그리스도교도가 하느님에게 자의()로 즐겨 바치는 경건한 신앙행위로 받아들여졌으나, 6세기 이후의 교회는 점차 신자에게 이를 강요하다가, 8세기에 이르러 카롤링거왕조의 피핀과 카를대제 등은 이를 아예 의무화하였다. 특히 10세기에 성행한 사유교회제()를 이용하여 세속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민()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사유화하여 갔다.

 

교회는 라테란 공의회(, 1078) 및 1179년 그레고리우스의 교회제도개혁을 통하여 영주로부터 십일조를 환수하려 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그 대부분은 세속 영주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소교구()의 사제()는 그의 생활과 교회의 관리·유지를 명분으로 곡물·포도주·가축·사료(이상 대십일조), 아마()·가금()·채소(이상 소십일조), 개간지(:신십일조) 등에 십일조를 부과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실제로 수입의 1/14 또는 1/15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도 앙시앵 레짐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민중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1789∼1790년 대혁명의 과정에서 폐지되었으며, 영국에서는 1648년과 1688년에, 독일에서는 1807년에 각각 폐지되었다.

 

사진은 구약시대 성소의 모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건물로 건축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산에 건축을 했기에 성전 이름을 예루살렘 성전이라 불렀습니다. 

 

 

그림설명

1) 흰옷을 입고 성전 마당에서 양을 잡고 불을피워 제사를 행하는 사람들이 레위지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레위지파의 자손들만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2) 건물 안쪽에 연기가 나오는 곳이 지성소(내소)라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언약인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십계명을 보관한 언약궤를 보좌삼아 거처를 하신 것입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며 1년에 한번 대속죄일날에 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3) 어린 양과 짐승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음을 당하고 그 고기는 각을떠서 번제단(불이 솟구치는 그림참조) 에 올려놓고 태워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잡을 때 나오는 짐승의 피는 통에 받아서 성소에(외소)에 들어가 제사장이 손에 발라 성소에 뿌립니다. 그리하면 백성들의 죄는 성소로 넘어갔다가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예식을 통하여 넘기고 준비한 아사셀 수염소에게 안수하고 그 수염소를 광야에 풀어놓으면 모든 백성들의 죄를 수염소가 안고 죽게되는 것입니다. ( 아사셀 수염소는 마귀로 표상된 짐승이며 죄의 근본인 마귀가 마지막에 모든죄를 가지고 죽게될 예언입니다.)

 

십일조를 명하신 이유

1) 이스라엘 백성들은 12지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체 인원은 때에 따라 다르나 천만명정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한 지파인 레위지파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하며 성소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일을 담당합니다. 그러니 생활할 수입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11지파에게 명하여 소득의 10분의 1씩을 거출하여 제사장인 레위지파를 도우라고 명하신 규례가 십일조법입니다.

 

민 18장 21절(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성소)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2)십일조 규례는 다른 사람들이 받을 수 없으며 오직 레위지파에게만 허락하신 규례입니다. 레위지파가 십일조를 받게된 이유는 성소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천만인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려면 제사장이 한두명이 아니라 수만에서 수십만의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레위지파는 다른 노동을 할수 없기에 다른 11지파에게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을 했던것입니다.

 

성소가 없어지면 제사일이 폐해지고 제사일을 행하는 레위지파도 필요가 없다. 또한  레위지파를 위해 주어지던 십일조 규례도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이다.

 

1)구약시대에는 건물이 성전이나 신약시대에는 성도들의 몸이 성전입니다.

고후 6장 16절(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우리(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2)예수님은 보이는 성전(건물)을 헐라 하시고 새로운 성전인 성도들을 세우려 하셨습니다.

요 2장 19절(예수께서 그들(유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3)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건물이 성전이었기에 성전일을 행하는 레위지파가 필요했고 그들을 위한 십일조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성도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전된 성도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봉사는 성도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마음을 거룩히하고 선행을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행위를 가리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산 제사 즉 예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구약시대 성소일을 행하던 레위지파만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일뿐 그 외 누구에게도 받으라고 명하신적이 없습니다. 현대 교회의 먹사들이 십일조를 받고 싶으면 유대인들처럼 성전(건물)을 만들고 양을 잡아 제사를 지키며 일만가지 구약의 율법을 행해야 하며 이스라엘로 가서 레위지파에 가입을 하셔야하나 받아줄지 모르겠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폐하셨습니다. 더욱더 많은 성경의 증거들이 있으니 궁금하신분은 추가로 정리하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십일조나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하늘에서 보화가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는 십일조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화가 하늘에 쌓아질까요? 정확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길 내하나님 백성일지라도 성경의 지식이 없으면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어 멸망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늘에 보화가 쌓이는 이치를 보십시요.

 

마 19장 21절(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

 

예수님은 하늘에 보화가 쌓이는 방법으로 십일조를 당신께 가져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었을 때 하늘에서 보화가 쌓인다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목사들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 돈을 받고 보화가 하늘에 쌓였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한번 보시면...

눅 19장 8절(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십일조를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것은 바리세인과 유대의 제사장들이였습니다. 그들은 그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쌓고 정치와 연합하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을 했습니다. 오늘날 부패한 교회가 이와 똑같습니다. 십일조를 받는 교회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받지 않고 돈없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여 천국으로 인도를 하십니다.

 

사 55장 1절(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하나님의 말씀)와 젖을 사거라.)

 

한국 교회들이 십일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폐지하신 호화로운 성전을 다시 건축했기 때문이다. 호화로운 성전을 건축하고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다시 만들었으니 그 건물을 운영하려면 운영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십일조외에 70여 가지의 각종 헌금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호화로운 성전을 기뻐하실까? 예수님이 호화로운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을까?

 

요 2장 19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46년동안 지은 호화로운 성전을 헐어 버리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모든 구약의 율법을 폐하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며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또한 

건축물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로 변경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은 어디일까? 

 

고후 6장 16절(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신약시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다면 교회건물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성전인 우리의 몸을 정결히 하고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자.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 이단 조용기!  (0) 2008.09.22
예수 무덤의 진실  (0) 2008.09.17
“기도의 사도직” 역사와 영성  (0) 2008.09.15
이제민 신부, 한국형 소공동체 전면 비판  (0) 2008.09.15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0) 2008.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