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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나팔수에서 MB 오케스트라까지

YOROKOBI 2009. 1. 22. 07:57

간혹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뭐가 그리 문제냐. 잘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대체 언제 이야기인데 아직도 부일이나 독재부역 전력을 문제삼느냐. 언제까지 케케묵은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입니다. 물론 일부 맞는 말씀입니다. 미래도 봐야지요.

허나 문제는 그에 대한 합당한 사과를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잘·못·했·음, 딱 이 네 마디를 죽어라 하지 않는단 말이지요. 아니, 아예 그럴 생각조차 없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다음 캡쳐 화면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닷컴의 '날짜별 신문보기' 서비스

조선닷컴의 '날짜별 신문보기' 서비스에서 1980년 8월 23일자를 검색하면 위와 같이(노란색 표시는 제가...^^;) 나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2면 다음에 바로 4면입니다. 3면이 없습니다. 그럼 3면은 왜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아래 PDF 화면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blog.naver.com/vjshot

1996년 1월 19일, '권력에 맹종하는 나팔수들'을 까다

인간 전두환! 1980년대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대표하는 기사입니다. <조선일보> 김명규 기자가 썼었지요. 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에 실렸지요. 얼마나 '대단한 나팔'이었는지 부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 '사(私)에 앞서 공(公)...나보다 국가 앞세워'...'뭐'가 쏠립니다만, 내친 김에 본문도 잠깐 살펴볼까요.

"영관장교 시절 매일 새벽처럼 집을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그를 붙잡고 칭얼대는 어린 자식들에겐 군인이란 나라를 위해 죽는 거고 나랏일에 밤낮이 어디 있느냐고 달랜 적도 있다...(중략)...6.25가 발발하자 그는 어느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밤마다 목총을 들고 나가 학교교사 순찰을 돌았다...(중략)...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선배는 이렇듯 '나팔'을 불어대고, '후배'는 엄연한 '기록'을 지워놓고. 이러니 <조선일보>를 정론이라 볼 수 없고,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누군가는 자꾸 '과거'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 1996년 1월 19일자 <한겨레>에 실렸던 '권력에 맹종하는 나팔수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소개 드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권력에 맹종하는 나팔수들'...그들은 지금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보안사 정보처 소속 언론조정반이 왕을 뜻하는 영문자(K)로 이름을 붙여가며 작성한 이 계획에 따라 한국의 언론은 그 해 7백여명의 언론인 대량 해직, 대규모 언론사 통·폐합, 언론기본법 제정 등 일련의 참혹한 비극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언론인들은 쿠데타세력에 맞서 싸우다 구속되거나 해직당하는 고통을 겪은 반면, 또 다른 많은 언론인들은 이들의 집권을 합리화·정당화하는 곡필을 휘두르는가 하면 동료 언론인의 '학살'에 앞장서고, 일부는 아예 쿠데타세력에 가담했다.

신군부에 협조한 언론인 가운데 상당수는 정·관계로 진출해 집권세력화하고, 일부언론인들은 현직에 남아 정치·사회적 고비 때마다 이들을 두둔해왔다. 이 땅의 언론들은 지난해 초부터 5·18특별법 제정을 위한 전국적인 서명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이들 언론인이 역사 청산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고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 기사를 보며 답답해졌습니다. 다시 십 년이 흐른 지금도 바뀐 것은 없는 듯 하니까요.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서울-워싱턴-평양'을 통해 위 <한겨레> 기사를 거론하며, 다시 한 번 몇몇 '나팔수'들을 환기시키는데요. 그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금'을 소개합니다. 밑줄은 최근 근황. ★표시는 아예 '나팔'이 입에 붙은 '요주의' 인사들입니다.

조선일보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 : 김명규 기자
새 질서의 출범 - 안정구축, 도덕정치 강력 추진 : 이현구 정치부 차장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건다(연재) : 정운성 최청림 이영덕 기자
청와대 24시 : 하원 기자

김명규

1938년 9월 23일, 충남 부여 출생. 전 스포츠조선 상무이사. 경복고-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언론대학원 언론과정 수료. 1975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1981년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조선일보 정치부 부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우 겸 수도권 부장.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조선일보 사업부 국장. 1992년 대한언론인회 대한언론상. 1993년 국민훈장 동백장. 보도된 바 없음.

