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스크랩] -아우슈비츠 - 유태인 강제수용소를 기억하며..

YOROKOBI 2007. 6. 22. 07:56


..안녕하세요..

...옆차기 여행가 이두환입니당...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KKH의 카라쿨 호수와

여행자가 고른 Best of the Best라는 제목으로 올린 여행기가

Daum의 메인화면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오늘은 유태인 학살의 현장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보겠습니다.

2005년 8월 아우슈비츠를 둘러보면서 참 애매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럼 다 같이 아우슈비츠로 떠나보겠습니다



   [동유럽씨리즈01] 폴란드 아우슈비츠 - 첫 이야기-  

 
저는 작년에, 그러니까 2005년 8월초에 일주일 약간 넘게 동유럽을 다녀왔습니다.
 
기간도 짧고 다녀온 나라수도 적어서 동유럽 씨리즈라는 이름을 붙이는것 조차
 
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제가 그 기간동안 보고 느낀것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행했던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폴란드는 중유럽이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폴란드하면 동유럽이라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에
 
그냥 동유럽씨리즈로 묶어보았습니당
 
이상 폴란드를 동유럽씨리즈로 소개하는 것에 대한 변명을 마치고
 
유태인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프랑스 파리, 스위스 알프스, 인도의 타지마할 등등...
 
이번 동유럽 여행은 이런 단순한 바람에서 계획된 무작정 떠나기의 여행이었다.
 
지난 2003년 에베레스트에 갔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단지 그 악명높은 아유슈비츠를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 아우슈비츠로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새파란 8월의 폴란드에는 아우슈비츠가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첫인상은 뭐랄까...드라마의 느낌이었다.
 
늘 정돈되고 깔끔한 남자 캐릭터를 볼때 오히려 차갑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모든것이 지나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잘 정돈된 가로수에 폴란드 전역에서 볼수 있는 붉은 빛깔의 벽돌집...
 
과연 이곳이 그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란 말인가...
 
유태인 학살의 현장이면 뭔가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로 가득차 있을 줄 알았다.
 
아유슈비츠는 차라리 아담한 주택가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꼬마 아이가 창문너머로 고개를 쑤욱 내밀고 깔깔 거릴것 같은 모습이었다.
 
외곽을 두르고 있는 이중 철조망 만이 이곳이 아우슈비츠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입구엔 'Arbeit macht frei' 라고 쓰여있다.
 
....일하면 자유로워진다...
 
과연 그랬을까...
 
 

파란 하늘의 고등학교 교정과 같은 깔끔한 수용소와
 
그것을 두르고 있는 고압 전류의 이중 철조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양복 바지의 칼날 같은 깃을 세운 악역 남자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이중적인 느낌..
 
조지훈 님의 '승무' 였던가? (기억안나서 인터넷 찾아봤음..ㅋㅋ)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이 처럼 새파란 하늘의 푸르른 수용소의 정원은 정작으로 고와서 더 잔인했다.
 

아우슈비츠는 가스실로 유명하다.
 
굴뚝이 있는 건물을 볼 때마다 혹시 저 건물이 가스실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야 여행자의 입장에서 가볍게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과거 유태인들은 이런 굴뚝만 봐도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을까나
 
혹시 저곳에서 죽게되지 않을까.
 
캄보디아의 S21수용소에서도 그랬고, 엘살바도르의 악마의 언덕인가?
 
암턴 과거 사람들의 생사가 걸렸던 곳에서는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든다.
 

해골 모양의 사인과 멀이의 여행객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지금의 여행자들이 몇 걸음이면 넘어갈 수 있는 그곳은
 
과거 유태인들은 절대 갈 수 없었던 몇 걸음 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이중철조망을 지나서 내부로 들어왔다.
 
아우슈비츠에 왔지만 아무리봐도 아우슈비츠로 느껴지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
 
왠지 저 너머에 바다가 있을것 같은 해변의 호텔처럼 보인다.
 
