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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산골짝의 등불)

YOROKOBI 2013. 8. 23. 15:42

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산골짝의 등불)                                                                                   

 

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늙으신 어머니 기도해


산골짝에 황혼이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치네

 

산골짝에 등불 켜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치네

 

                                                           
      

산골짝 등불의 추억

 

사람은 가끔 살아온 인생을 노래로 대신 부른다. 사람마다 歌曲이든, 流行歌이든 童謠이든, 聖歌이든 자신의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사랑의 기쁨, 이별의 슬픔, 삶의 애환과 고난, 잊지 못할 추억등, 말못할 사연들을 애창곡을 통해 표현한다.

故 박정희 대통령이 육여사를 잃고 자주 불렀던 노래가 "기러기" 라는 동요 곡이다.

 "울 밑에 귀뚜라미 울던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아 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날아갑니다."  아내를 잃은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고 한다.

 

필자도 애창곡이 있었다. "산골작의 등불"이라는 미국민요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이 노래가 애창곡으로 자리 매김된 것이다. 이 노래를 배우게 된 동기는 필자보다 열 셋살 위인 형님 덕분이다.

 

말도 글도 제대로 알 수없었던 어린 나이에 귀 동냥으로 만 듣고 배운 노래였다.그 시절의 형님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이였다. 지금처럼 노래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부를 수 있었던 노래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가 한정되어 있었다. 메기의 추억, 바우고개 그리고 산골짝의 등불 같은 노래가 고작이었다. 형님은 갈대로 엮은 초가지붕이 들썩거릴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다. 봄이면 아지랑이 피는 강언덕에서, 여름이면 갈숲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가을에는 국화꽃 핀 뒤뜰에서 부르던 노래였다. 그 때 형님은 이 노래를 너무 사랑했다. 노래와 가사에서 묻어나오는 인간미 풍기는 情이 너무 강렬해서 그랬을 것이다. 영어로 그리고 우리말로도 불렀다. 누나들도 필자처럼 정확하게 부르지는 못했지만 흥얼거릴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수준있는 노래를 곧 잘 불렀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유행가를 잘 부를 줄 모른다. 주로 고향을 노래하는 정다운 우리가곡들을 좋아했다. 형님의 영향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친구들과 어울린 즐거운 술자리에서 흥을 깨는 노래만 불러왔다.

 

 

<There's a lamp shinning bright in the cabin

 In the window it's shinning for me

 I know mother sits waiting and praying

 for the boy she's longing to see

 

 산골짝 작은 집 창가에 

 등잔불 밝게 비추이네

 나를 위해  비추이는 불빛

 아들이 그리운 어머니

 기도하며 기다리는 곳

 

 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

Then in dreams I go back to my home

 I can see the old lamp in the window

 It's will guide me wherever I roam

 

골짜기에 등잔불 켜지는 밤이면

꿈속에서 가보는  나의 집

창가에 보이는 낮읶은 등잔불

방황할 때 나를 지켜줄 등잔 불

 

형님이 가르쳐 주어서 배운 노래도 아니였다. 한창 레코딩이 좋았던 어린나이에 반복되는 음과 구절들이 저절로 나의 머리속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내용도 모르고 영어와 우리말 가사 둘 다 줏어 듣고서 배웠다.

그 때 입력된 곡조와 가사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보면 신기 할 뿐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멋도 모르고 배운 엉터리 발음들이 생각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느 날 부턴가 형님이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따라 불렀다. 형님이 신기해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일이 기억난다. 우리말로 부를 때 가사속에 녹아있는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이 어린 가슴을 울렁이게 하였고 어머니와 아들의 정다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나무로 지은진 작은 집이 보이고 등잔 불빛 아래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며 뜨게질하는 애처로운 모습이 보였다.

 

한적하고 아득한 깊은 산골짝 작은집에 아들과 늙은 어머니 단 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먼곳으로 돈 벌러 갔나보다. 아들이 어머님을 그리워 하며 쓴 詩句같다. 어머님은 밤마다 창가에 등잔 불을 밝혀둔다.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어두운 밤 거친 산길을 헤치고 불빛 찾아 돌아 올 아들을 늘상 기다리는 내용이다. 어머니가 몹시 그리운 아들은 밤마다 정든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감동겨운 노래이자 우리들 마음의 노래이다.

어머님이 기다리는 그 작은 집은 인간의 행복과 꿈이 소복이 담겨있는 아늑한 곳이다. 그 곳에서 비추이는 등잔 불빛은 꿈을 키우고 행복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희망의 등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에 겨워 이 노래에 푹빠져 눈을 감고 들어보니 가사를 쓴 시인이 바로 자신같이 착각되었다.

 

그 당시 우리네 시골 마을도, 산골마을 풍경도 그리고 인생살이도 이 노래가사 내용과 비슷했다.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주로 산길을 걸어야한다. 내가 살던 동네도 비슷했다. 그믐 날 밤이면 천지가 캄캄하였고 강건너 멀리 깊은 산 속에 깜박거리던 희미한 불빛 하나를 자주 지켜볼 수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길 래 그 불빛은 밤마다 깜박거리고 있었을까. 절간에서 흘러나온 불 빛이라기 보다 어머니가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며 밝혀놓은 등대같은 불빛이 아니였던가 생각된다.

 

 형님이 부르던 그 노랫말이 미국 노랜 줄 모르고 우리네 산골 어느 마을 어머니와 아들간의  빚어진 슬픈사연인 줄로만 알았다. 하루도 엄마 없이 못 살것 같았던 어린시절, 어머니와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그 아들을 생각하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듣기만해도 심금을 울렸던 "산골짝의 등불".  이 시는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한 미국의 대표적인 서사시이다. 멀리 두고온 홀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이름을 알수없는 어느시인의 체험을 노래한 詩이기에 더욱 가슴을 울린다.

 

 아직 형님이 생존해 계신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만나게 되면 부질없는 일이지만  이 노래에 얽힌 사연과 추억담을 이야기 해봐야겠다. 비록 가난했지만 가족끼리 똘똘 뭉쳐 마음이 행복했던 그 아득한 옛날의 草家로 돌아가 정겨운 이야기를 서로 허물없이 나누어 봤으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