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YOROKOBI 2007. 6. 3. 22:53

정신의 병과 정신병, 그리고 마귀들림

 

박 현 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본지 주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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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목자의 어려움

수많은 사람들을 사목하면서 사목자들이 겪게 되는 가장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 가운데 하나는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신자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아닐까? 신자들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운 상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목자에게 의지하며 영적인 은총은 물론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도움을 희망하기도 한다.
물론 사목자는 신자들이 겪고 있는 그러한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예를 들면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 부적응, 부부간의 갈등, 자녀 교육의 문제, 성격문제, 대인관계 등) 일일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만능해결사가 아니기에 강박적으로 신자들의 요구에 부합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적이지는 못해도 문제해결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은 사목자에게 요청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는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해결의 방향성은 언제나 그 문제 자체의 현실적인 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늘 신앙과 영성을 지향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정신과 관련된 사항은 사실 상당한 전문적인 지식뿐 아니라 수많은 임상적인 경험을 요구하기에 경험이 부족한 사목자들, 또는 연륜은 있지만 정신의학이나 이상심리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목자들에게는 여간 다루기 힘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목자는 이 정신적 문제에 대해 어떤 전문가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이 어떻게 하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과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어야 한다. 특히 사목 상담자들에게 이러한 정신적 문제에 대한 분별력과 지식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에 대한 구별

이러한 정신적 문제에 대한 분별력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바로 신경증(neurosis)과 정신병, 곧 정신분열증(psychosis)에 대한 구별에 있다. 혹자는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정신병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말 자체는 잘못된 표현이다. 만일 누가 이 표현이 맞다고 공감한다면 이때 ‘정신병’이란 용어는 사실 ‘정신의 병’이라고 써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병이란 정신분열증과 같은 뜻을 지닌 의학적 고유명사로서 생물학적 뇌의 이상으로 발병한 병을 뜻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수많은 스트레스와 긴장의 환경 속에 살면서 건강한 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뜻에서의 ‘정신의 병’, 곧 ‘신경증’과는 엄밀히 구별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현대인들은 거의 어느 정도의 신경증은 조금씩 가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어느 정도 정신의 병을 앓고 있다.” 또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많이 건강하지 못하다.”라는 정도의 표현으로 옮긴다면 원래의 의미와 같아질 것이다.
이러한 두 단어의 구별을 굳이 짚고 넘어가는 것은 앞으로 제시할 몇몇 예와 같은 상황에서 사목자들이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을 구별하지 못하여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별의 능력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신앙과 연계된 초자연적인 빙의현상이나 계시 또는 마귀들림과 같은 현상 안에서 바라보지 않도록 해주며 반대로 그들을 단순히 신경증적인 정신적 쇠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취급하지도 않게 해준다.
이제 몇몇 실례를 통해 어떤 경우가 정신병이며 어떤 경우가 신경증인지, 이에 따라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정신병 환자들 중 아주 드물게 마귀들림(obsession) 현상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물론 정신병을 약물요법 중심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나 신경증을 주로 다루는 심리치료사들에게조차 완벽한 진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정신 영역이다. 하지만 의학적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진 최소한의 분별법은, 사목 상담자들이 정신적 질환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정신적 장애를 치료하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돕는 데 기초가 될 것이다.

 

3. 구체적인 사례

1) 30대 초반의 여인: 가족들은 단순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함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순례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나는 구체적으로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30대 초반의 미카엘라라는 본명을 가진 자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표정은 어둡고 피부가 밝지 못했으며 눈동자 또한 맑지 못했다. 여행 첫날 저녁, 순례를 함께 떠나는 지도 신부님들은 호텔 로비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이 자매가 나타나 신부님들의 자리에 자신도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친근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점차 상식 밖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신부님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이 자매가 신부님들과 함께 자신도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오롯한 이유는 바로 자신도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부님들과 자기는 동창이므로 함께 회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이 자매의 이와 같은 자기만의 논리는 여행이 진행되면서도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버스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는데 갑자기 뛰어나와 막 웃다가 다시 표정이 굳어지면서 자기 기분이 지금 안 좋으니까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라고 다시 환기를 시켜주니 그제서야 자기는 마리아(본래 본명은 미카엘라임)라고 불리는 게 싫다고 하면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도무지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자매의 횡설수설은 계속되어 차 안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버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이 자매가 부담스러웠다. 점차로 얼굴은 표정이 없어져가고 말수가 적어졌다. 그러다 자신이 맘에 드는 신부님을 찾아가 담배 좀 같이 피자고 하거나 밤늦게 신부님 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 한 잔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신자들은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여행을 함께하는 한 가족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 자매의 짝(여행 파트너)이 된 자매는 혹시 길이라도 잃어버릴까봐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관심있게 대해주었다.
그런 어느 날 미사 중 성찬 전례가 한창일 때 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갑자기 성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신적으로 이상한 증상을 보였던 이 자매가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머리를 돌리니 이미 이 자매가 평소 자신의 여행 파트너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그 여인의 머리를 낚아채 바닥으로 쓰러뜨린 뒤 발로 가슴을 밟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이 재빨리 달려와 제지했는데도 그 힘이 보통이 넘어 쉽게 떼어놓을 수 없었다. 무력으로 두 사람을 떼어놓은 뒤에도 이 자매는 고함을 질러가며 자신의 짝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성령께서 자신에게 그 여자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성령의 그 말씀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며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도 없는 듯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부님들은 이 자매를 될 수 있는 한 여행 중간에라도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일단 집으로 전화를 해서 병력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자매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자신의 딸은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단지 6년 전에 우울증에 걸려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약을 중단한 상태라고 했다.
결국 이 자매는 여행을 마치지 못하였지만 다행히 한국으로 잘 돌아갔다. 이 자매의 증상을 놓고 어떤 신자들은 우리가 좀 더 따뜻하게 잘 대해주고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저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좀 더 잘 달래어 여행을 잘 마쳤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폭행 사건 이후 신부님들이 각별히 신경을 쓰며 대해주어서 그런지 그 자매는 표정이 밝아지고 웃음을 찾아가며 점차로 정상인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모습을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면 얼마든지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어떤 신자들은 그 자매에게 우울증이 있어서 심리적으로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결국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분노의 감정으로 폭발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과연 이 자매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울증 때문에 생긴 심리적 불안정 증상과 소외당하거나 무시당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겪는 노이로제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일까?