이현구

전 국회도서관 관장.
1938년 4월 14일, 서울 출생. 경복고-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1965 신아일보 편집국 기자. 1966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1979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1984 조선일보 편집국 특집부 부장. 1987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1988 국무총리 공보수석비서관. 1992 정무2장관실 보좌관(차관). 1996 국회도서관 관장. 1993 황조근정훈장. 현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회 논설위원.

정운성
전 스포츠조선 제작국 국장. 1945년 3월 14일, 경남 진주 출생. 진주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조선일보 체육부·사회부·정치부 기자. 조선일보 제2사회부 차장.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스포츠조선 사회레저부 부장. 소포츠조선 사회레저부장 부국장 대우. 스포츠조선 전산위원장 부국장. 스포츠조선 신문제작본부 부본부장 겸 제작관리부장. 스포츠조선 경영기획실 부실장.
보도된 바 없음

최청림
1941년 7월 15일, 황해 황주 출생. 중앙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조선일보 입사. 사회부·경제부 기자.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 부장. 주간국·출판국 국장. 이사 편집국 국장. 이사 논설위원실 실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12대 부회장. 한국프레스클럽 운영위원. 기자협회 기자상. 1977 철탑산업훈장. 1986 제2회 언론인상 칼럼부문. 관훈언론상.
2008년 5월 14일 자랑스러운 중앙인 18명에 선정

이영덕
1945년 5월 16일, 서울 출생. 경기고-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9년 공채 12기 조선일보 입사. 외신부·사회부·정치부 기자. 워싱턴 특파원. 편집국 부국장. 편집국 국장 대우 겸 수도권 취재본부장. 논설위원. KBS 이사. 국회방송 자문위 위원.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교육정보화추진위원회 특별위원. 관훈클럽 기획임원.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본부 커뮤니케이션 위원장. 2007 대선 이회창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보팀장

하원
1949년 2월 12일, 부산 출생. 전 스포츠조선 대표이사. 부산고―서울대 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 석사. 미국 드레이크대 신문학 석사. 1972년 조선일보 입사. 편집부·지방부·사회부·정치부 기자. 국제부·정치부·기획부 부장. 총무국·출판국 국장(이사대우). 비상임이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스포츠신문협회 초대 회장. 1999 청조언론인상. 2008년 9월 1일 백석대 대외협력부총장 임용

중앙일보

전두환 대통령 어제와 오늘, 합천에서 청와대까지(연재) : 전육·성병욱·이석구·김재봉 기자

전육
1946년 5월 12일, 경남 함양 출생. 전 중앙방송 대표이사. 부산고-성균관대 영문학과 졸업. 1969년 중앙일보 입사. 외신부·사회부·정치부 기자. 정치부장. 정치분야 논설위원. 편집국장.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이사대우. 감사원 자문위원.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 제3기 방송위원회 위원. 중앙일보 특종상 4회, 1977 중앙일보 우수특종상. 현 한국농구연맹(KBL) 총재

성병욱 ★
1940년 12월 24일, 서울 출생. 경기고-검정고시-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1965년 중앙일보 입사. 논설위원.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주간 이사대우. 이사, 논설주간. 상무이사 주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청와대 통일고문회의 고문(1997-1998). 중앙일보 상임고문(부사장 대우). 세종문화회관 이사. 현 세종대 석좌교수. 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독자불만처리위원 겸 윤리위원. 현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이석구

1949년 12월 15일, 충북 출생. 제천고-서울대 철학과 졸업. 1975년 중앙일보 입사. 편집부·사회부·경제부 기자. 일본 도코대 객원연구원. 도쿄특파원 차장. 일본총국 총국장 대행. 수도권부·전국부·체육부·국제부 부장. 행정담당 부국장 대우. 미주본부 뉴욕지사 지사장. 중앙일보 특종상(1979, 1980, 1981). 우수기자상(1992). 현 중앙일보 부회장(미주본사 뉴욕중앙일보)

김재봉

1945년 4월 4일, 경남 합천 출생. 경남고-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1967년 중앙일보 입사. 사회부 차장. 총무부장. 법무부 대변인(1987). 세계일보 사회부장. 사회부장 부국장. 문화일보 편집국장 대우. 논설위원(국장 대우).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법무법인 세종 고문(2003). 문화일보 사외이사. 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회 위원
. 현 중앙일보 시니어 리포트팀

동아일보

새시대의 기대 : 박기정 김철 기자
새시대의 기수 전두환 대통령 : 최규철 기자

박기정

1942년 3월 1일, 함경북도 출생. 전 언론재단 이사장. 중동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수료. 도쿄대학 대학원 수료. 동아일보 정치부·사회부 부장. 논설위원. 동경지사장. 편집국장. 동아일보 2002월드컵대책본부장 이사. 동아일보문화센터 대표이사 사장. 관훈클럽 총무.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청교수. 중앙언론문화상(1999). 현 전남일보 사장. 현 한국디지털뉴스협회 회장. 현 지방신문협의회 회장.

