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

YOROKOBI 2008. 9. 15. 08:57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

 

 

 

과학과 종교의 대화 <1> 왜 대화가 필요한가?

 

 

  2008-04-18
  
한국은 신정 분리를 엄격히 규정하는 나라다. 그러나 종교와 일상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신도를 거느린 대형 교회가 여러 곳일 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집단을 거론하는 뉴스는 늘 사람의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특정 교회 신도를 중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과연 한국의 종교가 일반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한때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 논란이 그렇다. 외국의 기독교계가 생명윤리를 아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계는 사실상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일부 불교계는 생명공학의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신도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는 일도 있었다. 테러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이런 선교 여행이 '기독교 패권주의'라고 교계 안팎에서 강하게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과 맞물려 "신은 망상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외국 지식인의 책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21세기의 세계를 살펴보면 더욱더 상황은 복잡하다. 현대 사회를 과학기술시대라고 규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 또한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이 시대의 두 가지 화두라고 할 만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단초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 쉽지 않은 작업에 김윤성(종교학자,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신재식(직접 목회를 하는 신학자, 호남신학대 조직신학과 교수), 장대익(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세 사람의 젊은 지식인이 나섰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6년 말부터 과학과 종교를 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신을 교환해왔다. <프레시안>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는 공동으로 이 서신을 정리해 <프레시안>에 1주일에 한 차례씩 싣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국내외 최신 담론을 접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장대익 교수가 첫 번째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정경대학(LSE)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연구했다. 최근 한국 지식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은 <통섭>(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역자이기도 하다.
  
  장대익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대니얼 데닛 교수와 함께 연구를 했다. 이 첫 번째 편지는 그 당시에 초고가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종교 없이 산다는 것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별고 없으신지요. 한국엔 제법 큰 눈이 왔다지요? 여기 보스턴에 온 지 벌써 넉 달이 넘었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에 눈이 많이 오면 1미터 정도 쌓여서 학교도 휴교하고 그런다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는 10월 말에 핼러윈(만성절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 필자), 11월 말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홀리데이(Holiday)를 준비하는 식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이 끝나니까 바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더군요.
  
  물론 이 모든 절기들이 상술로 포장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국가(Christian nation)'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종교 정체성 조사 결과(2001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를 보니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미국 국민의 76.5%,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은 13.2%, 유대교는 1.3%, 불가지론자는 0.5%, 무신론자는 0.4%였습니다(☞결과 보기).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합해도 1%가 넘지 않고, 기독교는 80% 정도나 되니 미국은 정말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몇 달 전(2006년 9월)에 있었던 갤럽 조사 결과는 더 흥미로웠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말해 당신은 미국인들이 (_______)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항목에는, 유태인, 아시아인, 여성, 흑인, 모르몬교도, 히스패닉, 무신론자, 동성애자가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앞에서부터 나열해 보면, 여성(61%), 흑인(58%), 유태인(55%), 히스패닉(41%), 아시아인(33%), 모르몬교인(29%), 무신론자(14%), 동성애자(7%) 순이었습니다(☞결과 보기).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모르몬교도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는 조금 높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말하면 무신론자 대통령이 나올 가망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겠지요. 미국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라도 기독교인을 자처하게 생겼습니다. 생전에 가장 똑똑한 미국인으로 추앙받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대선에 출마했어도 미국 대통령은 도무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무신론자였으니까요!
  
  세이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는 세이건의 원작보다 이 영화를 먼저 접했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세이건이 쓴 모든 책을 다 주문했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었지요. 물론 아직도 다 못 읽었지만요. 그는 동명 소설 <콘택트(Contact)>에서 주인공인 천문학 박사 에로웨이와 복음 전도자 자스를 통해 과학과 종교에 관한 심오한 문제들을 절묘하게 다룹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진리를 굳게 믿는 여성 천문학자가 어느 날 베가성에서 온 외계 신호를 포착하고 해독하여 우여곡절 끝에 베가성을 향하는 우주선의 첫 탑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자 친구인 복음 전도자가 그녀의 과학적 신념을 도전한다. 결국 베가성 여행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저자는 막판에 결론을 뒤집어 과학적 신념이 종교적 믿음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 필자)
  
  물론 그의 메시지는 에로웨이의 언행이 대변해 주고 있지요.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잠시 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이 영화를 또 한 번 보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중 하나만 소개할게요. 아마 이 장면, 기억나실 겁니다.
  
