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도직” 역사와 영성 John L. Vessels, SJ 1. 기도의 사도직 기원 기도의 사도직은 선교사를 꿈꾸는 예수회 신학생들이 공부하였던 프랑스의 한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는 선교의 시기였으며, 사실상 오늘날의 교회는 그때의 열매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는 일본과 아시아의 일부 나라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문을 굳게 닫았던 수세기를 지나 막 문호를 개방하려던 때이었으며, 아프리카는 백 년 전까지 복음이 전해진 적이 없었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전역의 젊은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선교활동과 사도활동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다. 선교라는 단어가 멀리 다른 나라, 다른 땅, 다른 사람, 다른 문화로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면, 사도활동은 모든 활동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보다 넓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선교에 대한 열망은 당시 많은 젊은이들을 자극하였다. 심지어 평신도들도 그들이 선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선교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것은 평신도들이 선교의 사명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 뚤루즈 관구(Toulouse Province) 예수회는 남부 인디아에서 막 새로운 선교를 시작하고 있었던 때였다. 예수회 신학생들은 발스(Vals)의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보다 훌륭한 선교사가 되기를 열망하며 인도로 간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선교를 보다 잘 준비하기 위해 가능한 인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도서관에서 인도의 문화, 종교, 언어, 지리, 역사 등 할 수 있는 한 모든 자료를 찾는데 열중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인도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 본연의 임무인 철학과 신학에 대한 공부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교수들과 강사들을 무척 걱정스럽게 하였다. 그들의 영적 지도신부였던 고트를레(Gautrelet) 신부는 1844년 성 프란시스 하비에르 기념일 그들에게 철학과 신학 공부에 열중하라고 훈계하였다. 그의 훈계는 무척 퉁명스러웠다. “여러분의 사명은 인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오늘 오후에 가야 할 교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명은 철학과 신학 공부이며, 자신이 선교지로 보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되는데 있어 가장 잘못된 준비는 하느님의 뜻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선교사가 되십시오. 이 신학교에서 선교사가 되십시오. ‘오늘!’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고트를레 신부는 계속 말하였다. “오늘 보다 분명히 여러분이 선교사가 되기 위해,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진정한 선교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여러분들에게 실질적인 제안을 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느님께 여러분의 그날 하루를 봉헌하십시오. 여러분이 드리고 있는 아침기도에 기도 하나를 더 추가하여, 여러분의 첫 번째 기도를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하느님, 오늘 하루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제게 주셨으니 당신께 돌려드립니다. 당신은 제게 저의 존재 모든 것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제게 제 마음과 몸, 시간, 힘, 건강, 친구, 가족, 신앙 등 모든 것을 주셨으니, 이 모두를 당신께 돌려드립니다.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제게 주셨던 이 모든 것을 제게로부터 나온 사랑으로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 모두를 당신 뜻대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여기 그것이 있습니다, 주님.’ 여러분들의 학업과 작업 그리고 휴식, 이 모든 활동 안에서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분의 평화와 사랑 그리고 정의와 진리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젊은 예수회 신학생들은 이것을 아침봉헌(morning offering)으로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이 기도를 통해 그들은 하루 중 그들이 행한 모든 사소한 일들조차 그들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함에 초점을 두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이 기도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 어느 정도 그들 생활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자, 그들은 아침봉헌에 의해 그들의 신앙생활이 보다 풍부해지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성체성사가 보다 풍요로워지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주님, 오늘 하루를 당신께 봉헌하며, 당신이 오늘 제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각자들의 마음속에 살고 계시고, 각자의 마음이 예수께서 축성하신 성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즉, 그들 스스로 매일 아침 예수께서 성체성사와 해골산에서의 희생을 끊임없이 기념하는 성전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묵상을 마치고 경당에 갔을 때 그들은 이미 아침봉헌으로 시작된 기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경당에서의 성체성사는 이제 그들 각자가 아닌 전체 공동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사는 개인 기도에서 공동체 기도로 나아가 전체 교회의 기도와 결합하는 것이었다. 