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융(1875-1961)의 동시성(syncronicity)이론과 周易
주역과 같은 아시아 전승지식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금세기의 최대 정신분석학자이면서 현대 물리학이론은 물론이고 주역에도 해박하였던 칼 융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칼융의 이름을 거론하여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하여 일종의 自愧感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것은 동양의 수승한 전승지식을 칼 융 서거 이후 거의 반백년이 다된 지금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칼 융의 이름을 빌어 동아시아 전승지식의 원천과 같은 주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칼 융은 구미에서 3천만부가 팔린 리하르트 빌헬름의 영문판 주역(I Ching)의 19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서문을 임종 몇 년 전 80세를 넘긴 나이에 쓴 사람으로서 그는 누구보다도 아시아의 전승지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역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서양의 석학이었다. 이러한 주역의 서문을 쓰면서 융 스스로의 심정을 설파한 글이 그의 서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전 같으면 이처럼 애매한 작업에 대하여 내가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이 서문을 쓰는 것은 나이도 이제 팔십을 넘었고 세인들의 변덕스러운 입방아에도 어느 정도 견딜만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는 서구인들의 철학적인 편견보다는 동양 노대가들의 사상이 더 값지게 보인다.) ( I can take this risk because I am now in my eighth decade, and the changing opinions of men scarcely impress me any more; the thoughts of the old masters are of greater value to me than the philosophical prejudices of the Western mind.)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이다.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위스 바젤 대학 의학부를 나온 뒤 취리히 대학 의학부 정신과의 오이겐 블로일러 교수 문하에 들어갔다. 그곳의 교수직에 있으면서 ‘單語聯想檢査’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이에 대한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 당시 프로이트 학설에 접하여 한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초기학설인 성욕중심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 분석 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 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동서양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바 건강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예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융은 심혼(心魂)의 의사로서 자기실현의 가설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이 낳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사상(東洋思想)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東西)에 다리를 놓았으며, 새 천년(千年)에 인류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사람이다.
이러한 칼 융이 동양의 사상이나 전승지식의 모태가 되는 주역의 이론체계와 가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1949년 쮸리히에서 쓴 주역의 서문에 잘 나타나있다. 동양사상의 기념비적인 주역이라는 학문을 대하면서 융은 한 마디로 언급하기를 서양과학의 모태가 된 인과율에 익숙한 서구인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서구인의 정신세계에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인과율이라는 편견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융은 자연법칙이란 단순한 통계적인 진리일 뿐이며 우리의 실험실에서 결정적인 제약조건을 가하지 않고서는 자연법칙의 예외 없는 타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융이 주역사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유 중의 하나는 주역에는 융이 주장한 同時性(syncronocity)이라고 명명한 흥미로운 원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서양과학의 인과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융이 주장하기를 주역의 괘에는 괘의 생성순간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상황에 대한 지표라고 생각하였다.
융은 이러한 동시성의 개념을 실제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나 과학이론에서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실제로 융은 죽은 자를 만나기도 하였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융은 기이한 환상을 경험한다. 융은 밤중에 깨어 전날 장례를 치룬 친구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융은 죽은 친구가 방안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친 구는 수 백 미터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융을 데려갔다. 융은 그 친구를 따라갔다. 그리고 친구는 서재에서 적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가리켰다. 너무도 기이한 체험이어서 융은 다음날 아침 죽은 친구의 서재를 직 접 찾아가서, 환상에서 가리킨 적색 표지의 그 책의 제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死者의 유 산>이었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 왔었다는 느낌, 혹은 현실에서의 이 순간은 언젠가 꿈에서 한 번 보았던 순간 같은 느낌을 자주 경험 한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이러한 기이한 느낌을 자주 체험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체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물론 본인 뿐 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와 같은 경험을 자주 듣곤 한다. 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융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순간 뒷머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자살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총알은 마침 융이 심한 통증을 느낀 부 분에 박혀 있었다. 1918년 융은 영국인 수용소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자기(Self)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像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 그림은 황금의 성 모양을 한 만다라였다. 얼마 뒤에 주역의 영문판 책을 쓴 리하르트 빌헬름이 융에게 보낸 책 안에는 융이 그렸던 만다라 그림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참고문헌, 전철,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 심리학 http://theology.co.kr/article/jung.html)
칼 융의 동시성이론은 물리학이론으로는 'EPR의 逆說'에 기초한다. ‘EPR의 逆說’은 1935년 EPR, 즉 아인슈타인(E), 포돌스키(P), 로젠(R)에 의해 씌어진 한 연구 논문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공통된 기원을 갖고 있는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를 갖고 행한 실험에서 비록 A와 B가 서로 격리되어 있으며,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양자론은 이 두 개의 입자나 광자 중 A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의 측정 결과가 B에 있는 다른 것의 측정 결과에 의존하게 될 것임을 예측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함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효과를 '幽靈의 遠隔作用'으로 언급하였으며, 보통은 'EPR paradox'로 불리고 있다.
