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쿄는 쉽게 여행을 떠나는 곳으로 바뀌었다.게다가 이승엽선수가 뛰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근거지가 도쿄이다 보니, 도쿄돔이 한국 브라운관에 비치는 일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아시아의 유수의 도시 중 하나인 도쿄의 비하인드 스토리.도쿄는 언제부터 일본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 배경은 어떤 것일까.
이승엽이 뛰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순식간의 많은 한국팬을 사로잡았다. 이승엽 효과다. 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고지가 도쿄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모 스포츠 평론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힘을 이렇게 평했다. 요미우리는 전통적으로 잘하는 선수들을 다른 팀에서 데려오기로 유명하다. 즉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선수로 구성되어 있는 팀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긁어 모아 팀을 구성한 뒤 시합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낸다는 것. 이것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힘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도쿄 미나미아사가야(南阿佐ヶ谷)에서는 센다이(仙台)지방의 마츠리를 흉내낸 타나바타(七夕)마츠리를 연다. 처음에는 모방이었으나, 하다보니 어느새 미나미아사가야 만의 독특한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코엔지(高円寺)에서도 아와오도리(阿波踊り) 라는 축제가 있다. 이것도 원래 토쿠시마(徳島) 지방의 춤을 본따서 만든 것인데 지금은 코엔지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어쩌면 이것은 남의 것을 긁어모아서 그것을 열심히 모방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일본 독자적인 것으로 만들어지는 예일지도 모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근거지로 삼고 있는 도쿄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습지였던 이곳이 에도 시대 이후로 전국의 다이묘들이 몰려들어서 다양한 정보 교류를 하는 장으로 변했고 그것이 결국 독특한 에도의 문화를 낳았다.
에도(江戸) 비하인드 스토리
오늘 날의 도쿄는 그렇다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이에야스도 원래 에도 출신은 아니었다. 오다 노부나가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현재 나고야(名古屋)가 있는 아이치현(愛知県)을 근거지로 성장한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난 뒤,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다음 일이었다. 이에야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진다. 영지(현 시즈오카 지역)를 에도(현 도쿄)로 바꾸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야스는 당시로선 히데요시를 거역할 수 없어서 습지투성이인데다가 허허벌판이던 에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했을 때만 해도 에도 지역은 단지 변방이었을 뿐이다.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뒤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하고 병사하자, 천하는 에도를 중심으로 탄탄한 힘을 비축한 이에야스에게로 넘어간다. 일본을 동서로 나눠서 천하를 걸고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에도를 주요 근거지로 삼고 막부를 설립한다. 에도는 바야흐로 변방에서 일본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에도에 다이묘들이 몰려든 까닭은?
에도가 대폭 확대되고 거대도시가 된 배경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곳에 막부를 세운 탓도 있지만, 이에야스의 치밀한 다이묘 관리도 한 몫을 했다. 일본은 통일을 이뤘지만 당시 쇼군은 다이묘 중에서 가장 영지가 많은 넘버 원을 의미할 뿐 왕을 뜻하지는 않았다. 즉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뽑아서 지방에 파견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막부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다이묘들이 쥐죽은 듯이 엎드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을 뿐이었다. 즉 언제라도 지역의 다이묘들의 힘이 세지면 언제라도 다시 내란에 빠질 위험이 충분히 있었다.
100년이 넘는 전쟁을 겪은 일본사회는 바야흐로 평화를 향해서 물꼬를 텄지만, 시스템은 그렇지 못했다. 이에야스는 바로 여기서 묘안을 낸다. 우선 모든 다이묘들의 처자는 에도에 모여 살게 했다. 그리고 각 다이묘들에게 참근 교대를 명한다. 참근교대란? 한자로 参勤交代라 하여 모든 지역의 다이묘들은 자기 영지와 에도에 1년씩 번갈아 가며 거주를 하게 한 것이다.