  자스 위원 : 에로웨이 박사, 당신은 자신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에로웨이 박사 : 무슨 질문이신지? 전 도덕적인 사람이긴 합니다만…….
  자스 위원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저는 과학자로서 경험적인 증거만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종류의 자료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위원장 : 그러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에로웨이 박사 : 왜 이런 질문이 이번 일과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위원 : 에로웨이 박사, 세계 인구의 95%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자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상관이 있는 질문이지 않겠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 저는 이미 답을 했습니다.

  
  자신의 무신론을 숨기지 않았던 에로웨이는 이 대답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 문명을 만나는 기회를 가진 탑승자 심사에서 탈락합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최후의 탑승자가 되지만 말이지요. 마치 세이건은 에로웨이의 입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진실한 무신론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보다는 덜 하겠지만 미국의 무신론자들도 압박감을 느낄 만합니다. 특히 이것은 미국 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가 재집권하고 나서부터 더 심화된 듯합니다. 그는 보수 기독교인의 표를 더 얻기 위한 제스처 이상으로 근본주의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식인 중에는 9・11 같은 테러가 미국의 반(反)이슬람 기독교 근본주의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학기에 참여했던 한 수업에서 저명한 언어학 교수가 학부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부시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심히 걱정된다."라고요. 미국 자유주의의 본산 보스턴(보스턴은 미국 최초로 흑인 주지사를 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하버드와 MIT 같은 미국 최고의 대학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정신이 가득하다 : 필자)이니까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이 가능한 거겠죠?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운동'
  
  작금의 이라크 사태를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vs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라는 느낌을 주지 않나요? 하지만 정말로 종교 간 전쟁 때문에 세계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설득력 있게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찰스 시모니 '과학의 대중적 이해' 석좌 교수로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입니다(헝가리 태생의 찰스 시모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후에 '인텐셔널 소프트웨어' 회장으로서 여러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석좌 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만들어졌는데, 이 자리의 첫 번째 수혜자가 바로 도킨스이다 : 필자).
  
▲무신론 운동을 진행하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프레시안

  그가 최근에 출간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원제는 '신이라는 망상' 또는 '신은 망상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이 몇 달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0위 안에 올라와 있는데요, 저도 몇 주 전에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신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요정, 도깨비, 유니콘, 포켓몬스터처럼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인데 많은 이들이 신은 마치 실재하는 양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망상이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종교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혹시 선생님들도 이 책을 보셨는지요?
  
  도킨스는 이번에 아주 작심을 하고 이런 도발을 감행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 출간에 즈음하여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바로 가기)를 만들더니만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The Richard Dawkins Foundation for Reason and Science, ☞바로 가기)'도 세워 본격적인 무신론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순회하며 책에 대한 강연, 텔레비전 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영국 BBC를 통해 <모든 악의 근원?(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지요. 이 다큐멘터리도 최근에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콜로라도의 한 대형 교회(개신교)의 예배에 (관찰자로) 직접 참석하고, 현 대통령 부시와 핫라인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있는 복음주의 목사와 언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 목사가 성경에는 하나의 모순도 없다고 말하자, 도킨스는 현재의 과학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모순점을 지적한다고 맞받아쳤지요. 그랬더니 그 목사는 바로 "당신같이 오만한 사람이 바로 문제"라고 비난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당신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그만둡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서문에서 비틀스 출신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패러디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자살 폭파범, 9·11 테러, 런던 폭파 테러, 십자군, 마녀 사냥, 화약 음모 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 미수 사건 : 필자), 인디언 분리 구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대학살…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그가 단지 종교가 너무나 싫어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만들어진 신>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 즉 '신 존재 가설(God hypothesis)'이 왜 설득력이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인생의 의미, 도덕성, 사랑, 책임감 등이 어떻게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지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지요.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 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movement)'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현재 저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인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인공지능과 의식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영미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현재 터프츠 대학교의 인지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응용해 온 점이 다른 철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측면이다 : 필자)은 도킨스의 운동을 오프라 윈프리의 그것에 비유하더군요.
  
  오프라는 한때 <오프라 쇼>에서 미국 내 가정의 매 맞는 여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전국적으로 일깨운 적이 있었습니다. 데닛은 도킨스의 책과 활동도 종교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캠페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종교(특히 기독교)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여, 무신론의 세계로 탈출하여 당신의 지성을 구원하라." 이런 메시지가 영국식 악센트로 제 귀를 때리는 듯합니다.
  