2) 50대 중년의 여인: 사람들은 마귀들린 여자 또는 미친 여자로 봄

신학생 때 새벽미사에 참여한 뒤 아침기도를 끝마치고 나올 때였다. 신자들이 다 빠져나간 뒤라 혼자서 성당을 나서는데 멀리서 중년의 여인이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성당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그 여인 옆을 지나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여인은 나를 앞에서 강하게 끌어안으며 마귀가 자기를 쫓아오고 있는데 빨리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세게 끌어안았는지 도무지 보통 몸부림으로는 그 여인의 품을 빠져나올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몸과 입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으며 머리카락에는 여러 이물질들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그 여인은 계속해서 나에게 빨리 예수님한테 말해서 저 마귀가 자신을 잡아가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했으며, 나만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거절하면 자기는 마귀한테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귀를 쫓아주지 않으면 절대 나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무장님의 도움으로 나는 간신히 그 여인으로부터 풀려나올 수 있었다. 참으로 보통 힘이 아니었다. 몇 주 뒤 성당에 다시 그 여인이 나타났다. 내가 기겁을 하고 도망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을 즈음 그 여인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는 또 봉변을 당할까 걱정을 했지만 곧 그녀의 눈을 본 후에는 염려를 거둘 수 있었다. 그 당시 초점이 없던 눈이 아니라 보통의 정상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은 나에게 와서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그때의 사건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이 여인의 남편은 무능한 사람이었다. 또한 폭력을 휘두르며 아내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집안의 돈을 모두 걷어가서 딴 살림을 차린 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집으로 와서 아내에게 돈을 요구했다. 남편이 집에 올 때면 늘 폭력을 행사했다. 어느 날 집에 가져갈 돈도 없고 모든 것이 절망적일 때 남편은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이 여인을 때리고 쫓아냈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발가벗겨서 쫓아내기가 일쑤였다. 길거리에 발가벗긴 채 내쫓긴 몸으로 웅크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늘 경찰서에서 도움을 받곤 하였다. 그런 사건이 계속되면서 강간도 당하고 임신도 하게 되었으나 곧 유산되었다. 수없는 유산으로 이미 자궁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 여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 아침, 그 여인은 바로 그 전날 밤에 여느 때처럼 남편에게 심하게 얻어맞고 내쫓긴 뒤 밤새 추위에 떨다가 성당으로 들어오면서 나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이 여인이 이렇게 맞고 내쫓겨 살아갈 때 유일하게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어느 날 집밖에서 떨고 있었던 자신을 안아주시며 모든 고통을 치유해 주셨다고 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천국의 모습도 보여주셨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고통을 당하지만 이 십자가 뒤에는 큰 상급이 주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듣고 자신의 십자가를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으며, 이 계시의 위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삶의 힘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귀가 이 행복을 앗아가려고 찾아오기 시작했으며 자신 안으로 들어와서 자기를 조정하려고 했다. 마귀가 조정을 하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에 마귀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빨리 마귀를 떼어내려고 성당으로 달려가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성당으로 달려가면 예수님께서 늘 어떻게 하라고 말씀해 주신다고 했다. 그날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를 끌어안은 것이었다.
비정상적인 정신세계를 경험하는 이 자매는 정신병을 앓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라도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 것일까?

3) 40대의 여성: 사람들은 신이 내렸다고 이야기함

40대 초반의 이 여인은 똑같은 꿈을 벌써 2주째 꾼다고 하면서 두려움에 가득 차있는 상태였다. 꿈에 벌거벗은 남자가 자기 앞에 나타나 자기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 꿈은 똑같이 매일 반복되었다. 벌거벗은 남자가 꿈에 나타나 자신을 유혹할 당시 계속해서 이 여인은 그 유혹을 거부했다. 그런데 나중엔 이 남자가 신이라는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해 듣고 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반신반의했던 이 여인에게 결국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든가 알 수 없는 고열이 며칠간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 여인은 그 남자를 꿈에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 꿈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며 점차로 이 여인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되었다. 곧 가끔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하며 행동하다 곧 어느 순간이 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데 그 이전에 했던 소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여인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주변인들의 과거를 맞추고 미래까지 이야기하는데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은 거의가 맞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이러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경우 외에는 이 여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회적 일을 원만히 잘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상당한 지적 수준을 지닌,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말고는 평상시에 전혀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이다.
이 여인은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가끔 그런 이상한 말과 행동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겠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만에 들은 소식에 따르면, 이 여인이 가톨릭 신앙을 가진 뒤 그러한 현상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주변사람들의 말로는 귀신의 노예가 되느니 하느님의 자녀가 되겠다고 하면서, 어떤 고통이나 병이 온다고 해도, 죽어도 무당은 되기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여인의 경우 이러한 경험이 정말 빙의현상일까, 아니면 심리적인 다중적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일까?

