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이단연구 총회보고서 2

YOROKOBI 2007. 7. 25. 14:33

제 목 박영균 목사(말씀권능복음선교회)보고서
성 명 사이비이단상담소 등록일 2003-01-28 추천/조회수 48/2010


1. 연구 배경

박영균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로 말씀권능복음선교회를 조직 활동해 왔다. 그의 설교는 대부분 "말씀이 믿어지면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병이 고침을 받는다. 그러므로 말씀이 믿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공동집회를 통해서 모금한 헌금을 개인이나 혹은 교회에 전액 희사함으로 그 회원들을 확대해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공금유용과 개인적 비리로 피신 중에 있음이 확인되었다.

2. 연구 결론

(1) 박영균씨의 주장은 기독교 신앙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부정하고 기독교 신앙을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것으로 만들므로 개인의 성화를 위한 열심과 노력,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봉 사까지 부정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구원얻은 성도들이 개인의 신앙성장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과 열심히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영균씨의 주장대로하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전적으로 피동적인 것이되어 결국 개인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게된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
(2) 박영균씨가 인도하는 집회는 예배의 경건성과 거룩성을 훼손하는 행위들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 으며 지나친 헌금강요와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등 정상적인 예배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박영균씨를 강사로 집회를 가진 교회는 성도들간에 갈등과 분열이 나타나는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들이 많이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상기와 같이 박영균씨의 주장과 행위는 성경적이라 할 수 없으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이비한 것으로 판단됨으로 향후 박영균씨를 강사로 청빙하는 일이나 성도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 목 말씀보존학회 보고서

성 명 사이비이단상담소 등록일 2003-01-28 추천/조회수 8/2452

1. 들어가는 말

이송오 목사가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가장 잘 번역되었고, 나머지 모든 성경들은 잘못 번역되었다고 하여, 전자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제공하고, 후자는 모두 사단의 책들이라 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성경의 원본은 없어졌고, 결국 5,000개에 달하는 사본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사본들로부터 신약성경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헬라어 성경이 여러 나라의 말들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동일한 본문에 관하여도 사본들 자체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니, 사본 자체에 있어서, 사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번역과정에서 전혀 무오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일점 일획이라도 오류가 발견될 경우, 그 성경은 이단적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우리는 최소한도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의 연속성 속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중심한 예수님 자신의 말씀들과 사도들의 "복음"(apostolic Kerygma)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이미 사본 이전 시기에 잘 전승되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경전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도적 전승이 사본선택의 표준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제공하는 이와 같은 사도적 전승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성경의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성경의 문헌비평적 차원을 넘어서서 성경의 중심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본 론