  그가 얼마나 단호하고 도발적인 사람인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책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나 봅니다. 마침 거기에 참석한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미국의 대표적 보수 기독교 리더인 제리 파웰이 1971년 설립한 기독교 대학 : 필자)의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지요. "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이 5000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도킨스는 공룡 화석의 나이를 추정하는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설명하고는, 공룡 화석이 5000년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뉴욕과 워싱턴 D.C.의 거리가 500미터 정도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말을 하더군요.
  
  "여기 계신 리버티 대학교 학생 여러분께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학교를 그만두시고 더 적당한 학교에 지원하십시오." 좀 심하다 싶은 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좀 놀랐습니다.
  
  종교에 대한 동상이몽? 도킨스, 윌슨, 그리고 굴드
  
▲<생명의 편지>(에드워드 윌슨 지음,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도대체 왜 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분야도 아닌 종교에 대해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사실 최근에는 저명한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의 진화 생물학 교수로서 개미 연구와 사회 생물학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등을 통해 과학에 기반을 둔 지식의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다 : 필자)은 서너 달 전에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원제는 '창조', '창조물', '피조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도킨스의 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목부터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나는 '신은 망상'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제목이 참 의아했습니다. 창조는 주로 유대-기독교, 이슬람 전통에서 즐겨 쓰이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유년 시절을 신실한 침례교인으로 자랐다가 무신론자가 된 윌슨이 다시 기독교로 회귀한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궁금했지요. 목차를 보니 그런 의문이 더욱 강해지더군요. 심지어 "타락(decline)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제목의 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내용을 보면서 의문이 좀 풀렸습니다. 서부 침례교 목사에게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같이 동참하자는 내용의 편지더군요. 과학과 종교가 형이상학적으로 서로 대립적이다 하더라도 우리 지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 생태계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실천적 근거들이 너무 많다고 호소합니다. 과학계의 한쪽(도킨스)에서는 종교계에 시비를 걸고, 다른 쪽(윌슨)에서는 협력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인데요, 둘 다 현대 진화론의 거장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두 달 전쯤에 대니얼 데닛과 스쿼시를 친 적이 있어요. 35세인 저와 65세인 데닛이 경기를 했는데 누가 이겼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 졌습니다! 그것도 두 게임을 내리 졌지요. 대단한 체력이었습니다. 저는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지요. 잠시 쉬는 시간에 윌슨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요. 제가 <통섭>의 한 장과 논의와 성격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더니 데닛도 맞장구를 쳐주시더군요. 그러더니 "그럼 이참에 윌슨 선생하고 우리 셋이서 만나 점심이나 먹으며 이야기하면 어떻겠냐."라고 그러시더군요. 물론 저야 "감사합니다."라고 했지요. 아직은 몇 가지 사정 때문에 윌슨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2007년 1월 초에 점심 모임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건은 그때 가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전에 작고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고생물학자로서 단속 평형설 등을 제시했고 진화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던 과학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200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 필자)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지요.
  
  그는 과학과 종교가 "중첩되지 않은 영역(Non-Overlapping Magisteria, 줄여서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요.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종교의 유통 기한은 아직도 유효한가?
  
▲하버드대학의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브 제이 굴드. 그는 "종교와 과학은 전혀 별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프레시안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종교에 대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의 직업을 따져 보면 과학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아마 종교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은 이미 과학의 시대로 넘어온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종교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성 때문에 일군의 의식 있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계몽 차원에서?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야말로 선지자인 양 떠들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다! vs 과학의 끝에서 신을 쫓아내다!
  