 

4. 조심스러운 이해의 시작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정신적 현상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 가득 메워져 있다. 나는 어린 소년시절에 새까맣게 불타버린 교회를 보고 깜짝 놀라 어른들에게 왜 교회가 불타버렸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한 아저씨는 저 교회의 목사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동네 어떤 사람이 그 교회에 불을 질렀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서 나를 데려간 곳은 그 교회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어떤 집이었는데 그곳에서 넋이 나간 듯한 이상한 눈을 하고 부엌을 서성이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이 여인은 이상한 현상을 체험하는 남편을 치유해 주려고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청했다. 남편의 상태를 확인한 목사는 이 사람이 마귀들렸다고 판단하여 온몸을 밧줄로 묶고 몽둥이로 두들겨서 마귀를 쫓다가 결국 그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 여인의 눈빛을 아직도 내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정도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이야 이런 우를 범하는 사목자는 없겠지만 아직도 개신교에서는 마귀들림 현상에 집착하는 목사님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건강을 통해 영적 성숙으로 신자들을 더 잘 이끌려면 사목자들은 이 분야에 더 성숙한 분별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음 호에서는 이런 사안을 염두에 두면서 몇 가지 정신병적 기준들을 위의 예를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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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념 이해의 필요성

지난 호에서 잠시 언급한 바처럼 우리가 보통 “저 사람은 미친 사람이야!”, “저 사람은 정신이상자야!”, 아니면 “저 사람은 정신병 환자야!”라는 말을 쓸 때에 그 구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신이상(精神異常)’이란 단어에는 ‘정신이 건강하게 기능하지 못하고 약화되었다.’는 개념과 ‘정신이(엄밀히 말해서 생물학적 뇌의 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고 고장 났다.’는 두 가지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귀신이 들려서 미쳤다는 개념도 있겠지만 일상적인 예는 아닐 것이다.) 이 두 가지의 개념은 상당한 의미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개념을 가지고 이러한 사람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처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신이 이상한 어떤 사람들을 만났다고 가정하자. 우리가 만일 그들의 이러한 비정상적 정신상태가 정서적 심리적인 불안정 또는 현실에서 견디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을 사랑과 배려가 더 필요한 관심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신이 나간 미치광이나 귀신 들린 사람 또는 치매나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인격이나 의사 표현을 존중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일 수 있으며, 모두 강제적으로라도 정신병동에 입원시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하는 불행한 환자일 뿐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마땅히 유지하며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거나 아니면 마땅히 받아야 할 기본적인 처우를 받지 못해 인간의 권리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적어도 사목자는 정신이상 증세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겠다.

 

2. 성격장애, 신경증 그리고 정신병

앞서 언급한 건강하지 못한 정신의 범주로 우리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와 신경증(neurosis)을 들 수 있으며, 기능하지 못하는 정신의 범주에는 정신병(psychosis, 대부분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신이상의 행동 양상은 이 세 가지로 대변되는데 현대의학에서는 이 세 개념을 어느 정도 구별은 하고 있어도 명확한 경계선이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이루지 못하여 사회적 적응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정신병 환자로 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성격장애 정도가 심할 때는 때로 신경증 환자로 구별해 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단순히 성격상 문제가 아닌 실제적인 정신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전이 인식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정신이상에 대한 명확한 범주 구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정신이상의 증상과 강도는 때에 따라서 어느 한 영역에서 배타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성격장애 가운데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신경증 환자보다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할 수 있으며,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와 심한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 그리고 정신분열형 성격장애(schizoaffective disorder) 등은 정신분열증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기에 신경증과 정신분열증 사이에 있는 증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편 심리 환경적으로 문제가 야기된 신경증적 환자가 명확한 뇌의 이상으로 정신분열증의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으므로 학자들은 이 세 가지 정신이상 유형의 경계를 확실히 하지 않고 서로 넘나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순한 성격장애 또는 신경증이냐 아니면 정신병이냐를 엄격하고 명확하게 구별하기보다는 증상의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어디에 더 가까운지를 진단하여 나름대로 치료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는 정신분열증에 대한 확실한 구분이 가능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예외적인 경우 인간 정신이상이 이 세 범주의 영역을 서로 공유하여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과학자들의 이론이나 설명은 사실 귀납법적 이론에 따른 통계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곧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정신이상자들의 임상적 경험들을 종합하여 정신이상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치료 방법 역시 임상적 데이터에 의존하여 이론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환자를 대할 때에 그 환자의 상태를 임상적 통계학에 따라 형성된 이론에 대입시켜 진단하고 그 대처법을 추론하는 형식으로 일차적인 정신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중요한 것은 이렇듯 여러 사람의 임상적 경험으로 종합된 이론이 개개인에게 다시 역으로 적용될 때는 항상 옳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신분열증에 대해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완벽한 정신분열증에 대한 진단은 아직까지 없다는 사실이다. 곧 정상인에게서도 가끔은 예외적으로 정신분열 증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항상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면에서 충분히 여러 사항들(뇌 검사, 가족 병력, 유전적 소인, 환경적 소인, 신체적 소인, 심리적 소인, 약물 사용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 개개인은 인간 전체 집단 안에서도 고유하고 독특한 그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인식시켜 준다. 이것을 명심하면서 조심스럽게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정신이상 현상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3. 정신분열증의 이해