예수님에 의해서 설교되었고, 사도들에 의해서 설교되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롬 1 : 1-4; 고전 15 : 1-11; 막 1 : 1; 눅 1 : 1-4; 행 8 : 40;요 5 : 39; 요 20 : 31)이 전승의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고, 이것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화되었다. 이 종말론적 복음이 성경의 기원이요 성경의 통일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령강림 사건이 없었더라면, 성경의 경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경전인 신구약성경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은 통일성과 다양성을 지닌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영감되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경은 성서신학 및 나머지 모든 신학의 통일성과 다양성의 근거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경적 거대담론(the biblical metanarrative : 창조, 타락, 이스라엘의 구속을 통한 인류구속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사건(성육신,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의 사건, 교회,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의 절정으로서 성경전체를 통일시키는 구속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들과 사실들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특수 구속의 드라마는 인류의 보편적 드라마를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창조, 타락, 구속, 이스라엘의 구속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성령의 강림, 교회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은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 창조와 구속과 종말의 드라마에 하나님의 인류와 우주만물을 향하신 목적이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의 구속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성경의 통일성)고 하는 주장은 신약성경의 성경구절들은 물론, 사도신경과 교부들의 "신앙규범"(regula fidei) 및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령의 수직적인 역사에 의하여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서 전수되고 있다.
그리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어 구원(이신칭의)을 받고,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사랑과 정의로 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경의 다양한 메시지들의 역동적인 관계를 의식하고, 나아가서 21세기의 상황을 분석하여 성경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오늘의 상황에 걸맞게 선포하고 행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생동성과 역동성(viability and dynamics)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도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당시 교회들이 처한 상황에 대응하여 해석하고 선포하고 행하였다면(물론 공관복음서들도 일정한 상황들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 역시 단순히 사도적 복음을 단순히 반복할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21세기 상황,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상황에 적중시켜야 할 것이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a single metanarrative in the Bible)과, 다양한 메시지들과 다양한 명제적 진리들은 상호 의미 연관의 관계 속에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전승에 조명하여 나머지 성서적 메시지들과 진리들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고, 후자의 이해와 해석에서 출발할 경우에도 전자에 도달해야 한다. 예컨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비유들, 하나님에 대한 은유들(아버지, 주님, 목자 등), 기타 작은 이야기들과 비 담화적 내용들을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이야기"에 입각하여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대한(그의 성육신, 삶, 교역활동,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이야기로서 성경의 다른 이야기들(small stories) 및 다른 장르(시편, 지혜서, 문학, 예언서, 서한, 묵시서 등)로 표현된 글들의 의미와 가치와 진리성의 특수성을 억압하지 않고 살려내면서, 그것을 통전 시킨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서적 거대담론은 결코 성서 내의 미시적인 목소리들을 결코 억압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과 사건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작되어 갈등상황을 거쳐서 대단원에 이른다고 하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해석학적 원리에 더하여, 성서 해석자는 "구약 안에 신약이 감추어져 있고, 신약 안에서 구약이 계시된다"고 하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따라서 신약을 바라보면서 구약을 해석해야 하고, 구약과의 연속성상에서 신약을 해석해야하며, 나아가서 신약만의 유일무이한 비전과 진리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성경 자체의 해석자라고 할 때에도, 우리는 성경구절들과 단락들 상호 간에 상호 조명하고 보충하는 측면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신약성경의 특수성과 특히 성경의 "단 하나의 거대담론"(a single metanarrative in the Bible)을 지향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거대담론은 결코 성서의 다양한 소리들을 억압하가나 소외시키거나 전체화하는 폭력 혹은 보편화하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또한 신약의 해석자는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설교를 핵심 메시지로 갖고 있는 공관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상호 보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공관 복음서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야기요 해석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말씀설교, 성경공부, 세례와 성만찬, 기도, 성도의 교제, 카리스마타 등 은혜의 통로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은 사람은 하나님, 인간 및 자연과 새로운 관계 속에 돌입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에 대해 감사하며, 거룩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두려움과 외경을 느끼고, 하나님 존전에서의 자신의 용납을 기뻐하며,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는 설자리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를 의롭다고 칭한다(justfication by faith). 구원은 개인의 구원이기 전에 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요, 성령의 전의 구성원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된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덕목들로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받아, 다양한 교역(ministries)을 교회 안과 밖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교회 안과 밖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이 성령은 모든 것을 완성하시사, 하나님을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실 영광나라의 하나님의 영이시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성경의 명제적 진리들에 의해서 매개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말이다. 이 때 믿음은 성령의 역사요 성령의 주된 열매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을 제공하눈 유일한 말씀이고, NIV, NASB, RSV, NEB, GNB, JB, LB, NRSV 등을 한글개역성경과 더불어 구원을 제공할 수 없는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고 주장한 "말씀 보존학회"의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KJV만을 정통으로 보고 나머지 성경들을 이단으로 보는 그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서공회가 인정하는 대부분의 번역성경들은 사본비평 차원에서 약간씩 다를 수 있으나, 모두 한결 같이 위에서 제시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거대담론"을 성경의 통일성으로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오 목사가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기타 대부분의 번역된 성경들이 사본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번역 상의 오류들이 발견될 수 있을지라도, 성경의 주제에 관한 한 무오류하다고 판단된다. 정경화 과정에 있어서 초기의 권위 있는 사본들이 사도성을 그 선택의 표준으로 선택되었으니, 이 사도성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하는 성경의 사도적 신앙내용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잘못 번역되어도 좋다든가 성경전체가 영감된 문서(딤후3:15, 16)가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신구성경의 말씀들은 영감된 문서로서 진주알들 같고, 이미 지적한 성경의 주제는 이 진주 알들의 모음 이상의 무엇이리라. 따라서 이단이 아닌 번역성경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이송오 목사의 가르침은 "바른 가르침"(orthodox)이 결코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으로 Biblia Hebraica Kittel과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신약으로는 네슬레·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The Greek New Testament"를 사용하여 가장 정확한 번역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송오 목사의 번역성경이나 기타 영문번역성경들에서도 잘못 번역된 말씀들을 찾아내야 하고, 문헌비평을 통해서 최선의 본문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번역성경에 잘못 번역된 부분들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위에서 지적한 성경의 주제가 명쾌하게 제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이단적인 성경"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연구 결론

