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전설 시대’를 산 일본인들도 김경천이 바로 ‘전설 김일성’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본명 김광서(金光瑞), 별호 김경천(金擎天), 1888년 6월 5일 함경남도 북청군 해안 승평(咸鏡南道 北靑郡 海晏 昇坪)에서 출생, 호적상의 본적은 서울 종로구 사직동 166번지,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기병과 제23기생으로 졸업 - 김광서(金光瑞)는 구한말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하여 1911년에 졸업하여 장교가 되고 1915년에 기병 중위가 되었다. 당시 일본육사 출신 한인들은 김광서 외에도 제26기생 洪思翊 李應俊등 13명과 제27기생 金錫源 金仁旭등 20명, 계 34명이 있었다. 1919년 2월 20일에 병가를 얻어 서울의 사직동 166번지 자택에 와 있는 동안에 3.1운동을 맞았고, 일본군을 떠나 해외로 도피해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을 결심하고 그 해 6월에 일본육사 3년 후배인 지대형(池大亨) = 이청천(李靑天)과 함께 만주로 탈출했다.
이영명 교수는 일제시대 조선과 일본의 관계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망라하여 만나 보며 김일성 연구를 한 다음에 김경천이 김일성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영명이 연구를 진행할 때에는 아직 ‘김일성 시대’를 산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전설 김일성’ 최고의 연구 중 하나로 이제는 그만한 연구는 다시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영명의 ‘김일성 연구’는 최고의 것임은 확실하나 한계점을 갖고 있다. 김경천의 활동 무대는 러시아령인 연해주로 그에 관한 기록 태반이 구소련에 있었는데 이영명은 그것을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 당시는 냉전 시대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폐쇄된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영명의 연구는 반쪽자리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구소련의 붕괴 덕택으로 연해주를 마음대로 왕래하며 김경천에 관한 기록물들을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여러 학자들이 러시아로 가서 그 기록물들을 접하고 연구를 했다. 비록 김경천 시대를 산 사람들은 모두 작고해버려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연구에 진일보가 일어났다. 2005년 8월, ‘김경천 연구’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홍범도 기념 사업회’에서 김경천의 일기를 러시아에서 발굴하여 ‘전설 김일성’의 모델 주연급 인물인 김경천의 진면목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었다. 독자는 본서를 통해서 김경천의 진면목을 접하게 될 것이다. 본서는 비록 소설 형식이지만 내용만은 그의 일기 등 역사적 기록물들에 의거해 집필되었다.
-《조선민중의 전설정 영웅 김일성 장군(광성출판사 刊》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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