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이 심했던 정말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나라가 지구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
같습니다.
1960년 4월 당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한 시위가 이루
어낸 4.19 혁명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라는 결과로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는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정수립과 전
두환 보안사령관 및 12.12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광주 민주
화 운동이 발생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이죠.

그때 저는 다소 나이가 어려 그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늘 어머니께서
라디오 연속극을 듣기 위하여 머리맡에 두셨던 큰 건전지가 달린 라디오에서 시시각각 들리는 잡음 섞인 흥
분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지금 광주에서 폭도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
" 폭도들이 화염병과 돌들을 무차별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
" 폭도들이 총기를 탈취하였습니다 "
" 소요지역에서 선동을 노리던 남파 북괴간첩을 검거했습니다 " 등등
아무튼 이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폭도' 와 '난동' 이 두 단어였던 것 같군요.
그 후 군에 들어 갈 나이가 되어 5.18 민주화운동에 투입되었던 부대와 비슷한 성격의 부대 즉 전쟁이 발발했
을 때는 제일 앞에서 적을 무찌르고 평상시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위를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대신하고 제압하는 이른바 '충정부대'라는 곳에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실전과 같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때로는 '탈영'이라는 두 글자도 떠올렸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으며 그러다보니 차츰 몸이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이 되더군요.하지만 훈련을 받는 도중이나 예전 5.18
때의 사진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시위를 진압하는 작전에 (전시라면 당연하겠지만)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개념인 방패가 지급되지 않는 것 일까 였으나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
었죠.
이는 작전의 성격 자체가 방어라는 개념이 전혀 없고 오직 공격의 목적만을 갖는 훈련들에서 깨닫을 수 있었
으며 5.18 당시의 진압군과는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 목적이 같음을 감안할 때 저희 부대처럼 훈련 과정은 크
게 삼 단계로 구분하여 준비된 후 실행되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처음 일 단계는 대열을 갖추고 지축을 흔드는 군홧발 소리로 기선제압을 하며 해산 종용 방송을 몇 차례 시
도하지만 그래도 해산에 불응할 경우 이 단계 수순인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모두 돌격하며 진압봉을 이용한
무차별 진압에 들어가죠.물론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고 수습이 되지 않으며 시위대 역시 격하게
저항하는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각 소대장에게 지시가 떨어지고 마지막 삼 단계 작전에 돌
입하게 되는 그런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전에 투입되는 병사들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혹시 여러분들께서는 아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수 없이 날아오는 돌들이나 화염병을 그것도 방패도 없이 얼굴이든 어디든 하나라도 맞았다 가정해 보신다
면 현장에 있는 군인들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을 것인지 조금은 이해하시리라 생각되며 이를 다소 정확하
게 표현한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장은 요동치고 상대를 먼저 제압하지 못한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가득 찬 극한의 상황이라 할 것입니다.
거기에 만약 옆에 있는 전우가 돌을 맞아 얼굴이 함몰되거나 화염병 때문에 몸에 불이 붙고 소리를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봤다면 더욱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변하게 될 것이며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방
패도 지급하지 않는 정말 무자비한 작전을 준비하지 않았나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물론 군인에게는 '총과
실탄'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구요.
아울러 5.18 당시 이런 성격의 군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로 시위대들이 겁을 먹고 자진 해산하며 그렇게 사태
를 마무리하려 했겠지만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시민들은 오히려 더 강한 반발과 극렬한 저항으로 쉽게 굴복
하지 않았으며 그로인한 정면 충돌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진압군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사실 특수훈련에 단련되고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자부하며 무장 상태인 저희 같은 군인들 앞
에서 평범한 대학생들이나 시민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꿋꿋하게 대항하였다니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
한 희생정신이나 근성,불의를 참지 못하고 이를 서슴 없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진정 용기 있는 분들이 아
니었을까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그 참된 정신을 기리며 그때 희생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
다.
그 후 대한민국에는 다시 6.10 민주항쟁이라는 시련이 다가왔으며 역시 수 많은 부상자가 속출하고 혼란스
러운 상황에서 저도 실전에 투입될 뻔했지만 다행히 노태우 후보가 6.29 선언을 통하여 직선제를 받아들이
고 그렇게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 또 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는지 그리고 국민들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
껴보며 다시는 우리 군이 평범한 국민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는 참극이 없기를 진정 소망하고 또 바랍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