이송오씨의 킹 제임스 성경만이 가장 잘 번역된 바른 성경이며 여기에 구원이 있으며 다른 사본성경들은 모두 사탄의 책이며 이단이라는 주장은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으로 성서공회가 인정하는 번역성경을 믿고 고백하는 모든 교회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나아가서 자기들이 인정하는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만이 구원이 있고 다른 번역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는 구원이 없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 등은 반 기독교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교단내 모든 교회는 이런 사실을 성도들에게 교육하고 이들의 잘못된 주장에 동조하거나 미혹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 목 뜨레스디아스 보고서

성 명 사이비이단상담소 등록일 2003-01-28 추천/조회수 67/4775


1. 뜨레스디아스의 기원

뜨레스디아스(Tres Dias)는 1940년 가톨릭에서 시작된 영성훈련인 꾸르실료(Cursillo)가 개신교에 들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뜨레스디아스(Tres Dias)는 스페인어로 "사흘"의 뜻이다. 3박 4일간 독특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서 실시된다. 3일간 크리스챤의 기본이 되는 생활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소명을 깨달아 알고 응답하는 회심의 여정을 체험하게 한다. 그 내용은 신앙의 빛으로 인도되는 하나님 체험의 여정,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다짐하는 회심 체험의 여정, 나와 환경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소명 체험의 여정이다. 1949년 1월 7-10일까지 3박 4일간 스페인의 마요르까(Mallorca)에서 공식적인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다양하게 만들어진 프로그램과 강의는 케리그마에 일치한 교회의 예언적 사명을 수행하는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가톨릭 내에서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 참여를 권장하기까지 20년간 내용변경과 실행상의 문제점등이 수정되고 보완되는 과정을 거쳤다. 현재 전 세계 가톨릭 교회 내에서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평신도 영성 훈련으로 가장 각광받는 영성훈련으로 발전되고 있다.
1967년 5월 이 운동은 한국 천주교회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현재 천주교회에서는 전체 한국 교구에서 신앙의 새로운 시대 적응을 위한 신앙 사고의 전환(Paradigm shift)의 한 방법으로 활달하게 활용되어지고 있지만, 한국 기독교에서는 1985년 미 8군 교회와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를 통하여 소개되면서 이 프로그램의 주도권 쟁탈을 놓고 마치 한국의 고질적인 교파분열을 재현하듯 교단별, 목회자와 목회자, 목회자와 평신도, 평신도와 평신도 구룹간에 핵분열을 가속화 하고 있다.

2. 뜨레스디아스 프로그램의 내용

프로그램의 내용은 신학적인 핵심인 메시지의 선포, 회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호소력있는 선포,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을 체험하는 기쁨,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생활에서 증거하는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이 프로그램은 3박 4일동안(청소년을 위한 2박 3일의 과정도 있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실시된다.
원래 가톨릭에서 처음 전수될 때는 강의, 그룹토의, 찬양, 섬김훈련과 각종 독특히 구성된 프로그램이 있으나 개신교로 전래되면서 용어는 물론 강의 내용은 물론 프로그램이 자의적으로 변형시켜 실시되고 있다.
Rollo라고 하는 15개의 주제별 강의 제목은 1. 삶의 이상, 2. 은혜, 3. 교회, 4. 성령, 5. 경건한 신앙, 6. 성경공부, 7. 성례전, 8. 그리스도안에서의 행동, 9, 은혜의 방해요소, 10. 지도자, 11. 환경, 12, 은혜안의 생활, 13. 크리스챤의 공동체 생활, 14. 새 공동체 모임, 15. 4th Day 이다.

