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스물한번째 글입니다.
이전 20회차 글까지 '박정희의 부정축재' 와 관련하여 "정수장학회/ 영남대/육영재단" 등 세 재단에 대해 각기 자세하게 알아보았으며, 19회차 글에서는 이 "부정축재 재단" 들에 대한 종합정리 를 하였으며, 20회차에서는 "백원우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통하여 이 문제를 재확인 해보았었습니다.
이 시리즈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약 3회차 정도에 걸쳐 글을 쓰려 하였으나, 글을 쓰면 쓸수록 줄줄이 따라 나오는 '있어서는 안되었었을 일" 들을 접하면서 이것들을 언급 안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글의 횟수가 늘어나 버렸습니다.
글을 올리는 중간 중간 여러 님들의 요청에 의하여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게 되면서 더욱 길어지게 되었습니다만, 이 참에 아예 "박정희 시대"를 종합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마무리 하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하여, 18회차분의 글에 대해 포즐방에서 라이파이님께서 요청하신 "구국여성봉사단" 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구국여성봉사단" 의 내용 또한 1회차분의 글로는 정리가 곤란하여 약 2회차에 걸쳐 올려야 할 것 같으며, 이 글을 포함하여 대략 5회차 정도만 더 올리면 이 시리즈 글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이젠 좀 지루하고 진부하니 이 글을 보시는 님들께서는 얼마나 그러실까요? 가급적 빠른 시간내에 마무리 되었으면 저로서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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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의 서슬퍼런 무소불위의 권좌에 있던 ' 박정희' 에게도 '아킬레스 건'은 있었다. '육영수 여사'의 사망이후 무너져 내리는 '사고체계'에서 기인한 극단적 '여성편력' 과 더불어 육영수 여사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퍼스트 레이디'역할을 수행하던 '박근혜'와 자식들이 바로 그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어미잃은 자식'을 바라보아야 하는 측은한 아비의 마음에서 강력히 제제하지 못했던 '박근혜'의 행보와 '박지만'의 일탈행위들에 대해 박정희는 많은 애를 태웠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건전하지 못했던 '여성편력'에 대한 자식들의 반감이 이러한 제재를 강력하게 할 수 없었던 걸림돌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영부인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퍼스트 레이디'역할을 수행하던 '박근혜'에게 '최태민'이라는 가짜목사가 접근하게 되면서, 어린 나이의 '박근혜'는 사리판단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쓰는 내 개인적으로는 어떤 경위로 어떤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던 것이라는 판단은 간단하게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여러가지 관련 내용들을 제시함으로서 님들 각자가 판단해 보시라는 의미이며, 권력이라는 그늘아래에서는 얼마나 많고 깊은 이야기들이 묻혀버릴 수 있는지 또한 돌아보실 수 있을 것이리라 믿는다. 중간중간의 부연설명 또한 가급적 자제할 것이나 드러나지 않는 행간의 의미들을 잘 읽어주시리라 믿는다.
더불어 "이 글은 특정인을 비방,음해할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며, 이미 세간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정확하게 판단해 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여지고 있음 " 을 첨언드린다.

박정희의 '심경'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세상은 공평하다" 는 말을 나이드신 분들에게 듣곤한다. 예쁘고 재주가 많으면 수명이 짧다던지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권세를 한 손안에 쥐고 있던 '박정희'에게도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자식농사" 가 그것이었다..
먹사... 사기/협잡....단체조직....기금모집.....파행운영....감추기...덮기....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또 듣고있는 .. 바로 그 '수법' 아닌가?
어린 나이... 몸보다 큰 옷을 입고서 큰 역할을 수행하던 그 때...
모친을 잃은 감성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사'짜.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까지 들고 나오니.....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