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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과 식상한 파벌정치 구조의 타파를 천명함으로써 잿빛 일본사회의 해결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각종 여론조사에서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과시했던 개혁적 이미지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의 공식 참배,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한 집단 자위권의 보유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우익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주창하는 전형적인 매파 정치인이다.
국민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대중 정치인이지만,다른 한편 자국 중심의 왜곡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총리 아래서 우익 진영의 왜곡된 역사교과서는 정부의 검정을 통과해 시중 서점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또 개정된 교육기본법은 애국심 등을 고취하기 위한 사회봉사 의무를 학생들에게 지우려 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 교육의 현실 속에서, 기자는 최일선 일본 교육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교육기본법 개정 이후 달라지는 교실
개정된 교육기본법 아래, 2002년 4월부터 '종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는 일본의 교육개혁은 앞에서 언급한 사회봉사 의무와 함께 컴퓨터 교육, 세계 문화의 이해, 현장 체험 학습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재 일본의 일선 학교들은 전면적 시행의 준비 단계로 각 학교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개발,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일본 니이가타 현 소재 시오자와 초등학교의 경우, 현내 대학에서 유학중인 외국인들을 초청해 각국의 문화 소개를 듣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시오자와 초등학교는 일본국제대학에서 공부 중인 싱가포르인 유학생인 다이애나 탄과 한국인 유학생 양지영씨를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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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유학생 양지영씨와 다이애나 탄씨 (왼쪽부터). 맨 오른쪽에 보이는 이는 오카무라 노리코 선생님. ⓒ 최승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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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와 국가 소개가 있은 뒤, 일본 학생들의 질문과 유학생들의 답변이 오가는 간담의 시간이 이어졌는데, 싱가포르 유학생 탄 씨는 대형 지도 앞에서 싱가포르의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독특한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싱가포르만의 매력을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했다. 특히, 단일 인종 단일 언어의 일본과 대비하여 다민족 다언어의 싱가포르 사회에서 영어가 가지고 있는 의사 소통 수단으로써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싱가포르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다소 어려운 질문에는 효율적이고 부패하지 않은 정부를 꼽았다.
정부 '국가주의' 교육 의도...다른 한편 재량권 대폭 부여
한국인 유학생 양지영씨에게 일본 학생들이 많이 던진 질문은, 근래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식에 관한 것들과,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우위를 보이는 한국 스포츠, 그리고 월드컵 공동 개최 등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수업을 이끈 오카무라 노리코 선생이 한국 음식 먹어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거의 대부분 학생들의 손이 올라갔다. 특히 한국 김에 대해서는 맛있다는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양지영씨는 김을 어떻게 재는 지 학생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기자는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 경험을 예를 들며, 미국과 대비되는 일본의 자연 환경 보전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그리고 미래의 깨끗한 자연 환경을 위해서 일본의 어린이들이 노력을 해달라는 부탁의 말을 전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친밀한 교류를 나누었던 시간이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고통을 주었던 시간보다 훨씬 길었음을 상기시키고, 21세기에는 한국과 일본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노력해 달라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날 이루어졌던 학교 방문과 일선 교사들과의 면담 속에서 일본의 교육 개혁의 추진 방향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정부의 의도(국가주의를 주입시키려는)가 어찌 되었건 학생 교육에 있어서의 자율적 재량권이 일선 교사에게 대폭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학교 다케시 야마기시 선생에 따르면, 컴퓨터, 영어, 사회봉사 등등이 학생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률적인 필수 과목으로 주어지는 한국의 교육과는 달리, 그의 학교에서는 개정된 교육기본법의 원칙에 따르면서도 교사, 학교, 학부모, 학생들이 토론을 거쳐 학생들이 가장 원하고 또한 학교 교육 목표에도 맞는 프로그램을 학기마다 선택해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존의 가치 심어주는 작지만, 진보적인 발걸음
예를 들어 정부에서는 일률적인 의무로 강요하려는 사회봉사 활동도 학생들이 원하지 않으면 실시하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었다. 또 시오자와 초등학교가 지향하고 있는 교육개혁의 모습은, 세계문화의 이해, 영어 교육, 컴퓨터 교육, 사회봉사 등의 일률적 구분이 없는 포괄적인 교육이라고 전했다. 현재 문화 교류의 일환 (세계문화의 이해)으로 미국의 한 초등학교와 자매 결연을 추진 중인 시오자와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이를 위해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하고 (컴퓨터 교육), 미국의 초등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영어교육), 미국 학생들의 방과 활동을 보고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사회봉사활동)를 자연스럽게 생각토록 함으로써 교육개혁의 목표를 이룰 계획이다.
유네스코(UNESCO)는 지식, 행동, 공존, 인간다움을 습득하게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내걸었는데, 정기적으로 외국 유학생들을 초청하여 타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의 시간을 갖는 일본 초등학교의 모습은, 세계화 시대에 공존하는 인간상 구현을 위한 단일 인종 사회, 일본의 진보적인 발걸음인 듯 느껴졌다.
경제적 합리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오히려 인간다움과 공존을 강조하려는 일본의 일선 교육현장과 국가를 위한 인적자원 양성이 여전히 큰 목표인 한국의 교실이 각각 그려낼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학교 방문 때 초등학생 '아마추어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를 기숙사 벽에 소중하게 걸어둔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 그 유학생의 행복한 모습은 외국인이 살기에 너무 힘든 나라 한국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했다. 우리도 외국인 학생이나 노동자들을 우리 한국의 어린이들의 좋은 친구들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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