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는 한국의 고대국가"...美 고고학자 넬슨교수

YOROKOBI 2008. 4. 4. 21:17

고구려는 한국의 고대국가"…美 고고학자 넬슨 교수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촉발된 고구려 논쟁에서 한국에 큰 힘을 실어줄 해외 저명학자의 연구 결과가 발표돼 국내외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제 고고학계에서 한국통으로 널리 알려진 새라 M 넬슨(Sarah M. Nelson·75·사진) 미국 덴버대 인류학과 교수는 7일 중국사학회(회장 전순동 충북대 교수) 주최로 경북대 우당교육관에서 열린 제8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출토문물을 통해 본 중국사'란 주제 발표를 통해 "고구려는 다수의 증거물에 따라 중국보다는 한국 후대 국가의 선조"라고 주장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타이완·미국 등 각국의 학자가 모두 모인 국제학회에서 이 같은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는 이번 처음이다.

넬슨 교수는 ▷고구려 언어가 한국어의 모체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치마·저고리·신발 등의 풍습이 한국적으로 보인다 ▷벽화에 무당이 등장한다 ▷왕의 모자가 한국식이다 ▷사신도가 한국풍이다 ▷고분 양식(積石塚)이 한국에만 있다 ▷고구려 유물이 중국보다는 신라나 백제 유물과 유사하다 ▷산성도 한국 양식이라는 점을 주장의 근거로 들었다.

세계고고학회 동아시아 대표를 맡고 있는 임효재(66)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개별 사안이 아닌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서 내린 결론이라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동아시아고고학회(SEAA) 회장을 지낸 넬슨 교수의 발표이기 때문에 국제학회에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는 중국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새라 M 넬슨 교수= 1970년 한국을 방문해 1년간 한국의 신석기 문화를 공부했고, 1973년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한강 유역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산리 유적을 세계고고학사전에 올렸고, 1996년엔 세계동아시아고고학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고고학을 독립 분과로 만들기도 했다(그 이전에는 한국고고학은 중국과 일본의 고고학에 속해 있었다).

'한국의 고고학' '중국 동북부의 고고학' '고고학 속의 성(性)―권력과 특권의 분석' 등 한국과 중국 고고학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같은 연구업적으로 1996년 최고 학술상인 '존 에번스 교수상'을 수상했다. 2000년 세계동아시아고고학회(SEAA) 회장에 선출돼 6년간 재임했다.

 


동북부-한반도, 고조선 영역 확인”




동북공정 맞선 고조선사연구회 첫 논문집 발간

고유 고조선 고인돌, 비파형동검 출토지역과 일치

청동기문명 주도… 지배층 상징 다뉴경 분포가 증명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한 신화() 학자는 지난해 말 ‘단군신화는 중국인들의 공동 조상인 황제()집단으로부터 기원한 곰토템 신화의 일부’라는 주장을 담은 책을 통해 단군신화를 자국의 신화에 편입시켰다. 한국 학계도 이에 맞서고 있으나 고조선사의 경우 건국 시기와 영토 등 대응 논리 개발에 기본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학계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2005년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만든 ‘고조선사 연구회’가 연구의 첫 결실로 논문집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학연문화사)를 펴냈다. 이 연구회를 이끄는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단편적으로 이해돼 왔던 문헌사료를 정밀하게 검토했고 이를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와 접목해 체계화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총론 성격의 ‘고조선의 발전과정과 강역의 변동’에서 “고조선의 형성은 동북아 청동기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고조선의 영역을 “서쪽으로는 대릉하 유역에서 연나라와 만나고 남쪽으로는 진나라와 이웃하며 동북쪽으로는 예맥, 부여, 숙신과 접했다”고 규정했다.

‘청동기를 통해 본 고조선과 주변 사회’를 쓴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청동기 문화의 분포를 통해 그 문화를 주도한 정치체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요하 유역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청동 유물 가운데 지배층을 상징하는 다뉴경((뉴,유))의 분포에 주목했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다뉴경이 출토된 무덤은 기원전 8세기 대릉하 유역 중류에서 처음 형성돼 △기원전 5, 6세기 요하 중류 지역 △기원전 3, 4세기 압록강, 대동강 유역 △기원전 2세기경 영산강 유역으로 확대됐다. 이 교수는 “문헌 기록에서 전하는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시기와 경로가 다뉴경 출토 무덤의 이동 경로와 맞아떨어진다”고 밝혔다.

