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교사와 제도교육

YOROKOBI 2008. 7. 11. 18:41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교사와 제도교육

 

1. 교사의 역할과 이데올로기

우선 지적해야하는 것은 교육행위라는 자체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교육, 학교교육이 출현하게 되는 데에도 노동자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그들의 요구에 따라 대중교육이 확산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배층의 경우에는 노동자를 순응된 노동력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교육이란 기능이 주어지게 된다. 즉 교육이란 누가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인간해방의 힘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속에서 교사에게 주어져 있는 역할은 수단화의 역할이 강하고 그 역할을 일반 교사들의 경우 수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에 있어 지금 단계에서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깨뜨려가는 인텔리로서의 자각이 필요하고 그   부분이 진정한 교육자상을 획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과연 무엇인가? 제도교육권 속에서 교육을 받은 교사는 일단 계층 상승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받은 교육의 내용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독점된 교육내용이기  때문에 그 교육내용의 방향성과 목적성이라는 것은 학생들에게 인간화를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그 반대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계속 반복이 되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교육도 문제지만 교사집단 내에서의 교사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것은 교사가 역사성을 갖는다는 철저한 인식하에 자기 계급성을 그 집단 내에서 같이 획득해 나가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된다. 그러나 제도 교육권 속에서의 독점화된 교육내용으로 인해 학생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문화 지식이 전수되어 버림으로써 이러 구조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깨뜨려 나가기가 힘든다. 그래서 교사는 교사대 교사, 교사대 학생,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상승 욕구를 보이는 학부모측의 문제를 같이 변혁시켜야 할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 교육을 통해 교사와 학생간의 닫힌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 것이 나아가 교사와 행정가의 관계의 세로운 정립으로 발전될 수있으며, 또 사회 전체에 닫힘을 극복하는 단초가 될 수있고, 되어야함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항상 보편주의를 가장하는데 보편성이라는 것은 또한 추상적이어서 구체성 속에 보편성이 스며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1). 그래서 구체적인 삶 자체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교사들이 교과서들을 보게 되면 놀랄 만큼 모든 교과서 내용이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그 용어 자체도 추상적이고 문장의 연결도 추상적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교과서를 보게 되면 공허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생과의 열림이 가능하더라도 공허한 내용을 공유한다는 것은 일종의 비극이다.

  Eggleston의 재구조화 관점은 교사의 자질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과 학생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한 것으로, 교사-학생의 관계에 대한 지금까지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Eggleston(1977: 54-55)는 교육과정 결정에 대한 관점으로서 교사 수준에서는 수용적인 관점에서 반성적인 관점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교사들이 자율성을 지니지 않음을 비판하였다. 그는 교사를 사회구조로부터 잠재적인 압력을 받는 위약한 존재로 보고 있으며 그들이 수용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이렇듯 그는  교사에 대한 관점을 재구조화 관점의 타당성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 새로운 관념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Eggleston의 교사의 자율성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과는 달이 최근에는 Eisner의 ‘예술가로서의 교사’ 개념과 Giroux등의 ‘저항자로서의 교사’ 개념 등  낙관적인 입장이 논의되고 있다.

Eisner는 교사의 자율성을 설명하기 위해 예술가로서의 교사의 개념을 도입하는 이유를 교육과정. 실행과정이 갖고 있는 다음의 네 가지 의미를 염두해 두고 예술적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1977 : 56. recit)

첫쨰, 미학적인 경험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교육과정의 실행과정이 예술적이다.

둘째, 교사는 화가나 기타 예술가처럼 행위의 과정에서 전개되는 속성에 크게 의존한다.

셋째, 교사의 활동은 우연성에 영향을 입는다.

넷째, 과정으로부터 목표가 파생된다.

이와 같이 교수의 예술성은 필연적으로 교사들에 의한 교수의 질적. 양적 차이를 가져오며, 교육과정에 있어 비평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능론, 재생산론적의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나온 연구로 낙관론적인 ‘저항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저항이론은 인간 매체에 대한 변증법적인 사고와 힘에는 권력뿐 만이 아니라 저항의 행위도 포함된다. 이 이론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자율적인 역동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977 : 57)

이상에서 보았듯이 교사의 자율성에 있어서 Eggleston의 입장이 비관적이라는 점과 수용적 관점과 반성적 관점을 대비시킴으로써 교사의 인간적 특성이 무시된 점과 재구조화의 관점을 도출해 내기 위해 자료의 편협적 사용 인상등을 지적할 수 있다. 