희생과 봉헌으로 시작된 그들의 성체성사적인 태도는 성체성사의 기념과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지체들이 이루는 친교에서 정점과 충만함에 이르렀다. 그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여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들로 하여금 그 날 하루 행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었고, 그것을 행함으로써 그날 하루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2. 성체성사적인 삶 이러한 신학생들의 행동은 바로 성체성사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경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미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경당을 떠났을 때 미사는 그들의 매일의 일상 활동 안에서 계속되었다. 신학생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기 위해 혹은 단지 그리스도의 기도를 기념하기 위해 경당에 갔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성체성사를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경당을 나서 성체성사를 ‘행하기’ 위해, 예수께서 그들 안에서 함께 행하셨던 것들을 기념하고자 경당에 왔던 것이다. 성체성사의 삶은 기본적으로 성체성사를 받아들이거나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아침 봉헌기도를 매일 하루가 시작되는 첫 순간에 드렸다. 그들에게 아침 봉헌은 머리의 기도가 아니라 마음의 기도였다. 따라서 그것은 그들에게 무엇보다 자발적인 기도였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지향을 가지고 오늘의 첫 행위인 이 신심행위로 오늘 하루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오늘 하루 모든 것이 신앙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또 신앙의 표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무 바빠 하루 종일 하느님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날들이 있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곳에 계실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그 분과 함께 그 분을 위해 행하고 있었기에 그 분은 언제나 그들의 행동 안에 계셨던 것이다. 그들은 사랑에서 비롯된 활동을 하였는데, 활동을 통해 타인들에게 생명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그 분의 삶이다. 이것은 기도의 사도적 차원이 되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비록 짧은 기도를 드리지만 그것은 하루 전체를 기도가 되게 하였고, 신앙의 실천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하루의 시작에서 그들이 했던 그러한 기도는 매우 의지적인 행위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들의 하루를 시작하며 드렸던 첫 행위, 즉 그 기도와 조화를 이루는 한 그들이 하루 중 행한 모든 것들은 기도로 승화되었던 것이다.
3. 저녁 성찰기도
이러한 아침 봉헌기도는 자연적으로 저녁 성찰기도를 있게 했다. 그들은 하루를 마치면서 그 날 하루를 성찰하고, 그 날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서 하느님께로 옮김으로 해서 그들의 기도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들이 저녁에 그들 자신에게 하는 질문은 “나는 오늘 무슨 잘못을 했는가?”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드렸던 선물로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였다. 하느님께서 내게 오늘 하루를 주셨고, 나는 그것을 되돌려드리는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은 모두 그분의 통제 아래에 있는 온전히 그분의 것이다. 오늘 하루 그분은 내게 주신 그 선물로 무엇을 하셨는가? 그 분은 내 하루의 주인이시다. 나는 그것을 하느님께 드린다. 나는 그 분이 오늘 하루를 온전히 소유하신 분임을 고백한다. 나의 응답과 결과에 관계없이 나는 분명 그분의 사랑과 평화, 진리와 정의의 도구로서 하루를 살았다. 이제 그분이 나와 함께 하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자. 하느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나는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이 선함을 안다. 나는 그것의 신성함을 알며,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기에 그 분께서 오늘을 거룩하게 만드셨음 또한 안다. 오늘 하루 어디에서 나는 그 신성함을 보았는가? 하느님께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하루 생활 중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께도 중요한 것이었을까? 결국 저녁 성찰기도 역시 그들의 개인적인 기도였던 아침 봉헌기도가 성체성사에 의해 성사적이고 성스러운 차원으로 승화되었던 것처럼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것들을 지속적으로 더욱 민감하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들은 일상 중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식별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하루를 통해 무엇을 행하셨는지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또 성령께서 하루 중 있었던 일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계셨는지, 그것들의 가치와 의미 등 성령의 활동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것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4. 화해성사
