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의 독도 침탈,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YOROKOBI 2008. 8. 27. 21:57

일본인들은 잘 모르는 독도


  한국인들 가운데 독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노래 “홀로아리랑”이나 “독도는 우리 땅”은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독도-이들은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지요-를 대부분 알지 못합니다. 최근 일본 정부나 신문 그리고 우익세력들이 떠들어 대고 교과서에까지 실으니까 알게 된 것이지요. 일본인들이 동해에 울릉도 외에도 독도라는 섬이 있다고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1667년에 나온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라는 책에 처음 나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은주에서 배를 타고 서북쪽으로 2일 1박 동안을 가면 송도松島(독도를 말함)가 있고, 또 1일을 가면 죽도竹島(울릉도를 말함)가 있다. 이 두 섬은 무인도이며, 고려 땅에서 이 섬을 보는 것은 (일본의) 운주雲州에서 은주隱州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건지乾地 즉 서북쪽 땅은 이 주(州=은주)에서 끝난다.”


  이 책은 1667년 일본 돗토리라는 지역의 관리가 현재의 오키섬인 은주에 파견되어 은주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보고서입니다. 독도문제에서 이 󰡔은주시청합기󰡕라는 책이 왜 중요하냐고요? 이 책을 근거로 1954년 일본이 외교문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어떻습니까? 일본의 영토는 은주 지금의 오키섬에서 끝난다는 내용이니 독도가 예로부터 한국 땅임을 일본인이 스스로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이 때문인지 현재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은주시청합기󰡕의 내용을 일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나 벌목을 하기 위해 울릉도로 드나들던 일본인 어부들의 경우 독도를 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라 함은 울릉도가 누구의 영토냐에 따라 독도도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일부 일본인들은 울릉도의 목재가 탐이 나서 일본 정부에 울릉도 출입을 허가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울릉도를 드나드는 일본인 어부들에 대해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고요. 이 때문에 이 문제-영토문제-를 처리하고자 1696년 조선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에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 부속도서인 독도도 조선의 영토로 인정된 것이죠.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일본인의 울릉도 출입을 금지하였고, 이때부터 일본인들도 더 이상 울릉도나 독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에 의해 일본의 최초의 근대 정부인 메이지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메이지 정부가 조선과 새로 국교를 열기 위해 외무성 관리 세 명을 조선에 보냈습니다. 이들이 돌아와서 제출한 보고서에도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조선의 부속 도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후에도 일본인들이나 일본 해군은 울릉도와 독도가 두 개의 섬인지 하나의 섬인지 헷갈려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울릉도를 마츠시마(松島)라고 부르고,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거꾸로 부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1880년 9월 일본 해군 군함인 천성함天城艦이 이 섬들을 조사한 결과 송도는 ‘예로부터의 울릉도며 그 옆에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는 작은 암석섬이 있다’고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일본은 계속 죽도와 송도를 헷갈려 했지만요. 서양인들은 1849년 프랑스의 고래잡이배 리앙쿠르LIANCOURT가 이 섬을 발견한 후 이 배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라고 이름 지었고, 이 이름이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리안코’라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독도는 그들의 관심 밖이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섬이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이 날씨가 맑을 때면 맨 눈으로 바라보던 그 독도를.


일본의 침략 과정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 강제 편입되고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은 석도(石島=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하는 대한제국칙령 제41호를 제정하여 독도가 자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독도獨島의 어원은 ‘홀로 섬’이란 뜻이 아니고 ‘돌섬’이니 석도가 맞죠. 그런데 1905년 2월 22일자로 일본 내각은 다케시마(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이므로 시마네현의 관할로 한다'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제정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 현縣은 독도를 자기네 현의 섬이라고 해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했습니다.)

  이 때 일본은 대한제국을 독점하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러시아 함대를 동해상에서 감시하기 위한 망루를 설치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로 독도를 지목하고, 대한제국이나 외국 몰래 자기 땅으로 편입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말 대한제국은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란 구실로 일제의 반식민지가 되고 말았으니 일제의 한반도 영토침략은 독도 편입부터 시작된 것이죠(노무현전대통령이 독도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문제라고 지적한 것은 바른 시각입니다).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독도는 마땅히 우리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1951년 9월 8일 일본과 연합국(사실상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어 1952년 4월 28일 이 조약이 발효했습니다. 일본은 이 조약에서 일본이 반환해야 할 영토 목록에 한국의 독도가 없다는 사실을 들어 독도에 대해 지속적인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일본의 주장도 문제가 많습니다만 미국도 독도 문제를 어지럽혀놓은 책임이 있습니다.) 이 후 한국이 IMF외환위기로 정신없을 때 일본은 1965년에 맺은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때 일본은 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중간관리수역으로 두어 분쟁의 단초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나아가 일본의 국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수 십년 간 각국의 지리정보자료에서 독도라는 이름을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이런 공작에 기초해  올해 일본 문부성은 독도를 자국 섬으로 가르치라는 교과서 교육 지침을 내린 겁니다. 이렇게 해서 독도를 분쟁지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풀려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재판으로 해결하자고요? 안되죠. 엄연히 내 자식인데 옆집 사람이 무턱대고 자기 자식이라고 우긴다고 재판할 수는 없죠. 더구나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게 일본이 돈을 내고 있고 일본인 판사가 적지 않습니다. 편파판정! 이것이 무서운 거죠. 국제 사회는 결코 한국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미국조차도! 미국은 만일 한국과 일본을 택하라면 일본을 택할 가능성이 놓습니다. 실익 면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하니까요.


일본이 노림수와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일본은 독도를 왜 이렇게 고집하는 걸까요? 호시노라는 귀화한 일본인 학자는 이에 대해,  독도와 인근해양을 한·일 공동관리 구역으로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이를 토대로 독도와 인근 해양 자원을 노리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에 덧붙여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는 일본 북방4도와 중국이 조어도(釣魚島)라고 부르는 센카쿠 열도를 일본 영토로 만드는 것과 연결하려는 것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독도는 국방상 요충지이기도 하죠. 독도야말로 동해의 감시초소이니까요.

   독도문제는 국제법과 관련된 영토문제 이전의 문제입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본의 양심적인 언론기관조차 독도에 관한 한 자국에게 불리한 내용은 전혀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토문제는 역사문제가 아닌 국제법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나 독도문제는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과거의 침략을 반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다시 침략주의로 나가는 징조입니다. 일본 정부가 최근 천황을 찬미하는 ‘기미가요’를 각급 의례에서 제창케 하고, 국기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고, 천황제파시즘의 상징이자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를 총리가 참배하는 등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조차 독도문제가 이런 일본의 국가주의화 경향과 맞물려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양심세력에게도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시켜야 합니다.

  또 세계를 무대로 독도를 우리 영토로 확인시키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치밀한 대응도 필요합니다. 독도에 해병대를 보내니 호텔을 세우니 총리가 기념사진을 찍느니 하는 것은 국내 민심을 달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조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은 몇 십년간 독도 전담반을 두어 소리없이 해외 로비를 펼쳐 독도를 다케시마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독도를 일본영토로 확보하기 위한 유리한 자료를 수집하고, 국제 여론을 자기네 편으로 만들고, 마침내 교과서에 이를  실어 학생들에게 교육시켜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 국민을 동원해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정부에게 한없이 약하고 국민에게만 강압적인 한국정부가 독도문제를 제대로 대응할 지 불안합니다. 독도연구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뒷북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용서했다고 떠드는 마당에 독도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지 우려됩니다. 독도문제야말로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과정에서 발생한 과거사인데 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도 못 막는 정부에게 독도문제를 맡기려니 겁이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