차라리 가로수를 심지 말던가..-.-
 
건물들이 넘 예쁘잖아!!!!
 
암턴 현재 각 건물들은 아우슈비츠의 역사 박물관으로 개조되어있다.
 

아우슈비츠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그리고 건물들도 비슷비슷해서 어디를 들어가야할지 난감했다.
 
아우슈비츠 내부의 교차로에서 어느쪽으로 갈지 고민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꼬부라진 등이 철조망 사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철조망의 기둥의 까맣게 올록볼록 튀어나온 것들은 전부 전기 장치들이다.
 
아우슈비츠의 내부로 들어가다보니 점점 살벌한 기운이 드는것 같기도 하다.
 

아우슈비츠의 한복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관광을 왔나보다...
 
ㅋㅋ 나는 그 무리를 졸졸 따라다니기로 했다..ㅋㅋ
 
이번 아우슈비츠 여행은 급조된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행책자도 없이 왔다.
 
그런데 다행이 한국 단체 여행객을 쫓아다니면서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이곳은 2차 대전이 끝난후 아우슈비츠의 관리장을 교수형 시킨곳이라고 한다.
 
아우슈비츠를 관리하던 독일인이 바로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교수형 당한 것이다.
 
흠...잘 죽었다고 해야 하나... 복잡하다...
 

..굴뚝이 예사롭지 않다..
 
역시 예상대로 이곳이 바로 가스실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최초의 가스실이라고 한다.
 
처음엔 이렇듯 가스실을 지상에 지었는데 가스가 새나가서
 
'유태인들이 잘 안죽어서' 위에 잔디도 입혔다고 한다.
 
그래도 자꾸 가스가 새서 이후의 가스실은 전부 지하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아우슈비츠 최초의 가스실의 입구이다.
 
난 한국 단체 관광객을 쫓아다니고 있다..ㅋㅋ
 
다시는 못 나오는 이곳을 들어가던 유태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나
 
그걸 느낌이라고 표현할수 있을까.
 
 

아직도 그을음 자국이 남아있는 가스실의 내부의 모습이다.
 
학교 교실의 1.5배정도 되는 이 방에 많으면 500명의 유태인을 집어 넣었다고 한다.
 
가스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태인은 질식해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좁은 방에서 500명의 처형이 끝나고나면 그들의 팔다리가
 
온통 뒤섞여 버렸다고 한다.
 
오른쪽 벽 위쪽의 구멍이 바로 가스가 나오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가스가 나온다.
 
보다 효율적으로 빠른시간내에 처형하기 위해서 가스 배출구를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가스실에서 처형이 끝나면 가스실 바로 옆에 있는 소각장으로
 
유태인들의 시체가 운반되서 소각된다.
 
이곳에서 유태인은 인간이 아닌 개나 돼지와 같은 동물로 간주 되었기 때문에
 
가스실에서 죽고 나서도 인간다운 취급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소각장의 크기를 봐서 짐작하겠지만 한 구덩이에 두구의 시체를 소각하는데
 
구덩이의 크기가 작아서 시체를 짓이겨 넣지 않으면 잘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장작을 난로에 넣고 쑤시듯이 유태인의 시신을 쑤셔 넣었다고 한다.
 

잠시 한국 단체 여행객을 쫓아다니다가 다시 따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의 수용소는 두군데가 있는데 이곳은 아우슈비츠1호 이고 다른곳은
 
비르케나우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2호이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는 이곳이 아닌 아우슈비츠2호, 즉 비르케나우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의 관광은 이쯤에서 마치고 비르케나우로 향하기로 했다.
 
아우슈비츠1호와 2호는 걸어가기엔 무리이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된다..
 
참..아우슈비츠는 그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연중무휴로 개관하고 입장료도 무료이다.
 
