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랍어로 뮈스테리아(mystria)라는 말은 원래 뮈에인(myein)이라는 동사에서 왔는데, 그것은 ‘눈이나 입을 닫는다’는 뜻이다. 비밀스러운 의식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의식에 참여하는 초심자를 뮈스테스(mystes, 복수는 mystae)라 부르고 이러한 초심자를 지도하는 사람을 뮈스타고고스(mystaggos)라 부른다. 전체 제식의 최고 사제를 히에로판테스(hierophants)라 하는데, ‘성스러운 것들을 계시하는 자(revealer of holy things)’라는 뜻이다.
|
데메테르는 로마신화 속에서는 케레스(Ceres)로 불리기도 하는데, 데메테르라는 이름 자체가 ‘곡식의 엄마(grain mother)’, ‘엄마 대지(mother earth)’를 뜻하고 있다. 크로노스(Cronos)와 레아(Rhea)의 딸이며, 제우스의 누이인 동시에 애인이다.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난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애지중지했는데, 지옥의 왕인 하데스(Hades)가 연정에 불타올라 엔나의 골짜기에서 꽃을 따며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땅을 가르고 명부로 납치해 갔다. 딸의 비명소리를 들은 데메테르는 꼬박 아흐레 동안 온 세상을 헤매었으나 딸을 찾을 길이 없었다.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되찾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버전이 있어 일관된 서술이 어렵다. 하여튼 데메테르는 하데스가 제우스의 허락을 받아 딸을 납치해 간 것을 알고 분노한 나머지, 지하로 통로를 열어준 땅에 저주를 내린다: “배은망덕한 땅아! 나는 너를 비옥하게 하였고 풀과 자양분이 많은 곡식으로 덮어주었노라. 이제 그러한 은총을 받지 못하리!” 기근이 만연하였고 모든 종자는 싹이 트지 않았다. 그리고 데메테르는 엘레우시스에서 노파 유모로 변신하여 이 지역의 왕 켈레오스의 막내아들 트립톨레모스(Triptolemos, 어떤 버전에는 Demophon)를 길렀는데, 켈레오스는 결국 자기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려는 데메테르의 행위를 목격하고 그녀의 본색을 알게 되었고, 데메테르를 위한 신전을 지었다. 이 신전이 바로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아 종교의 전당이 된 것이다.
지상의 생명이 고갈되는 위기를 감지한 제우스는 데메테르와 협상을 시도했으나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되돌리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했다. 제우스의 페르세포네 반환 명령에 하데스는 복종했으나, 애통하게도 페르세포네는 이미 하데스가 준 석류의 맛있는 과육을 먹은 후였다. 운명의 법칙에 의하여 지옥에서 무엇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반년은 어머니와 지내고, 반년은 남편과 지내기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딸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되돌아오자 땅에는 이전같이 종자가 싹이 트고 풍요롭게 결실을 맺었다. 데메테르는 엘레우시스의 왕자 트립톨레모스에게 쟁기의 사용법과 씨 뿌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날개 돋친 용이 끄는 자기의 이륜차에 그를 태워 지상의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류에게 유용한 곡식과 농업의 지식을 전수하였다.
이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은 ‘곡물의 종자’를 뜻한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의 엄마와 같이 있을 때는 싹틈과 성장을 의미하고, 지하의 남편과 같이 있을 때는 소멸과 불모를 의미한다. 그것은 지중해 연안 문명의 기후 사이클에 따른 곡물의 계절적 순환을 의미하기도 하며, 씨가 땅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다시 말해 지하의 남편에게 납치되어 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부활하는, 즉 죽음과 부활의 사이클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스테리아의 종교 제식은 이러한 계절 순환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대제(大祭, Greater Mysteries)는 9·10월의 보에드로미온(Boedromion)달에, 소제(小祭, Lesser Mysteries)는 2·3월의 안테스테리온(Anthesterion)달에 이루어진다.
엘레우시스는 아테네의 북서쪽으로 23㎞ 떨어진 곳, 아름다운 살라미스만 깊숙한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대제는 궁극적으로 비의(秘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3000명 이상의 뮈스타이(초입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군중축제다. 보에드로미온달 15일에는 뮈스타이들이 모여 서약을 하고 점검을 받으며, 16일에는 바다에서 제식적 목욕을 하고 정화한다. 사흘 동안 단식하고, 19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는 엑스타틱한 주문을 외우면서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로 행진을 한다. 그리고 해질 무렵 퀴케온(kyken)이라는 막걸리를 마신 후, 캄캄한 성전(telestrion) 속으로 들어가 암흑 속에서 한 밤을 지새우는데, 그 암흑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문헌상 잘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소략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명부(冥府)로 잡혀간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그녀의 약탈혼을 거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젊은 남녀의 혼음의 축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나의 저서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하권에 보면 크메르 제국의 풍속을 기록한 『진랍풍토기』에 나오는 ‘진담(chomton)’이라는 특별한 제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마도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아 제식도 그 비슷한 성격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해가 뜰 무렵 거대한 불기둥이 타오르며 문이 갑자기 열릴 때, 뮈스타이들은 일제히 “처녀가 신성한 아기를 낳았다”고 외친다. 이 제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사후에 불멸의 구원을 얻는다는 종말론적 믿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둠에서 빛을 보는 순간 그들은 부활을 체험한다.
이러한 비의종교 제식은 정확하고 세밀한 실상의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비의적 성격이 있다고 해도, 현재 갠지스 강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쿰브 멜라(Kumbh Mela) 축제와 같은 느낌으로 미스테리아를 이해한다면 그 실상에 가장 접근할 것 같다. 이러한 비의제식은 나일강 하구의 마레오티스 호수(Lake Mareotis, Lake Maryt) 주변에서도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으며,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미 BC 5세기에 목격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 비의종교는 피타고라스 학파와 플라톤 학파의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커뮤니티에도 이러한 미스테리아 제식은 깊게 침투되어 있었다. 과연 이러한 미스테리아 제식이 유대전통 속에서 새롭게 각색되어 가면서 예수라는 새로운 전통의 미스테리아가 탄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