1) 정신분열증의 정의와 역사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란 용어는 원래 희랍어 ‘schizo(분열된, 분리된)’와 ‘phrenia(마음의, 정신의)’의 합성어로서 결국 분열된 정신 또는 마음이란 뜻이다. 이 증상을 성격장애나 신경증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으로 현실 감각(전문적인 용어로는 ‘현실 검증력’)에 대한 상실을 들 수 있다. 곧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정상적으로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며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병의 출현은 고대사회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귀신이나 악령의 작용으로 이해했다. 그 뒤 프랑스 내과의사 필립 피넬(Phillippe Pinel)이 이 병을 뇌의 이상 현상에서 오는 질병으로 인식하면서부터 정신분열 환자의 존엄성이 보장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 병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시각이 있는데 그것은 독일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과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의 견해이다. 크레펠린은 이 병이 주로 청소년기에 발병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 병을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고 명명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뇌의 기질적 퇴화로 생긴 정신분열증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이와 같이 정신분열은 뇌의 기질적 장애이므로 심리적 요소나 환경적 요소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반면에 블로일러는 ‘정신분열증’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크레펠린의 ‘조발성 치매’ 개념을 대치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열 증상은 지성, 감성, 심리, 의지, 행동 등의 여러 기능에서의 장애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정신분열을 이해하려면 뇌의 생물학적 이상뿐 아니라 여러 가정환경과 심리적 상태, 교육이나 훈련을 통한 행동과 사고방식의 변화, 그리고 현실의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두 가지 견해 가운데 일반적인 학자들의 의견은 블로일러의 견해처럼 일차적으로는 뇌의 생물학적 이상으로 증상이 나타나지만 심리 환경적 요소 등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대개 유럽은 크레펠린의 입장을, 미국은 블로일러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왜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정신분열증 진단이 내려지고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 되기도 한다.

2) 정신분열증의 증상과 진단
정신분열증은 정상인은 물론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신경증 환자들과도 명백히 구별되는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일단 이들은 첫 번째로 자신의 증상이 병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고, 둘째로는 현실에 대한 검증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현실세계가 아닌 망상의 세계(자기 고유의 세계)에 빠져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일차적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양성 증상은 환각(hallucination)과 망상(delusion)이다. 환각 가운데서도 환자들은 특히 환청(auditory hallucination)을 많이 체험하게 되는데, 환청이란 아무런 외적 자극 없이도 누군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두 사람 이상이 환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환청이 일반적인 형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현상이다. 또한 망상 가운데서는 누군가가 자기를 괴롭히거나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피해망상(persecutory delusion)과 자신은 구세주라든가 아니면 위대한 어떤 인물이라는 과대망상(grandiose delusion)을 일반적으로 경험한다.
위의 환각과 망상의 주된 증상 외에 언어적 장애로는 상관성 결여(묻는 말에 상관없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가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은 결혼을 하셨습니까?” 하는 물음에 “당신도 나처럼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셨군요.”라고 대답한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머리 회전이 빨라서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내 아내는 아름답다. 당신도 결혼했다. 그런데 당신의 아내도 아름답다.”란 의미를 함축해서 멋지게 대꾸한 듯 보인다. 이러한 반응은 병의 초기에는 아주 가끔 나타나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은 정신분열의 시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가 점차 횟수가 반복될수록 의심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 외에 일관성 결여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말의 앞뒤 문맥이 연결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제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몇 시인지 모르겠어요.”라는 식의 말을 한다. 이러한 일관성 결여에 따른 비논리적 문장들은 초기에는 드물게 나타나다가 병이 심각해지면서 점차로 현저하게 인식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거의가 감정의 표현이 없거나 부적절하게 표현되고, 아니면 아예 무표정 무반응을 나타낸다. 또한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보거나 체험할 때 반대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아예 감정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감정의 양가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양 극단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체험되는 것이다.
또한 의지적으로 결정을 못 내리고 쩔쩔매거나 행동적으로 혼자 중얼거린다든지 아니면 한 가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멈추어있다든지 이유 없는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든지 하는 것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양성 증상이라 하겠다.
한편 정신분열 증세의 음성적 증상이 있는데, 이는 일상적인 정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무기력, 게으름, 외모에 대한 무관심, 삶의 의욕 상실, 대인 기피증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겉으로 보아 특별한 질병적 요소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초기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쳐서 증세가 악화되거나 만성화가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을 기준으로 1994년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펴낸 DSM-IV(「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4편)에서는 다음의 네 가지 기준으로 정신분열증을 진단하고 있다.
① 특징적 증상인 망상, 환각, 혼란된 말과 언어, 긴장성 행동, 그리고 음성 증상 가운데 둘 또는 그 이상이 1개월 중 상당 기간 지속될 때.
② 장애가 시작된 뒤 상당 기간 동안 학교나 직장에서 업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대인관계나 자기관리의 능력이 장애 이전보다 현저히 떨어질 때.
③ 위의 현상들이 최소한 6개월 이상 지속되며 적어도 이 기간 중에 1개월 동안 ①의 특징적 증상들이 나타날 때.
④ 배제사항 : 이러한 증상들이 만일 약물 남용이나 의학적 신경 수술 등과 같은 의학적 조건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정신분열 증상에서 제외된다.