EPR 사고실험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우리는 EPR 사고실험을 통하여, 전자와 다른 전자 사이의 정보소통에 있어 서 시간의 개입이 없이도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field)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제자인 포돌스키(Podolsky)와 로젠(Rosen)과 함께 중요한 사고실험의 결과인 논문을 발표하였다 (Einstein/Podolsky/Rosen, Can Quantum Mechanical Description on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Physical Review 47(1935)). 이 세 사람 이름의 약자를 띤 실험은 초기상태에서는 상호간의 작용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 서로 분리된 양자적 대상인 S1과 S2의 두 체계를 상정하였다. S1과 S2는 물론 공간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이 실 험의 요약은, S1에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결과로서 S1이 변했을 때 아무 관계도 없는 S2가 동시적으로 S1의 변화값 만큼 변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 쌍둥이 형제 S1과 S2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자. S1은 백록담으로 갔고 S2는 천지연으로 갔다. 백록담에 간 S1이 돌에 부딪쳐 이마에 혹이 났는데, 같은 시각에 천지연에 있는 S2는 돌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이마에 혹이 났다. 이런 상황은 물론 상식적이며 거시적인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事故 실험이었으나 1982년 프랑스의 아스페(Aspect)의 세 번에 걸친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명된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실재가 알지 못할 상관성이 있고 서로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계로 직조된 세계라 는 것을 밝혔다. 주역은 이러한 동시성의 이론에 기초를 둔 학문이라는 것이 칼 융의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칼 융에게도 서구의 중국학자들이나 저명한 중국인 학자들은 주역은 이제는 폐기된 “마술 주문” 모음집이라고 무진 애를 쓰면서 깨우쳐주려고 하였다고한다. 여기에 나타난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융에 의하면 주역의 64괘는 64가지의 다양한 그러나 전형적인 상황의 의미를 결정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주역의 팔괘나 64괘가 열역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태함수와 유사한 개념을 가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64괘에 대한 해석은 서구의 인과에 의한 관계적인 설명과 동등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이는 마치 우리가 서양과학에 기초를 둔 힘 ‘力’字 力學 즉 유체역학 , 정역학, 동역학, 열역학과 같은 역학에 의한 예측이나 주역의 점괘 즉 변화할 ‘易’字 易學에 의한 미래나 사물에 대한 예측의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성의 관점에서 괘를 뽑을 때 동전을 던지거나 서초를 셈하여 얻는 괘는 주어진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시성의 개념은 주어진 의식의 파장에 기초하여 시공간의 차원이동을 하여 정보를 뽑아오는 방법으로서 현재 시간이라는 양자적인 시간에너지와 절대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재물리학의 기본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에 기초한 수많은 동양의 천문지리인사를 다룬 동양의 역술은 이렇듯이 서양의 물리학의 개념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의 과학적인 방법과 동양의 易學의 다른 점이라면 서양과학의 인과론적인 방법은 실험의 재현성을 위하여 반복실험이 가능하나 동시성의 개념은 고유하면서도 반복될 수 없는 일회적인 상황이기에 반복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줌의 성냥개비를 마룻바닥에 던져서도 괘와 비슷한 순간특징적인 패턴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명백한 상황적인 진리라고 하여도 그 패턴을 우리가 읽어내어 관찰자의 주객관적인 상황이나 후속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잇을 때만 서양과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증명의 재현성(controlled experiment)’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어지지 못할 때는 현실적인 증거를 찾는데 익숙한 비판적인 서구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분명 호소력을 지니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동아시아문화권의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에 담겨진 좌전이나 고금의 역사에서 역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복희, 문왕, 주공, 공자, 주자, 이퇴계나 이율곡을 위시하여 나라를 세우고 병란에서 나라를 지킨 강태공, 손자, 오자서, 재갈량, 유백온, 이순신 등이 모두 점사에 능하였던 인물들이다. 또한 점을 친다는 주역의 음양, 사상, 팔괘 또는 64괘 등에 담겨진 기본원리들이 모두 유전염기배열이나 율려학, 생태풍수, 치산치수나 기상학의 기본이 되는 이론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양의 오운육기와 같은 황제내경에 나타난 運氣學만하더라도 일주일 이상의 예측이 매우 지난한 슈퍼컴퓨터의 예측을 훨씬 능가하는 중장기 기상과 날씨를 예측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칼 융이 지적한 대로 서구적인 학문에 경도된 학자가 동양의 역과 같은 전승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인의 정신세계에 각인되어 있는 편견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융은 만약의 서구의 합리주의자들이 이러한 동시성의 특징을 가진 무의식세계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차원이동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놀래서 눈길을 돌려 버리며 나중에는 그런 것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하였다.