 
 
철조망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장례식장에선 오히려 크게 이야기하고 하는게 더 상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 처럼
 
괜히 필요이상으로 우울한 여행을 만들 필요는 없을것 같아서
 
이런 컨셉사진도 찍어본 것이다..ㅋㅋ
 
암턴 우리는 아우슈비츠1호의 짧은 관람을 마치고 바로 비르케나우로 향했다.

   [동유럽씨리즈02] 폴란드 아우슈비츠 - 두번째 -  
 
오늘은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과 각종 자료를 살짝 둘러본 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으로 나왔던 비르케나우로 떠나보겠습니다.
 
비르케나우는 아우슈비츠 2호로 불리며 지난 글에서 설명한
 
아우슈비츠 1호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더욱 수용소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아우슈비츠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얍!!! 

 

 아우슈비츠의 예전 막사 중 일부는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숨진 수용수들의 안경들만 모아놓은 곳도 있다고 한다.
 
폴란드의 옛수도 크라코프에서 아우슈비츠로 들어가는 버스가
 
한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그걸 놓쳐서
 
우리는 상당히 촉박하게 아우슈비츠를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안경 박물관(?)은 가보지 못했다.
 
여행은 항상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아쉬움이 존재하고
 
또한 그것이 여행의 재미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촉박한 시간속에서도 우리가 보고 느꼈던 부분을 살짝 공유하고자 한당.
 

 당시 수용자들이 입던 옷이다.
 
정말 영화속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감옥을 테마로한 일본의 한 칵테일 바의 점원들도 이와 유사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항상 책이나 만화에서 봐왔던 옷이지만
 
그 거친 재질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한번 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박물관의 한쪽엔 이런 입체 사진이 전시된 곳도 있었다.
 
정말로 저 건너편에서 당시 수용자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저 눈빛으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같은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즈"를 보면
 
당시 미군이 독일군의 수용소를 해방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가까스로 생존해 있는 사람들을 당장이라도 해방시켜주고 싶지만
 
어떤 전염병에 감염되었을지 몰라 독일군이 철수했음에도 당분간 수용소에
 
그대로 수용해두는 모습이 기억난다.
 
위의 사진과 같은 식으로 엉켜서 지냈다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일부러 확대하지 않은 사진이다.
 
 
수용자들의 시신이 정말 짐짝처럼 실려있는 모습이다.
 
가스실 처형 후 소각장으로 운반되는 모습일까?
 
보통 소각장은 가스실 옆에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
 
흠..그렇다면 집단 매장이었을까?
 
당시 수용자들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짐승처럼 다루어졌다고 한다.
 
가스실로 들어가기전 수용자의 몸에 문신을 새겨놓고 처형 후 그 살점을
 
떼어서 전등에 붙이면 배트맨 마크처럼 그 모양이 벽에 비춰진다고 한다.
 
이런 것들마저 당시 수용소의 간부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철저한 독일인 답게 수용자들의 신상 정보는 정말 꼼꼼하게 기록한것 같다.
 
이 얼굴이 유태인의 얼굴이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겠는데 여행을 다니다가 왠지 똑부러지고
 
눈에서 빛이나는 듯한 사람들을 만나면 유태인인 경우가 많다.
 
물론 하시시라는 마약을 하는 얼빠진 애들도 많지만 왠지 유태인의 눈빛은 강렬하다.
 
어라?
 
젤 및의 가운데 여자 왠지 축구선수 안정환과 닮은것 같네..
 

 박물관의 한쪽 벽면엔 수용복을 입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캄보디아 킬릴필드 수용소에서 봤던 사진들이 떠오른다.
 
..죽음을 예감하는 눈빛들..
 

당시 수용자들의 편지와 엽서가 전시된 사진이다.
 
(어라? 편지를 보낼 수 있었나?)
 
편지의 대부분은 독일어이지만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어있다.
 
유태인 여성이 독일인 남편과 자식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
 
남편과 자식은 유태인이 아니라서 수용소에 끌려오지 않은것 같았다.
 