  이런 화두를 던지면 어떤 이들은 시큰둥해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더 넓게는 이성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야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던 질문들 아닌가요? 뭐 그런 거야 따지기 좋아하는 가방 끈 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것이지, 우리처럼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 라고 말이지요. 실제로 저는 그런 분들을 여럿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지금 새삼스럽게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시 꺼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9·11 테러를 들고 나오며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의 존재 자체를 고발한 것은 꽤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중세까지 종교적 세계관 속에 숨 쉬다가 계몽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행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낡은 종교적 세계관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여 전 세계의 비극적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은 혹시 아닌가요? 마치 지독한 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고 때로 사람을 대량으로 감염시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듯이, 종교도 끈질긴 정신 바이러스가 아닐까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아니면 다른 신흥 종교의 광신도들이건, 혹은 신내림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건 간에―이 다른 견해를 인정하려 않기 때문에 생겨났던 셀 수 없는 비극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생겨날 비극들을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제발 좀 관용의 태도를 가져라." 라고 충고한다고 될 문제입니까? 아니면 아주 직설적으로 "네 세계관은 사실적으로 아주 틀렸거든!" "자살 테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내세에 축복받는 것 아니거든!"이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제안한다.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며 'gene'과 대구가 되도록 'meme'으로 표기되었다. 선율,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패션 등이 바로 밈의 사례들이다 : 필자)'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 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두 분 모두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해 전문가이시니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인가?
  
  종교와 과학은 누가 뭐래도 인류의 역사를 추동해 온 두 축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종교에 대들었지만, 아직도 못 쫓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반격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선생님들!
  
  이런 편지가 언제까지 오갈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밈인 과학과 종교에 대해 아주 솔직한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진실이 무엇인지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모든 유신론자들이 믿고 있듯이 기도가 정말로 효과 있는지를 의심의 눈으로 해부해 보고 싶습니다. 종교 경전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크고 작은 기적(miracle)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론은 활짝 열어 놓으려 합니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과 토론해 가면서 인류의 해묵은 질문에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인류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아시듯이 저 또한 지난 십여 년 간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이것이 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첫 번째 장문의 편지를 띄웁니다. 연말연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The New York Times, April 20, 1999)
  
  2006년 12월 10일
  
  눈 내리는 보스턴에서
  장대익 올림
   
 
  장대익/동덕여대 교수

 

 

 

 

 

'왕의 귀환'인가, '탕자의 귀가'인가?

 

 

 

과학과 종교의 대화 <2> 종교와 과학, 다시 만나다

 

  2008-04-25
  
한국은 정교 분리를 엄격히 규정하는 나라다. 그러나 종교와 일상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신도를 거느린 대형 교회가 여러 곳일 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집단을 거론하는 뉴스는 늘 사람의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특정 교회 신도를 중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과연 한국의 종교가 일반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한때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 논란이 그렇다. 외국의 기독교계가 생명윤리를 아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계는 사실상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일부 불교계는 생명공학의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신도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는 일도 있었다. 테러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이런 선교 여행이 '기독교 패권주의'라고 교계 안팎에서 강하게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과 맞물려 "신은 망상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외국 지식인의 책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21세기의 세계를 살펴보면 더욱더 상황은 복잡하다. 현대 사회를 과학기술시대라고 규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 또한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이 시대의 두 가지 화두라고 할 만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단초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 쉽지 않은 작업에 김윤성(종교학자,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신재식(목사, 호남신학대 조직신학과 교수), 장대익(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세 사람의 젊은 지식인이 나섰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6년 말부터 과학과 종교를 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신을 교환해왔다. <프레시안>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는 공동으로 이 서신을 정리해 <프레시안>에 1주일에 한 차례씩 싣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국내외 최신 담론을 접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장대익 교수는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이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논쟁을 시작했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그 위세가 커지는 종교가 "또 다른 중세를 야기할지 모른다"는 그의 문제제기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최근의 지식인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장 교수의 문제제기에 목사 신재식 교수가 답했다.

  
  신재식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 드루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존 템플턴 재단 '과학과 종교 교육 프로그램' 연구자, 풀브라이트 초빙 교수를 지냈다. <생태학과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쓰고, <근대 신학의 이해>,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을 옮겼다.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오래 전부터 깊은 고민을 해온 목사이다.
  
  신재식 교수는 2006년 12월 26일부터 2007년 2월 8일까지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배낭여행했다. 볼리비아의 산타쿠르즈에서 시작한 여행은 코차밤바, 라파스를 거쳐,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산티아고, 푼타 아레나스,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로 이어졌다. 그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이어지는 여행 중에 시장과 성당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의 사람, 자연, 종교를 둘러보았다. 이 편지의 초고는 코차밤바에서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김윤성, 장대익 선생님께
  
  여기는 코차밤바입니다. 배낭여행 중에 장 선생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코차밤바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해발 약 2500m 높이에 위치한 고원 도시입니다. 장 선생님께서 계신 미국 땅에서 비행기로 불과 예닐곱 시간 거리인데, 상당히 다른 세계입니다.
  
