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도쿄를 기준으로 하는 현재의 시간체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느정도일까? 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의식적으로는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결코 좋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고자 한다.
한국의 표준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GMT와 세계 표준시(UTC)에 대해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1. GMT
1884년 제일 처음 공인된 국제 표준 시간은 GMT였다.
GMT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경도 15도를 변할 때마다 1시간씩의 차이를 두는 시간체계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고 있으므로 동쪽으로 15도 이동하면 1시간 빨라지고, 서쪽으로 15도 이동하면 1시간 늦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180도, 즉 지구 반대편 되는 곳에서는 빨라지는 부분과 늦어지는 부분이 만나게 되는데, 이 부분을 날짜변경선이라고 한다. 날짜변경선은 인위적인 동경 180도라는 선을 기준으로 동쪽이 서쪽보다 24시간 늦게 가는 선이다.1
이 말은 결국 표준시(GMT)는 그 나라, 그 지역에서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을 낮 12시, 즉 정오로 잡은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1시간 간격이 아니라 더 짧은 시간 간격으로 표준시를 정한 곳들이 있다.
네팔(15분대), 미얀마(30분대), 인도(30분대)는 각각 더 짧은 간격으로 시간을 정하여 사용하는 나라들이다.
2. UTC
UTC는 72년도에 만들어졌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수많은 원인에 의해서 지구의 자전이 불규칙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구 자체의 진동과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 달과의 거리 및 공전속도에 따라서 자전속도가 변하고 있으며, 지구 내부에서도 계절 같은 여러 원인에 의해서 자전속도가 계속 변하고 있다. 물론 이 값들은 다 합쳐도 0.0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표준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시간의 표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왔으며, 결국 세슘(Cs) 원자가 γ(감마)붕괴할 때 나오는 전자기파가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같은 에너지를 갖는다는 원리를 이용해 1초를 새로 정의하기에 이른다.2
새로운 1초를 정하게 되자 1972년에 전 세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시간 협약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UTC이다. UTC는 1970년 1월 1일 0시를 시각의 기준으로 놓고, 그 뒤의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표준시에 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짤막하게 살펴보자.
1.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독자적인 시간체계를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앙부일구와 같은 해시계는 태양이 남중하는 때를 정오로 설정했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수도였던 서울에서 측정해 자연스럽게 서울을 지나는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한 표준시를 사용한 셈이다. 이를 계승해서 190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다른 근대 국가처럼 표준시를 제정해 사용했다. 1908년 2월 7일 통과되고 4월 1일부터 발효된 동경 127도 30분 기준의 표준시가 그것이다.
2. 일제침략기 때 일제는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우리의 시간체계를 없애버렸다.
1910년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표준시가 바뀌었다. 일본제국은 한국을 자국 영토로 간주해 1912년 1월1일부터 일본이 사용하는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게 했다.
3. 이승만은 우리의 시간체계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
표준시에 대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이승만 정권은 일제 잔재의 청산을 위해서 1954년 3월21일 자정을 기해 독자적인 표준시를 제정해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과 한국에 거주한 미군의 군사작전이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시간체계 변경을 반대했지만, 태양의 움직임에 적합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 하므로 '시간의 광복'을 해야 한다며 시간체계 변경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4. 박정희는 쿠데타 후에 미국에 승인 받고자 미군의 요청을 군말 없이 지지한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 8월10일 자정을 기해 군사정권은 법률 676호(표준자오선 변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시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유는 ‘국제적으로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가 없다’는 것, 시차(時差) 환산이 편리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국제적 관례와 일치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군사쿠데타로 미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박정희가 미국의 의견을 들어준 몇몇 사항 중 하나였을 뿐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군사쿠데타로 성립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미군의 요청이 있자 쿠데타 승인을 받기 위하여 1954년 표준시 변경 이후 불과 7년 만에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한 표준시로 몇 분만에 날치기로 변경했다.
5. 그 뒷이야기들
일광절약 시간제(서머타임) 도입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1986년 ‘표준시에 관한 법률’로 한 차례 변경했을 뿐, 현재까지 우리는 1961년에 개정된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도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표준시와 관련된 특별한 논쟁은 없었다. 우리처럼 변경과정 없이, 지속적으로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해온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에선 그동안 표준시 변경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쟁이 있어왔고, ‘민족주체성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의 기준자오선은 127도30분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자, 1993년 5월 정부 행정쇄신위원회 검토대상 과제로 상정됐다. 그러나 검토 결과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표준시 변경과 관련해 최근의 사례는 2000년 8월12일 표준시에 관한 법률 중 개정 법률안 발의(발의자 조순형·송훈석 의원)다. 그 내용은 표준자오선을 동경 127도30분으로 개정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정부 각 부처에서 의견을 제시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과거 약 100년간의 우리 선조들이 해 왔던 일들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면 미래 100년 후의 우리 자손들이 지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게끔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 언제 우리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왜 전문가들이 그토록 경도 127도 30분을 표준으로 삼는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하고 있을까? 역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 생체시간과 생활시간의 차이로 인한 문제
생활리듬은 우리가 하루하루 지내가면서 생활하는 동안 습관처럼 우리 몸에 밴 리듬을 말하고, 생체리듬은 주변 자연환경의 주기적인 변화로 인해 우리 몸이 습관처럼 25시간을 주기로 변화하는 리듬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거나 세계적인 시간체계가 없었던 일제침략기 이전에는 생활리듬은 곧바로 생체리듬이었다. 생활시간은 천문학적인 현상들(태양의 이동)을 기준으로 삼았고, 태양의 이동은 생체시간의 표준이 되었기 때문에 이 두 리듬은 굳이 나눌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준시간이 우리나라를 지나지 않는 현재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부터는 우리의 생활은 태양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래서 생활은 우리가 만든 시계에 의존하게 됐고, 옛날에는 칠흑같이 어두워 휴식을 취하던 밤에도 인간의 활동이 계속되게 되었다.
