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1일 화요일, '며칠 있으면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무너진 지 꼭 34년째 되는 날이 된다'라고 기억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9·11을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뉴욕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만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빌딩으로 돌진하던 비행기와 잿빛 화염에 휩싸인 건물, 그리고 건물 잔해를 뒤집어쓴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을 비추던 영상은 어떤 그래픽 효과보다도 설득력 있고 현실적이었다.
2001년 이후 9·11을 감히 다른 어떤 일과 연관 짓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에서 9월 11일은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날이다.
<칠레 전투>, 민중의 힘에 대한 기억
아옌데 정부에 대해... |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아옌데는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후보로서 36.2%의 득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후 아옌데 정부는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이행"이라는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실험을 추진했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 중남미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했던 미국의 닉슨 정부는 아옌데가 대통령 당선을 막으려 노력했으나 실패한 후, 칠레에 대한 경제원조 중단 등 경제압력정책을 통해 아옌데 정부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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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은 아옌데 정부의 사회주의적 개혁과 민중들의 정치 참여,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저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 정부가 전복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실험에 대한 생생한 기록과 비판, 그리고 혁명과정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칠레 민주주의의 비극에 대한 하나의 슬픈 서사시이기도 하다.
라모네다궁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 "당신 뒤에는 우리가 있다"라고 외치며 아옌데에 대해 지지를 보내던 민중들의 함성, 새로운 정치적 실험의 현장, 그리고 민중의 힘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던 아옌데의 감동적인 마지막 연설. 몇 년 전 비디오를 통해서 본 <칠레 전투> 3부작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자극했다.
사실, 우리는 미국보다 칠레와 더욱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군부 쿠데타의 발생, 오랜 독재의 경험, 수많은 고문과 실종,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괴. 그렇지만, 우리 중에 1973년의 9월 11일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역사는 강자에 의해 쓰이기 마련 아닌가.
미국은 우리에게 제국주의 국가이기 이전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구원자이다. 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초강대국이기 이전에 우리가 닮아야 할 부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뉴욕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의 언어인가.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가 쇼핑백을 어깨에 메고 거닐던 5번가가 있는, <프렌즈>의 주인공 녀석들이 모여 살던 아파트가 지척에 있는, 유혹의 도시.
또한 태풍의 끝만 스쳐 지나가도, 지하철이 2시간만 멈추어 있어도 한국의 <뉴스데스크>에 보도되는 아주 익숙한 도시가 아니던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9·11이라는 숫자가 2001년 9월 11일과 연결되는 건 당연하다. 아무도 우리에게 1973년의 9월 11일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때문에 2001년 9월 11일과 1973년 9월 11일 사이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당사자가 아니면서 누가 30년도 지난 남의 일을 굳이 다시 끄집어내 기억하고, 의미를 되짚어 보려고 하겠는가.
뉴욕 한 모퉁이에서 칠레의 9월 11일을 기억하다
그렇지만 여기는 뉴욕이다. 사람들이 버릇처럼 내뱉고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시 뉴욕. 여기 맨해튼에 있는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즈(Anthology Film Archives)는 9월 5일부터 13일까지 <칠레전투> 1, 2부와 3부 '민중의 힘'을 비롯해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지울 수 없는 기억> <피노체트 재판> 등 파트리오 구즈만의 다큐멘터리 필름들을 상영한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수 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공간에서 2001년 9월 11일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1973년의 9월 11일에 대한 영화를 상영하려는 이들의 신선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영화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소규모 극장에서 칠레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몇 편을 상영하는 것이 주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마 주류 언론에 보도는커녕, 몇몇 필름 마니아들과 여전히 아옌데를 기억하는 칠레인들, 그리고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이 모여 앉아 보는 수준에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9·11에 대한, 나아가서는 미국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확장시켜보자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나 음모론에 바탕한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뿐이다.
그렇지만 9월 11일 뉴욕에서 <칠레 전투>를 상영한다는 것은 그리고 본다는 행위는, 미국을 포함한 문명세력 대 테러세력이라는 9·11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해석의 구도를 넘어서면서도, 부시 행정부와 반부시 진영이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정치적 구도에도 갇히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영사기는 어둠을 뚫고 관객들 앞에 34년 전의 진실을 그려 보일 것이다.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서 1973년의 9월 11일 화요일을 목격하면서, 스크린 바깥의 이제 곧 6주년을 맞이하려는 2001년의 9월 11일 화요일을 떠 올려야 한다. 공교롭게도 2007년 9월 11일 화요일에 말이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느껴야 할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호흡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이중성과 허약함을 발견하려는 것일까. 칠레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말처럼, 실제 9월 11일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역사 속에서 발생한 수많은 비극적인 9·11들을 기억하고 반성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어둠이 깔리면 두 개의 레이저 광선이 또다시 그라운드 제로 위로 쏘아 올려질 것이다. 그것은 뉴욕의 심장이었던 쌍둥이 빌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혹은 11이라는 상징적인 그날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높이 치솟은 광선에 하늘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닿고 싶은 소망을 담아 보낼 수도 있다. 물론, 끊임없이 팽창해왔던 미국의 역사처럼 그저 뻔뻔스럽게 하늘로 뻗어나가는 빛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건, 유혹의 도시 뉴욕 한구석에서 벌어질 일이다.
마지막 9월 11일(The Last September 11) -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
1973년 칠레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민주주의를 잃어버렸던 날, 그리고 되돌이킬 수 없는 죽음들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버렸던 그날 이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9월 11일 화요일은 슬픔의 날이었다. 그리고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가혹한 역사의 운명은 다른 한 나라에 우울한 그날을, 죽음으로 가득 채워진 9월 11일을, 그것도 또다시 화요일에 가져다주었다.
또한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영원히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던 날로서 미래의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 1973년 9월 11일의 칠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1년 아리엘 도르프만이 썼던 글을 저자의 동의하에 번역 게재합니다. 이글은 2004년에 출간된 아리엘 도르프만의 산문집 <Other Septembers, Many Americas: Selected Provocations, 1980-2004>와 아리엘 도르프만 등 여러작가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 <Chile: The Other September 11>에 실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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