  1월인데도 온통 따가운 햇볕으로 가득합니다. 이곳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이지요. 이곳 사람들은 흰 눈으로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축하하는 서설(瑞雪)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곳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는 한여름에 맞는 새해가 아직도 낯설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낯선 땅 코차밤바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문자가 된 듯한 느낌(또는 타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어디선가 이런 낯선 느낌이 든 적이 있고,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느낌입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아! 그렇군요! 제가 영화나 책을 통해서 과학의 세계로 들어갈 때 받은 느낌이 그랬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는 아니지만 낯선 곳에 들어선 방문객의 느낌, 이방인의 느낌은 아니지만 아무튼지 익숙하지 않는 세계에서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제가 낯선 남미 땅을 여행하면서 느낀 느낌이 처음 과학의 세계에서 느낀 느낌과 비슷하다니, 과학의 영토나 남미 원주민의 땅 모두가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인가 봅니다. 저에게 이 둘 모두는 미지의 땅이고, 이 땅에 들어서는 저는 방문객이고 타자입니다.
  
  이웃사촌, 종교와 과학
  
  장 선생님의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편지를 코차밤바의 한가운데에 있는 '9월 14일 광장'(Plaza 14 de Septiembre, 1834년에 건설된 코차밤바 중앙광장으로, 지명인 9월 14일은 코차밤바가 세워진 날짜이다 : 필자)의 나무 그늘 아래서 읽었습니다. '종교와 과학'에 관한 편지를 읽고 있는 저에게, 이곳 광장은 우리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자인 저에게 "과학과 종교"보다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말도 주로 기독교적 입장이 배어 있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양에서 도시의 중심은 광장이지요. 유럽이나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이 지배한 거의 모든 땅에서 광장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요. 그리고 그 광장에는 서구 문명에서 주인 역할을 한 기독교가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남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지요. 물론 이곳 광장에도 대성당(La Catedral)이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도 몇 개의 성당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면 성당 주위에 빼곡하게 인터넷 PC방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인터넷 전화를 하고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거의 한 집 건너 하나가 인터넷 PC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 전화 등의 통신 관련 사회 기반 시설이 뒤쳐진 나라일수록 인터넷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PC방이 많이 보입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사촌입니다. 밤에는 성당 종탑과 회랑 조명 불빛과 인터넷 PC방의 네온사인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종교와 과학 기술이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전통 복장을 한 이 땅의 주인들이나, 오래전에 정복자로 이 땅에 온 유럽 백인들의 후손들이 성당을 지나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인터넷 PC방에 들러 전화를 하거나 게임을 합니다. 성당에서는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 PC방에서는 인터넷 전화나 게임을 통해서 인간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들에게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그냥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전통 종교의 상징인 성당과 현대 과학 기술의 상징인 인터넷이 도시 한가운데서 나란히 이웃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 삶의 일부
  
  제가 보기에, 종교와 과학이 여전히 이야기되는 까닭은 이 둘이 개인이나 사회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함께 체현되는 현실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와 과학은 개인의 삶과 무관한 분리된 실재가 아니라 한 개인 안에서 함께 엮여 있는 현실적인 실재입니다.
  
  이것은 꼭 이곳 볼리비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장 선생님이 머무르고 계신 보스턴에는 하버드 대학교나 MIT를 비롯해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지요. 그곳에 있는 과학자들이나 과학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전자 현미경이나 입자 가속기를 통해 원자와 기본 입자의 세계를 보고, 전파 망원경과 거대한 우주 망원경을 통해 거대한 우주를 들여다보고, 수학을 사용해서 미시 세계에서 대우주까지를 설명하는 과학자가 종교를 갖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24시간 실험실을 지켜야 하는 과학자가 잠시 짬을 내어 예배나 예불에 참여하고 다시 실험실로 급하게 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흔적을 찾겠다고 열심히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가지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현대 과학을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종교인도 있습니다. 여전히 불교도인 생물학자도 있고, 이슬람교도인 화학자가 있고, 천체 물리학자인 신부도 있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목사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은 일정한 접점을 지니고 있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과학이나 과학 기술이 적용되는 문제를 다룰 때, 자연 과학자나 공학자뿐만 아니라, 종교나 윤리 관련 연구자나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사회적 활동인 종교와 과학은 과학 지식과 종교 신념의 충돌이라는 지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 현상이지요. 그래서 이 둘에 대한 논의의 양상은 항상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여전히 개인이나 사회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이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이며,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둘에 대한 논의를 특정한 범주로 일반화시키면서 이 둘을 파악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갈등이나 조화라는 단순한 범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일반화인 동시에, 둘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구체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접근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선생님도, 진화 생물학자가 쓴 최근의 종교나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저작에서 이 둘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양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종교와 과학이 맺고 있는 관계의 현실을 단순하게 범주화시킬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 그 과거, 현재, 미래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세계에서 제일 큰 그리스도 상 '크리스토 데 라 콘코르디아'. ⓒimageshack.us