주제별 강의 이외에도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는 프로그램 중에는 묵상기도, 성찬식, 편지보내기, 선물보내기, 특별기도회, 세족식, 회개한 죄목 태우기, 촛불길 걷기, 사랑의 포옹, 아침 만남의 시간, 침묵훈련, 개인고백의 시간, 간증시간등 실로 다양하다.

3. 연구 결과
(1) 긍정적이 측면
1) 짧은 3박 4일의 훈련을 통하여 신앙의 감격과 섬김훈련의 경험, 봉사와 충성의 결단을 높혀준다.
2) 비록 가톨릭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지만, 내용의 수정 보완을 통하여 한국교회에 영성 훈련의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

(2) 부정적인 측면
1) 현재 한국교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나 교회등 약 100여군데에서 명칭조차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원형에 충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지만, 가톨릭적인 요소를 제거라는 명분으로 내용과 형식을 자의적으로 변형시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적, 신학적 검증을 총괄적으로 하기 힘이 든다.
2) 이단으로 규정되었거나 지목받고 있는 불건전한 단체들이 세력 확장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
3) 정상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교회나 단체에서 훈련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소위 "복음적인 성경공부"를 빙자하여 별도 그룹을 형성한 후, 이들을 이용하여 교회를 개척하거나, 자신들의 교회로 유인하여 기성 교회에 분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
4) 훈련에 참석한 경험자들이 교회에서 파당을 형성, 특권의식에 젖어 별도의 내,외부의 비공식적인 모임을 선호하기 때문에 개 교회 모임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5) 참석자들에게 헌금을 강조해서 재정적인 이득을 추구한다거나, 재정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무시하고, 몇몇 주관자들이 제정운용을 철저하게 비밀로하여 수입과 지출이 베일에 가려진 곳이 있다.
6) 일부 지역(해외포함)이나 개 교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생기는 교회내의 분란 때문에 이단으로까지 규정되어 철저하게 참가를 금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참석을 홍보하고 권장하는 교회도 공존하고 있다.
7) 세례받지 않은 초신자 참석, 세례의식 거행, 아브라죠(포옹), 무분별한 가톨릭 용어 사용, 시각적 효과를 위한 지나친 장식에 의존하여 참석자들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키게하는 곳도 있다.
8) 고도로 형식화된 구조와 극단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밀폐공간에서의 훈련은 개인에 따라 억압적인 분위기로 영성 훈련에 대한 나쁜 선입관을 갖게 할 수도 있다.

4. 연구 결론

(1) 뜨레스디아스나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은 교단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준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 에 개교회 목회자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와 교회의 성격과 내용을 신중하게 연구하고 분석하여 참가여부를 목회자 스스로 판단하고 반드시 담임목회자의 추천을 받고 참가하도록 해야 한다.
(2) 이단이나 불건전한 단체와 교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는 절대로 참석을 금하도록 한다.
(3) 이 프로그램은 진행하는 단체나 교회에서도 비밀유지를 통한 성과의 극대화라는 명분에서 탈피하여 목회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목회자와 시행단체간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4)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성도들의 관리는 재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프로그램을 주관한 단체가 비공개로 할 것이 아니라, 담임 목회자의 목회 영역안에서 교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 이 프로그램이 이단이나 이에 가까운 교회나 단체가 기성교회와 교인들에게 주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 지속적인 주시가 진행되어야 한다.
(6) 변혁의 시대에서 이 프로그램을 복음 안에서 긍정적으로 보완 발전시켜 목회자, 중직자, 평신도, 청소년을 위한 기독교 영성 훈련의 돌파구와 새로운 신앙훈련으로 발전될 수 있는 대안제시를 위해서 긍정적인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