Eggleston이 언급한 바처럼 수용적 관점에 내재한 ‘구조’의 개념과 반성적 관점의 핵심인 ‘의식’을 결합하려고 하는 재구조화 관점은 마르크스 관점에 서 있는 재생산론의 결함인 일방적 결정론, 학교의 사회, 문화적 재생산 기제에 대한 단순화된 견해, 인간 매체에 대한 탈 역사적 견해, 그리고 교육에 대한 급진적 사회 변화에 대한 비관론적 견해 등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구조의식의 변증법적 상호결합이 곤란할 것이다.

교사에 대해 근로지식인이라는 개념은 명백한 계급이념이 아니라 중간계급 즉 계층의 개념이라는 전제하에 교사집단을 사회과학적으로 명백히 근로지식인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교육과 실천 4호, 민주교육 실천협의회). 이것은 현재 사회상황 속에서 한국 사회 교사 집단을 어떻게 보아야하는 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식인 계층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육체노동보다는 전신노동을 수행하는 사회계층을 가리킨다. 큰 ‘불로소득’을 향유하고 있으며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동일 하지 못하다. 이점이 지식인이 하나의 특수한 사회계층이면서도 독자적 계급을 이루지 못하는 근거가 된다(한국 사회와 인텔리. 김영수, 한겨례 회보 2집)

교사가 지배계급에 의해 고용되어 있다고 볼 때 고용주의 요구는 끊임없이 계속되며 이때 교사는 지배체제의 봉사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며 진정한 인성교육에 봉사하는 자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결단을 강요받는다. 

교육과정은 일선 교사에 의해서 실천된다. 따라서 교사들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역군이다. 지배 세력은 교사들을 성직자로서 또는 전문인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팔지 않으면 안되는 가련한 노동자를 멸시하는 것과 같이 지배 집단은 교사들을 지식적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팔고 있는 존재로서 하인시 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교직의 성직관과 전문직관은 교사들이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전파자로서 봉사하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허구적 직업관이다. 특히 교직의 전문직관은 교사들의 노동자 의식 또는 노동자 계급 의식을 막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교사들이 노동자로 자각하고 급진주의적 경향에 흐르는 것을 몹시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의 노동자관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반헤게모니적 의식을 갖게 하는 데 본질적인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교사의 노동자관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직접, 간접으로 연관된 교육부조리 (일관성 없는 입시 제도, 보충 수업, 자유 학습, 교사의 강한 노동 강도, 잡부금 징수, 교육기회 불평등 등)를 극복하고 민중을 위한 새로운 교육질서를 확립할 것을 소원하면서 이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극복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교육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기본적인 전제가 될 뿐만 아니라 국민대중지향적 민주주의사회를 창조하는 기본 전제가 될 것이다.


  2.  교육과 인간 해방

알뛰세 Althusser와 보울스, 진티스 Bowles & Gintis, 카노이 M. Carnoy 로 대표되는 이 이론은 주로 미국에서 발달된 것으로 교육 불평 등의 소재가 교육제도에 있기 보다는 사회제도의 불평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즉, 교육의 불평등은 교육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그대로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구조적 해방’을 제1의 과제로 삼는다.

학교가 더 이상 단순히 학습과 교수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저항이론가들은 교육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강하게 제기한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형성해 주기 위해 교육자들은 도대체 어떠한 교육학과 교육을 구축해야 하는가? 교육학자와 교육자는 사회, 문화, 정치적 굴레와 정신적 짓눌림으로부터 학생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과연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가?


   3. 교사와 계급  

자본주의 학교교육에서 교사는 교육의 주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학교교육 실패의 거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학교교육이 실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교사의 잘못이 가장 중요한 실패 요인 중의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학교교육 실패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교사가 떠맡고 있는 것이다.