그래도 그 지방에 기준 동경이 지나가는 지역은 생체시간과 생활시간이 차이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일본 기준선과 중국 베이징 기준선의 중간에 위치해 30분 차이가 나는 지역들은 생체시간과 생활시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30분이라는 시간차이는 작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영향은 꽤 크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6시에 일어나 7시에 아침을 먹고 12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먹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경우에 아침, 점심, 저녁을 먹기 위한 시간과 잠들고, 일어난 시간은 우리 몸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양에도 관련이 있지만 천문적인 시간에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일본 동경의 시간에 맞춰서 생활을 한 덕분에 우리는 항상 생체시간과 비교해 30분 일찍 생활하게 된다. 항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한 것과 비슷하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의 달라져서 온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2004년에 아침형 인간에 맞는 사람이 열에 한둘 정도밖에 없었는데도 너도나도 아침형 인간에 맞추려다가 대부분은 오히려 부작용이 심했던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도 전체적으로 30분씩 아침형 인간 운동을 하는 것과 진배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의 아침잠 또한 이 30분의 영향이 아닐까?
2. 천문-기상학적인 문제
초등학교 과학에 나오는 저 내용의 정답은 몇 시일까? 위의 글을 꼼꼼히 읽으셨다면 답을 맞힐 수 있을 것이다. 12시가 정답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약 12시 30분이라 해야 정답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표준시를 무조건 일본으로 맞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루의 온도 변화도 정상적인 변화보다 약 30분이 늦어진다.3
어쨌든 우리는 아이들에게 본의 아닌 거짓말을 숱하게 해대고 있는 꼴이다.
또 성장기의 어린이들은 밤 12시에 성장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12시 되기 전에 자라고 난리다. 이건 참 잘 된 일인 것 같다. 덕분에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됐으니까~ 하지만 이런 현상들이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은 조절이 불가능하며 결국 정상적으로 수면시간을 조절할 수 없다.
계절별로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도 약간 문제가 있다. 춘분과 추분은 원래 오전 오후 6시에 해가 뜨고, 해가 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약 30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것은 동지와 하지도 마찬가지고, 항상 우리 생활은 30분씩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30분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결국 따져보면 큰 영향을 우리에게 미치고 있다. 원래 우리 생활은 천문현상들을 기준으로 삼아왔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3. 전통적인 시간의 비틀림
시집, 장가 갈 때... 사주팔자를 함에 담아서 신부 댁에 보낸다. 이때 시간을 어떻게 적는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시간체계는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므로, 모든 12지간은 각각의 시에 딱 맞춰서 나눠지게 된다. 예를 들면 자시는 11시~1시 사이를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따지면 큰 착오가 발생한다. 현재 사용하는 시간과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30분이다. 이 30분은 일본 표준시와 우리나라 표준시의 차이가 되는 것이다.4
4. 주체성 (한국시간)
위의 역사 부분에서 살펴봤지만.... 우리 민족은 계속해서 우리의 표준시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일본 제국주의 앞에서, 미군의 편의주의 앞에서, 친일파의 권력야욕 앞에서 무너져 왔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정부가 정통성을 갖게 됐다면 당연히 우리의 표준시를 부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시간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과 온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목적에서 많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ps.
2. 현재 사용하는 시간제는 영국의 표준 시간과 정수배 차이(9시간 빠름, UTC+9h)여서 외국의 시장과 거래할 때나 시간을 환산할 때 편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얼마나 되겠는가?
- 동경 180 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선의 거의 모든 부분이 육지를 지나지 않고, 태평양을 지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물리학적 공리를 이용해서 1초뿐 아니라 1m라는 단위도 같이 정의한다. [본문으로]
-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참여했던 과학장 은장에서도 같은 결과로 나타난 적이 있다. 하루의 기온은 이론적으로 오후 1시여야 했는데 오후 1시 30분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당시에는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본문으로]
- 내가 태어난 시간은 11시 35분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한 밤중이었으니까... 자시의 시간이다. 5분 먼저 태어났으면...???
어쩌면 평생 해시 생인데 자시 생이라고 믿으며 살아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시간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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