신학생들은 이러한 흐름을 따랐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들의 생활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들이 하느님께 속하고 또 그들이 하느님께 속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함으로 해서, 그들은 하느님의 활동으로부터 기쁨과 가치를 발견하였다. 이제 저녁 성찰기도는 화해성사의 수준으로 고양되었다. 그들은 어제의 죄 때문에 화해성사에 간 것이 아니라, 내일의 도전을 위해 그리고 내일의 죄를 위해 갔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 주 혹은 한 달 안에 또 다음 화해성사의 시기가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자신들의 구체적인 순간들을 성사를 통해 성사적 은총 즉 거룩한 도움을 받고자 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이기심, 욕정, 두려움 등 그들이 발견한 모든 것들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은총들을 주심을 알게 되었다. 매일 저녁 그들이 저녁 성찰기도를 하였을 때 무엇을 잘못했나 보다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았다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보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잘못을 애써 찾을 필요도 없고 그것에 대해 나쁜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것을 말하였고, 오늘 하느님께서 내가 하기를 바라셨던 것을 내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주님, 제가 내일은 저의 게으름을 없이하고 보다 충실히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심각한 인격적 결함이나 인간적 나약함을 온전히 알고계시기에, 그들의 구체적인 만남과 구체적인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실질적인 은총들을 주실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그들이 화해성사를 받을 때의 태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대략 네 가지 실천에 초점을 두었는데, 두 가지는 아침 봉헌기도와 저녁 성찰기도와 같은 기도의 실천이었고, 나머지 두 가지는 성체성사와 화해성사와 같은 성사의 실천이었다. 이러한 네 가지 실천은 자신들이 성령 안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되었다. 그들의 선교는 오늘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선교사적 성장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활과 교실, 강당, 운동장에서뿐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 분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열망이었다.
5. 기도의 사도
신학생들은 모두 신학교 주변 마을에서 교리를 가르쳤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의 미션과 기도의 사도직 정신을 전하는데 관여하고 있었다. 그들이 기도의 사도들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들이 신학교를 떠나 마을로 들어가 그 곳에 있는 사람들-농부들, 노인들, 젊은이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도의 사도직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기도의 사도직은 결코 역사적으로 태동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당시 그곳은 신교도인 위그노 영토였기 때문에 시골지방인 남부 프랑스의 가톨릭신자들 사이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던 신학생들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소중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삶을 주님께 봉헌하는데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나이 들거나, 너무 병들고 아프기 때문에 못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학교 밖으로 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소중한 자신들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들의 행동은 아직 학생임에도 선교 소명의 일환이 되었다. 사람들은 매일 하루 자기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며 시작하였고, 단순하고 짧지만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기도하고 실천하면서, 그날 하루 그들 자신의 선익과 그것을 통한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느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뒤돌아보고 기억하며 되새기면서 감사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배웠다. 이처럼 기도의 선교사가 된 신학생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다른 이들-아이들, 노인들, 병자들, 죄수들-에게 전하며 자신들의 기도생활에서 사도적 차원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신학생들 각자는 서로 다른 사회계층, 죄수들, 병자들, 노인들, 젊은이들, 아이들, 청년들, 사업가들 그리고 동료 수도자들을 찾아가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봉헌과 성찰, 성체성사와 화해성사라는 네 가지 실천사항을 따랐다. 신학생들은 남부 프랑스의 순박한 농부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마을사람들, 이러한 작은 시골 공동체들을 찾으면서, 그들이 선교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에 신학생들은 그들에게 멀리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웃과 공동체, 가족 안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스스로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직무를 가지고 있음을 일러주었다. 