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모토로라 밀어낸 '애니콜 창시자'

YOROKOBI 2007. 5. 30. 06:47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Anycall)은 누가 만들었을까? ‘애니콜 신화’라고 불릴 정도로 ‘애니콜’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애니콜’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만들어 낸 사람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경제월간지 이코노미플러스 6월호는 애니콜의 최초 창안자는 오정환(61) 르노삼성자동차 고문(당시 삼성전자 C&C 상무)이라고 보도했다.

이코노미플러스에 따르면 오 고문은 지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원회의에 참석,회의를 주재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현재 모토로라가 90%를 점하고 있는 국내시장에서 삼성이 3년내 50%를 넘을 수 있나” 라고 질문하자 “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시엔 모두들 웃었으나 오 고문은 ‘이래도 잘리고 저래도 잘릴 거 한번 밀어 붙여보자’라는 생각에 휴대전화 사업에 매진했다.

1994년 7월 휴대전화의 명칭이 ‘애니텔(Anytell)’로 결정됐다. 모토로라에 맞설 휴대전화를 개발한 삼성전자 C&C 사업부가 제일기획을 통해 브랜드 제작을 의뢰하고 소비자 현상공모를 통해 여러 가지 이름을 받는 과정에서 애니텔이 선정된 것이다.

이는 오 고문이 제안한 명칭 가운데 하나였다. 오 고문은 1994년 1월 당시 영화 ‘애니깽’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고 그날 밤 잠을 자다가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가던 중 애니텔을 떠올렸다고 한다. 당시 오고문은 애니콜도 함께 제안했다. 사실 오고문은 처음엔 애니콜이 더 끌렸으나 애니콜은 ‘콜걸(Call girl)’이나 ‘전화방’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떠오른다며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애니텔이 선정됐다.

하지만 애니텔은 유사상표인 ‘앤텔(Antel)’로 인해 사용할 수 없다는 지적재산센터의 판정이 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자 오 고문은 애니콜(Anycall)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애니콜에 대한 주위의 우려 앞에 오고문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였다.

이후 오 고문이 휴대전화의 자동차 실험, 불난 집 휴대전화 등 다양한 삼성 휴대전화에 얽힌 비디오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마케팅과 기술력 향상에 매진하자 1995년 애니콜은 국내 점유율 52% 기록했다. 오 고문은 이 회장와의 약속을 1년 앞당긴 것이었다.

하지만 오 고문은 당시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자동차 사업 판매부문을 맡기 위해 삼성물산으로 발령이 나면서 휴대전화 사업과의 인연은 끝났다.

애니콜을 최초 탄생시킨 오 고문은 결국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 성공신화에 자신의 이름을 한 줄도 올리지 못했다.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 초창기 근무자들은 한결같이 오 고문을 애니콜 신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꼽는다. 당시 삼성전자 기흥연구소 부장이었던 천경준 현 삼성전자 고문도 “누가 뭐래도 오상무가 애니콜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영업 마케팅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일등공신”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정작 오정환 고문은 당시 연구개발을 맡은 천경준 고문과 제조를 담당한 이기태 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공로자 1순위로 꼽는다. 특히 오 고문은 애니콜이 해외로 뻗어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이기태 부회장이라고 말했다고 이코노이플러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