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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의료·봉사단원 납치사건이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은 아편재배국가로도 악명이 높다. UN은 지난 8월 27일에 “작년 전 세계 아편의 92%를 공급한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 및 수출이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급격히 늘어 전년 대비 10~30%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Weekly Chosun의 아프가니스탄 해외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주선씨를 통해 아편 재배의 실상을 들어본다. 김씨는 올해 초 Weekly Chosun을 통해 윤장호 병장을 앗아간 폭탄테러현장을 생생하게 전한 데(2007년 3월 12일자) 이어 네오 탈레반의 실체를 세밀하게 밝혔었다.(2007년 8월 6일자)
왜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최대의 아편재배국가가 되었나?
“아프가니스탄은 예로부터 아편과 대마를 많이 생산해온 나라다. 산세가 험해 통제가 미치지 않고 연중 두 달 정도만 비가 와 햇볕이 강렬한 환경이 마약재배에 좋은 조건이 됐다.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적어도 지난 50년간 양귀비 재배가 성행했다. 1960~1970년대에는 ‘히피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였다. 당시 서방세계의 히피족은 ‘저먼 버스(German Bus)’라고 하는 독일식 버스를 타고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와 대마초의 일종인 하시시와 아편을 피우며 그들만의 낭만을 노래했다. 그때는 자히르 샤 전 국왕이 통치하던 때라 지금처럼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치는 나라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헤자브로 머리를 가리지 않았고 카불대 여대생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교정을 거닐었다. 젊은이는 맘보바지에 선글라스를 끼고 비틀스와 도어스 같은 록에 심취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서양의 히피족도 안전하게 아프가니스탄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UN 마약 및 범죄국 통계에 따르면 2000년 탈레반 통치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의 75%를 공급했으며, 2005년에는 87%, 작년에는 92%를 공급했다.
농민이 아편을 재배하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나?
“양귀비 재배는 1년에 한 번 이루어진다. 일모작인 셈이다. 농민이 보통 1월에 씨를 뿌리면, 땡볕이 내리쬐는 4~5월에 꽃이 피고 열매가 영근다. 그때 나무칼로 열매 표면에 생채기를 내면 짙은 보라색 유액이 흘러나온다. 그 유액을 채취, 건조해 덩어리로 만들거나 가루로 만들면 아편이 되고 화약약품을 첨가하면 헤로인이 된다. 아편은 6~7월이면 수확이 끝난다. 지난 4월 말 아프가니스탄 동부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낭가하르주의 시누아리 마을에서 만난 키트한이라는 농부는 15~20평의 밭에서 한 번에 양귀비 6㎏을 거둔다고 했다. 양귀비 1㎏이면 3200아프가니, 즉 64달러를 받을 수 있으므로 수익은 384달러(약 35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키트한의 밭은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 키트한의 밭보다 3배 큰 밭에서는 1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가능하다. 낭가하르주의 양귀비 밭은 4000헥타르를 상회한다. 한 달에 100달러 미만의 수익으로 살아가는 농부들로서는 큰 수입원이 아닐 수 없다. 밀이나 감자 등 다른 합법적 작물보다 양귀비 재배가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내기 때문에 아편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이다. 양귀비 재배 및 아편 수출이 아프가니스탄 GDP(324억달러·세계 92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미국 CIA는 33%로, 아시아개발은행은 12%로 추정하고 있다.”
농민이 마약 재배에 집중하면 식량이 부족할텐데 가격이 오르지는 않나?
“아프가니스탄의 생활상은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서방세계의 원조금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매년 유입되고 있으며 수입업자는 파키스탄에서 주로 과일과 야채 등을 수입한다. 마약 재배가 늘어날수록 식량 가격이 급등한다기보다는 마약 가격이 떨어져 농부의 수입이 줄어든다. 때문에 과거 탈레반 정권은 아프가니스탄 농부의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해 양귀비 재배를 한동안 억제한 적이 있다.”
탈레반이 아편 재배를 독려하나?
“아편은 탈레반의 주요 자금줄이다. 탈레반은 마약소탕작전을 펴는 정부군으로부터 농민을 보호해줌으로써 민심을 얻고 있다. UN의 8월 27일 발표 내용에 따르면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헬만드주 양귀비 재배가 지난해에 비해 45% 증가했다고 한다. 탈레반 무장세력은 양귀비밭 소탕작전을 벌이는 아프가니스탄 군경과 이를 보호하는 나토군(주로 영국·네덜란드·호주군)에 대항해 RPG(휴대형 로켓포) 등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이슬람 율법은 마약을 허용하나?