3) 정신분열 증상의 원인
현재까지는 정신분열 증상에 대한 정의나 학자들의 진단 기준이 명확히 통일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원인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대로 정신분열증은 일단 두뇌의 질병으로 생겨나고 이러한 생물학적 원인에 유전적 기질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심리 사회적 사건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넓게 이해한다면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일단 일차적으로 뇌의 생물학적 이상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원인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이 말이 뇌의 이상이 정신분열증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원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뇌의 이상에는 뇌의 구조적 이상보다는 기능적 이상의 원인이 더 중요하다. 정신분열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주의력, 집중력, 인내력, 추상적 사고력, 개념화 능력 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는 이러한 기능들을 담당하는 전두피질 활동 저하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도파민(dopamine)이나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 또는 세로토닌(serotonin)과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일어난 현상으로 추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파민 생성을 자극하는 암페타민(amphetamine)을 다량 복용하면 정신분열 증상인 여러 망상 증상을 체험하게 된다는 실험 결과는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모든 정신분열증 환자가 도파민 증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추론이 항상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일차적 뇌의 이상은 정신분열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는 요소라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지만, 반대로 이것이 모든 환자의 병인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항상 옳은 이론이라고는 할 수 없다.

4) 종합
지금까지의 설명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호에서는 여기서 알아본 정신분열 증상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사례에 적용해 보고, 실질적으로 사목상담자 편에서 각 사안에 대해 어떤 사목적 배려와 치료가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구분

건강하지 못한 정신(disorder)

기능하지 않는 정신(정신병: psychosis)

성격장애

신경증

 정신분열증(정신병 중 70%를 차지함)

증상의 유형

분열성, 편집성, 연극성, 자기애성, 반사회적, 경계선, 회피성, 의존성, 강박성 성격장애 등이 있고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정신분열형 성격장애가 있다.

불안장애(공포장애,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신체형장애(somatoform disorders: 신체화장애, 전환장애, 신체형 동통장애, 건강염려증, 신체변형장애), 해리성장애(dissociative disorder: 심인성 기억 상실, 심인성 둔주, 다중인격, 이인성 신경증 장애) 등.

양성증상

1. 지각영역: 환각(환청, 환시, 환후, 환촉, 환미), 빛이나 소리에 예민한 반응.

2. 사고영역: 망상(관계, 피해, 감시, 미행, 도청, 과대망상), 잘 잊어버림,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작은 일도 해결 못함, 학업이나 업무 능력 상실.

3. 언어영역: 상관성, 일관성, 논리성 결여.

4. 감정영역: 무표정, 무반응, 부적절한 웃반응(웃음), 잦고 격렬한 흥분, 감정의 양가성.

5. 의지영역: 의지의 양가성.

6. 행동영역: 혼잣말, 부동자세, 이유 없는 행동의 반복, 과도한 긴장, 약물이나 알코올의 남용, 의미 없는 글을 씀, 집을 떠나 돌아다님, 사람을 피해 은둔함, 심한 피로와 졸음 또는 불면, 영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에 지나치게 몰두, 사람을 노려보거나 멍하니 있음.

음성증상

씻지 않고 옷을 아무렇게나 입음, 게으름, 무기력, 무관심과 같이 정상생활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상태의 지속.


원인

기질적 원인, 심리적 원인, 사회 환경적 원인

1. 뇌의 구조적, 기능적, 생화학적 이상

2. 유전적 기질, 심리사회적 환경

 감

 별

 법

1.
증상에 대한
자각

병에 대한 의식〔病識〕과 자의식이 있다.

병식이 없고 객관성이 없는 자기만의 자의식을 갖는다.

2.
현실에 대한
자각

현실세계 안에 자기가 어떤 모습에 처해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인식한다. 따라서 자신은 치료를 받아야 함을 깨닫고 노력하게 된다.

자기 증상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증상을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자신은 정상이고 절대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
제3자의
관찰

대부분 자기 상태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잘 찾아낼 수 있다.

1. 원활추시 안구운동 장애가 있다(smooth pursuit eye movement dysfunction: 정신분열 환자는 시계방향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도는 추를 따라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힘들어한다. 곧 추를 따라 눈이 돌면서 눈동자가 흔들리고 경련이 일어나며 떠는 현상을 보인다.).

2. 고정된 대상에 시선을 유지하지 못한다.

