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논설고문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수직 추락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48개국 가운데 25위를 기록했다. 1년 만에 6단계나 하락했다. WEF의 한국 국가경쟁력 순위는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11위로 최고를 기록한 이래 2012년 24위에서 19위로 반짝 상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2004년 29위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순위로 내려앉았다. 말레이시아보다 뒤쳐졌다. 세계 10위권 경제력 국가로서는 창피한 수준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깎아내리더니 부끄럽기 짝이 없게 됐다.
역대 정부마다 이 순위가 올라가면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자랑하고 순위가 내려가면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의미를 축소해왔다. 이번에도 그런 속성을 드러냈다. 평가방법과 평가기관에 따라 차이가 나서 조사의 신뢰성이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설문조사 기간(4월 초~5월 중순)을 전후해서 경제성장률이 0%대를 기록한 데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고 개성공단이 가동중단 되는 등 북한 리스크가 순위하락에 영향을 미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변명치고는 구차스럽기 짝이 없다. 다른 나라라고 핑계거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148개 국 중 25위 … 1년 만에 6단계나 하락 WEF의 부문별 평가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경쟁력의 장점과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시경제환경, 정부지출의 효율성, 정부규제의 기업활동 부담, 투자자보호의 강도 등 몇 가지 항목에서 다소 올라간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순위가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되던 정보통신분야 순위도 하락했다. 이동전화 이용자수가 5단계 떨어져 70위를 기록하는 등 각 부문마다 몇 단계씩 낮아져 ICT강국이라는 평판이 무색해졌다.
제도적 요인 중에서 기업경영 윤리, 회계감사 및 공시기준의 강도, 기업 이사회 유효성, 소주주의 이익보호 항목에서 순위가 크게 밀렸다. 경제민주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기업경영이 공정하지 못하고 불투명한 탓이다.
금융시장 성숙도도 10단계나 추락하여 고질적인 금융 낙후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부의 끊임없는 관치금융이 금융부문의 경쟁력을 갉아 먹은 요인으로 지적됐다. 지난 정권에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낙하산 인사가 구설수에 오르내렸는데 이 정부 들어서도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사례가 나타나 비판이 일고 있다. 원칙을 중시한다던 이 정부도 역시나 관치금융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국가경쟁력을 이야기할 때마다 취약점으로 지적되어온 노사간 협력 분야는 역시 이번에도 3단계 하락해 132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해고비용, 고용 및 해고관행,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등 노동시장 항목도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 등 노사관계가 안정되지 않고 정책 투명성까지 흐릿한 상황에서 기업경쟁력이 높아질 리가 없다.
WEF의 평점만 참담한 것이 아니다. 이 정부 들어 올해 주요 국제기관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성적표는 초라하다. 해리티지재단 평가에서도 31위에서 34위로 3단계나 떨어졌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기업환경평가는 지난해와 같은 22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했다.
경제민주화, 노사대타협 실현된 나라들이 국가경쟁력 높아 국가경쟁력은 한 나라의 경제환경과 여건이 꾸준히 부가가치를 창출해 국부를 늘릴 수 있는 능력이다. 경제환경 각 부문 경쟁력의 총화로 국부창출의 힘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지표다. 설문조사에는 심리가 작용하여 실상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신인도의 척도로 활용되기도 하고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부가 국가경쟁력 추락 사실을 보고 나서야 취약부문에 대한 제도개선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취약점의 핵심요인으로 꼽히는 경제민주화나 정책의 투명성, 깨끗한 정부 구현 등 구체적인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두리뭉실인데다 그나마 앞으로 논의하겠다며 느긋하다. 깨끗한 정부, 경제민주화, 노사 대타협, 정책 일관성이 실현된 나라일수록 국가경쟁력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경쟁력 2위의 강소국으로 성장한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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