“코란은 이슬람교도가 환각제를 재배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탈레반은 집권 당시 아프가니스탄 농민이 대마초의 일종인 하시시를 재배하는 것은 금지했으나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를 재배하는 것은 눈감아줬다. 탈레반 집권 당시 여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교육 및 구직이 금지됐으며 경제가 피폐해져 남자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아편 재배는 농민의 주요 수익원이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수출품으로 탈레반 정권에도 놓칠 수 없는 외화벌이 수단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인에게 ‘왜 탈레반이 아편 재배는 눈감아주고 하시시는 금지했는가’라고 물으면 ‘하시시는 내국인이 사용하는 것이고 아편은 서방세계 외국인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탈레반의 마약 재배 명분은 ‘이교도들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9·11사태 약 두 달 전인 2001년 7월, 미국 정부가 탈레반 정권에 4800만달러라는 거금을 마약퇴치용으로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때는 탈레반이 아편 재배를 금지해 아프가니스탄 내 양귀비밭이 1만2600에이커에서 17에이커로 대폭 줄어든 시기다. 탈레반은 특유의 공포정치로 양귀비밭을 감소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같은 해 11월, 미국과 북부동맹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뒤 오늘날까지 마약 생산은 늘어만 가고 있다.”
아편 판매 자금이 테러자금으로 전용되고 있나?
“현재 탈레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헬만드 및 칸다하르에 소재한 아편공장에서 제조된 모르핀이나 헤로인은 아편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파키스탄이나 이란을 통해 전 세계, 특히 미국 및 유럽 등 서방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탈레반은 또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낭가하르, 쿠나르, 누리스탄 3개 주를 접수하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마약밀매단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만 해도 헬만드주에 위치한 헤로인 제조공장에서 화학약품 16톤 정도가 압수됐다. 탈레반은 마약밀매 세력을 비호하고 커미션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아편 재배를 단속하지 않나?
“2007년 8월 현재 미국 정부의 마약퇴치 프로그램 예산은 6억달러 정도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과 나토국가는 제초제를 공중에서 뿌리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지만 환경파괴가 심해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UN 마약 및 범죄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마약범죄단속부와 공조해 매년 봄 양귀비 수확에 맞춰 현지 경찰을 동원한 ‘양귀비밭 소탕작전(Drug Eradication)’을 벌인다. 그러나 막대기로 양귀비 줄기를 내리치는 방식으로는 역부족이다. 마약범죄단속부의 줄마이 아프잘리 대변인은 지난 3월 나에게 ‘북부지방에서 양귀비 재배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북부지방의 바드기스, 파르야브, 바다크샨주 일대 산간지역에는 아직도 양귀비 재배가 만연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도 바다크샨주 산간지방에는 양귀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지역 경찰국장에게 소탕 여부를 묻자 ‘우리는 양귀비밭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소탕작전 프로그램이 없다’는 답변만 하고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월급이 60달러(약 5만원)로 박봉인 경찰은 양귀비 재배를 묵인하면서 뇌물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직접 소비되는 아편은 없나?
“탈레반은 ‘아편은 외국인이 사용하는 것이므로 재배해도 괜찮다’는 명분을 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편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가정상비약 및 만병통치약 역할을 한다. 양귀비 열매에서 나오는 즙으로 만든 아편 덩어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재래시장에 가도 쉽게 살 수 있다. 지방에서는 1그램에 50아프가니(약 1달러) 정도에 구입할 수 있으며 카불에서는 1그램에 200아프가니(약 4달러)에 아편을 구할 수 있다. 콩알 크기만한 갈색의 아편 덩어리는 아이들의 소화불량이나 두통에 효과를 발휘한다. 아프가니스탄 엄마들은 작은 아편 덩어리를 물이나 분유에 섞어 아이가 울거나 아플 때마다 먹인다. 그러면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치게 된다. 아편을 자주 사용할 경우 아이들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마약중독자가 된다. 산모도 고통을 참으려고 아편을 먹는 경우가 많다. 아편중독이 된 산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는 생후 몇 달 만에 사망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이 피폐한 경제와 교육의 부재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인구 3000만명 중 92만명이 마약중독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78%가 남자, 15%가 여자 그리고 7%가 어린이라고 한다. 북부 바다크샨주의 ‘이슈카심’ 지역의 한 마을은 주민 전부가 아편을 복용해 중독자가 됐다. 카불 시내의 후미진 곳에서는 새벽녘부터 아편중독자들이 하나 둘씩 나와 쭈그린 채 헤로인을 흡입하거나 주사를 맞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담배 껍질과 주사기가 무성하다. 주사기는 남이 버린 것을 주워서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주사기 오용은 마약중독을 넘어 에이즈(AIDS)를 확산시키고 있다. 카불의 대표적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인 ‘네잣센터’의 압둘 파타 하미디는 “탈레반 시절인 2000~2001년에 4만5000명이던 카불의 마약중독자가 지금은 6만명으로 늘었다”며 “HIV 양성환자는 58명이며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도 5명”이라고 말했다. 헤로인을 흡입하는 한 18세 소년에게 ‘왜 마약을 하느냐’고 물어보자 ‘일자리도 없고 괴로워서’라고 대답했다. 마약을 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의 불균형, 오랜 내전과 탈레반 통치로 인한 가난과 교육의 부재가 이들을 마약중독으로 이끌고 있다.” ▒
김주선 | 미국 뉴욕대학교(NYU) 사진과 졸업, 미주리대학 대학원 석사(포토저널리즘),
2006년 아프카니스탄에서 활동. 뉴욕타임스·시카고 트리뷴 등 미국 언론사
프리랜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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