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참모들이여, 쇼를 해라 쇼!

YOROKOBI 2009. 4. 6. 17:50

이명박 대통령이 불쌍한 건지, 참모들이 불쌍한 건지, 국민들이 불쌍한 건지 알 수 없다. 천하의 벽창호, 사오정만 골라 모았다 해도 실수로라도 똑똑하거나 기개 있는 자 몇은 끼게 마련인데,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 하나 없다. 흔히 왕의 권한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근대국가의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란 왕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많다. 그래서 대통령의 잘못은 더 치명적이기에, 왕의 잘못보다 더 세게 간(諫)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을 두어 왕의 잘못을 비판하게 했다. 꼭 사간원 소속이 아니라도 누구나 왕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었다. 혼자 짖다가는 ‘깨갱’할 수 있으니, 여럿이 짖고, 또 잘 짖는지 서로 감시하며 짖어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가기구 틀 내에서 정부에 대해 유일하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인권위원회를 마비시키려 한다. 사간원을 없애버린 연산군 죽고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의 하나는 관료들이 사직소를 잘 썼던 데 있었던 것은 아닐까? 때로 그들은 지부상소라고 해서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가 상소를 올렸다. 내 말 듣지 않으려거든 이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 말이 개그콘서트의 ‘독한 놈들’보다 훨씬 더 독했다. 예컨대 남명 조식은 ‘단성소’에서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를 구중궁궐 속의 한낱 과부로, 명종을 유약한 고아라 부르며 준엄하게 비판했다. 최익현의 상소는 전권을 장악한 임금의 아비 대원군을 가차 없이 때려 그를 낙마시켰다. 최익현이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을 때 스승 이항로가 준 교훈은 “임금의 신하가 되어 마땅히 상소를 해야 할 사건이 있게 마련인데, 입을 꼭 다물고 묵살하며 그냥 국록이나 타 먹는 일은 매우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었다. 군왕과 그 부모까지 정조준하던 조선시대 보수주의자들의 높은 기개는 ‘형님’이 한마디만 하면 옴짝달싹 못하는 요즘 세태와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러니 이 땅에 보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옛날에 충과 효를 가를 때, 세 번 간해서 부모가 듣지 않으면 울면서 따르는 것이 효요, 세 번 간해서 주군이 듣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충이라 했건만, 옳지 않은 일에 맞서 사표 던지는 사람을 본 지가 얼마이던가? 노무현 정권 때도 수많은 ‘민주인사’ 중에 소신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신 문제만은 아니지 않은가? 촛불시위에 유모차 끌고 나온 젊은 엄마를 아동학대죄로 잡아들인다거나, 피디수첩 피디를 조사한다거나,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을 파면시키고, 하루아침에 말을 바꿔 롯데월드를 허가하는 문제는 정말 보수파가 흔히 얘기하는 ‘국격’과 관련된 정말 창피한 문제 아닌가?

자기 자리는 그렇게 아까워서 사표 낼 생각도 않는 이들이 일제고사 교사들이나 군법무관들은 남의 목이라고 무 썰듯 뎅겅뎅겅 잘라버린다. “권력 내부에서 직언과 비판의 기능이 실종되면 대체로 그것이 바로 적신호인 경우가 많다”고 기자 시절 온갖 고상한 척 다 하던 자는 청와대의 입이 되더니 없는 말까지 만들어 대통령을 추어올린다. 지금 대통령 이명박은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다. 대통령 이명박은 단 일 년 만에 민주주의를 망쳐 놓았다. 더 큰 문제는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30% 내외의 지지세력의 우두머리가 되려는 처사일 뿐이다. 이런데도 참모란 자들은 말리기는커녕 한술 더 뜨고 있다. 쇼라도 좋으니 말려도 보고, 직언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라도 써 봐라. 쇼라도 좋다. 쇼를 해라, 쇼!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482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