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채호 , 민족주의 사학에 진보적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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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학술계간지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논설 '독사신론(讀史新論)'에 대해 민족주의적 사학 형성에 "진보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역사과학' 최근호(2007년 12월호)는 신채호 선생이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독사신론'을 소개하는 글을 싣고 "독사신론에 반영된 신채호의 역사관이 우리나라 민족주의 사학 형성과 편사 사학에 미친 진보적 역할은 근대시기 역사학이 종전의 유교적 명분론에 기초한 중세 편사 사학의 틀에서 벗어나 근대적 학문에로의 첫 걸음을 떼게 하는 데 적지않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학술지는 "종전에 우리 학계에서는 우리 인민들의 반일애국 정신을 계발시키기 위한 애국문화 운동가들의 역사저술 활동으로서의 신채호의 역사저술들을 일부 간단하게 취급했을 뿐, 그의 역사관에 대해, 그리고 민족주의 사학 형성에서 차지하는 지위 등이 깊이있게 연구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학술지는 독사신론에 반영된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의 특징으로 "조선민족을 조선역사 시술의 기둥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 "단군을 종전의 신화적 인물로서가 아니라 근대역사 인식에 따른 실재한 인물로 보려한 것",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왜나라(일본)에 미친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의 선진적 영향을 새롭게 밝힌 것" 등을 꼽았다.
학술지는 특히 신채호 선생이 독사신론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론에 대해서도 회의적 입장을 표시"했으며, "발해사를 되살려 우리 민족사의 응당한 위치에서 논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역사서술의 대상을 그 어떤 개인이나 왕이 아니라 조선 민족으로 설정하고 편사학을 민족의 자강을 실현하기 위한 학문으로 하기 위한 시도"를 벌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독사신론에 반영된 신채호의 역사관은 일정한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고 역사과학은 지적하고, 그 예로 독사신론이 "삼국통일론을 비롯해 종래의 사대주의 사관에 기초한 온갖 허황한 설들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 태도"를 보였다고 들었다.
또 "사론적 형식의 글인 것으로 인해 많은 경우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없이 단언에 그치고 추상적인 결론에 머무른 것"도 독사신론이 가진 한계라고 역사과학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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