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 비윤리적인 상행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다단계판매가 심각한 경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단계판매는 윤리적인 동기와 비윤리적인 과정 및 목표가 절묘하게 결합된 왜곡된 상거래방식이다. 다단계판매는 자유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병폐를 극복하고자 하는 윤리적인 동기를 내세운다. 첫째, 시장에서는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복잡한 유통구조 때문에 엄청난 유통비용과 광고비용이 상품가격에 반영되어 소비자의 부담이 된다. 다단계판매는 생산자로부터 상품을 가져다가 생산원가에 가까운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둘째, 인격적 신뢰관계가 거의 없는 시장에서는 상품의 질을 확신할 수 없다. 다단계판매는 상거래를 인격적인 신뢰관계 안에 둠으로써 정직한 상거래관행의 회복을 시도한다.
그러나 다단계판매의 목표와 방식은 비윤리적이다. 다단계판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짧은 기간 안에 큰 돈을 버는 데 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가. ‘가’가 공장에서 질과 가격을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가져다가 ‘나’에게 생산원가에 가까운 가격에 공급하고, ‘나’가 지불한 상품구입비용 가운데 일부를 수고비로 받는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다음 과정부터다. ‘가’는 ‘나’로 하여금 동일상품을 ‘다’에게 판매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나’가 ‘다’에게 팔면 ‘다’가 지불한 비용 가운데 일부가 ‘나’에게 수고료로 돌아가며 동시에 ‘가’에게도 일부가 수고료로 돌아간다. 이같은 판매망이 다, 라, 마…로 뻗어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하여 피라미드형태로 판매망을 확대해 나가면 ‘가’는 처음 한번 상품을 소개한 것만으로도 앉아서 엄청난 액수의 수고비를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다단계판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처음에 상품을 소개하고 받는 수고료를 제외한 모든 소득이 다 불로소득이라는 데 있다. 혈연적 상속등과 같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불로소득은 얼굴에 땀을 흘린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도록 정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다(창3:17). 부정한 편법을 동원해야만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전망과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내재해 있는 배금주의의 욕구가 결탁하면서 많은 대학생들과 심지어 교인들까지도 다단계판매에 쉽게 빠져 들어가고 있다.
다단계판매는 일확천금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이용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격적 관계가 이윤추구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면 깊은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는 인격적 관계 그 자체가 파멸을 맞이한다. 통상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는 가족, 교회, 친구 관계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다단계판매가 들어가는 곳에 가족이 분열되고, 교회가 깨지며, 친구의 우정이 무너진다. 이때 다단계판매가 구상했던 피라미드적인 판매망은 순식간에 궤멸되고, 상품판매를 위하여 투자된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이때 다단계판매회사측은 잠깐 동안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곧 “벤츠를 굴리는” 장밋빛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반복하여 주입시킴으로써 “빼도 박도 못하게” 된 판매원들을 판매망에 얽어 놓으려고 시도한다.
오늘날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다단계판매의 허구적인 논리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함과 동시에 다단계판매가 부정직하고 비인간적인 경제관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을 숙지하고, 정직하고 인간적인 경제관계가 시장의 질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윤리적이고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다단계판매와 같은 병적인 상거래가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