남편과 자식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과 수용소 생활의 괴로움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같은 방 한 여성의 자식이 가스실로 끌려가서
 
미쳐버린것 같다는 내용도 기억이 난다.
 

 당시 유태인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어른용 수용복과 빵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고 해야하나...
 
귀여우면 안되는데 역시 애들이라 귀엽다.
 
흠..이럴때면 감정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헷갈린다.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는 뜻이다.
 
아우슈비츠의 정문에 쓰여있는 아주 아주 유명한 말이다.
 
당시 아우슈비츠는 유태인 뿐만아니라 노숙자, 동성애자, 집시들도 수용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아리안 족과 같이
 
우수하고 근면한 '인간'이 되라고 강조한것 같다.
 

 여성 수용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흙인지 석탄인지 무언가 옮기고 있는 듯한 모습
 
과연 일을 하면 자유로워 질까나
 

 당시 조회를 하는 듯한 일러스트이다.
 
오른쪽에 대열의 맨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분명 이 그림은 당시의 상황을 그렸을 터인데 저렇게 사람이 쓰러져 있는것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그린 것일까?
 
죽어가는 사람도 조회에는 참석을 해야했다는 걸까? 아니면
 
저런 조회자체도 힘든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중에 쓰러졌다는 걸까?
 
아니면 저 정도로 의료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
 

 어라? 이건 무슨 씨츄에이션?
 
혹시 수용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음악회?
 
밑에 설명이 써있는데 영어도 아니고 독어도 아니고 암턴 해석할수 없었다.
 

 아우슈비츠가 해방될 때의 모습이다.
 
이곳은 비르케나우의 수용소의 모습이다.
 
옷가지들과 담여가 엉켜있다.
 
안네 프랑크의 아버지는 이런곳에서 생활하다가 살아나왔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1호의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비르케나우로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는 셔틀버스로 약 10분정도 떨어져있다.
 

아우슈비츠 2호로 불리는 비르케나우는 넓은 초원위에 지어졌다.
 
아우슈비츠 1호보다 훨씬 크고 훨씬 수용소스럽다.
 
(앞으로는 통일성을 위해서 그냥 둘다 아우슈비츠로 칭하기로 하겠당당)
 
우리는 거의 해질녘에 도착해서 더욱더 음산한 분위기를 느낄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문(The gate of death) 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곳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나온다고 한다..
 
(기억이 잘안나네 이 페이퍼를 쓰고 쉰들러 리스트를 한번 다시 봐야겠다)
 
수용자들은 기차에 실려서 저 문을 통과해서 아우슈비츠로 들어온다.
 
한번 통과하면 다시는 살아나갈 수 없기에 죽음의 문 으로 불렸다고 한다.
 

수용자들은 죽음의 문을 통과한 후 이 철길을 통해 아우슈비츠에 내던져진다.
 
그리고 남녀로 나뉘어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수용된다.
 
즉 아우슈비츠는 왼쪽의 남자 수용소 오른쪽에 여자 수용소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이 철길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철 길의 제일 끝 쪽에 지하가스실과 소각장이 있다.
 

누군가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철길위에 꽃을 올려 놓았다.
 
늦었지만 그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이렇게 보니 좀더 수용소스러워 보입니다.
 
제가 갔던 날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아우슈비츠2호 비르케나우는 더욱 황량한 느낌이었다.
 
 
아우슈비츠 1호는 그 악명에 비해 시설이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는데...
 
마치 영화 공공의 적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정재가 더 잔인했던 것 처럼..
 
그래서 차라리 수용소면 수용소 다워라!!
 
라고 속으로 외치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비르케나우는 정말 수용소 다웠다..
 
막상 정말 열악한 시설의 수용소에 오고나니 
 
아우슈비츠 1호가 그나마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암턴 복잡해진다.
 
(흠 고르고 어짜고 할 게재가 아닌데...)
 