서문을 쓰면서 칼 융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주역 점을 쳐서 그 답을 살펴보는 것으로서 주역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융이 점을 친 내용은 두 가지이었다. 첫 번째는 주역을 의인화하여 묻기를 서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역을 소개하려고 하는 데 현재의 상황에 어떤지를 판단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서문을 쓰는 내 행동에 대하여 코멘트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주역의 괘는 64괘중에서 50번째에 해당하는 화풍정(火風鼎)괘를 얻었고 2효와 3효가 동하였다. 화풍정괘는 아래에서 바람을 불어넣어서 불을 일으키는 솥이나 화로라는 뜻으로서 文明의 利器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2효와 3효가 동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효사를 살펴보자.
九二鼎有實我仇有疾不我能卽吉
(정안에는 實이 있다. 내 원수들이 시기하지마는 그들이 나를 해칠 수 없어 길하다) 이 효에 대해 융은 주역의 가진 의미를 강탈하거나 말살한다고 풀이 하였다.
九三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方雨朽悔終吉
(정의 손잡이가 크게 바뀌었다. 나아가는 길이 막혔고 실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비가 오면 후회가 사라진다) 이 효에 대한 빌헬름 책에 나타난 이 효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 이 효는 고도로 문명화된 세계의 어떤 사람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처한 상황을 말하며 그의 효용성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질문인 융이 서문을 쓰는 행위에 대한 대답은 감위수 삼효를 얻었으며 이 괘에 대한 해석은 “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험난하고 험난하다. 위험이 이러하니 처음에는 쉬며 기다려라. 그렇지 않으면 물구덩이에 빠지리라” 이러한 효사를 얻고 융이 서문을 완성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나 융이 얻은 점괘는 묻는 사람의 심리적인 맹점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심리적인 분석을 곁들였다. 주자가 언급한대로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을 치는 점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역은 동아시아의 전승지식이 인류가 인과론적인 서양과학의 세계에서 동시성을 가진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신과학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동양 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과 같은 아시아 전승지식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금세기의 최대 정신분석학자이면서 현대 물리학이론은 물론이고 주역에도 해박하였던 칼 융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칼융의 이름을 거론하여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하여 일종의 自愧感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것은 동양의 수승한 전승지식을 칼 융 서거 이후 거의 반백년이 다된 지금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칼 융의 이름을 빌어 동아시아 전승지식의 원천과 같은 주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칼 융은 구미에서 3천만부가 팔린 리하르트 빌헬름의 영문판 주역(I Ching)의 19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서문을 임종 몇 년 전 80세를 넘긴 나이에 쓴 사람으로서 그는 누구보다도 아시아의 전승지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역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서양의 석학이었다. 이러한 주역의 서문을 쓰면서 융 스스로의 심정을 설파한 글이 그의 서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전 같으면 이처럼 애매한 작업에 대하여 내가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이 서문을 쓰는 것은 나이도 이제 팔십을 넘었고 세인들의 변덕스러운 입방아에도 어느 정도 견딜만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는 서구인들의 철학적인 편견보다는 동양 노대가들의 사상이 더 값지게 보인다.) ( I can take this risk because I am now in my eighth decade, and the changing opinions of men scarcely impress me any more; the thoughts of the old masters are of greater value to me than the philosophical prejudices of the Western mind.)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이다. 1875년 스위스 북동부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스위스 바젤 대학 의학부를 나온 뒤 취리히 대학 의학부 정신과의 오이겐 블로일러 교수 문하에 들어갔다. 