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위, 정치.사법.언론.노동.학원.간첩 분야 실태 보고.
과거 권의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이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사찰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종합 보고서가 나왔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4일 펴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보고서는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정치ㆍ사법ㆍ언론ㆍ노동ㆍ학원ㆍ간첩 분야에서 통제 및 사찰한 행적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고 있다.
각 분야별 통제.사찰 실태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 정치 = 박정희 정권 시절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에 대한 대대적인 정치 사찰이 이뤄졌는데 특히 그의 재임기간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내고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김종필에 대한 동향파악도 중정에 의해 이뤄졌다.
1968년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 의장에서 물러난 김종필의 동향은 중정의 주요 관심대상이었다.
특히 삼선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개헌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김종필 계열의 의원들과 이른바 항명파동으로 공화당에서 제명된 의원들이 중요 관리대상이었다.
진실위는 김종필계 동향과 관련된 ▲전 공화당의장 김종필 동향첩보 통보 ▲김종필 동향 첩보 입수 ▲국회의원 김용태 동향첩보 통보 ▲김용태에 대한 첩보 ▲개헌논의를 위시한 정계동향 등의 문서를 확인했다.
`전공화당 의장 김종필 동향첩보 통보' 문건에는 김종필이 박종태, 김용태와 만나 개헌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앞으로 만약 개헌이 본격 추진될 경우 자신은 표면에 나서 범국민적인 개헌반대 투쟁을 벌일 결심을 밝혔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정보기관은 이 같은 정치인 사찰을 비롯해 선거개입, 정당 및 국회활동 개입, 정치자금 통제 등의 방법으로 정치분야에 관여했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진실위는 "과거 정보기관들은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민주화 초기에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 종속돼 부당하고 불법적인 정치 개입을 지속해 왔으며 이는 정치발전 저해를 가져왔다"면서 "국정원은 국내정보 수집업무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 방지를 위해 그 범위를 구체화하고 필요하다면 관련법을 개정해 논란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권고했다.
◇ 사법 = 정보기관은 각종 시국사건 때 담당재판부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원하는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안기부가 1982년 발표한 `송씨일가 사건'이 대표적이다.
안기부는 `북한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송창섭씨가 남파, 친인척을 간첩으로 만들어 25년 간 암약했다'는 요지의 이 사건에 대해 검찰 기소단계부터 대법원 확정판결에 이르기까지 개입.조정했다.
안기부는 불법 장기구금과 고문 등을 통해 얻은 진술을 검찰에서도 그대로 진술할 것을 피의자들에게 강요하고 검찰과 법원에 유죄판결을 내리도록 압박했다는 게 진실위의 판단이다.
별다른 물증이 없는데다 검찰 조서의 임의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법원이 이 사건을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안기부는 검사와 함께 판사를 찾아다니며 설득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검찰은 조사 및 기소단계에서부터 안기부에 협력하고 동조했으며 법원 역시 재재항소심이 끝나기도 전에 재재상고심 주심 판사를 확정하는 등 유죄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협력했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정보기관은 이 밖에 국가배상법 위헌 판결 등 정권의 의도와 다른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재임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 83년 대법원 비서실장 뇌물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게 해 두 명의 부장판사 및 검사장과 지청장의 비위사실을 적발, 사임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진실위는 "사법부는 엄격한 독립성이 요구되고 검사.법관들의 자부심도 강해 외압을 부인하거나 면담을 거절해 입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이번 조사가 사법부 독립의 초석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언론 = 정보기관에 의한 언론탄압도 정부 문건 등을 통해 확인됐다.
정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을 게재한 매체에 압력을 가한 각종 필화(筆禍) 사건들도 많았는데 김지하의 시 `오적'으로 촉발된 1970년 사상계 필화사건이 대표적이다.
사상계 필화사건은 3선개헌 등으로 혼란이 가중되던 70년 김지하는 `사상계' 5월호에 정부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오적'을 게재한데 이어 신민당이 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1일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중앙정보부가 반공법 위반혐의로 김지하 등을 구속하고 사상계의 폐간을 추진한 사건이다.
진실위는 중정이 처음에는 김지하에 경고하는 수준에서 처리하려 했지만 이 시가 `민주전선'에 전재되자 이를 정치문제로 인식해 대응했으며 박정희 정권은 사건 대응과정에서 민주전선 압수 및 신민당 관계자를 구속하는 등 물리적 압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는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 정보기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음이 국정원 보유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그동안에는 증언 등을 통해서만 알려졌었다.
