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보리밭의 참혹한추억 "광주정신이 뭔줄 알기나 해?"
길을 걷다 무언가에 흠칫 놀라 발길을 멈추어야 했다. 어이없게도 내 발걸음을 잡은 것은 가로수 주변에 파랗게 머리를 세운 보리줄기였다. 아마도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로수 주변에 보리를 심었고 대부분 시민들은 이 푸른 보리들을 보며 싱싱한 봄의 정취를 한껏 누렸을 터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파란 보리가 주는 의미는 죽음을 감싸는 수의(壽衣)와 같다. 그렇다. 나는 5월의 보리밭에서 끔찍한 주검들을 보았고, 그 참혹한 기억이 5월의 보리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가 80년 5월에 군인의 신분으로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어떤 소문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광주민주화운동’ 혹은 ‘광주항쟁’ 한때는 ‘광주사태’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던 광주의 비극은 그해 5월 뜨거운 아스팔트에 섰던 모든 살아남은 사람이 죄인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많은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원흉과 주구들은 여전히 뻔뻔하고 파렴치하며, ‘명령 이상의 학살을 자행한 미치광이 군인들의 만행’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정신의 계승’을 외치며 광주를 찾는 정치인들의 무리이동을 보며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광주를 알아?” “정말 광주 정신이 뭔 줄 알기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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