아침 봉헌기도는 그들이 그 날에 행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하늘나라 건설을 위한 도구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 안에서 선교사들이었고 매일 그들의 미션을 완수하고 있었다. 옷을 세탁하고, 자녀들을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밭에서 돌을 가려내고, 쟁기로 밭을 갈고, 곡식을 수확하는 것들이 모두 그들의 미션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사제이든, 왕이든, 평범한 시골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구든, 어디에서든 그들 삶의 매 순간은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하느님께 소중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기도의 사도직 정신을 실천하기 시작하였고, 하느님께 자신들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키워 나갔다. 그것은 자신들의 모습이나 행동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께서 자신들이 봉헌하는 희생과 활동을 기쁘게 받아주시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매일 하느님에 의해 보다 분명하고도 확실히 인도받고자 자신을 하느님께 기꺼이 개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6. 신앙과 기도의 자세
그들이 매일 아침 이러한 기도와 신앙의 자세로 하루를 시작함으로 해서, 마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세상에 계실 때 매일 아침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을 하느님과 일치시키시는 것처럼 매일 하루 시작과 함께 행하는 이러한 의지적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하루 중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의식적으로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단지 그날 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특히 일 속에서 만나게 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다함으로 해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각 사람들의 삶에서, 마음에서, 정신에서 그리고 영혼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성체성사이다. 물론 사람들은 신학생들이 어떻게 그들의 성체성사를 가치 있게 승화시켰는지 그리고 매주건, 매월이건, 아니면 단지 일 년에 두세 번이건 어떻게 성체성사를 자신들에게도 가치 있게 승화시킬 것인지를 배웠다.(우리는 비록 일 년에 서너 번만 혹은 한 달에 한 번만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체성사의 힘으로 살아가는지를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그들이 매일 성체성사를 살아가고 기념하였기 때문에 성체성사를 단지 일 년에 서너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행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일을 시작하며 아침봉헌을 통해 그들 자신의 봉헌물인 사제적 행위로 매일 성체성사를 기념하였던 것이다. 사제가 일 년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그들 마을에 오게 되면, 그들은 개인적으로, 각 가정에서 그리고 각 공동체에서 행했던 자신들의 ‘매일’ 봉헌물을 제단으로 가지고 와서 함께 기도했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봉헌물이 그 순간 그리스도의 봉헌과 함께 어우러져 공적으로 취해지고,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봉헌물을 드리는 순간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이러한 방법으로 기도하도록 가르치며 스스로 기도의 선교사들이 되었고, 이것은 점차 남부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신학생들이 말하고 가르쳤던 것들을 스스로 실천하며 배웠던 어려움과 그 가치들을 전하였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이를 알려주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기도의 사도직이라는 기도의 선교사가 되었다. 이리하여 기도의 사도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기도의 사도들은 기도를 통한 선교사들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선교사들이 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7. 전 세계로 전파된 기도의 사도직
기도의 사도직은 초기에 조직의 필요성에 따라 성쇠(盛衰)하였다. 창설자인 예수회의 Gautrelet 신부는 자신이 기도의 사도직을 초기 몇 년 동안 신학교에서 행했던 것 이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조직화에 관련된 일을 부탁하고자 Ramiere 신부를 초대하였다. Gautrelet 신부는 그리스도의 머리와 마음, 말씀과 빵(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즉, 머리가 몸의 지체들에게 명령을 내리듯, 아무리 그 지체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의 다른 것들에게 무의미하고 중요하지 않게 보일지라도, 머리는 말씀을 통해 그 날의 모든 일상 활동 중에 지체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리스도의 마음은 행해지는 모든 것들과 사랑을 주고받는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을 서로 나누고, 그런 사랑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머리와 마음, 말씀과 빵이라는 네 가지 요소는 Gautrelet 신부에 의해 기도의 사도직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Ramiere 신부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조금씩 전해지고 있는 이 기도 운동의 선교사적 특징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분에 대한 보다 깊은 헌신과 정성, 열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그분과의 관계를 더하였다. 