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가미야 다케시(36)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은 “한국 물가는 통계상으로 저(低)물가처럼 보이지만, 커피·와인·옷·골프·외식비 등 생활에 밀접한 비용들은 일본보다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고 했다. 2000년 미국의 58%, 일본의 38%, 영국의 56% 수준이던 한국 물가는, 올 6월엔 미국의 93%, 일본의 82%, 영국의 79% 등 선진국 턱밑까지 올라섰다(OECD 통계). 세계적 고(高)물가 도시인 뉴욕·도쿄·런던·홍콩 주재 특파원들과 함께 분야별로 심층 분석해 본다.
일본은 명문 유치원 입시 학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한국 못지않은 사교육 몸살을 앓아온 나라다. 교육 물가가 다른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 자녀가 좋은 성적을 못 내면 교육 투자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유아원 보육비에서 대학등록금까지 자녀 교육비 중 비교가 가능한 15개 교육 물가를 비교해 보니, 한국이 상당수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치원비, 국공립 고등학교 학비, 입시학원 등 7개 항목에서 한국 교육비가 일본을 앞섰고, 대학생 과외 1개 항목은 두 나라가 비슷했다.
반면 일본이 비싼 것은 체육·미술학원, 사립고 등록금, 성인 영어학원비 등 7개 항목이었다. 한국의 소득은 일본의 54% 수준이다.
◆공립 유치원비, 도쿄의 3~6배
서울에 사는 정혜전 기자는 내년 세 살이 되는 아들을 놀이학원·어린이집 등에 보내기 위해 미리 시세 조사를 해봤다. 3~5세 놀이학교로 알려진 ‘위즈아일랜드 청담원’의 연간 비용을 따져보니 1436만원. 강남의 유명 사립 유치원인 ‘성요셉 유치원’(사립)도 452만원이었다.
반면 도쿄 세타가야구 ‘오쿠사와 유치원’(사립)은 연간 49만7000엔(391만원)으로 우리보다 쌌다.
구립(區立) 유치원은 그래도 우리가 싸지 않을까. 서울 잠원동 구립 어린이집 보육료는 월 18만(5세)~31만7000원(3세)으로, 월 6000엔(약 5만원)을 내는 도쿄 시부야 구립 유치원보다 3~6배 이상 비쌌다.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 보낸다는 영어 유치원. 전국 40여개 프랜차이즈로 운영한다는 방배동 ‘LCI키즈’에 물어봤다. 입원비·교재비·수업료 등을 모두 합해 연간 1089만원의 교육비가 들었다. 반면 도쿄의 ‘gip영어유치원’은 첫 달 내는 입회비가 7만엔(55만원)으로 한국보다 훨씬 비싸지만, 연간 비용을 따져보니 44만2000엔(348만원)으로 서울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한두 개씩 다니는 예능학원은 학원 종류별로 차이가 났다. 도쿄 니시닛포리 피아노학원비는 서울 잠원동에 있는 ‘브람스피아노 아카데미’ 수업료의 절반 값이었다. 반면 미술·체육학원은 일본이 비쌌다. 서울 도곡동 영렘브란트 미술학원은 월 6시간 수업에 연간 146만원이지만, 도쿄 미나미아오야마의 미술학원은 월 3시간에 17만4000엔(137만원)이다.
국공립 학교의 경우 서울고등학교의 연간 등록금(수업료·육성회비)이 177만2400원으로 ‘일본의 경기고’로 불리는 도립(都立) 히비야 고등학교(16만2600엔·128만원)보다 50만원 가량 비쌌다. 대학 입시 사교육비도 일본을 앞질렀다. 선우정 도쿄 특파원이 신주쿠에 소재한 ‘가와이학원’의 고교생·재수생 학원비를 조사해봤더니, 고교생 단과반 학원비가 1과목당 1개월(6시간)에 1만6800엔(13만2233원)이었다. 사교육 1번가인 서울 대치동 학원비보다 다소 저렴했다. 재수생 학원비 역시 서울 대성학원보다 월 1만2000원 가량 쌌다.
◆사교육비 들지 않는 日 사립고
반면 사립고교나 대학 교육비용은 일본이 비쌌다. 도쿄의 유명 사립학교인 게이오고교 등록금은 78만1150엔(615만원)으로 서울 대원외고보다 27% 비쌌다. 입학금 역시 게이오고가 7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일본 부모들은 입시 관문을 뚫고 자녀를 유명 사립학교에 보낼 경우 별도의 사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과외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학교 내에서 강도 높은 수업을 받기 때문이다.
대기업 부장인 히로세 소이치(50)씨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2년 동안 1년에 100만엔씩 과외비를 들여 딸을 명문 사립중학교에 보냈다”며 “하지만 명문 사립학교에 보낸 뒤엔 사교육비를 안 쓰고 딸을 명문대학에 보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비싼 학비를 내는 대원외고 학생들조차 월 20만~50만원 안팎의 입시학원 2~3곳을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교육비는 등록금만 보면 서울대(483만원)가 도쿄대보다 61만원 비싸지만, 입학금까지 포함하면 도쿄대가 훨씬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