교사를 성직자처럼 소명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의무를 교사에게 부과하는 관점을 규범적 교사관이라 한다면, 교사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일의 성격을 밝힘으로써 교사의 속성을 파악하는 관점을 기술적 교사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슨스 (T.Parsons)의 사회체제이론과 업적주의 이론 (meritocratic theory)에 바탕을 두고 학교가 전체 사회체제의 한 하위체제로서 사회화, 사회적 선발 맟 사회통제 등의 기능을 담당하고 그러한 기능을 통해서 사회적 평 등에 기여한다고 본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을 사회화시키고, 적절한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능력에 따라 선발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평등화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라 본다. 학교교육은 철저히 중립적이며 전문적 성격을 띠게 되고 교사는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전문직 종사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집단에 봉사하고 있으므로 혁명에 의한 사회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회적 평등화는 불가능하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교사를 자본으로 전화하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적 노동자로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교사는 그가 학생들의 머리를 때리는 것 외에도 학교 소유주를 배불리게끔 말처럼 열심히 일을할 때 생산적 노동자이며, 학교 소유주는 소세지 공장 대신 가르치는 공장에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며 그 관계를 변경시키려 하지 않는다.

 교사의 경제적 속성에 관련지어 더 학실한 근본적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교사는 그들이 계약된 노동자로서 봉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집단 노동자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직접 잉여가친 점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여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억압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사의 현실적인 근로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요소들이 노동계급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며 이 점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두 측면에서 경제적 기능을하고 있기에 그들의 수입은 임금이나 봉급이라는 요소와 세입이라는 요소로 구성되며 바로 이러한 것들이 교사들에게 노동자 계급을 능가하는 경제적 특권을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므로 그들은 자본가와는 영원히 구분되며 기껏해야 자본의 대행자로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교사의 경제적 속성은 노동계급에도 자본가 계급에도 속할 수 없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들은 집단 노동자로서의 기능과 자본의 전반적인 기능을동시에 수행한다. 앞서 설정한 이분법으로 이야기한다면 교사는 노동자(비생산적), 비소유자(경제적으로), 억압받는 자이며 비생산자(잉여가치의)이다. 이러한 관계는 두 가지 기본 등식의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비소유자라는 요소 때문에 자본가의 등식(E₂)과는 확실히 구분된다. 교사는 잉여가치의 비생산자(비생산적 노동자 유형으로서)임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경제적 억압이 생산적 노동자가 당하는 경제적 착취의 형태에 근접하는 한 교사는 노동계급의 등식(E₁)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교사가 자본일반의 대리인 즉 국가에 의래 고용되어 자본주의의 유지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교사가 자본주의에 ‘유착된’ 상태라는 접을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장기적이고 객관적인 이해가 자본주의의 유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맺음말

교사의 경제적인 속성을 파악해 본 결과 교사는 일련의 모순덩어리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노동계급이나 자본가 계급에 속한다기 보다는 이 두 계급의 기능을 공유하고 있다. 생산관계와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련지어 보면 그들은 자본가라기 보다는 프로레타리아에 더 근접해 있다. 교사인 한 그들은 결코 순수 자본가가 될 수 없으며 많은 점에서 프로레타리아화될 소지가 훨씬 많다. 교사는 집단 노동자로서의 기능을 할 때만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기술직에 종사할 수 있으며 교육다운 교육을 못하는 것은 바로 교사들이 자본의 전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교사(자본주의 국가의 고용인으로서)로서의 그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유지시키는 것에 어떠한 객관적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많은 지적들이 강력하게 제시했듯이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한 교사는 자본의 대행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자본의 기능을 점차 더 많이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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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arl Mannheim은 Ideology and Utopia에서 ‘이데올로기의 특수 개념’을 언급하면서 인간이 가진 신념이란 것은 결국 ‘다소 의식적으로 어떤 상황의 진실한 성격을 위장하고 있는 것이며 그 이념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그의 의도나 이익과는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것은 공교육 기관의 조직 구조 속의 일원인 교사는 사회조직 전체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자신이 가진 교육적인 신념 조차도 시간이 가면 포기하게되고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들의 위치를 비하시키는 역할을 하게되며 일방통행적인 교육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