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공천’ 자해정치 말고 ‘간첩조작’으로 대통령 만나라.

YOROKOBI 2014. 4. 9. 08:41

‘무공천’ 자해정치 말고 ‘간첩조작’으로 대통령 만나라. 
정당해산심판과 기초선거 무공천으로 길 잃은 위기의 대한민국 정당-  
김인회/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당은 독특한 존재이다. 정당은 국가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국민과 시민의 자유와 권리, 생활과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 나아가 외교와 안보, 통일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한마디로 모든 국민을 상대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 시민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정당은 정치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헌법은 많은 결사 중에서 정당을 특별히 보호한다. 정당의 활동, 정책의 개발에 국가가 지원하고 선거도 공영제로 치른다. 정당 활동의 자유, 정책의 자유는 곧 정치의 자유를 의미하고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은 현재 위기다. 시민의 신뢰는 추락했고 국가의 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은 간 곳 없고 이미지만 남아 있다. 특히 야당은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행정부와 다수당에 대한 견제 기능도 상실했다. 정당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정당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 상상력의 질식과 국민의 정당혐오증이 그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정당은 국가를 경영할 실력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의 국가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감한 정치 상상력과 시민과 함께 하는 활동이 정당의 생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정당 상상력에 족쇄
 
정당해산심판 청구 사건은 통합진보당에게 향해져 있지만 사실 모든 정당에 보내는 현 정부의 메시지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보내는 공안부의 메시지이다.
 
미래의 국가 건설을 담당한 집단은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무상급식을 생각해보자. 지금은 상식이지만 처음 등장할 때 얼마나 놀랐는가? 보편적 복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무상급식은 혜성처럼 등장했다. 미래에 있어야 할 모습을 정치가 상상하면서 만들어 낸 것이다.
 
무상급식 사례에서 보듯이 정치의 상상력에는 원래 제한이 없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상상의 자유다.
 
예외는 물론 있다. 노예제 부활이나 인종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분리 독립을 위한 폭력행사도 금지된다. 공동체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외 이외에 모든 상상력은 허용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치의 다양한 형태도, 국가와 정당, 공동체와 개인의 다양한 모습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당해산심판청구 사건은 이러한 상상력을 억누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정강, 정책이 기본적 인권과 분리 독립을 위한 폭력을 옹호하고 그 결과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없다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 십년 동안 존재해온 진보정당이 이 정도의 위협을 미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을 국가보안법과 공안부가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가보안법 틀 안에서만 정치를 상상하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상상력 제한은 정당 전체의 상상력 제한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상상력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른 정당들도 통합민주당 해산심판청구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기초선거 무공천, 정당혐오증에 기반한 자해정치
 
정당이 국민, 시민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것만큼 안 지켜지는 것도 없다. 시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 관심, 재미를 정당은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담아낼 수 없는 그릇일 수도 있다. 청년들이 폭발적으로 관심을 갖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행동을 수용하기에 정당은 너무 공식적이고 점잖다. 한마디로 정당은 선생님 스타일이다. 그것도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윤리 선생님.
 
이 정도의 위기는 전세계 공통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당이 처한 위기는 이것보다 심하다. 정상적으로 정당에 참여할 만한 사람들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다. 소주 한잔 놓고 어김없이 정치이야기를 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정당에 가입한 사람은 적다.
 
우리 한국의 정치 혐오증, 정당 혐오증은 정도를 넘었다. 정당 혐오증은 제도적으로도 보장되어 있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가입금지, 정치활동금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가입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제도 이외에 동떨어진 정치인들의 정서 역시 정당 혐오증을 낳는다.
 
극심한 정당 혐오증은 드디어 정당의 ‘자해정치’를 낳았다. 최근 새정치연합에서 주장하고 있는 기초선거 무공천 주장이 그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거의 아무런 권력도 없는 야당이지만 시민들에게는 공천권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시민들의 요구가 공천을 통해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 해결 방식은 공천권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공천권을 제대로 행사하느냐 둘 중 하나이다.
 
선택의 기준은 정당이 시민들과 함께 하면서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멀리 보고 길게 생각하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공천권은 국가경영을 책임지려고 하는 정당에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포기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한번은 포기할 수 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 시민들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포기할 수도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라면 그럴 수도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온 기초선거 공천권 포기 공약은 이 정도의 사안이었다고 생각된다.
 
기초선거 무공천보다 간첩조작 사건부터 해결해야
 
지금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공천문제로 싸우고 있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간첩조작 사건이다.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민주화되었다고 하는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야당 대표는 간첩조작 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당장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민주화 된 이후 지금까지 간첩조작 사건이 없는 듯이 보였는데 지금 현 정부에서 간첩조작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박근혜 대통령 통치 중에 벌어진 일이다. 안보정치의 시대, 공안부의 전성시대가 빚어낸 일이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위기에 처했다. 단 한명의 인권이라도 침해되면 전사회의 인권이 위기다. 취임 이후 안보정치를 이끌어온 박근혜 대통령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를 막지 못한 야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의 인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정치인들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정도 사안이면 정치지도자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시민의 인권을 위하여, 간첩조작 사건 해결을 위하여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회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시민의 인권을 위하여 싸우는 정치를 보고 싶다.
 
** 김인회 교수의 <단비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입니다.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을 역임하고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으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낸 김인회 교수는 <단비칼럼>을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와 사법제도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올곧은 해법을 전해드릴 것입니다./편집자**
 
한국미래발전연구원 http://www.future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