그는 자신의 책뿐만 아니라 툴루즈(Toulouse)에서 출판하기 시작한 잡지 「성심의 메신저(Messenger of the Sacred Heart)」에서도 이것을 철저히 발전시켰다. 이 출판물은 전 세계 모든 메신저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성장하며, 다른 많은 언어로 출판되었다. 자신의 신앙을 밖으로 표현하는 이러한 헌신은 아침봉헌, 영성체, 저녁성찰, 그리고 화해성사를 포함한다. 이것은 모두 예수성심과 성모신심을 통하여 예수성심과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는 행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봉헌은 나아가 가족의 봉헌으로, 마을 공동체의 봉헌으로, 그리고 국가의 봉헌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하느님의 도구가 되도록 불림을 받았던 것이다. 기도의 사도직을 시작한 사람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보다 120년 전에 이미 하느님 나라 건설이라는 과업에서 기도의 선교사, 성체성사의 선교사, 기도의 사도적 차원을 가진 선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 선교사들은 세례를 통한 사제직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비록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사제로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삶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사제직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성심의 메신저」라는 잡지는 이를 위한 지속적인 독려와 양성 그리고 지침을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수회는 수세기에 걸쳐 이냐시오 영성에 따른 삶의 양식과 단순한 기도의 실천을 전해왔기에 기도의 사도직은 전 세계로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 봉헌정신을 일궜던 그러한 단순한 기도의 실천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수회가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처음부터 선교사 조직이었기에 가능하였다.
8. 영신수련
지금까지 영신수련은 여러 형태로 전 세계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과 일상 안으로 전해졌다. 이는 예수회가 선교를 통해 각 교구와 학교에 진출하고 특히 각종 연구센터와 영성센터 그리고 잡지를 통해 전 세계로 영신수련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잡지가 넘쳐나기 전에는 가톨릭교회의 출판사가 대개 예수회 소유였고, 많은 경우 영신수련을 전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냐시오는 특별히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하며 자신의 전 삶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에 이르는 봉헌이 되도록 자신의 사랑을 그분의 사랑으로 향하게 하는 태도를 갖는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또 변화시켜 가톨릭 리더십, 평신도 리더십, 정치적 리더십 등과 같은 모든 분야에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엘리트들을 양성하기위해 영신수련을 만들었다. 영신수련은 사람들을 주님께 봉사하는 삶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가짐으로 인도하려는 목적으로 일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교육하여 왔다. 기도 교육 성 이냐시오는 종교적 지침과 내적 평화를 찾는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영신수련의 일부 간단한 형식을 통해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확신하였다. 그는 이것을 18번 또는 19번에 의한 영신수련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같은 형식의 영신수련을 지도하는 사람이 꼭 예수회원일 필요는 없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영신수련의 간단한 몇 형식을 통해 열정적으로 회심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들도 똑같이 이 단순한 기도 형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개선시키고 지도해 나가리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었다. 역사에 따르면, 예수회 초기 성공적이었던 대중 사도직 중 하나는 파르마(Parma)에서였는데, 그곳에서 Laynez 신부와 Faber 신부는 마을 전체를 쇄신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으로 성공적으로 바꾸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설교가 아닌 단순한 기도 실천을 통한 그룹 영신수련의 형태로 그들의 사도직을 행했다. 이냐시오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이 고백소로 되돌아오고, 자신들의 삶을 정화시키며,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악들을 인식하고, 악을 행하던 자신들의 일상생활의 태도를 깨닫고, 회개하고, 성체성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이냐시오는 사람들이 정기적인 영성체와 화해성사를 하도록 지도받기 원했다. 영신수련 기도는 의지의 기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청하는 은총은 무엇인가? 나는 내게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이심을 안다. 내 삶을 쇄신하고, 그 분의 뜻에 따라 내 삶을 살아가고,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나는 안다.”