광고 통제를 통한 언론탄압도 이뤄졌다.
중정은 1973년 주요 광고주 대표를 불러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음이 국정원 자료를 통해 확인됐고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실천운동으로 촉발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도 중정이 주도했음이 유추된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권위주의 정보기관들은 이 밖에도 언론자유 실천 탄압, 노조결성 탄압, 보도지침, 언론인 연행, 언론인 사찰 등의 방법으로 언론탄압을 실행했다.
진실위는 "과거 정보기관의 언론탄압에 대해 공신력있는 국가기관 자료를 이용해 진실규명을 시도한 최초의 작업이었다"고 평가했다.
◇ 노동 = 중정은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에 의한 노동계 재편과정에서 한국노총 상층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1년 대한노총을 해산하고 한국노총을 조직한 장본인이 중정이었다. 중정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구성원들로 한국노총 간부들을 육성하고 관리했으며 노총선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진실위는 판단했다.
중정은 아울러 김말룡 등 비판 성향의 인물이 한국노총 간부가 되는 것을 강압과 회유를 통해 막는 등 각종 물리력을 동원해 공작을 벌인 것으로 진실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또한 정부 노동정책에 반하는 민주노조의 활동과 이를 지원하는 도시산업선교회 등 종교계 활동을 적극 차단하기 위해 수사계획을 마련해 실행했고 이 과정에서 안보.반공 이데올로기를 자극해 문제해결에 활용하기도 했다.
`용공지하서클을 결성,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며 크리스천아카데미 사회교육원 간사 등을 연행한 1979년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도 중정이 유신체제를 위협하는 반체제 활동으로 간주, 사건의 실체가 과장됐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진실위는 "권위주의 정부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 불순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통제를 일삼았다"고 밝혔다.
◇ 학원 = 중정과 안기부는 학생운동에 대한 사찰 및 통제의 일환으로 대학정책의 입안 및 학사행정 업무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진실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진실위는 ▲학원사태 관련 제적생에 대한 복교나 타 대학 입학 불허조치 ▲소요 극렬학과 정원감축 ▲비판성향 교수 승진불허 등의 조치가 정보기관에서 주도적으로 제안돼 실시된 것으로 파악했다.
진실위는 "문교부 소관사항이자 대학 본연의 학사행정 업무에까지 개입한 것은 과도한 통제활동"이라고 지적했다.
중정과 안기부는 또 중요한 학원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해 교련교육, 교수 재임용제, 졸업정원제 등 범 정부적 대책을 강구하는데 주도적이었으며 대학별 담당관을 지정.운영하는 등 광범위한 정보망을 통해 학원을 통제해 왔다고 진실위측은 밝혔다.
진실위는 "그동안 의혹만 제기돼 오던 정보기관의 학원통제 실태를 국정원 문서를 통해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자료 부족으로 인해 심층적으로 조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 간첩 = 치열한 남북 대치시대였던 권의주의 정권시절 간첩사건을 이용한 공안정국 조성도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과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진실위가 우선 조사한 7대사건에 동백림사건, 인혁당재건위 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등 3건이나 포함된 것만 봐도 중정.안기부가 간첩사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 지를 짐작케 한다.
이 외에도 월북한 친인척과 접촉, 간첩교육을 받고 국가기밀을 제공했다며 간첩으로 몬 81년 `박동운 사건'이나 납북귀환 어부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82년 `정영 사건', 조총련을 찬양하고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했다는 82년 `차풍길 사건' 등 적잖은 간첩사건들이 실체보다 확대.과장됐다는 게 진실위의 판단이다.
진실위는 "과거 간첩수사가 영장없는 불법강제 연행, 접견권을 차단한 밀실수사, 가혹행위를 통한 자백위주의 수사였다"고 지적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역사다큐]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 (0) | 2007.12.29 |
---|---|
역사 사기꾼(매식자)들을 알아야 합니다. (0) | 2007.12.25 |
진실위가 파헤친 7대 사건 개요와 조사결과 (0) | 2007.10.24 |
고조선 추정 청쯔산·싼줘뎬 유적. (0) | 2007.10.12 |
조선인은 순록치기, 고(구)려는 순록 (0) | 2007.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