그곳의 교수직에 있으면서 ‘單語聯想檢査’를 연구하여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이에 대한 정신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이 당시 프로이트 학설에 접하여 한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프로이트의 초기학설인 성욕중심설의 부적절함을 비판하여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 분석 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 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동서양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뿌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초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바 건강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예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융은 심혼(心魂)의 의사로서 자기실현의 가설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이 낳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사상(東洋思想)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東西)에 다리를 놓았으며, 새 천년(千年)에 인류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사람이다.
이러한 칼 융이 동양의 사상이나 전승지식의 모태가 되는 주역의 이론체계와 가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1949년 쮸리히에서 쓴 주역의 서문에 잘 나타나있다. 동양사상의 기념비적인 주역이라는 학문을 대하면서 융은 한 마디로 언급하기를 서양과학의 모태가 된 인과율에 익숙한 서구인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서구인의 정신세계에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인과율이라는 편견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융은 자연법칙이란 단순한 통계적인 진리일 뿐이며 우리의 실험실에서 결정적인 제약조건을 가하지 않고서는 자연법칙의 예외 없는 타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융이 주역사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유 중의 하나는 주역에는 융이 주장한 同時性(syncronocity)이라고 명명한 흥미로운 원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서양과학의 인과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융이 주장하기를 주역의 괘에는 괘의 생성순간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상황에 대한 지표라고 생각하였다.
융은 이러한 동시성의 개념을 실제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나 과학이론에서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실제로 융은 죽은 자를 만나기도 하였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융은 기이한 환상을 경험한다. 융은 밤중에 깨어 전날 장례를 치룬 친구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융은 죽은 친구가 방안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친 구는 수 백 미터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융을 데려갔다. 융은 그 친구를 따라갔다. 그리고 친구는 서재에서 적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가리켰다. 너무도 기이한 체험이어서 융은 다음날 아침 죽은 친구의 서재를 직 접 찾아가서, 환상에서 가리킨 적색 표지의 그 책의 제목을 확인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死者의 유 산>이었다.
우리는 일상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 번 왔었다는 느낌, 혹은 현실에서의 이 순간은 언젠가 꿈에서 한 번 보았던 순간 같은 느낌을 자주 경험 한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이러한 기이한 느낌을 자주 체험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체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물론 본인 뿐 만이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위와 같은 경험을 자주 듣곤 한다. 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융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순간 뒷머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자살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총알은 마침 융이 심한 통증을 느낀 부 분에 박혀 있었다. 1918년 융은 영국인 수용소의 지휘자로 있으면서, 자기(Self)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像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 그림은 황금의 성 모양을 한 만다라였다. 얼마 뒤에 주역의 영문판 책을 쓴 리하르트 빌헬름이 융에게 보낸 책 안에는 융이 그렸던 만다라 그림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참고문헌, 전철,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 심리학 http://theology.co.kr/article/jung.html)
칼 융의 동시성이론은 물리학이론으로는 'EPR의 逆說'에 기초한다. ‘EPR의 逆說’은 1935년 EPR, 즉 아인슈타인(E), 포돌스키(P), 로젠(R)에 의해 씌어진 한 연구 논문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공통된 기원을 갖고 있는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를 갖고 행한 실험에서 비록 A와 B가 서로 격리되어 있으며, 두 개의 입자 혹은 광자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양자론은 이 두 개의 입자나 광자 중 A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의 측정 결과가 B에 있는 다른 것의 측정 결과에 의존하게 될 것임을 예측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함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효과를 '幽靈의 遠隔作用'으로 언급하였으며, 보통은 'EPR paradox'로 불리고 있다.