  그럼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저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만남의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로 나갈 방향을 살피는 순서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고개를 들면, '크리스토 데 라 콘코르디아'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그리스도 상(Cristo de la Concordia,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6.24m의 받침대 위에 세워진 34.20m의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다 : 필자)이 멀리 보입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보다 더 큰 40m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 두 팔을 벌린 채 높은 언덕 위에서 도시를,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스도 상이 도시를 두 팔 벌여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그리스도 상을 세웠을까?' 하고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그리스도상이 도시의 모든 것, 광장의 모든 것, 성당뿐만 아니라 PC방마저 품을 것을 믿거나 기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성당과 PC방을 함께 품는 그리스도, 종교와 과학마저도 내려다보고 함께 품는 기독교를 꿈꾼 것은 아닌가? 글쎄, 기독교인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상의 이름을 생각하니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름에 들어 있는 "concordia"는 원래 "조화와 평화"를 의미하지요. 그래서 그리스도 상을 우리말로 하면 "평화의 그리스도"나 "조화의 그리스도"가 되지요. 어쩌면 이들에게 그리스도 상은 '종교와 과학의 조화'나, '종교와 과학의 평화'를 향은 꿈이 투사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교와 과학의 평화와 조화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나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런 꿈을 허망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으로 여기겠지요. 기독교가 외래 종교인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선뜻 수긍할 수 없습니다.
  
  왜 수긍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은 각각 서로 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와 과학자는 다른 땅을 다스리는 두 영주이고, 이 둘은 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품으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모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모하다고 느끼는 이러한 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와 과학을 함께 포용하려는 시도는 서구 기독교가 지닌 오랜 전통이었고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근대 이전, 종교와 과학이 두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문제를 역사적인 측면에서 잠깐 짚어 볼까요. 제가 머무르고 있는 남아메리카를 떠나 잠시 유럽으로 가 봅시다.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래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구 문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기 전까지 기독교의 권위와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구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지요. 장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여전히 서구 사회에서 무신론자는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영역도 기독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모태였고 심장이었습니다.
  
  이런 서구 문명을 이끈 지성인은 누구였을까요? 유럽의 대학은 원래 성직자와 교회 관련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지적 활동의 중심지가 대학과 수도원이었습니다. 당시 지식의 중심에는 기독교 성직자들이 있었던 거지요. 13세기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과학이 중세 유럽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도 성직자였습니다. 이들이 종교적 지식은 물론, 철학, 수학, 수사학, 공학 등 그야말로 '모든' 지식을 담당했습니다. '신에 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이들의 활동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science)에 해당하는 자연에 대한 탐구는 당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죠. 중세 지성인들에게 자연 탐구는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때까지, 자연을 탐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자연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세 최고의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그로세테스테(1175-1253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주석을 달고, 그리스 어와 아랍 어 과학 저술들을 라틴 어로 번역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 역임하고, 기하학과 광학, 천문학 분야에 저작을 남겼다 : 필자)는 주교였으며, '중세의 갈릴레오'로 불린 로저 베이컨(1214-1294년, 영국 서머싯 출신으로, 실험 과학을 중시한 대표적 중세 인물이다. 수학, 천문학, 광학, 연금술 등에 관심을 가졌다 : 필자)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으며, 15세기의 최초 물리학자로 무한한 우주에 대한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던 쿠사의 니콜라스(1401∼1464년, 독일 출신 신학자이며 철학자로, 기하학과 논리학, 천문학 등에 관심을 가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지구와 같은 세계가 무한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필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었지요.
  
