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여성 성기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

YOROKOBI 2007. 5. 29. 08:05
신간 '버자이너 문화사'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 성기는 금기(禁忌)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여성의 성기는 부르는 것 자체만으로도 금기였기 때문에 '거기', '음부' 등 비유적인 명칭이 사용됐다.

또한 여성의 성기는 남성 지배적인 사회에서 사악한 것이요, 억눌러야 할 대상이었다.

여러 문화권에서 '이빨 달린 질'의 신화가 존재하고,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여성 할례가 여전히 자행되는 것은 여성 성기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을 방증한다.

모든 악과 질병이 비롯됐다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상자'라는 단어가 질을 가리키는 속어라는 점도 여성 성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연관지을 수 있다.

'버자이너 문화사'(동아시아)는 이처럼 부정과 금기,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적 욕망을 과학적,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토대로 정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네덜란드 성과학자 옐토 드렌스는 의학 문헌과 신화, 소설, 그림, 역사적 사건 등을 총동원해 여성의 성기와 성적 욕망에 대해 다각도로 통찰한다.

여성의 성기를 인체의 한 장기로 보아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학적 작동을 묘사하고, 성적 기관으로 간주해 오르가슴과 불감증, G 스팟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가 하면 생식 기관으로서 월경과 임신, 출산과 폐경에 대해 설명한다.

정조대가 있던 중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클르토리스 절제와 처녀성 검사 같은 세계 곳곳의 기괴한 문화적 풍습을 소개한다.

또한 남성의 할례의 피는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의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 여긴 유대인들, 질을 가장 큰 위험이 도사린 곳으로 여긴 폴리네시아 사회를 예로 들며 여성성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혐오는 다양한 문화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하지만 "현실에서는 질 때문에 다치는 남자보다 음경 때문에 다치는 여자가 훨씬 많음"을 상기시키며 "실제로 음경이 잘리는 사고는 흔치 않기에 매번 국제적 뉴스가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기본 시각은 음모로 뒤덮인 벌거벗은 여자의 성기를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대담한 그림에서 따온 책의 원제 '세상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남성인 자신이 이런 책을 써도 될까 고민했다는 저자는 "몸속에 숨겨진 성기를 갖고 있는 기분, 오르가슴의 느낌, 월경과 출산의 경이와 불편, '지옥의 문'인 양 늘 오므려 간수할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억울함에 대해 여성들과 직접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성실한 취재와 임상 과학자로서의 연륜"으로 빈틈을 메우며 여성의 성기에 '세상의 근원'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