EPR 사고실험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우리는 EPR 사고실험을 통하여, 전자와 다른 전자 사이의 정보소통에 있어 서 시간의 개입이 없이도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field)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동료제자인 포돌스키(Podolsky)와 로젠(Rosen)과 함께 중요한 사고실험의 결과인 논문을 발표하였다 (Einstein/Podolsky/Rosen, Can Quantum Mechanical Description on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Physical Review 47(1935)). 이 세 사람 이름의 약자를 띤 실험은 초기상태에서는 상호간의 작용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 서로 분리된 양자적 대상인 S1과 S2의 두 체계를 상정하였다. S1과 S2는 물론 공간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이 실 험의 요약은, S1에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결과로서 S1이 변했을 때 아무 관계도 없는 S2가 동시적으로 S1의 변화값 만큼 변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 쌍둥이 형제 S1과 S2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자. S1은 백록담으로 갔고 S2는 천지연으로 갔다. 백록담에 간 S1이 돌에 부딪쳐 이마에 혹이 났는데, 같은 시각에 천지연에 있는 S2는 돌에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이마에 혹이 났다. 이런 상황은 물론 상식적이며 거시적인 인과율을 어기는 일이다. 이 결과는 당시로서는 事故 실험이었으나 1982년 프랑스의 아스페(Aspect)의 세 번에 걸친 실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판명된 실험이었다. 그 결과는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실재가 알지 못할 상관성이 있고 서로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더 나아가서 우리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계로 직조된 세계라 는 것을 밝혔다. 주역은 이러한 동시성의 이론에 기초를 둔 학문이라는 것이 칼 융의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칼 융에게도 서구의 중국학자들이나 저명한 중국인 학자들은 주역은 이제는 폐기된 “마술 주문” 모음집이라고 무진 애를 쓰면서 깨우쳐주려고 하였다고한다. 여기에 나타난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융에 의하면 주역의 64괘는 64가지의 다양한 그러나 전형적인 상황의 의미를 결정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주역의 팔괘나 64괘가 열역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태함수와 유사한 개념을 가진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64괘에 대한 해석은 서구의 인과에 의한 관계적인 설명과 동등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였다. 이는 마치 우리가 서양과학에 기초를 둔 힘 ‘力’字 力學 즉 유체역학 , 정역학, 동역학, 열역학과 같은 역학에 의한 예측이나 주역의 점괘 즉 변화할 ‘易’字 易學에 의한 미래나 사물에 대한 예측의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성의 관점에서 괘를 뽑을 때 동전을 던지거나 서초를 셈하여 얻는 괘는 주어진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시성의 개념은 주어진 의식의 파장에 기초하여 시공간의 차원이동을 하여 정보를 뽑아오는 방법으로서 현재 시간이라는 양자적인 시간에너지와 절대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재물리학의 기본개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에 기초한 수많은 동양의 천문지리인사를 다룬 동양의 역술은 이렇듯이 서양의 물리학의 개념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의 과학적인 방법과 동양의 易學의 다른 점이라면 서양과학의 인과론적인 방법은 실험의 재현성을 위하여 반복실험이 가능하나 동시성의 개념은 고유하면서도 반복될 수 없는 일회적인 상황이기에 반복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줌의 성냥개비를 마룻바닥에 던져서도 괘와 비슷한 순간특징적인 패턴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명백한 상황적인 진리라고 하여도 그 패턴을 우리가 읽어내어 관찰자의 주객관적인 상황이나 후속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잇을 때만 서양과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증명의 재현성(controlled experiment)’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어지지 못할 때는 현실적인 증거를 찾는데 익숙한 비판적인 서구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절차가 분명 호소력을 지니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동아시아문화권의 수많은 나라의 흥망성쇠에 담겨진 좌전이나 고금의 역사에서 역술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복희, 문왕, 주공, 공자, 주자, 이퇴계나 이율곡을 위시하여 나라를 세우고 병란에서 나라를 지킨 강태공, 손자, 오자서, 재갈량, 유백온, 이순신 등이 모두 점사에 능하였던 인물들이다. 