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원, 유언비어 등 현혹돼 과격진압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 부대가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한 사실이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과거사위는 작전명 '충정'에 의해 진압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 가운데 작년 12월 기준으로 현역 복무하고 있는 7공수 부대원 9명 중 8명을 집단면담, 과격진압 사례가 있었다는 증언을 청취한 것.
이들은 증언에서 "부대원들은 시민들을 진압봉이나 총의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옷을 벗기는 등 과격진압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시위대의 머리를 때리지는 않았다"면서도 "훈련이나 명령에는 없었지만 흥분된 상태에서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한 사실은 인정했다.
당시 11여단 62대대 소속 박모 하사는 연행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려고 옷을 벗겼다고 진술했다.
5월18일 희생된 김경철씨는 공수부대에 의한 대표적인 과격진압 사례였다.
청각장애로 인해 말까지 할 수 없었던 김씨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공수부대의 눈에 띄어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그는 광주 적십자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뇌출혈로 이튿날 새벽 결국 사망했다.
5월22일에는 헬기에서 내리는 연행자를 공수부대원이 칼로 찌르는 사례도 있었다.
당시 광주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전투발전부장 김모씨와 작전참모 백모씨는 "공수부대원이 연행자의 귀 뒷부분을 칼로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공수부대원이 대들었다"며 "술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다.
과거사위는 이 증언이 사실인지를 조사한 결과, 같은 날 광주국군통합병원에 실려온 '전재서'라는 사망자의 사인이 우측 귀 뒷부분의 자상과 총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진압 때 대검사용을 부인했지만, '전교사 작전상황일지'(5.18)에는 '7공수대 총검진압'이라고 적혀있고 안기부에서 1985년 작성한 자료에도 '7공수여단 착검진압'이 명시되어 있다고 과거사위는 전했다.
M16에 대검을 꽂고 시위대를 추격한 사진 속의 인물인 7공수여단 서모 중사는 과거사위의 거듭된 면담조사를 거부했다.
3공수여단의 '전투상보'에는 광주역에서 "가스탄, 화염방사기, M203(유탄발사기), E-8(연막탄) 발사통 등으로 시위대를 제지했다"고 기록돼 있다.
5월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후 공수부대원 중 일부는 주변 건물 옥상에서 저격병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박모 소령은 "도청 앞 사격이 있은 뒤 주변 건물에 저격병을 배치했다"고 진술했다.
같은 대대 소속 한모 일병은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로 편성돼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했다"고 증언했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일부에서 광주 진압작전명을 '화려한 휴가'라고 하는데 어떤 군내 문서에도 그런 명칭은 없다"면서 "내가 보낸 화려한 휴가라는 수기를 쓴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나모씨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규정하는 상층부의 인식 및 지침, 악성 유언비어 등으로 과격진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과거사위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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