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행 엑소더스' 출간
1959년부터 재일동포와 일본인가족들이 북송선을 타고 집단으로 북한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절정을 이루고 1984년까지 이어지며 9만3천여명을 북한에 보낸 이른바 '재일동포 귀국사업'은 그 동안 재일동포들이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참여하고자 자발적으로 북한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역사학자인 테사 모리스-스즈키 호주 국립대 교수는 50년 만에 기밀 해제된 국제적십자사의 재일조선인 귀국문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정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북한행 엑소더스'(책과함께 펴냄)에서 그들이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지를 파헤친다.
귀국사업은 공식적으로 1959년 시작됐지만 저자는 이미 4년 전인 1955년 일본 정부쪽에서 귀국사업에 대한 준비가 은밀하게 시작됐다고 말한다.
귀국사업에는 이노우에 마스타로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5년 7월 일본적십자사 외사부장에 취임한 이노우에는 그 해 국제적십자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출장에서 처음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일본적십자사는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북한에 머물렀던 일본인들을 귀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노우에는 제네바 출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국내 상당한 규모의 조선인 집단'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꺼냈고 같은 해 일본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재일조선인 귀국 희망자 도쿄 대회'라는 집단이 작성한 탄원서의 영문판을 국제적십자사에 보내 협조를 요청했다.
제네바 쪽에서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자 이노우에는 1956년 1월 다시 제네바에 "재일 조선인은 빠른 귀국을 촉구하는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조선인의 수가 많고 그들의 성질이 극히 거칠고 난폭한데다 그들이 몇 개의 당파로 분열돼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언제 어느 순간에 불행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유혈사태'를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우에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그 해 북한행 귀국을 지원해 달라며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 적십자사 본사에서 농성을 벌이긴 했지만 소수였고 시기도 이노우에가 편지를 썼던 시점보다 3개월이 지난 때였다.
이와 발맞춰 1956년 2월 일본 후생성은 갑자기 경찰과 함께 조선인 거주 지역에 대한 대규모 단속을 벌였다. 당시 극빈 조선인에 대한 유일한 공적 복지였던 생활보호제도와 관련해 후생성은 생활보호수급자격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하라며 은닉 재산을 찾기 위해 집안과 뒷마당 수색 작업을 벌였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여당인 자민당이 '조선인의 북한 귀국을 지원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을 비밀리에 결정한 후에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재일동포들이 북한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계획처럼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한국의 이승만 정부가 귀국사업에 강하게 반발했고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도 북한으로의 귀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57년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1957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사 19차 회의에서 이른바 '뉴델리 결의 제20'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전쟁을 비롯한 재해가 일으키는 가족의 이산에 주의를 환기하여 각국의 정부나 적십자는 온갖 수단을 강구해 이들 어른 및 아이들이 그 의사에 따라 그리고 어린이는 거주지가 어딘지를 불문하고 가장으로 인정되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그 가족과 재회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책임을 진다'라는 이 결의로 일본과 북한은 갑자기 '이산가족의 상봉'이라는 나무랄 데 없는 도덕적 목적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옹호자로 변신했다.
소극적이던 북한도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수만 명의 재일조선인이, 대부분 남쪽 출신인 이들이 사회주의 북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효과적인 선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귀국자들 전원은 자신도 모른 채 '시니컬한 정치적 의도의 표적'이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을 번역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귀국사업은 단순히 일본 거주 조선인의 북한행이 아니라 냉전 체제 하 관련국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이해관계와 공작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재일 조선인의 북송 혹은 귀국사업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본격적으로 학문적 메스를 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448쪽. 1만8천원.
1959년부터 재일동포와 일본인가족들이 북송선을 타고 집단으로 북한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절정을 이루고 1984년까지 이어지며 9만3천여명을 북한에 보낸 이른바 '재일동포 귀국사업'은 그 동안 재일동포들이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참여하고자 자발적으로 북한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귀국사업은 공식적으로 1959년 시작됐지만 저자는 이미 4년 전인 1955년 일본 정부쪽에서 귀국사업에 대한 준비가 은밀하게 시작됐다고 말한다.
귀국사업에는 이노우에 마스타로라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5년 7월 일본적십자사 외사부장에 취임한 이노우에는 그 해 국제적십자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출장에서 처음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일본적십자사는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북한에 머물렀던 일본인들을 귀환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노우에는 제네바 출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국내 상당한 규모의 조선인 집단'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꺼냈고 같은 해 일본적십자사 총재 명의로 '재일조선인 귀국 희망자 도쿄 대회'라는 집단이 작성한 탄원서의 영문판을 국제적십자사에 보내 협조를 요청했다.
제네바 쪽에서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자 이노우에는 1956년 1월 다시 제네바에 "재일 조선인은 빠른 귀국을 촉구하는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조선인의 수가 많고 그들의 성질이 극히 거칠고 난폭한데다 그들이 몇 개의 당파로 분열돼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언제 어느 순간에 불행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유혈사태'를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우에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그 해 북한행 귀국을 지원해 달라며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 적십자사 본사에서 농성을 벌이긴 했지만 소수였고 시기도 이노우에가 편지를 썼던 시점보다 3개월이 지난 때였다.
이와 발맞춰 1956년 2월 일본 후생성은 갑자기 경찰과 함께 조선인 거주 지역에 대한 대규모 단속을 벌였다. 당시 극빈 조선인에 대한 유일한 공적 복지였던 생활보호제도와 관련해 후생성은 생활보호수급자격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하라며 은닉 재산을 찾기 위해 집안과 뒷마당 수색 작업을 벌였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여당인 자민당이 '조선인의 북한 귀국을 지원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을 비밀리에 결정한 후에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재일동포들이 북한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셈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계획처럼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한국의 이승만 정부가 귀국사업에 강하게 반발했고 재일조선인 사회에서도 북한으로의 귀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57년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1957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적십자사 19차 회의에서 이른바 '뉴델리 결의 제20'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전쟁을 비롯한 재해가 일으키는 가족의 이산에 주의를 환기하여 각국의 정부나 적십자는 온갖 수단을 강구해 이들 어른 및 아이들이 그 의사에 따라 그리고 어린이는 거주지가 어딘지를 불문하고 가장으로 인정되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그 가족과 재회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책임을 진다'라는 이 결의로 일본과 북한은 갑자기 '이산가족의 상봉'이라는 나무랄 데 없는 도덕적 목적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옹호자로 변신했다.
소극적이던 북한도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수만 명의 재일조선인이, 대부분 남쪽 출신인 이들이 사회주의 북한으로 '자발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우위를 과시하는 효과적인 선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리면서 귀국자들 전원은 자신도 모른 채 '시니컬한 정치적 의도의 표적'이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을 번역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귀국사업은 단순히 일본 거주 조선인의 북한행이 아니라 냉전 체제 하 관련국의 은밀하고도 거대한 이해관계와 공작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재일 조선인의 북송 혹은 귀국사업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본격적으로 학문적 메스를 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44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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