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프로푼디스
언젠가 독일 여행 중에 뒤셀도르프에서 만났던 두 명의 일본인 친구를 생각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뒤셀도르프가 2차 대전 이후
일본인에 의해서 재건된 도시라는 점과 맞물려 난생 처음 만나는
일본인에 대한 소감은 실로 기기묘묘했었다. 세계사를 뒤흔들어
놓은 두 주인공 독일과 일본, 그리고 우리 민족을 지배했던 장본인과 맞닥뜨린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일본인들과 그저 친구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나누었다. 그들이 역사의 현장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일본인으로
살면서 의식을 잃어버린 양식없는 사람들이라는 단서가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한참을 그 묘한 감정과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책 속에서 또 한 명의 일본인을 만났다. 그는 '한
나라를 정복한' 사람답게 위대하고 크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한 이방신의 아들
우찌무라 간조.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정복한 배경은 참으로 깨어 있는 이상적인 그 정신에 있었다. 제 것을 지켜내는 줏대 있고 신이 넘치는 곧고 강인함, 무엇보다 사람의
본분을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가 앞으로 결코 하지 않을 것 한 가지, 그것은 기독교를 유럽이나 미국의 종교라고
옹호하는 것이리라. 불멸의 영혼을 지탱해 줄 종교는 훨씬 견고하고 심오한 증거 위에
놓여야 한다.'
그는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서보다 '신과 사람의 합일' 그리고 진리로서 체득해 갔다.
이 책 속에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솔직하고 담담하게 고백하면서 인생이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에게 고향이고 정처이면서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대상인지 말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벗겨지는 나신(裸身)을 보며 당황하고 혼돈스러워하는 과정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의 본연을 깨달아 분수령에 도달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빈 손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한 떼의 재산과 식솔을 거느리고 얍복강을 만난 그 야곱이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고국 일본에게 전할지 얍복강을 건너는 야곱에 빗대어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낯선 땅에서 혹은
세상 속에 자신을 적나라하게 내놓음으로써 이뤄갈 수 있다고 했다. 고독과 외로움에
노출당하고 그것들에 사무쳐 나오는 독백과 내적 성찰로 이뤄지는 대화들이야말로 그를 진리로 데려다 준 스승이었다고 밝힘으로써.
우찌무라 간조는 우리 나라의 큰 산을 배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백년이 지나도 그리운 사람 김교신 선생이나 씨알 사상의 함석헌 선생. 제도적 교회를 거부한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진 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인 걸 보면
세상사가 꼭 뒤틀려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1861년 에도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온갖 신에 순명을 다하던
그가 예수를 영접한 것은 삿포로 농업대학에 입학하고서 였다. 이후 몇몇의 동료들과
모여 예배들 드리다가 도미해 에머스트와 하트포트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이 책 회심기의 배경은 그 4년 간의 유학 기간 동안 그가 예수와 기독교의 본질에 눈 떠가는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나는 18세기 동안 기독교 역사가 겪은 변화와 발전을 나 개인의 경험 속에서 모두 맛보았다"면서 뒤늦게 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섰으나 여전히 그 효력을 발생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에 집중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병폐와 인종차별을 비판하며 기독교
국가의 비기독교적 이면을 꼬집어 내고, 그들의 제국주의적인 선교정책을 길들여진 침팬지나 코뿔소의 쇼로 읽어내는 통찰력을 발휘하며 어떻게 기독교가 진리로서 바로 서야 하는지를 피력하고 있다. "우리가 씨름해야 할 대상은 회의적인 흄이나 분석적인 바우어가 아니라, 힌두 철학의 미묘함, 중국 도덕주의자들의 비종교성, 그것과 아울러서
신생 국가들의 혼란스런 생각과 행동들이다"라며 동양인으로, 비기독교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한 단어에 다 담겨 있는 매우 단순한 것이라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단어일지 모르나, 온 우주로도 담을 수 없는 단어가 사랑이다! 참 부러운 사람이다."
한 퀘이커 교도에게 이교도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겪은 고층을 털어놓았을 때 되돌아온 대답에 대해 나중된 자로서의 열패감을 인정하는 이 말 속에는 비기독교권의
이방민족에게 어떻게 그리스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뇌가 서려 있다. 나무나 돌의 우상을 파괴하는 일이 아닌 악한 것은 더 악하게, 선한 것은 더 선하게 보게 하고 인간의
실체를 낱낱이 비춰주는 종교로서의 기독교. 신학을 하면서 비로소 기독교 국가와 신학이 하나님을 가르쳐준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으로 신학교 입학 4개월 만에 그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귀향한다. "과학, 의학, 철학, 신학, 그 어느 것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만한 졸업장"은 없었지만 그는 그것들이 결코 줄 수 없는 "인간 영혼의 희망이며, 모든 민족의 생명"인 부끄럽지 않은 복음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귀향, 어쩌면 그 빈 손이야말로 절대자 하나님을 손에 쥔 자의 정체이리라.
※데 프로푼디스는'깊은 데서'라는 라틴어. 시130:1 참조.
혜원 옮김/ 홍성사 펴냄/ 317쪽/ 11,000원
정혜영 기자 pcweaver@c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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