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발없는 대나무 하루 3m씩 북상

YOROKOBI 2007. 5. 28. 23:07
◆심각해지는 한반도 온난화◆

◆ 2050년 어느날 김병태 씨(가명)는 지난밤 과음으로 쓰린 속을 풀려고 음식점을 찾았다.

김씨가 주문한 해장음식은 '오징어 해장국'. 황태나 명태해장국이 해장에 제격이라는 것은 말로만 들었다. 지금의 오징어 해장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으로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나…. 그렇지만 김씨가 명태를 본 것은 박물관과 과학교과서에서였을뿐이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이 같은 웃지못할 광경이 벌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차가운 물이 흐르는 우리나라 동해나 오츠크해, 베링해 등에서 서식하는 명태는 지금도 서식장소가 점차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줄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명태 어획량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상승이 큰 원인이다.

아열대 기후로 옮겨가는 한반도

= 식생대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분야다.

대표적인 식물이 왕대나무로 19세기 조선시대에는 호남지역에서 주로 자랐지만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탈없이 자라고 있다.

당시보다 대나무의 생활환경이 최대 100㎞ 가까이 북상한 것으로 '발 없는' 식물이 하루에 3m씩 움직인 셈이다.

제주 내륙에서는 바나나 나무 같은 열대성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또 잎이 넓은 활엽수가 점점 식생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소나무 등 침엽수는 기온이 낮은 곳을 찾아 한라산 정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온대기후임을 알려주는 지표수종인 소나무는 현재 한라산 해발 1400m 고지 가까이 올라갔다. 4~5년 안에는 한라산에서 침엽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극지 고산식물인 돌매화나무, 시로미, 솜다리, 구상나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오재호 교수는 "우리나라 식생대는 충청권을 기준으로 이남을 온대, 그 이북을 한랭지역이라고 부르는데 앞으로 100년 뒤에는 식생대를 나누는 기준이 평안남북도를 가르는 청천강 지역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했고 부산 등 남부지역도 곧 아열대 기후지역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귀포는 2월 평균기온이 섭씨 10.1도로 47년 만에 가장 높았을 뿐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월 평균기온이 10도가 넘는 달이 10개월 이상 되는 해가 6번이나반복됐다.

지리학자들은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되는 달이 10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아열대 기후로 분류하고 있다.

◆ 집중호우와 열파현상 극심

=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 키위나 바나나 등 열대 작물을 중부지방에서 심고 벼의 이모작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환경전문가들은 농작물 생육환경이 더 척박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폐해가 클 것이라고 분석한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동규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2030년 이후 한반도 기후는 지금보다 1.5도 오르고, 연평균 강수량은 80㎜가 줄어들 것"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특히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이 심할 것으로 예상돼 적절한 대응이 없으면 곡물 생산량은 눈에 띄게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갈수록 연강수 일수는 줄고 연강수량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비가 제한된 기간에 강하게 내린다는 얘기다. 여름의 무더위를 나타내는 열대야 일수 역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는 올해 4대 기상이변 전망 자료를 통해 지구온난화 추세와 지난해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엘니뇨 현상 때문에 올해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폭염과 황사, 초대형 태풍, 집중호우 등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권원태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은 "최근 이상기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기후가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생태계가 적응할 여지 없이 빠르게 변하는 것"이라며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평가를 바탕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 것인지 평가하고 그에 따른 적응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