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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학의문제

YOROKOBI 2007. 5. 6. 20:58
 
 
 

미학의 문제 : 예술, 예술 창조, 미의 감상, 미, 자연과 예술, 예술양상들

 
 
 
요약(résumé)




예술(art)이란 용어는 종교란 개념만큼이나 애매하다. 종교란 의미는 유대관계, 관심과 관련, 인연연관, 기도와 숭배 등의 다의적 의미를 포함한다. 예술은 기술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미술을 의미하기도 하며, 공예업자의 작업을 의미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전에는 "예술이란, 의식적인 존재가 작업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눈이나 귀에만 있는 가치이다. 다른 감각에 의한 것은 예술과는 다르다. 미각과 후각은 요리에서 촉각은 인지의 근원에서, 과학과 종교가 감각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예술과 다르다. 시각과 청각에 의한 미적 가치에 대한 반성이 미학이다. 이런 미학은 지성의 규칙이나 사회의 규범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예술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개념 없음(sans concept)'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보편적이고 또한 필연적이다.



현대 예술철학은 다른 어떤 경험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미적 경험에 대한 기술의 현상학이기를 원한다. 심리학(특히 정신분석학)도 사회학(사회 비평)과 마찬가지로 예술이 아닌 것을 가지고 예술을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의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의미가 있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고유한 영역을 종교의 고유한 영역처럼 찾고 있다.



미적 가치는 '참된 신'의 조각상을 다른 종교의 조각상과 대립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던 날, 즉 이 두 개의 형상을 존경할 줄 알게 되던 날, 그런 날의 세계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래서 미적 가치는 종교적, 도덕적 가치를 벗어나서 그 자체의 특수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상이든 인간이 욕망 실현의 투영으로 등장한 예술작품은 그 실현화 노력만큼 우리 인류 모두에게 나아가 자연 전체에게 소중하다는 자각이 있을 경우이다.



예술은 기호화(signification)또는 의미화 과정을 통하여 예술의 주체성(자의식의 실현), 총합성(총체성의 표출로서), 발명성(창조성, 우주의 일부 특권성의 실현), 생명성(개체의 전략을 넘어서는 종의 전략의 이상화)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매개로 자신의 근원적 본성을 표출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며, 그리고 기호화하여 보여주면서 인간의 모습을 고양하려한다. 여기서 예술의 승화(sublime)가 이루어진다. 예술의 작업과정은 인간이 하향하는 물질성과 대비되는 상향하는 (자아성, 생명성 인류성, 도덕성, 종교성을 포함하는)성향을 보다 정교하게 이루려려는 과정이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비틀어지고 꼬인 팔의 모습에도, 털복숭이거나 번들거리는 오물의 범벅 덩어리라도, 흉칙스럽거나 추잡스러운 괴물이라도, 그 생명성에 대한 경외가 소위 말하는 미적 도덕적 인간적 판단 즉 과학 기준과 달리 인간 본성에 동인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미학은 사태와 사물의 아름다움을 대한 반성을 넘어서 무심한(désintéressé) 인간 본성에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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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예술(art)이란 말은 애매하다. 즉 기술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미술을 의미하기도 하며, 공예업자의 작업을 의미하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랄랑드(André Lalande, 1867-1963)의 『철학 용어 사전(Vocabulaire technique et critique de la philosophie)』에서, "예술이란, 의식적인 존재가 작업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산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학(l'esthétique) : 미학은 예술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의미한다.









1. 자연과 예술



*자연적인 아름다움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랄로(Charles Lalo)는 『미학입문(Introduction à l'esthétique)』에서,



'아름다움은 힘'이라고 말한다. "두 개의 바위 중에서 더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파괴되지 않을 바위, 더 거대한 바위이다. ... 두 개의 사막 중에서 더 황량하고 더 야성적이고 더 단조로운 사막이 더 아름답다."



*예술적인 아름다움



레오나르도 다빈치(Vinci, 1452-1519) 『회화론(Trattato de pittura)』에서,



"눈은 그림으로 그려놓은 아름다움에서도 실제적인 아름다움에서와 마찬가지의 즐거움을 얻는다."



피그말리옹(Pygmalion, Roi et sculpture légendaire de Chypre)의 신화에서,



완전한 예술적 미란 곧 생명의 미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건축가를 산으로 보내라. 그로 하여금 거기서, 자연이 아치형 기둥으로 표현하는 것, 원형 지붕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라."



고전파에 속하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피디아스(Phidias, Pheidisas, 490-430, G.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èle, -v.390, G.),



빈치(1452-1519), 라파엘(Raphaël, 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 1475- 1564).



자연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간단하게 구별하지 않는 예술형식도 있다.



ꗉ로(Boileau, 1636-1711)의 경우에, 예술품의 아름다움이 자연의 아름다움은 아니다.