  17세기에 과학 혁명의 위대한 개척자나 설립자로 불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과학이 자신들의 신앙과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와 뉴턴은 그들의 새로운 견해가 자신들의 신학에서 파생한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뉴턴은 종교적인 열광자로 불릴 정도로, 전 생애에 걸쳐 신에 대한 탐구의 작업을 수행했었죠. 뉴턴에게 과학과 신학과 연금술은 분화되지 않은 통일된 전체였습니다. 이렇게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과 근대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을 비롯해 18세기까지 유럽에서 과학 작업에 종사한 대부분의 과학 혁명의 선구자들은 실제로 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학 연구를 했던 깊은 신앙인들이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식으로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학 교육이 사제가 되지 않더라도 꼭 들어야 하는 일종의 교양 과정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중의 예외는 뉴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과학 혁명의 시기까지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의식적으로 억압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권의 책"이라는 생각이 그 대답입니다. 기독교가 문화의 모태였던 당시 사람들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사람들에게는 두 권의 책, 즉 '성서라는 책(Book of Bible)'과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을 주었습니다.
  
  신이 성서와 자연이라는 두 권을 책을 쓴 저자이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의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저자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신이 쓴, 인간을 위해 준 두 권의 책은 서로 보완하면서 그 저자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의 탐구를 통해서 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전통입니다.
  
  과학의 독립 선언, 종교에 도전하다
  
  이런 상황이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바뀝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늘날 과학을 의미하는 'science'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분야의 작업을 전담하는 새로운 지식 계급에 '과학자'(scientist)라는 명칭이 사용됩니다. '과학자' 집단의 등장과, 이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 즉 과학을 전담하게 되면서, 종교인들은 더 이상 모든 지적 작업을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연 법칙에 따른 자율적인 세계라는 기계론적 인식과 진화론의 등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과학과 이를 응용하고 적용한 기술의 효율적 결과가 잘 확인되면서, 종교의 영역은 축소되고 영향은 약화됩니다.
  
  결국 자연은 과학자의 영역(물리적 세계는 뉴턴 물리학의 영역, 생명 세계는 다윈 적자 생존론의 영역)에 속하고, 역사와 인간과 사회와 윤리 도덕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영역은 조금씩 넓어집니다. 종교가 맡고 있던 설명들이 하나씩 차례차례 과학적 설명으로 대치되고, 이 과정에서 종교는 수세와 방어로 일관한 것이 지난 300년간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과학에게 자연이라는 영토를 순수하게 이양한 것은 아니지요. 17세기 이후 성직자와 과학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다툼은 자연적 지식에 대한 권한과 지식 판단의 우월권이라는 특권을 어느 집단이 갖느냐 하는 주도권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전까지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이 철저하게 대립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긴장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합리주의적 분위기에서도, 칸트나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두 개의 분리된 영역이라고 주장했을 따름입니다. 즉 18세기까지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전쟁'으로 치달은 적이 없습니다.
  
▲존 드레이퍼. ⓒ프레시안

  종교와 과학이 전쟁 상태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 준 것은 구체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출판된 존 드레이퍼(1811∼1882년, 영국 출생 미국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사진작가. 뉴욕 대학교 교수,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 설립자, 미국 화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 필자)의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사>(1874년)와 앤드루 화이트(1932∼1918년, 뉴욕 출신으로 역사학자이며 교육자. 코넬 대학교 공동 설립자로 초대 총장이 되었으며, 이후 외교관과 미국 역사학회 초대 회장 역임했다 : 필자)의 <기독교 국가에서 과학과 신학의 전쟁사>(1896년)는 책 이름만큼이나 기독교가 과학을 전투적으로 억압했다고 표현합니다. 이 책들의 출판과, 더불어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창조-진화 문제와 관련해 벌어진 몇 번의 재판이 오늘날 종교와 과학이 갈등 관계나 전쟁 상태에 있다는 인상을 결정적으로 심어 주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볼 때, 종교와 과학의 역사를 갈등 관계로 보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입니다. 오히려 서구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종교와 과학은 동거하던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를 내려다보면서 종교와 과학을 한품에 안으려는 듯한 그리스도 상의 꿈은 과거의 사실(史實)과 이에 대한 향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19세기적 화두, 종교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앤드루 화이트. ⓒ프레시안