하문식 세종대 교수는 ‘고조선 사람들이 잠든 고인돌과 동굴 무덤’에서 고인돌 분포 지역이 고조선 초기의 영토로 인식되는 공간과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또 고조선을 대표하는 표지() 유물인 비파형동검 분포권과도 거의 일치한다는 게 하 교수의 분석이다. 비파형동검은 중국의 중원 지역에선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하 교수는 “고인돌이 요동 쪽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은 공통 문화 성격을 가진 고유한 집단이 있었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실체를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문집 외에도 한국 고대사를 지키려는 학계의 움직임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우실하 항공대 교수가 이끄는 고조선 유적 답사단은 지난달 중순 요하 지역의 고대 유적지를 답사했으며 ‘요하 문명과 한반도 문명의 연계’를 부각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중국이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을 근거로 이 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을 중화 민족의 일원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단군이 황제의 후예가 된다.

국사편찬위원회도 1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북공정 전후 중국의 한국 고대사 인식’을 주제로 갖는 학술회의에서 한국 고대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 학계의 문제를 짚는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유물과 학문적 성과의 미흡 등을 이유로 고조선실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으나 단군신화 내용을 포함하는 고조선실을 조만간 설치하기 위해 추진 중이다.


 

중국 동북공정 ‘제 발등’ 찍다.
中 사료로 본 역사인식의 허구
중국의 동북공정은 2002년 2월부터 지난해 1월 말까지 5년간 진행됐다. 그 연구 결과가 흘러나올 때마다 국내 학계를 비롯, 신문·방송 등 언론에서는 한국 고대사에 대한 중국 측의 왜곡된 해석에 극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여전히 자신의 의도를 굽히지 않고 ‘요하문명론’을 비롯한 새로운 형태로 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정옥자) 주최로 지난 1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동북공정 전후 한국고대사 인식’ 학술회의는 그동안 중국이 진행한 동북공정의 연구 결과를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자리였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고려대 한국사학과)은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한국 고대사 인식’이란 주제 발표문을 통해 동북공정의 연구 성과를 전반적으로 점검, 비판했다. 최 관장은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체계화한 고구려사 인식을 고조선사와 부여·발해사 등에도 적용시키고 있다”며 한국 고대사에 대한 중국 측의 시각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구려’= 최 관장은 “(동북공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고구려”라며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단정, 공식적 견해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이에 대한 근거로 ▲고구려는 중국 영역 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정권이며 ▲몇 번의 천도(遷都)가 있었으나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고구려가 중국 역대 중앙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했으며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 않았고 ▲고구려 멸망 후에 그 주체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최 관장은 그러나 “고구려의 족원(族源)은 중국 사서(史書)에서도 예맥족(濊貊族)이라 기록돼 있다”며 “이는 부여, 백제와 같은 종족”이라고 말했다. 또 조공-책봉 관계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상 외교적 형식에 불과하며 종주국과 복속국의 관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최 관장은 이어 “중국은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을 중앙정권과 지방정권과의 내전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패해 멸망했으며 이는 분명히 동아시아의 국제전이었다”며 “또 고구려의 유민이 당나라로 끌려갔기도 했지만 신라나 돌궐로도 갔으며 그 대부분은 고구려 지역에 남아 발해를 건국하는 주체세력과 주민구성에 참여했기 때문에 발해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구려 - 고려의 계승 문제 = 중국 측은 고구려와 고려 및 조선족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高)씨와 고려의 왕(王)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는 것.

최 관장은 이에 대해 “고려는 고구려를 부흥한다는 계승의식 때문에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고 , 고구려의 도읍인 서경(평양)을 중요시했던 것”이라며 “만약 성씨가 같지 않아 계승성이 없다고 한다면 중국의 왕조는 한족과 북방민족이 번갈아가며 중원을 차지했으므로 계승성이 전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제천(祭天)의례에 주목해야 = 최 관장은 “위·촉·오의 역사를 다룬 ‘삼국지’ 동이전에 부여, 고구려, 예, 삼한의 경우 제천대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삼한의 계절제 등 제천의례는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의례로, 거국적으로 치러진 대규모 행사였다”고 밝혔다. 오직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제천의례가 치러졌다는 것은 이 나라들이 제후국이 아닌 독자적인 정체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제천의례를 지낸 고구려와 부여 및 동예, 마한은 중국과 다른 천하관을 가진 독립국가였다는 것이 중국인이 남긴 당시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이라고 최 관장은 강조했다.

광개토대왕비의 ‘천제지자(天帝之子)’라는 표현은 고구려가 독자적인 천하관을 갖고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으며,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대에 각각 ‘영락(永樂)’과 ‘연가(延嘉)’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점도 이 같은 점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