3. 주의장애가 있다(대부분의 정신분열 환자들은 어떤 과제를 지속적으로 집중하여 일을 수행할 수 없다. 대부분 주변의 사소하거나 불필요한 자극에 쉽게 교란되기 때문이다.).

 

 

<3>

 

1. 개념 이해의 종합

지난 호에서 우리는 건강하지 못한 정신의 범주로는 성격장애와 신경증이 있고, 이어서 기능하지 못하는 정신의 범주로 정신병(정신분열증)이 있음을 알았다. 또한 이 세 범주는 사실 어느 정도 구별의 진단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서로의 영역이 배타적이지 않고 때에 따라서 서로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정신분열 증상의 진단과 원인을 살펴보면서 이것이 성격장애와 신경증과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각 영역의 차이점을 도표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결국 이러한 설명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종합적 이해에 도달한다.

1) 섣부른 판단의 배제
먼저 중요한 것은 인간 정신은 결코 학문적으로(과학적으로) 명확한 대상화가 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곧 어느 정도는 경험적으로 파악되는 정신이상의 유형에 따라 ‘성격장애나 신경증에 가깝다 또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인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암세포를 발견하여 암 진단을 내리듯 명확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분열 증상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병식의 없음과 현실 검증력 상실)에 따라 확실하게 정신분열증을 판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판단 기준이 정신분열증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 기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만으로 완전히 충족된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고백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정신과 의사는 경험적으로 백 명의 환자 가운데 한두 명은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정신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정상인으로서 초월적인 힘 또는 신적인 영험함을 체험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한다.

2)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
결국 우리는 성격장애, 신경증, 정신분열증, 빙의 현상과 같은 정신이상 활동에 대한 개념을 칼로 무를 잘라내듯 판단하기보다는 그 범주의 ‘가능성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곧 “A는 정신분열증 환자야.”라고 말하기보다는 “A는 정신분열 증상을 ~``정도 보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뇌의 검사 결과 생물학적 이상이 명백히 발견되어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는 과학적 판단이 섰다 하더라도 정신의 영역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절대 배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은 인간 정신의 영역은 수시로 다른 범주로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거의 90퍼센트 이상을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확신하고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고 하더라도 그 환자가 심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맞이하고 난 뒤 정신분열 증상이 사라지고 단순한 신경증적 증상을 호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신분열 증상이 호전되어 신경증적 증상으로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원래 신경증 증상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정신분열 증상을 일시적으로 가지게 되었던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판단이 섰다 하더라도 심리적 환경적 도움이 필요한 정상인일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3)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편파적 판단의 배제
무엇보다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위의 두 가지 이해를 결코 한 쪽으로 과대 또는 과장해서 해석하거나 아니면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는 방편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부분의 초기 정신분열증 환자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결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지막 희망의 저지선을 끝까지 사수하려 한다. 곧 정신분열 증상 초기에는 정신분열 양성 증상(지각, 사고, 언어, 감정, 의지, 행동 영역에서의 이상 증상, 지난 호 60면 도표 참조)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심리적인 어떤 계기 또는 충격으로 일시적인 정신이상 행동이 일어난 것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더욱 앞선다.
더욱이 초기 증상으로 음성 증상(게으름, 무기력, 씻지 않고 외모에 무관심하며 우울함 등)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경우,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를 정상인도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는 인생의 한 과정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부모는 앞에서 말한 ‘섣부른 판단의 배제’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누가 자신의 자녀를 보고 정신분열 증상이 있으니 정신과에 가보라고 충고하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며 발끈 화부터 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섣부른 판단의 배제’라는 것은 함부로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이지 결코 정신분열증 환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아전인수격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무조건 판단하지 말라.”라는 소리로 오해하여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정신분열 증상을 은폐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좋지 않은 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으로서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참으로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사실 정신분열증을 치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증상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들이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는 자신의 자녀들이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자의적 과대 희망을 갖거나 아니면 종교적으로 신앙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절대 신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초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된 뒤 결국 비인간적인 격리나 감금과 같은 처우를 받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곧 많은 수의 환자들이 초기 발병 시기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아도 상태의 호전이 없는 마지막 경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모나 가족들은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것이다. 이는 결코 자신의 자녀 또는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초기에 인간적인 예우를 받으며 치료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1)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사실은 정신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대했을 경우,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나름대로의 개인적 신념들을 과감히 버리고, 건강하지 못한 정신과 기능하지 않는 정신 사이에 수많은 정도의 차를 늘 염두에 두면서, ‘섣부른 판단’을 조심함과 동시에 한 쪽으로 ‘치우친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어떤 사람이 정신분열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진료 당시의 증상이나 임상 경험에만 의존하여 그 사람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낙인찍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나 가족 그리고 정신과 의사나 사목자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약물치료의 대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영적 그리고 환경적으로 안정된 도움이 요구되는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도 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반대로 현실 검증력의 상실과 병식이 없는 정신분열 양성 또는 음성 증상을 명확히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 무조건적인 인간적 영적 기대감으로 그가 기능하지 못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여 의료적 치료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2)

 

