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민족 문화 유산 - 잉카 문명 - 마추피츄

YOROKOBI 2008. 2. 26. 11:51

한민족 문화 유산 - 잉카 문명 - 마추피츄

 

마추피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 교수인

"하이램 빙엄" 에 의해 발견 되었다. 이 서양 학자에 의해 발견 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힌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마추피추를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고 불리는데 공중도시라 불리는 이유는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마추피추'는총면적이 5㎢으로 도시 절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 주위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완전한

요새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마추피추'(2280m)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3360m)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안데스 산맥의 협곡을 따라서 3시간 거리에 있다.


또한 '마추피추'는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산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 보이지만 계곡에서는 어디에서 올려다 보아도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마추피추'에는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산정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곳에 태양의 신전,


산비탈의 계단식의 밭, 지붕없는 집,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마추피추' 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준 높은 건축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한 변의 길이가 몇 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이세계 불가사의중에 하나가 된 이유이다.
 
 
1911년 "빙엄"이 왕궁과 신전 따위를

복원한 뒤로 1956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발굴과 복원이

1974년에 끝나 '마추피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유적 관광지가 되었다.
 
 
잉카인들은 글자·쇠·화약·바퀴를 몰랐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강한 군대를 유지했다.

제국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을 관통하는

두 갈래 길(잉카 로드)을 2만㎞나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통제했다.

황제의 명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두루 미처

새 한 마리도 황제의 명령 없이는 날지 않는다고 했다.

 
 
잉카인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수십 ㎞ 떨어진 산 위로 날라다가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면돗날도 들이밀 틈 없이 돌을 잘 쌓았다.



 












 (그들이 사용한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 무게 361톤이다).
 
평야가 적었지만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함으로써
 
그들은 넉넉히 먹고 살았고,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는데
 
그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문명과 패망과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의
 
해발 228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옛 도시 '마추피추'이다.
 
 
"우리는 비탈에 납작 붙어서 아래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땅에 손가락을 찔러꽂은 뒤
 
미끄러운 풀을 밀어 헤치면서 몸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아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에서는 우리가 밧줄을 잡고 건너온
우루밤바강의 성난 급류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 안내인이 이 근처에는 사냥감을 뒤에서 공격하는
 
페루드란스 독사가 많다고 신음하듯이 일러 주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서른다섯살 난 "하이램 빙엄"이 마추피추를 발견한
 
1911년 7월24일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탐험대는 "빙엄'과 그의 대학 동료 두 사람,
 
통역과 길안내를 맡은 페루군 하사관 1명, 거기에 노새 몇 마리.
 
그들은 잉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빌카밤바를 찾으려고 들끓는 모기와
 
지독한 더위와 위험한 급류를 무릅쓰고 우루밤바강을 따라 폐허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있었다. 어느날 일행이 빌카밤바 계곡에서 야영하고 있을 때
 
한 인디언이 나타나 그들의 바로 앞에 깎아지른 듯이
 
솟은 바위산 등성이에 거대한 폐허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고 한다.
 






























촘촘하게 돌을 쌓은 전형적인 'ㄷ'자 고구려 성
 
우리 민족은 본래 돌 다루는 솜씨가 뛰어 났다. 
100층이 넘는 경남 경남 남해군 다랭이 마을의 계단식 논
 
촘촘하게 쌓은 한국의 돌담
 인디언들의 피리-한국의 피리와 거의 같다
 
 인디언들의 대금-한국의 대금과 거의 같다
 
한국의 대금
돌을 촘촘하게 쌓은 잉카문명의 마추피추의 계단식 논이나 성과 주거지는
전형적인 우리 한국민족의 문화이며, 잉카문명을 건설한 사람들 또한
고대에 베링해협을 건넌 한국인들인 북아메리카 인디안들이니
 
당연히 우리 한민족의 유적지라 할 수 있으며, 고인돌을 만든 아메리카의
인디언들과 남미의 잉카.마야 문명인들이 바로 고대 우리 한국인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몽고반점 등 유전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디언들이 남긴 절구.방아.짚신.망태.대금.피리 등
전통적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사용하던 유물들이 그것을 증명하며,
아메리카에 착륙한 백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아픈 역사를
피리와 대금 소리를 통하여 그 '한'을 달래니 또한 우리라 할 것이다.
 

▲   아메리카에 도착한 백인들이 인디언들과 아이들을 학살할 때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는 아이들은 다 죽였다



한국 민족주의 & 민족과 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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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아즈텍·잉카문명 건설"
손성태"한민족이 기원전 베링해를 건너 아즈텍.잉카문명 건설했다"
 
문화부
 
▲ 아즈텍 문명
우리 민족이 기원전 베링해를 건너 중남미의 아즈텍문명과 잉카문명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배재대 손성태(孫成泰·43)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는 12월 21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린 국어학회 겨울학술대회에서 ‘중남미 고대어에 나타난 우리말 흔적―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은 우리 조상의 것이었다’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손 교수는 그 증거로 문장구조, 조사, 개별단어 등 여러 측면에서 나와틀(Nahuatl)어와 케추아(Quechua)어에 우리말의 흔적이 매우 많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나와틀어는 아즈텍문명을 건설한 부족의 언어로 지금도 등 중미지역에서 약 200만명이 사용하고 있다. 케추아어는 잉카제국을 건설한 부족의 언어로 남미에서 약 700만명이 사용 중이라고 손 교수는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문장구조의 경우 ‘주어+목적어+동사’로 어순이 일치하며 주어의 생략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이, 의, 을/를, 에서, 와/과, 로, 로부터, 끼리’ 등의 조사를 사용하며 그 종류와 쓰임새도 우리말과 일치하고 있다. 우리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여럿 있다. ‘나와틀’이라는 말 자체가 나와(나)+틀(복수형어미 ‘들’) 즉, ‘우리’가 지금도 남아있는 예라는 것이다. 아즈텍(Aztec) 역시 스페인어 발음으로는 ‘아스떽’이며, 이는 곧 ‘아사달’이라고 했다. 날(nal), 오다(wala), 가다(ga), 여기(ye), 누구나(noo’yuna), 어제(izi’i) 등도 우리말과 일치한다.

 
▲  잉카문명의 보고 페루의 마추픽추

손 교수는 특히 지금까지 그 뜻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아리랑에서 ‘아라리가’의 뜻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alariga’(아라리가)란 말이 나와틀어에서는 ‘이렇게해서(영어의 thus)’의 뜻이라는 것. 그는 “따라서 ‘아라리가 났네’는 ‘그렇게해서 이겼네’의 뜻이며, 아리랑은 친선경기나 전쟁에서 이겼을 때 부르는 승리가 또는 승전가”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이처럼 공통점이 많기란 불가능하다”며 “세계 문화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큰 발견”이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인류가 베링해협을 건너 미주 대륙으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며 “언어적 관점에서 그 증거를 찾아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 5월 이를 의 세계언어인류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며 앞으로 연구팀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연구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