또한 점을 친다는 주역의 음양, 사상, 팔괘 또는 64괘 등에 담겨진 기본원리들이 모두 유전염기배열이나 율려학, 생태풍수, 치산치수나 기상학의 기본이 되는 이론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양의 오운육기와 같은 황제내경에 나타난 運氣學만하더라도 일주일 이상의 예측이 매우 지난한 슈퍼컴퓨터의 예측을 훨씬 능가하는 중장기 기상과 날씨를 예측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칼 융이 지적한 대로 서구적인 학문에 경도된 학자가 동양의 역과 같은 전승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인의 정신세계에 각인되어 있는 편견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융은 만약의 서구의 합리주의자들이 이러한 동시성의 특징을 가진 무의식세계에서 일어나는 시공간의 차원이동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놀래서 눈길을 돌려 버리며 나중에는 그런 것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하였다.
서문을 쓰면서 칼 융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주역 점을 쳐서 그 답을 살펴보는 것으로서 주역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융이 점을 친 내용은 두 가지이었다. 첫 번째는 주역을 의인화하여 묻기를 서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역을 소개하려고 하는 데 현재의 상황에 어떤지를 판단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서문을 쓰는 내 행동에 대하여 코멘트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주역의 괘는 64괘중에서 50번째에 해당하는 화풍정(火風鼎)괘를 얻었고 2효와 3효가 동하였다. 화풍정괘는 아래에서 바람을 불어넣어서 불을 일으키는 솥이나 화로라는 뜻으로서 文明의 利器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2효와 3효가 동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효사를 살펴보자.
九二鼎有實我仇有疾不我能卽吉
(정안에는 實이 있다. 내 원수들이 시기하지마는 그들이 나를 해칠 수 없어 길하다) 이 효에 대해 융은 주역의 가진 의미를 강탈하거나 말살한다고 풀이 하였다.
九三鼎耳革其行塞雉膏不食方雨朽悔終吉
(정의 손잡이가 크게 바뀌었다. 나아가는 길이 막혔고 실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비가 오면 후회가 사라진다) 이 효에 대한 빌헬름 책에 나타난 이 효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 이 효는 고도로 문명화된 세계의 어떤 사람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처한 상황을 말하며 그의 효용성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질문인 융이 서문을 쓰는 행위에 대한 대답은 감위수 삼효를 얻었으며 이 괘에 대한 해석은 “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험난하고 험난하다. 위험이 이러하니 처음에는 쉬며 기다려라. 그렇지 않으면 물구덩이에 빠지리라” 이러한 효사를 얻고 융이 서문을 완성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나 융이 얻은 점괘는 묻는 사람의 심리적인 맹점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심리적인 분석을 곁들였다. 주자가 언급한대로 주역은 기본적으로 점을 치는 점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역은 동아시아의 전승지식이 인류가 인과론적인 서양과학의 세계에서 동시성을 가진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신과학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동양 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칼 융의 주역서문을 읽고
장동순(충남대 환경공학교수)
동양의 역학은 한 마디로 象과 數로 특징되는 象數이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象이란 자연현상에 내재된 물리적인 의미이며 數라는 것은 이러한 상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부호나 그림으로 표시한 괘상이나 음양오행의 정의는 한마디로 동양의 성인들이 자연의 복잡계 시스템을 관찰한 후 자연의 압축파일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양의 역학은 天垂象聖人測之(천수상성인측지)라는 말로 표현되며 이러한 상과 수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부지상수자 격화소양(不知象數者 隔靴搔痒)이라는 말로 표시하고 있다. 