2. 사례를 통한 이해

이제 이러한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사목자의 입장에서 이전에 언급했던 사례들(『사목』 311호(2004.12.), 103-109면 참조)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30대 초반의 여인: 가족들은 단순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함
이 여인의 경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크게 양분된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 이 여인이 정신병 환자라고 믿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신병 환자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평소에는 아주 평범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인데 어쩌다 자신의 내적 상황이 안 좋아질 때 가끔 그런 일탈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목 상담자의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과 기능하지 않는 정신에 대한 이해를 놓고 볼 때 이 여인은 어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며 사목자로서 어떤 배려를 해주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섣부른 판단이나 편파적 판단을 주의하면서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을 내린다면 어려울 것이 별로 없다. 곧 사목자로서 우리는 함부로 이 여인이 정신분열증 환자다 아니면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하지 않을 것이며 편파적으로 어느 한쪽을 더 고려하면서 판단을 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을 내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일단 이 여인에게는 정신분열 증상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정신분열증의 양성증상 가운데 지각 영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환청(성령께서 자신에게 그 여자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라고 명령하셨다고 함)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이 여인은 특정한 문제 행동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모두 전가(성령의 말씀을 따랐으므로 어떤 죄책감이나 후회가 없으며 사건의 모든 책임은 내가 아닌 당사자에게 있다고 말함)시키는 태도와 여러 대화를 통해 인식된 결과로 볼 때, 자신이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병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곧 정신분열 증상의 대표적인 두 기준(현실 검증력과 병식의 부재)이 명확히 발견되는 것이다.
또한 정신분열 양성증상 가운데 사고, 언어, 감정 영역에서도 문제를 드러낸다. 필자와 대화하는 가운데 이 여인은 여행을 함께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따돌리고 있고, 결국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피해망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한 사람을 응징했고, 다음 차례로 누가 또 그 응징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못 버리게 만드는 하나의 방어 행동적 결과로서 사고 영역에서의 이상으로 생긴 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버스 안에서 자신을 소개 하는 시간에 자기 기분이 지금 안 좋으니까 모두들 조심하라고 경고하거나(상관성 결여) 앞뒤가 연결이 안 되는 말들을 늘어놓으며(일관성 결여)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논리성 결여) 언어 영역에서도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감정 영역에서는 무표정 무반응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기분이 나아지는 듯한 감정의 양가성을 드러내고 있다(반면 행동 영역에서는 특별한 이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전반적인 증상을 놓고 볼 때 이 여인은 분명 정신분열 증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목자는 이 여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선은 정신분열 증상을 뚜렷이 보이는 이 현상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실제적이며 권위적인 정신분열증 진단은 정신과 의사의 몫이라 하더라도 사목자는 일단 정신분열 증상이 있는 이 여인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서 가족들과 면담을 하여 정신과 차원에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일차적으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 여행 중에 전화로 이 여인의 가족(어머니와 남편)에게 들은 내용은 과거에 우울증 증상(가족의 표현)을 호소해서 약을 복용한 사실이 있지만 지금은 완쾌되어 약을 끊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이 여인은 과거에도 유사한 정신질환적 행동으로 정신과를 찾은 경험이 있고 약을 복용했지만 현재는 약을 중단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일단 정신과 치료에 들어가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호전되었다 하여 결코 약을 바로 중단하지는 않는다. 치료과정에서 약의 경중을 조절하고 약의 종류를 바꾸는 처방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상태가 아무리 호전되었다 하더라도 의사의 진료와 치료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치료가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질환처럼 일회적으로 치료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형식의 재활 치료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는 확신이 서면 자의적으로 환자 본인 또는 가족들의 권유로 약을 끊거나, 아니면 약의 부작용으로 생기는 실제적인 고통이나 막연한 염려로 약을 중단하게 된다.
물론 이 여인의 경우 담당 의사나 가족들을 통해 명확히 확인된 사실은 없지만 만일 약 처방이 중단된 이유가 방금 언급한 이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곧 본인이나 가족들이 치료가 거의 되었다고 확신하여 임의로 약을 끊은 경우라면 그 증상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이는 초기 증상 발견 당시보다 훨씬 더 치유가 어렵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에 치유가 되지 않았어도 증세가 호전되었다고 막연히 생각하거나 약물에 대한 부적응 또는 부정적 인식에서 약을 중단했다면, 이는 곧 가족들이 이 여인의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하고 있거나 아니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이러한 상황을 임의로 은폐하려는 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정은 이 가족들이 실제로는 이 여인이 약을 복용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정신질환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거짓으로 약을 끊고 이젠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현 상황을 은폐하는 경우이다.
이 여인의 상황이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목자는 가족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고, 혹시라도 가족들이 어떤 정신과적 증상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하거나 자신들의 판단으로 이 여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막연한 긍정적 희망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여인이게는 실제적인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함을 반드시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목자는 가족들이 일반적인 정신질환 증상에 대해 얼마나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과거의 정신과 의사와의 관계에 대한 신뢰도 등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가족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먼저 이에 대해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여인이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판단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에게 분명 드러나는 정신분열 증상이 있는데 이는 반드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으로서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숨길 문제가 아니며, 계속해서 방치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신뢰의 분위기 안에서 잘 설명해 준다.
또한 과거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이유가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불신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약에 대한 부정적 감각에 따른 것인지도 파악하여 만일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불신이라면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면밀히 상담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신뢰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나 가족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어떤 질환보다도 정신분열 증상은 의사와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결코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정신질환 치료는 곧바로 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계속되는 진단과 처방의 연속선상에서 차츰 그 효능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한 계속되는 치료의 과정을 환자나 가족들이 끝까지 견디어내기 어렵다.
환자 측과 의사와의 신뢰가 깨지는 이유는 양쪽 편에서 다 찾아볼 수 있다. 환자 측에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강한 고정관념과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경우 치료 과정이 깨질 수 있다. 반대로 의사가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고 인간의 심리적 영적인 돌봄에 대한 의식 없이 무조건 증상을 약물로만 치료하려는 이른바 과학적이며 기계적인 의사라면 또한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치료를 종료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사목자는 이런 상황을 잘 숙지하고 담당 의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이 가족들이 어떤 병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한 뒤, 필요하다면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소개시켜 주는 역할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곧 사목자는 정신과 치료를 직접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정신과 치료에 가장 중요한 ‘신뢰의 구축’ 차원에서의 아주 중요한 가교 역할을 환자와 의사 또는 환자와 그 가족 사이에서 사목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목자는 이 여인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라고 판단하여 위와 같은 사목적 배려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증상이 뇌의 이상으로 생긴 정신분열증이 아닌 따뜻한 주변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를 필요로 하는 신경증적 증상의 일환 또는 그에 따른 독특한 성격장애의 한 증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도 사목자는 의학적 접근이 아닌 사목 상담자로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사목적 배려(계속적인 심리 영성 상담, 미사와 기도 그리고 성사를 통한 은총의 중개)에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신분열증은 생물학적 뇌의 이상 증상이기에 정신과적 약물 치료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학자나 정신과 의사는 세상에 거의 없다. 실제로 어떤 유형의 정신질환자라 하더라도 심리적 영적인 돌봄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치료에 더욱 성공적이라는 것이 현대 의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곧 정신의 차원은 직접 생물학적 뇌와 연결이 된다 하더라도 심리적 정서적 영적인 다른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한 영역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목 상담자에게는 그 어떠한 상황도 사목적인 배려에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1) 정신분열증이 처음 발병되는 연령은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가 대부분이며, 청소년기 이전이나 장년과 노년에 시작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따라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다. 또한 이전에 설명한 바처럼 정신분열증 환자 자신은 자신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나 가족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 본인의 힘으로는 결코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독특한 특성의 질환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정신분열증은 초기에 치료할 경우 대부분 상태의 호전을 보이며 정상인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이 될 경우 초기에 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통계적으로 볼 때 정신분열증 환자의 3분의 1은 회복되거나 완치되고 3분의 1은 악화되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며, 3분의 1은 치유의 경과 없이 계속해서 악화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잘 시작한 환자는 회복과 치유의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정신 분열증이 회복이 되는 질병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증상이 발병된 뒤 얼마나 빨리 의료적인 치료와 심리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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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0대 중년의 여인(사람들은 마귀들린 여자 또는 미친 여자로 봄)과 40대 여인(사람들은 신이 내렸다고 이야기함) (『사목』 311호(2004.12.), 106-109면 참조)