이 참근교대를 함으로써 각 다이묘들은 한 해 걸러 에도에 가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때마다 엄청난 경제력이 소모되었다. 즉 이에야스는 군사력의 배경이 되는 제 다이묘들의 경제력 약화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또다른 효과를 불러왔다. 그 동안 각 지역에 따라 고립이 되어있던 일본이 하나로 엮이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에도는 원래 주인이 없었지만 각 지역의 뜨내기들이 모여들고, 정보가 교환되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에도가 아시아의 다른 도시보다 많은 인구와 번성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에도시대를 기점으로 일본 고유의 대중 문화가 꽃피기 시작한다. 가부키나 우키요에, 기모노 등은 이런 평화 속에서 활짝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수도 도쿄
그러나 정치의 중심은 에도였지만, 명목상의 수도가 여전히 교토 였음은 바뀌지 않았고, 오오사카도 경제의 중심지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교토에는 천황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오오사카가 전국의 쌀과 모든 물산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에도에 막부가 개설된 후에도 정치는 도쿄, 경제는 오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이 굴러가게 된다. 그러던 것이 1876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막부가 몰락하자 천황이 정치권력의 실체로 등장하고, 에도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경제와 정치와 양분체제가 막을 내린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도쿄는 경제적으로도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원래 오오사카를 기반으로 삼고 있던 기업들도 대거 도쿄로 옮겨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칸사이 지방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던 교토 사람들은 도쿄가 수도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지금도 일본 문화의 전통은 교토가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오사카 사람들도 도쿄를 대표로 하는 칸토오 지방 사람들이 정이 없고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도쿄에서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타코야끼(낙지풀빵(?))나 오코노미야끼(일본의 부침개) 같은 것의 원조는 오오사카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있다면 일본에서는 수도가 있는 칸토와 문화가 숨쉬는 칸사이로 대립된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칸사이벵(칸사이 지역 사투리)가 더 멋있다고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현재 도쿄는 수도로서 일본 인구의 1/5이 몰려 사는 메트로 폴리탄이다. 도쿄의 한복판 궁성을 중심으로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의 2,70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그러나 23구와 근교를 포함한 시가지의 인구는 약 1,200만명이다. 도쿄 토배기는 전인구의 40%, 나머지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당그니 같은 사람 포함)
천황이 옛날에는 에도성 이었던 곳에 황거(皇居)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고, 국회의사당부터 각종 정부기관도 몰려 있다. 일본의 최신 유행 및 최신 문물도 도쿄에 가면 가장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도쿄에는 교토처럼 한적한 절이 많거나 전통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옛 다이묘의 정원 몇 개와 아사쿠사의 센소지 정도가 그나마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동양과 서양의 만나는 곳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도쿄에 오면 된다. 최신 일본의 변화를 다양하게 맛보고 싶다면 이곳에 오라.

사진> 신쥬쿠의 요도바시 카메라 - 아키하바라도 싸지만 포인트 제도를 활용할 생각이라면 요도바시나 빅카메라, 사쿠라야도 괜찮다.
신쥬쿠는 점점 무국적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고, 아키하바라는 전자제품의 명가에서 다양한 컨텐츠로 무장한 오타쿠들의 애니메이션 성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오다이바를 가면 일본 민영방송의 현재를 볼 수 있는 후지TV를 만날 수 있고, 긴자에 가면 화려한 일본경제의 한때를 맛볼 수 있다. 도쿄 도청사나 록뽕기 힐즈 전망대에 가면 도쿄 전체를 조감할 수 있다. 이 전망대에서 도쿄를 내려다 보면 도쿄가 바다와 인접한 조건을 갖추면서도 서쪽으로 거대하게 뻗은 평지임을 알 수 있다. 서울이 산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도쿄는 수도인 탓에 집세나 물가가 다른 도시보다 훨씬 비싸다. 지금도 도쿄는 바뀌고 있는 중이며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다. 도깨비 여행으로도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다녀가는 이곳, 이곳에 들르기 전에 도쿄를 낳았던 에도에 대한 관심을 한번쯤 갖는 것도 도쿄의 진짜모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잠깐 토막 상식
에도의 주인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 누가 밥상을 받아 먹었는가
일본 통일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오다노부나가가 밥을 짓고, 히데요시가 밥상을 차리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것을 낼름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전국을 통일하고자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뜬 후 그가 이룩한 제국을 주군의 아들 대신 부하였던 히데요시가 탈취 전국 통일을 이룬다. 하지만 조선침략이라는 망상에 빠져 사후 토요토미가는 이에야스에 의해 몰락하고 만다. 이에야스는 끈길기게 참고 기다린 끝에 야망을 이뤘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 셋을 소재로 다룬 다양한 경제,경영서적이 출간되고 있는데 이 세 명의 무장을 이해하고 떠나는 일본행은 일본 이해의 별미라도 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는 단순히 운이 좋은 사나이인가.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노회한 인물이었다. 그는 단순히 밥상을 받아먹은 사나이는 아니다. 어렸을 때는 오다 가의 인질이었고, 한때 동맹관계였던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자기 아들을 할복시켰다. 전국시대 최강이라던 타케다 신겐에게 죽을 고비도 넘겼고, 노부나가의 부하에 불과했던 히데요시의 의해 영지를 몰수당하고 에도로 밀려난 경험이 있다. 출신도 불분명한 히데요시 수하도 들어가는 굴욕도 참았다. 이에야스는 그 모든 난관을 딛고 결국 도쿠가와의 이름으로 막부를 세운다.
정말 이에야스는 밥상을 받아 먹은 걸까? 아님 차려먹은 걸까? 여행이든, 유학이든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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