복희, 문왕, 주공 그리고 공자에 의하여 완성되고 동양의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응용된 주역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에게 많이 회자되고 인용된 문헌이며 동양학의 원천과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빌헬름 텔이 교수가 저술하고 칼 융이 서문을 단 주역 책이 미국에서 3 천 만부 이상 팔렸다는 것이 서양에서의 주역에 대한 관심도를 반영하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리하르트 빌헬름교수의 영역판 주역(I Ching)에 대하여 금세기의 최고의 정신분석학자중의 한사람인 칼융은 19페이지에 달하는 깨알 같은 장문의 서문을 썼다. 80세가 넘은 나이에 당시 서구의 상황으로 볼 때 학계에 도발적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용이하지 않은 이러한 서문의 내용을 쓰면서 말한 융의 변명은 원로라 할 수 있는 자기에게 향할 비판적인 공격을 감수할만한 연륜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주역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그 직접적인 동기임을 덧붙였다. 융의 이러한 서문을 읽으면서 저자는 동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특히 조선왕조를 비롯한 한반도에 살았던 학자나 선비들의 상황이 칼융이 느끼던 어려움과 매우 유사함을 생각게 하였다. 조선왕조에서 선비들이 주역이나 노장자의 학문을 한다면 바로 사문난적이나 이단으로 몰리는 상황이었기에 주역을 하는 선비들이란 공명에 초월한 퇴계나 율곡과 같은 대학자나 이인기사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회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시 몇 백 년의 세월이 흘러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복잡계라는 미로에서 고비용 저효율의 극단의 경지에 서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도 역시 같다는 점에서 느끼는 감회가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지금도 易이나 음양오행 또는 육십갑자를 논하는 자는 해묵은 물레방아를 돌리거나 먼지가 쌓인 다듬이 돌을 끄집어내는 자이거나 미신을 논하는 자와 같다는 것이 통념이기 때문이다. 칼융의 서문을 읽고서 주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작금의 상황이 반백년 전 서구의 상황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칼융의 이러한 서문이 우리에게 나름대로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융의 서문을 읽고 난 소회를 일단을 이곳에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칼융은 우선 주역에 대한 서구학자들의 견해를 단적으로 "마술모음집'(magic spells)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그 이유는 극단적으로 나누어지는 데 하나는 전혀 무가치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의 견해는 너무 심오하여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주역에 대한 견해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수준이 1949년 쮸리히에서 융이 느끼던 감정과 유사하거나 나을 것이 없다는 점에서 易에 대한 우리의 주변상황은 보다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 주역이 서구인들에게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점을 융은 동서양의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소위 서구의 과학은 인과율이라는 자칭 공리적인 진리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사조가 형성된 데에는 물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실패를 현대 물리학이 카버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지마는 자연법칙이란 통계적인 진리일 뿐 실험실에서 이상적인 제약조건을 가하지 않고는 타당성의 입증이 가능하지 않음을 직시하여야 함을 그 당시에도 융은 강조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동전3개나 49개의 서초를 가지고서 일견 보기에 아무런 인과론적 思考가 없는 과정을 거쳐서 우주에 존재하는 실체를 뽑아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융은 우연의 일치(coincidence)나 동시성(syncronicity)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서양과학의 인과율이라는 것은 매우 엄격한 논리체계를 갖춘 사유체계로서 이러한 패러다임에 익숙한 서구인들에게 동전 몇 개의 투척과정이나 서초의 이합집산의 행위에 의한 득괘법은 신령을 부르는 이상의 행위로 보아주기에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몇 알의 쌀을 던져 미래의 구복을 구하는 무속적인 상황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도 절대적으로 공감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융은 한마디로 인과율이 서구인들이 사건에 대한 설명방식이라면 동시성은 우연일치적인 사건에 대한 중극인들 또는 동아시아인들의 설명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시성의 개념이 명백한 상황적인 진리라고 하더라도 나타난 괘상에서 해석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을 때만 최소한도의 의미를 갖는다. 후에 나타난 결과가 설사 의미를 가진다고 하여도 인과율에 익숙한 서구인들이나 서양과학의 방법론에 경도된 사람들에게는 분명 호소력을 지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융이 선택한 방법은 주역이라는 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서 주역이라는 책에게 질문을 한다. 