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경위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5일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그동안의 경찰이 보여준 수사태도는 적잖은 문제점을 보였다.
특히 경찰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중대한 사안임에도 초동수사 단계에서 경호관의 진술에만 의존해 객관적인 검증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사실과 동떨어진 경위를 발표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후속 발표 때마다 주요 내용이 바뀌어 `부실수사' 비난을 자초했다.
경찰은 당초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밑에서 발견된 시각을 오전 6시45분께로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6분이나 늦은 6시51분께로 뒤집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후 산속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사저 경호동에 있는 다른 경호관과 주고받은 통화 시간 기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호관은 오전 6시 17분과 23분, 30분, 35분, 47분, 52분 모두 6차례 통화했고 마지막 통화하기 직전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는데 경찰은 이 사실을 뒤늦게서야 확인했다.
또 사저 초소에 근무하던 전경이 부엉이 바위에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 2명이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시각도 오전 6시 20분께로 발표했다가 다시 6시10분께로 바꾸는 등 수사 전반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투신 당시 경호관과 함께 있었다'고 발표했다가 `경호관 없이 혼자 있었다'고 서거 경위를 완전히 뒤집어 한때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서거 당일인 지난 달 23일 경호동에서 1차 조사를 받았던 이 경호관은 "투신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었으며,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는 뒷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이틀 뒤 2차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 때 (나를) 정토원에 심부름 보냈고, 정토원에 갔다 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고 번복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정토원 선진규 원장이 서거 이튿 날인 지난 달 24일 이 경호관이 근접경호 실패를 은폐하려 한 통화 내용을 경찰에 제보하지 않았더라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진실이 자칫 묻혀버릴 뻔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경호관은 공중전화로 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정토원에 갔다는 것은 진술했으나 원장님을 봤다는 진술은 빠졌다"면서 "원장님이 이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는 자신을 목격한 선 원장에게 서거 당일 자신을 본 일이 없다고 말해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인데 자신이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로 경찰은 해석했다.
이 같은 선 원장의 제보가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 없이 혼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고 경찰은 앞서 인정한 바 있다.
이 수사과장은 이에 대해 "남다른 충성심과 사명감으로 교육받아온 경호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경호관의 진술을 처음부터 너무 믿었던 게 혼선을 빚게 된 주 원인인 것 같다"면서 "결과적으로 경호관의 진술에 의존해 발표했다가 사실과 다르게 국민에게 알려졌던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은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중대한 사안임에도 초동수사 단계에서 경호관의 진술에만 의존해 객관적인 검증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사실과 동떨어진 경위를 발표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후속 발표 때마다 주요 내용이 바뀌어 `부실수사' 비난을 자초했다.
경찰은 당초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 밑에서 발견된 시각을 오전 6시45분께로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6분이나 늦은 6시51분께로 뒤집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후 산속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사저 경호동에 있는 다른 경호관과 주고받은 통화 시간 기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호관은 오전 6시 17분과 23분, 30분, 35분, 47분, 52분 모두 6차례 통화했고 마지막 통화하기 직전에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는데 경찰은 이 사실을 뒤늦게서야 확인했다.
또 사저 초소에 근무하던 전경이 부엉이 바위에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 2명이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시각도 오전 6시 20분께로 발표했다가 다시 6시10분께로 바꾸는 등 수사 전반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투신 당시 경호관과 함께 있었다'고 발표했다가 `경호관 없이 혼자 있었다'고 서거 경위를 완전히 뒤집어 한때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서거 당일인 지난 달 23일 경호동에서 1차 조사를 받았던 이 경호관은 "투신 당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있었으며,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는 뒷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이틀 뒤 2차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 때 (나를) 정토원에 심부름 보냈고, 정토원에 갔다 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고 번복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정토원 선진규 원장이 서거 이튿 날인 지난 달 24일 이 경호관이 근접경호 실패를 은폐하려 한 통화 내용을 경찰에 제보하지 않았더라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진실이 자칫 묻혀버릴 뻔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경호관은 공중전화로 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정토원에 갔다는 것은 진술했으나 원장님을 봤다는 진술은 빠졌다"면서 "원장님이 이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는 자신을 목격한 선 원장에게 서거 당일 자신을 본 일이 없다고 말해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인데 자신이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로 경찰은 해석했다.
이 같은 선 원장의 제보가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 없이 혼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고 경찰은 앞서 인정한 바 있다.
이 수사과장은 이에 대해 "남다른 충성심과 사명감으로 교육받아온 경호관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경호관의 진술을 처음부터 너무 믿었던 게 혼선을 빚게 된 주 원인인 것 같다"면서 "결과적으로 경호관의 진술에 의존해 발표했다가 사실과 다르게 국민에게 알려졌던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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