 
비르케나우에 수용되는 사람들은 죽음의 문을 지나서
 
이 철길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이런식으로 분리 '수용'되고
 
정치범을 따로 수용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보시다시피 비르케나우는 그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
 
도대체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수용되어 있었을까?
 
나치의 수용소가 이곳 아우슈비츠 한 곳 이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사실 나치의 수용소는 여러군데 있었다..
 
사실 나도 TV드라마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수용소 막사의 외관..
 
다 비슷 비슷해보이지만 식당, 샤워장, 숙소로 각기 다르다
 
...이 건물은 뭐였을까나....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쌓여있는 수용소의 모습...
 
전기 철조망은 가까이서 보면 정말 기분나쁘게 징그럽다...
 
왠지 소름끼치고...
 
 
 
사실 이건 앞에서 소개한 아우슈비츠 1호의 모습인데
 
전기 철조망은 이렇게 기분나쁘게 생겼다..
 
왠지 칠판을 손톱으로 긁을때 느껴지는
 
쭈삣쭈삣하게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얼핏 보면
 
비르케나우는 침착하고 평화스러워 보이기 까지 한다
 
 
해질녘의 비르케나우 수용소 안은 이젠 그냥 오래된 공원으로도 느껴지는 듯하다.
 
이렇게 한적하게 산책하듯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죽음의 문'이
 
내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줄뿐..
 
 
암턴 이곳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묘한 느낌이 계속 드는 곳이다.
 
 
수용소의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다.
 
이곳은 문에서 가까운 곳이라 사람이 많은데
 
다른 곳을 둘러보다보면 수용소의 막사안에 
 
홀로 있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정말 이런곳을 혼자 둘러보다보면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라는 표현을 실감할수 있다.
 
왠지 무서워서 얼른 밖으로 나오면
 
무심하게 지나가는 외국 관광객들도 반가워진다
 
 
또다시 아무도 없는 수용소 막사안에 들어왔다.
 
마치 짐짝을 창고에 쌓아둔듯한 3층 침대 였다.
 
지금은 그나마 깔끔하게 보이지만
 
당시엔 이런 곳이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분들
 
가스실에서 처형당하지 않은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곳에서 살아남은 것도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르케나우를 계속 걷다보니 이런 곳에 도착했다.
 
여기 저기 솟아나 있는 굴뚝들..
 
바로 이곳이....그 곳?
 
가스실에서 처형된 시체들을 처리하는 소각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기분나쁜 굴뚝이 무수히 많이 솟아 있다
 
설마 난방 시설은 아니었을테고..
 
흠..그 곳은....바로 이곳이었군...
 
 
어느것 해가 지려하고 폐관시간도 가까워 져서 다시 죽음의 문으로 향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죽음의 문이 이곳의 수용소 관람의 입구이기도 하다.
 
 
왠지 찌릿찌릿 할것 같은 전기 철조망을 만지며
 
건너편의 소각장을 바라 보았다.
 
흠..뭐랄까...
 
여행자로서 왔으니 이것저것 일상과 다른일을 보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근데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를 오니 감정처리가 참 애매하다...
 
신기하게 생긴 전기 철조망을 보면 얼른 사진을 찍고 싶기도 하다가...
 
당시를 생각해보면 왠지 소름끼치다가...
 
또 왠지 미안해지기도 하고...
 
암턴...이런 아우슈비츠에선 내내 이런 애매한 느낌을 받았다..
 
 
 
 
옆차기 역사상 가장 애매한 감정의 옆차기 이다.
 
어& #51780;든 여행중이니까...
 
 
 
철길 위에 놓여져있던 꽃다발을 본 순간의 느낌은
 
아직까지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
 
 
따로 따로쓴 세편의 글을 모아놓으니 이어짐이 약간 껄끄러운 곳도 있네요
 
그래도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
출처 : -아우슈비츠 - 유태인 강제수용소를 기억하며..
글쓴이 : Iceland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