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크랩] 독도문제의 뿌리는 박정희와 김종필

YOROKOBI 2008. 1. 22. 08:14
독도문제의 뿌리는 박정희 김종필

[논단] 일본과 미국에 먼저 폭파제안, 한미일 3각공조 붕괴효과는 긍정적  

  
  아마 3월 한 달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란거리는 독도 문제였을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쪽 주장에 대해 거의 온 국민이 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던 듯하다.
 
  일본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시로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고, 목숨까지 내던지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 (NSC)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외교 방침을 발표하고 대통령은 ′외교 전쟁′이란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정부 차원의 ′조용한 외교′조차 떠들썩한 외교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염치없는 억지와 반성없는 망언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본이 저런 짓거리를 하는 데는 지난날 한국의 친일파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부추긴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만 밝힌다.
 

-독도 폭파한국이 일본에 제안, 미국도 고려-
 
  지난 1월 17일 1960년대 한일 협상과 관련된 외교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본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2년 9월 일본의 협상 대표인 외무성의 한 국장이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 대표인 외무부의 한 참사관은 두 달 뒤인 1962년 11월 "(한일간에)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 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정보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다"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6년 공개된 미국의 외교 문서에 따르면 5.16 쿠데타 이후 ′제 2인자′로 행세하며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의 오히라 외상에게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 김종필이 1962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한일 협정의 기초를 마련했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 바로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문서′로 분류된 1962년 10월 29일의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을 보면, 두 사람이 한일 협정에 관해 얘기하는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던 독도에 대해 러스크가 그 섬이 무슨 용도가 있느냐고 묻자, 김종필은 "갈매기가 들르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 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 

나아가 오히라는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 사회당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며 김종필의 제안에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Northeast Asia, 610-612쪽). 독도 폭파를 한국측이 제안하고 일본측이 거절했던 셈인데,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라디오 평론가는 한 아이를 둘러싼 두 어머니의 다툼을 해결했던 ′솔로몬의 지혜′를 소개하면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주장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한 아이를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다투는 과정에서,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지라는 솔로몬의 말에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포기한 반면 가짜 어머니는 그 제안에 찬성함으로써 진짜 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듯이, 일본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폭파를 제안했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1960년대 초 한국 최고 통치자의 대리인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독도 폭파를 제안한 데 대해 일본이나 미국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게다가 1965년엔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한일 협정을 위해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다. 바로 이러한 친일파 위정자들의 망언 때문에, 설사 한일 협상이 잘 풀리지 않은데 따른 푸념이었을지라도,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거나 진짜 주인일지라도 영유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게 되지 않았겠는가.

  참고로 1962년 김종필과 대화를 나누며 독도 폭파를 고려하고, 1965년 박정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독도에 등대를 세워 두 나라가 함께 이용하기를 제안했던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1945년 8월 육군 대령으로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던 사람이었다. 한반도의 국토 분단을 이끌었던 그가 분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나중엔 독도를 폭파하자거나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했던 것은 친일파 정치인들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를 비난하고 그러한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미국의 자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 미국에 굽실거렸던 한국의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어떠한 언행을 저질러왔는지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해방 직후 친일과 부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업보이지만, 60년이 지난 이제라도 과거사를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이재봉  bpm@chol.com
* 필자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 http://pbpm.hihome.com/ )의 편집인입니다.    
 
*본문은 폴리티즌과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진보와 정론의 인터넷마당 대자보′(www.jabo.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출처 : 독도문제의 뿌리는 박정희와 김종필
글쓴이 : 체로키나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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