김철

1945년 9월 20일, 서울 출생.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경복고-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졸업. 대한일보 외신부·정치부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외신부·국제부·북한부 차장. 조선일보 북한부·국제부 부장. 청와대 정무2비서관(1994). 신한국당 대변인(1996).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언론총괄 특보(1997).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기획특보(2002). 현 편집인협회 남북교류 위원장. 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현 양평TPC골프클럽 사장.

최규철 ★
1944년 1월 1일, 서울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대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970년 동아일보 입사. 사회부·편집부·정치부 기자. 국제부·정치부 부장. 편집국장. 논설주간 이사대우. 언론재단 비상임이사. 이명박 후보 경선 선대위 언론위 위원장. 한나라당 대통령선거선대위 언론위 위원장. 경찰위원회 위원. 현 뉴스통신진흥회(연합뉴스 최대주주) 이사장.

한국일보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 - 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 : 하장춘 김훈 이연홍 장명수 기자
국민여망 직결 시대 맞는 정치 엘리트 주도 : 윤국병 기자


하장춘
1942년 1월 25일, 전북 김제 출생. 경북대사범대부속고-육군사관학교.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수료. 1970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전국부 기자. 정치부 차장. 사회정화위 전문위원 겸 공보실장(1984).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 상근대표(1988). 독립기념관 감사(1992). 언론중재위원회 연구위원(1995). 보도된 바 없음.


김훈
1948년 5월 5일, 서울 출생. 휘문고 졸업. 고려대 영문학과 중퇴. 1973년 한국일보 입사. 문화부 기자. 시사저널 사회부 부장(1994). 시사저널 편집국장(1997). 국민일보 편집국 특집부 부국장(1998). 국민일보 출판국 국장(1998). 국민일보 편집위원(1999). 한국일보 편집위원(1999). 한겨레신문 민권사회2부 기동취재팀 기자 부국장(2002). 소설가.


이연웅
1943년 10월 21일, 충남 서천 출생. 중동고-동국대학교 농경제학과 졸업. 1970년 한국일보 입사. 제천주재·의정부주재 기자. 연합통신 입사(1981). 세계일보 경기도청 출입기자(1988). 세계일보 편집국 사회부 차장(1991). 한국일보 재입사(1993). 사회부 차장. 사회부 부장 대우. 한국일보 특종노력상(1977, 1994). 한국기자상(1981). 한국일보 백상공로대상 금상(1996). 보도된 바 없음.

장명수
1942년 3월 31일, 충남 천안 출생. 이화여고-이화여대 졸업. 1962년 한국일보 입사.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1969). 한국일보 재입사(1976). 문화부 기자. 문화부·생활부 부장. 이사대우 편집위원. 이사 겸 주필. 한국일보 대표이사(1999). 삼성언론재단 이사(1995). 서울시 정책자문위원(1998). 한국신문협회 부회장(2001). 한국여기자클럽 회장(2002). 공안자문위원회 위원(2004). 국민권익위원회 자문위원(2008). 현 한국일보 고문.

윤국병
1941년 11월 12일, 인천 출생. 제물포고-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65년 한국일보 입사. 정치부장. 홍보실장. 전국취재본부장. 편집국장. 편집담당 이사. 이사 겸 뉴욕제작본부장. 비서실장 이사. 수석부사장. 대표이사 겸 발행인(2002). 소년한국일보 발행인 대표이사(1998). 코리아타임스 대표이사(2002). 2005년 인천상륙기념사업회 창립 참가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나팔수'들을 복기하는 이유는 그들을 하나하나 '마녀사냥'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 그때 나팔수들은 위 사람들만도 아닙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늘 말하는 '내일'을 위함입니다. 실제로 김훈은 여러 차례 '부끄러움'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 때 '나팔수' 역할을 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아예 '나팔수 오케스트라'를 만들려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그러하듯 말입니다.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권력과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는 기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있습니다. '내일', 아니 당장 '오늘'을 위해서도 '그들의 과거'를 '각인'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