9. 영신수련과 기도의 사도직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첫 부분에 다음과 같은 원리와 기초가 있다. “사람이 창조된 것은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이며,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은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활용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사람들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장수함이건 단명함이건, 건강이건 질병이건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영신수련의 시작으로, 영신수련의 각 주간과 서로 다른 단계를 통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뜻대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봉헌하는 바로 그 순간 아름답게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받으소서, 주님. 저의 모든 자유와 저의 기억과 지성, 저의 모든 의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당신이 이것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주님, 이 모두를 돌려드립니다. 모두가 당신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족하옵니다.” 이냐시오는 이러한 일련의 단순한 기도들을 정리하여 영신수련을 창시하였다. 영신수련은 소수 엘리트와 지도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반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영성은 예수회 초기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비록 예수회가 1772년부터 1814년까지 억압을 받고 폐쇄되는 기간이 있었지만 이 영성은 계속해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따라서 발스(Vals)의 예수회 신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기도의 사도직이 사람들에게 영신수련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그리고 십자가를 이기고 부활하신 왕을 따르기 위해 드리는 이러한 아침봉헌 기도와 하느님 말씀에 마음을 다하는 헌신이 젊은 시절 교육받았던 이냐시오의 카리스마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이것은 가톨릭신앙이었고, 그들이 배웠던 바였으며, 예수회원들의 일을 대신했던 프란치스꼬 회원들, 도미니꼬 회원들 그리고 그들의 선교 영역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봉헌을 드리고 예수성심께 자신들의 가족을 봉헌하면서 기도의 사도직은 그들의 마음에 더욱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예수회가 세계적으로 다시 전해지면서 기도의 사도직 역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교황의 승인을 얻고자 로마로 가져가게 되었다. 예수회원들은 기도의 사도직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선교사적 전통에서 이 단순한 기도 형태와 기도 교육이 매우 효율적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Ramiere 신부를 따라 「성심의 메신저」라는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하여 이 기도는 각 단체와 공동체 그리고 본당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잡지는 이러한 기도 교육의 도구가 되어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기도의 사도직은 운동이 아니라 일종의 기도 교육이었으며,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기도의 사도직은 전 세계에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선교사적 노력인 것이다.
10. 교황님의 승인: ‘거룩함에 이르는 길’
두 번째 창설자라고 할 수 있는 Ramiere 신부가 교황님들의 축복을 받고자 기도의 사도직 프로그램을 로마에 보고할 때마다, 교황님들은 이를 기꺼이 승인하셨다. 교황께서는 “이것은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하늘나라의 건설을 위해 진실로 그리스도와 성부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봉헌을 살아가며, 그것을 성체성사로 가져와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것을 받아 당신 자신의 봉헌과 합하여 당신 봉헌의 일부가 되게끔 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기도의 사도직을 축복하셨다. 즉, 기도의 사도직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며, 온 세계에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전하는 길”인 것이다. 이러한 교황님들의 말씀은 기도의 사도직이 얼마나 힘 있고, 건실하며, 확고한 영적 프로그램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교구나 성당에서 채택된 어떤 형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주교와 사제도 기도의 사도직에 대한 정통성과 그 건실함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영성인지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교황님들께서 승인하였을 때 주어진 축복과 전대사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기도 지향 Ramiere 신부가 한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하늘나라 건설을 위한 선교사적 노력으로서 자신들의 생활을 봉헌하고 기도하는 전 세계의 수백만 사람들 모두에게 제안하기를, 그들이 매달 한 가지 지향을 가지고 함께 기도한다면, 이것은 단지 전 세계 수백만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청원에 따라 바로 이 수백만 사람들을 성령과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성자께서 당신의 과업을 행하시는데 훌륭한 은총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임을 역설하였다. 만일 도처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이 이 특별한 은총을 향해 열려 있다면, 매달 그들이 함께 기도드리는 청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은 바로 이 수백만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마음과 정신을 통해 그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