"모방 예술에 의해서는, 뱀이나 징그러운 괴물이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수가 없다."



리베라(Ribera, 1591-1652, 스페인):



<안짱다리 소년>, (순교장면에서 불행한 인간을 모델로)



뮈릴로(Murillo, 1618-1682, 스페인): <이가 들끓는 사람들>, (그는 10세에 고아였다)



포터(Potter, 1625-1654)의 <화란 화가들의 흡연실>, <암소들>,



샤르뎅(Chardin, 1699-1779)의 <냄비들(les chaudrons)>



예술작품은 지금까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자연의 어떤 현실을 음미하게 한다.



칸트(Emmanuel Kant, 1724-1804)에 따르면, 예술이란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



빠스깔(Blaise Pascal, 1623-1662)은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는 실물을 그려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려는 미술가는 얼마나 허황된 사람인가!"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다 :



모방이란 예술적 욕구(besoin)와 다른 욕구에 응한다. 그래서 예술은 사진처럼 '똑 같은' 모방이 아니다.



선사시대의 동굴의 벽화: (라스꼬의 벽화, 알타미라의 벽화)



-정확하게 모방하려는 충실성은 미적인 욕구를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을 따르려는 것이다.



졸라(Zola, 1840-1902)나 꾸르베(Courbet, 1819-1877)의 사실주의의 예술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을 복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는



"꾸르베의 화재 속에는 실제의 화재보다도 렘브란트(의 요소)가 더 많다."



앙뜨완느(Antoine, 1858-1943)가장 사실적인 연극도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뤼드(Rude) <행진하는 사람>, <네 원수(Le Maréchal Ney)>



시나 소설을 쓰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게 하는 것은 실생활이 아니라 시나 소설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게 하는 것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박물관이나 전시회이다.



-말로(Malraux): "음악가는 음악을 사랑하고 종달새를 사랑하지 않으며, 시인은 시를 사랑하고 저녁노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물론 젊은 화가는 처음에 모방하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자신의 화법을 발견할 때까지는, 그가 모방하는 것은 선생의 그림이며, 자연이 아니다.



예술은 모든 면에서 실재(le réel)의 전환(une transposition)이며, 실재의 반사(un reflet)가 아니다. 예술은 계발(la promotion)이며, 다른 세계의 창설(l'instauration)이며, 말로가 말하듯이, "형식이 양식되는(les formes deviennent style)" 놀라운 연금술(l'alchimie)이다.









2. 예술적 창조



철학자들은 우주를 '로고스(le logos)', 즉 이성과 언어에 따라서 설명하려 하지만, 예술은 논법이나 추론적 이성을 넘어서려 한다. 그러나 예술적인 창조는 분석될 수도 있다.



*예술적인 창조에 대한 심리학적인 설명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이미지로 '미화된(s'esthétiser)' 충동은 억압(refoulées) 때문에 행동으로 표현될 수 없었던 충동이다. 창조는 정열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전(une transposition)되는 것, 즉 승화(sublimation)이다.



-빈치(Vinci, 1452-1519) <성 안나(Sainte Anne, v. 1510)>



-그뢰즈(Greuze, 1725-1805)의 <깨어진 항아리(La Cruche cassée, 1789)>



-한 예술 비평가에 따르면, 블라밍크(Vlaminck, 1876-1958) 경우, 무정부주의적인 성향을 억제하고 "폭탄을 던질 수 없는 이 세상에 흙탕물을 뿌리듯, 지극히 강렬한 색깔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해방시켰다.>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인 설명.



예술도 사회적인 반응조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열중하는 사람도 있다.



-마르크시스트: 예술적인 전환은 어느 정도 무의식적인, 은폐된, <신비화 된>전환이다.



르페브르(Lefèvre, 1901-): 비르질리우스(Virgile)의 작품에 정치적의미가 있다.



-디드로(Diderot, 1713-1784)의 드라마(les drames) 즉 18세기 눈물 많은 희곡에서 부르주아 경제의 도약(l'essor)에 의해서 밝혀 질 수 있다.



*예술적인 창조는 어떤 설명도 불허한다.



심리학(정신분석학)이나 사회학은 예술의 예술적이 아닌 것만을 설명하고 있다.



-참된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데가 있다.



-예술 창조의 비밀은 작품의 소재나 작품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재나 기원을 처리하여서 예술품으로 변모시키는 신비로운 비약(l'élan mystérieux) 속에 있다.



-참된 예술은 어떤 질서, 어떤 통일성을 나타내며, 근원적인 카오스를 독창적인 조화와 최상의 통일성으로 변형시켜서 나타낸다.



-말로(Malraux): "예술은 반운명(un anti-destin)이다."