  오늘날 과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설명, 특히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설명하고, 종교의 존립 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해 좀 생각해 보죠. 사실 과학이 야기한 문제로 인해 종교가 고민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지요. 멀리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발한 유대교가 지중해 문화권 전체로 확장되고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합리적 사유를 만날 때부터 이런 종류의 고민은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과학 혁명기 이후 과학의 독립 선언과 지속적인 영역 확장을 마주하게 된 기독교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19세기 초에 서구 지성인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종교가 과연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신학이 가능한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 기독교의 권위와 가르침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흄을 비롯한 많은 서구 근대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권위의 정당성과, 그때까지 당연시해온 교회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종교적 권위의 뒷받침에 의해 신비의 영역, 신의 활동 영역으로 남아 있는 많은 부분들을 순순하게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 법칙과 자율성을 지닌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당연히 신의 존재와 기적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신의 활동으로 여겨졌던 영역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기존의 교리가 도전받고, 세계와 자연에 대해 종교적인 설명보다 과학적이거나 자연주의적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자연의 영역에서 자연 과학이 그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점차 인간과 사회의 영역마저 자연 과학은 그 주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제 사회는 신이나 교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질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과학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이 교회로부터 또는 기독교로부터 자율성을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뭉뚱그려서 '세속화'라고도 말하지요. 이러니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종교의 위기, 신학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이게 19세 초반 서구 사회의 문제, 보다 정확하게는 기독교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할 방도를 찾습니다. 자연 과학의 도전에 대한 19세기의 종교적 대응은 주로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슐라이어마허, 칸트, 헤겔입니다. 이들은 자연 과학과 구별되는 종교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을 각각 제시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내면적 감정을, 칸트는 도덕이나 윤리의 영역을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영역으로 제시합니다. 심지어 헤겔은 역사가 바로 종교의 영역이라고 선언합니다. 이후 서구 문화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이 둘이 각각의 영역을 달리한 채로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도 신학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나 인간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은 성당으로 들어가지만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마 잠깐 기도를 드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으로 들어간 사람은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터넷 전화를 해도 컴퓨터 게임을 해도 금방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 모두 거의 거쳐 가는 곳이지만 머무르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 있는 상황이 눈에 뜨입니다. 성당은 오랜 건축물입니다. 이곳저곳 훼손된 곳이 많고, 또 퇴락한 채 거의 방치되고 있는 성당도 눈에 자주 뜨입니다. 아마 성당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의 수는 나날이 늘어납니다. 물론 새로 짓고 단장한 곳이라 깔끔하고 합니다. 쇠락한 성당과 새로 단장한 인터넷 PC방의 대조는, 그리고 어느 곳에 오래 머무르는가는 퇴락한 종교와 욱일승천하는 과학이라는 오늘날 둘의 현실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상징을 하늘로 치솟는 첨탑을 지닌 고딕식 대성당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 문명의 상징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나 전파 망원경, 컴퓨터나 이동 전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문명의 상징이 바뀐다는 것은 이미 다른 문명이라는 이야기지요. 설사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성당의 첨탑이 아니라 전파 망원경이나 휴대전화를 통해서 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0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한 과학은 오늘날 우리 문명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과거 중세에 성직자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 오늘의 사제와 같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존속하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과 같지 않고, 어쩌면 우리 삶과 사회에서 향신료와 같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 줄 알았던 종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장 선생님이 언급한 것처럼, '종교 그것'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다시 함께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에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나다
  
  서구 지성계에서 한동안 따로 놀던 '종교와 과학'은 20세기가 끝날 즈음부터 다시 서로 만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도 종교'와' 과학 또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끌지 못했고, 특히 학문적인 담론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종교와 과학에 대한 학술활동과 저술이 급격히 늘어나고, 언론의 대대적 조명을 갖게 됩니다.
  
  <자이곤: 종교와 과학 저널(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이외에 이 분야의 학술지와 소식지가 새롭게 창간되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집중하는 전문 연구 기관이 15개 이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관련 연구소의 증가, 학술지의 증가, 관련 학술 행사의 빈번한 개최, 미국의 '동등 교육법'(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반영된 법으로 미국 아칸소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 1980년대 초반에 통과되었다가 위헌으로 판결을 받았다 : 필자) 재판 등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 관련된 학자와 저술의 급격한 증가 등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겪은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마 지난 10여 년간 엄청나게 늘어난 '종교와 과학' 분야의 출판물일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종교와 과학이 새롭게 만난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를 조금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지요. 하나는, 이 분야의 학술 활동이나 저작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누구인가? 다른 하나는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이런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