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진 정몽준 의원들! 그 날치기 현장 잊지 않을거야......

YOROKOBI 2008. 12. 20. 14:59
글쎄, 이런 기분을 뭐라고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알 뿐, 그 외에는 대체로 남들이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지레짐작해서 비난을 하고 또 잣대를 들이대고, 무언가를 요구하곤 한다. 일테면 그런 것이다. 철학과라고 하면 관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던가, 공대면 무조건 수학을 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 또 음대학생이면 부자라고 생각하는 그런 식이다.

공대생과 음대생에 대한 선입견의 경우에는 실제로 공대생의 주 공부과목을 소화하기 위한 기본 소양이 수학을 어느정도 해야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며, 음대생의 경우에도 그 많은 레슨과 고액의 레슨비, 악기 구입비, 유지비 등등을 지불하기 위해서 음악을 그만두는 서민층 자녀가 많은 만큼 대체로 집안이 먹고살만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러나 양자 모두 그 분야의 모두를 지칭하기엔 미흡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철학과가 관상을 볼 줄 알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적 착각에 불과하며, 철학과에 대한 무지에서 그러한 선입견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선입견,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정적이고 실제와 다르게 포장된 분야가 바로 이 정치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국회라는 공간에 대한 언론의 잘못된 포장이 국회를 정체하게 만들고, 기운빠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지금 국회라는 공간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항상 국회의원들이 일은 안하고 매일 놀고, 싸움만 한다고 생각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른데, 나는 이러한 선입견에 강하게 도전하고 싶다. 국회의원은 스케줄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짜여져있고, 아침 7시 30분부터 회의, 세미나, 포럼, 조찬 모임 등등이 잡혀있고, 저녁에는 별 별 사람을 다 만나서 밥을 먹어야 한다. 정치는 인사(人事)이기 때문에 인맥을 넓히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 먹는것이 일반인에게는 '노는 것'일 수 있으나 정치인에게는 다 '일'에 속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일'이란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를 들여다보거나,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거나 하는 일 등등이 '일'에 속한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하는 일도 그런 일의 일종인데, 국회의원은 사무실의 CEO와 같아서 보좌진이 준비한 서류와 법안 등에 대한 최종 방향을 결정하고 지시를 내리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보좌진은 의원이 지향하는 바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여러 문건과 법안을 만들어낸다.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보좌진 6~8명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집단에 구성원으로 성원시킨다는 의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회의원은 그가 직접 실무능력이 뛰어나고 해서 어떻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의 사상과 지향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표현해내려는 의지가 있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사람인가 그것을 보고 평가해야한다.

국회의원은 법안도 만들어야하고, 국정감사때는 행정부처의 권력남용이나 불법행위, 여러 행정적 착오 등을 감시하는 일을 해야하며, 상시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고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야 한다. 법안 만들고 검토하는 것만 해도 일이 어마어마 하고, 국정감사때는 보좌진 6~8명이 밤을 새도 일이 너무 많고, 행정부처는 너무나 방대해 일일이 대응하기도 벅차다.

또 사람들은 정치인이 매일 싸우기만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실 생활을 살아보면 알지만 세상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싸울 때도 있고 무시할 때도 있다. 국회의원은 각자 자기가 대변하는 생각과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생각,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 애쓴다. 그렇게 되면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고, 강력한 설득의지가 있다면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의 성토장이 바로 국회이고, 싸우지 않는 국회는 그 존재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싸우는 그 내용이 시덥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이 될때야 비난하고 채찍질을 해야겠지만, 매일 '싸우기나 한다'고 덮어씌워서 진짜 싸워야할 때 싸우지 못하게 물타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미FTA비준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하는 문제 역시 그렇다. 이 문제는 국민의 향후 경제적 타격과 관련하여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이와 관련한 입장정리와 토론, 대책 마련 등등이 해결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비준안이 통과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그 세부 주장은 다를지라도, 민주당과 민노당은 한미 FTA비준동의안 상정을 막아야만 했고, (왜냐하면 상정이 되어서 토론을 하다가 잘 안되면 한나라당이 표결로 넘기고 일사천리로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비준될 것을 알기에) 본회의장에 자기들끼리 꽁꽁 들어가서 날치기로 비준안을 상정하려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자, 여기서 연말마다 벌어지는 진풍경인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인데, 촛불집회 나가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다. 정말 전운이 감돈다. 소통되지 않는 상대와 맞닥들일 때 그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

국회의 경찰이라는 경위과 사람들이 회의실 안에 들어가서 문 앞에 의자 등등을 쌓아올려 막아두고,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부수어 열어보니 의자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려 아무리 밀어내도 밀리지 않고, 조금 빈틈이 생기니 안에서 밖으로 소화기를 쏘아댄다. 이쪽은 물호스를 이용해 물을 쏘아댄다. 순식간에 국회의사당 복도는 아수라장이 되고 나도 물벼락을 맞았다. 기자 라인 뒤쪽이라 소화기는 안맞았지만, 공기는 뿌연것이 과연 촛불집회 못지않더라.

그 난리 난리를 치고 나니,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위과 경호를 받으며 속속들이 빠져나간다. 회의를 기록한 속기사들은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날치기로 한미 FTA비준 동의안이 상정된 것이다. 회의장 문이 열렸다. 산을 이루고 있는 의자더미,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소파, 뜯겨져 나간 카펫바닥, 가관이었다.

날치기 상정에 허탈해진 민주당과 민노당 여러 의원들은 털썩 앉아있었고, 민노당의 슈퍼스타 이정희 의원은 쏟아지는 분노를 토해내며 한나라당 의원들의 명패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누가 하고 있길래 가서 봤더니 이정희 의원이더라. 그는 그 뒤 미동도 없이 의자에 꼿꼿이 앉아 분노하고 있었다. 부들부들부들,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걸 억지로 참고 또 참아 앉아있는 듯 했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실, 오전 대치상황 때 나는 사무실에서 대치상황 사진을 보며, 어 누구 나왔다~ 하며 낄낄대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은 어느새 하얗게 날아가고, 한미FTA상정 문제를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그러다가 아,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남 일마냥 국가지대사를 보고 낄낄대고 있나, 나는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국회의사당과 국회의원회관의 심리적 거리감은 멀었다. 회관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고, 국회의사당은 씨끌벅적했다. 나는, 대치현장에 가보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의원들이 뜯어낸 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아,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그래, 국회란, 이 중요한 문제들을 목숨걸고 싸워야하는 그런 곳이었지 하고 말이다.

국회는 그런 곳이다.
나라의 중요한 사안들이 일반 업무처럼 다루어지는. 그 속에서 있으면 당연한 것이 되고 무뎌지기 십상이다.
일반 회사에서 서류검토하듯 법안을 검토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한다.

오늘, 역사적인 한 순간에 서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박진 위원장, 당신 잊지 않을거야.
황진하 간사, 당신, 잊지 않을 거야.
정몽준, 남경필, 정진석, 김충환, 이춘식, 정옥임, 구상찬, 홍정욱!
날치기 의원 당신들 잊지 않을거야.

박수빈/대학생
필자는 서울대 휴학생으로 현재 국회의원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