예술가들은 '영감(l'inspiration)', 무의식적인 자발성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앙리 들라크롸(Henri Delacroix, 1873-1930): "사람들이 돌연한 직관이나 영감을 믿는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다. ... 실제로, 니체의 말과 같이, 훌륭한 예술가의 상상력은 선한 것도 평범한 것도, 나쁜 것도 만든다. 그러나 그의 날카로운 판단력은 이들을 취사선택하고 결합한다."



-뽈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 "비록 신들이 자유롭게도 우리에게 시의 첫 구절을 베풀어준다 하더라도, 두 번째 구절을 짓는 것은 우리의 일(c'est à nous)이다."



-알랭(Alain, Emile Chartier, 1868-1951): "창작의 최고 법칙은 제작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창작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가지의 가능한 미학은 발자취를 따라서 작품을 제작하려는 기술자의 미학이 아닐까?









3. 미의 감상(La contemplation esthétique), (Deleuze: contempler, c'est soutirer.(DP,
Ch2))




*미적인 기쁨(plaisir)의 주관주의(le sujectivisme)



예술품을 수용(la réception)하는 문제는 창조(la création)의 문제와 대칭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에게 공통되는 심리가 있지만,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기준(sans aucun canon)도 없고,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à leur manière) 예술을 체험한다. 미적 감동(l'émotion)은 내적인 환희(une joie)로 나타난다.



바쉬(Victor Basch)의 미적 감동의 주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미의 참된 가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라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을 대할 때 생겨나는 감동이 모두 미적(esthétique)인 것은 아니다.



말로: 포만(l'assouvissement)의 예술은 '반-예술(anti-Arts)'이다. ,



베케(Etienne Béquet)의 『파란 손수건(le mouchoir bleu)』 19세기의 대중적 인기



스탕달(Stendhal, 1783-1842) 는 오랫동안 무명이었다.



꼬르네이유(Thomas Corneille, 1625-1709)의 『티모크라트(Timocrate)』17세기에 성공작



라신느(Racine, 1639-1699)의 『페드라(Phèdre, 1677)』는 흥행에 실패했고,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의 『엘 시드(Le Cid, 1636)』는 반타작이었다.



*미적 즐거움의 독자성(Caractère original)



현대 현상학은 미적 지각의 특수성을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뒤프렌느(Dufrenne)가 『미학적 경험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expérience esthétique), 1953』
말하듯이, 다양한 우리들의 기호나 취미는 미적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목표를 제한한다.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취미를 갖지 않는 것이다." ... 미학적 감동은 미학적 실재성의 재인식이다. "작품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작품 속에 있는
것이다." (외적대상의 미적 지각이 아니라, 감상자가 투영한 내적 본질에 대한 재인식에서 미학적 감상이 있다.)



미적인 즐거움은 독특한 즐거움이다.



미적 감상과 미적 감상 아닌 것과 혼동하지 말자.



-콘서트의 청중을 사로잡는 감동은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예술 감상과 황홀경(contemplation et ravissemnet)



미적 감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반 고호(1853-1890)의 <쌩 레미의 올리브 나무들(Les oliviers à St-Rémy)>



-반 고호의 올리브 나무들은 단번에 나의 휴가 중에 올리브 나무를 본 세계도 아니고, 프로방스 지방도 아닌, 반 고호의 세계로 끌고 간다. 그의 고뇌에 찬 세계는 나에게 지속적이면서도 신비한 환희(uns joie mystérieuse)를 기적처럼 생겨나게 한다.



브란덴부르그의 협주곡 제6번을 들어보자:



-나를 나 자신의 피안으로 옮겨다 놓는 감정변화, 엑스타시(extase)라는 근본적인 감정변화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무아경(extase)와
몰아경(entase)를 구별하자.)









4. 아름다움(美, le beau)



미적 감상이 나에게 계시해 주는 특수한 가치는 무엇일까?



*플라톤(Platon, BC 429-347)에서 헤겔(Hegel, 1770-1831)까지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현상이라는 '경험적'인 세계에 속한 것일까?



플라톤(Platon)에 의하면, 예술은 암시(l'allusion)이기 때문에 착각(l'illusion)이 아니다.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이데아의 반영(reflet)이다.



-영혼이 영혼의 감옥인 육체(soma sema, 육체-감옥)속으로 떨어진 이후로, 영혼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사랑의 경험은 미적 경험으로서는 가장 빈약한 경험이며, 가장 널리 퍼져있는 가장 쉬운 경험이다.



변증법적 상승의 마지막 단계는 이데아에 대한 지식이다.



헤겔(Hegel) 아름다움은 관념(Idée)의 감각적인 나타남이다.



예술은 완전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체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만을 표현한다.