 

(1)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 현상 식별의 세 가지 조건

가. 세 가지 기본적 인식의 틀
이제 이전에 예로 들었던 두 사건을 한데 모아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의 식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필자가 그동안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의 차이점과 분별법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던 구조적인 틀을 이해하는 독자라면 여기서도 같은 방식이 서술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필자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을 식별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곧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뚜렷한 증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일단 ① 섣부른 판단의 배제, ② 가능성의 정도에 따른 진단, ③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른 편파적 판단의 배제라는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유지해야 하며, 이에 따라 “~`정도 정신분열 증상이 엿보인다.”라든지 “정신분열 증세가 심하게 보인다.” 등의 표현을 조심스럽게 할 수는 있지만,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다.”라는 식으로 단언하는 것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1) 이것은 어떤 정신이상 증상에 대해 아무리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진단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 최대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도의 학문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제 정신분열증과 마귀들림에 관한 식별에서도 이러한 기본적인 세 가지의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과학적으로 아직 규명되지 않은 정신의 진단을 내리기도 이처럼 어려운데, 하물며 영적인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과학 이상의 다른 차원의 도움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가능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영에 관한 세계는 과학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 이렇다 저렇다 할 과학적 진단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무지가 판단의 모든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영적인 세계에 관한 모든 판단은 신중하고 겸손해야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판단 중지를 요청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 ‘판정(conclusion)’이 아닌 ‘배제(exclusion)’를 통한 식별
그럼에도 정신분열증 환자와 마귀들린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인식의 구분점을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의 세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정신분열증에 대한 축적된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곧 마귀의 장난이나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과학적 진단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상이 마귀의 장난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의 경우는 어느 정도 그 증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진단을 위한 축적된 지식들과 임상 경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분열 증상과는 전혀 다른 어떤 초월적 현상을 정신분열증과 분리해 내면서 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는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두 대상을 명확히 이해하여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한 현상(정신분열증)에 대한 나름대로의 객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아직 이해되지 않은 다른 현상(악령의 세력)을 구별해 나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다. 원인적 접근
위의 두 가지 조건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증상만 가지고는 정신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식별하는 것이 절대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따라서 하느님께 영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초자연적 은총을 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나마 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