나 칼융이 주역 당신을 서구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러한 질문에 나타난 점괘는 주역의 64괘중에서50번째에 해당하는 화풍정괘의 2효와 3효를 동하게 했다. 鼎이란 아래에 공기가 유입되고 위에는 불이 타고 있는 문명의 이기인 보일러나 화로를 상징한다. 이러한 괘와 효에서 융이 감탄한 것은 주역을 공격하던 서구의 중국학자들이나 저명한 중국학자들이 융에게 주역은 이제 폐기처분된 ‘마술형태의 주문’ 모음집이라고 일깨워 주던 그들의 심리적인 맹점과도 너무나 절묘하게도 맞아떨어지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융은 주역이라는 책의 全篇에서 자기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솔하고 미숙한 사람들에게 주역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주지주의자나 합리주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주역은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사람들에게만 적합한 책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의 저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융은 점을 치는 행위 자체에 어떠한 인과론적인 논리체계나 합리성을 보지 못하였지마는 동양의 미래를 예측하는 수많은 술법은 매우 과학적인 음양변화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동양의 역에 의한 미래의 예측은 量子化된 시간이라는 물리량에 기초한 의식의 파장을 가지고 시공간의 차원이동에 의한 동시성의 개념에 의하여 다른 차원 즉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우리는 서양과학에서 정의되지 않은 기에 대한 개념에 기초하여 역에 대한 많은 과학적인 이론전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줄이기로 한다. 한마디로 주역은 역에 의하여 점을 치는 점서이다. 물론 주역이 점을 쳐서 의혹을 풀기 위한 것이나 주자의 언급처럼 주역에서 점을 치는 행위에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당연히 점을 쳐서는 아니 되며 올바른 일이면서도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일에만 점을 쳐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당연히 나쁜 일이나 사리사욕을 위하여서 점을 쳐서는 아니 된다는 주자의 警句는 일견 점을 치는 행위에 대해 단지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하였지마는 점을 치는 과정이 내외부에서 일어난 의식의 파장을 “양자(quantum)화된 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는 子丑寅卯辰巳午未와 같은 時間이라는 기운에 접목시킨 후 시공간의 차원이동에 의해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邪心에 의한 불필요한 간섭현상을 배제하고자 하였다면 이는 물리적인 필터링의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역에 대한 내용은 이러한 점을 치는 과정에 대한 타당성이나 점에 의한 정단의 정확성에 대한 수많은 사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고 易學 이론에 내재된 과학성을 피력하고자 한 것이다. 주역이나 이에 기초를 둔 천문, 지리, 인사를 다룬 奇乙壬三式 또는 奇乙壬三數라고 불리는 太乙, 奇問, 六壬이나 황제내경의 운기이론, 현공풍수와 같은 수많은 동양의 수승한 고전들이 變化에 따른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였다. 독자들은 여기서 三式이나 三數와 같은 방정식의 式(equation)이나 숫자의 수(number)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서양과학에서 뉴턴 이후 力學에서 소위 변화(change)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이미 수 천 년 전에 주역이나 이들 문헌의 관심사가 數에 의한 변화(易)이었던 점을 생기한다면 주역이론은 당연히 자연현상에 대한 섭리나 서양과학의 물리적인 현상을 내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양사상을 서양과학과 같은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만일 동양사상의 일부가 서양과학화 될 수 있다면 서양과학에서 논하는 定量主義가 동양사상의 취하여야 할 합리적인 방향이며 또한 서양과학이 분석학적인 지엽성에 벗어나 보다 포괄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동양사상에서 기본으로 하고 있는 만물이론의 기본개념과 같은 氣에 대한 물리적인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이승준,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 이러한 동서양의 학문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자가 기술하고자 하는 바는 주역이나 동양의 역의 이론에 나타난 제반이론이 서양과학의 관점과 실용적인 면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이론인가 하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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