예술의 걸작품이란 관념 즉 절대정신(l'esprit absolu)의 결정적 소유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종국에서 실재하는 절대정신은 철학에서 자기의 결정적 표현을 발견한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개별적인 영혼의 금욕과 상승이며, 영혼의 정신적인 여정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개인의 상승을 역사철학으로 대치시킨다.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의 헤겔의 미학 평가하면서,



"예술의 연속적인 형태들을 점검하고, 이들을 모두 철학이라고 새겨진 묘비가 서있는 무덤 속에 배치시킨다." 그래서 헤겔은 "사유 앞에 예술은 죽음"에 대해 말하며, 미(le beau)는 진리의 혼동된 계시(une révélation confuse)일 뿐이다.



*칸트(Kant, 1724-1804) 미학의 본질적인 긍정들(Affirmations essentielles)



칸트가 『판단력 비판(Critique du jugement, 1790)』에서 제시한 미학(l'Esthétique)은 미적 가치의 특수성을 매우 잘 존중한다.



1. 아름다움은 이해관계가 없는(désintéressé) 취미(goût)의 판단 대상이다.



2. 아름다움은 개념 없이(sans concept) 보편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3. 아름다움은 목적의 표상 없이 어떤 대상 가운데서 지각되는 그 대상의 합목적성의 형식이다.



4. 개념 없이 필연적인 만족의 대상으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름답다.



a) 첫 번째 공식은 미를 순전히 주관적인 유용성, 이해관계, 즐거움이라고 정의하는 모든 자연주의적 미학과 반대된다.



b) 두 번째와 네 번째의 공식, 이 둘은 미적 가치의 근본적인 모호성을 설명하고 있다.



취미 판단에는 보편적인 어떤 것, 필연적인 어떤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인 어떤 것, 개념에 낯선(d'étranger) 어떤 것이 있다.



미적 가치는 당위적(en droit) 보편인 동시에 필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성과 이러한 필연성은 '개념 없이(sans concept)' 인정된다.



(영혼(의식)의 자율성 또는 생성의 의미는 개념 없는 어떤 것(aliquid, 是甚徼)이다. 이러한 것은 경험이전으로부터 온다. 이 이전을
기억으로 보며,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는 선험적 경험론을 주장한다. - Deleuze의 『차이와 반복,1968』서장과 제2장에서.)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미적 감정(le sentiment esthétique)이 순전히 주관적인 취미(goût)와 보편적인 판단 사이의 이율배반(antinomie)을 구체적으로 해소시킨다.



c) 세 번째 공식, 미적 가치는 목적 없는(sans fins) 합목적성(finalité)



어떤 작품의 조화는 그 작품의 조화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예술밖에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의 미적인 가치를 철학적인 진리나 도덕적인 의도에 따라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말로: 미적인 가치는 "참된 신"의 조각상과 "우상"을 대립시키지 않고 <두 조각상>을 모두 존경할 줄 아는 한낮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예술들(Les beaux-arts)



예술의 등급화(hiérarchisation)에 대한 시도들과 (분류의 방식)



샤를르 랄로(Charles Lalo,)



-등급화하는 것은 빈약한 이론이 될 수밖에 없다.



헤겔(Hegel)의 관점



- 예술의 최고의 형태는 문학이라 보며,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



-음악은 존재의 심층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최고의 예술이라고 결론짓는다.



*예술을 분류할 때



일반적으로 공간 예술과 시간 예술이라는 이분법만을 사용한다.


-세 가지의 조형예술(건축, 조각, 회화)과 3가지의 율동예술(무용, 음악, 시), 영화는 제7의 예술



알랭(Alain, 1868-1951)은

- 사회적 예술(무용, 연극)과 고독한 예술(조각, 장신구)로 나누고

- 감각기관에 의한 분류: 촉각적-근육적 예술(체육, 무용), 시각 예술(건축, 회화, 조각), 청각 예술(음악, 문학), 시각과 청각의 종합예술(연극, 영화)


수리오(Etienne Souriau, 1892-1979 )는
『예술들의 교감(La correspondance des arts, 1947)』에서 두 가지 분류 원칙을 제시한다.


하나의 원칙은 선, 양, 색, 광도, 운동, 분절음과 음악음으로 구별하고, 또 하나의 원칙은 제1단계의 예술(비표현적 예술)과 제2단계의 예술(표현적 예술)로 구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도표를 만든다.

1 선, 2 양, 3 색, 4 광도, 5 운동 6 분절음 7 음악음
1 아라베스크, 2 건축, 3 표현적 회화, 4 조명, 5 무용, 6 순수운율, 7. 음악,
1 데상, 2 조각, 3, 순수회화, 4, 영상사진, 5 판토마임, 6 문학 시, 7, 극음악

 

 

 

 
 
 
출처 : 미학의문제
글쓴이 : su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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