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해교전은 한국 군부의 반쿠데타였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꽃게잡이 철이었습니다.
옜날에도 동해에서 어군을 쫒다 보면 본의 아니게 경계선을 넘어, 북에게 납북되는 경우가 있었죠---어부로서는 억울한건데 되돌아 오면 간첩으로 몰려 호되게 경을 치루었죠. 꽃게 잡이철도 비슷 합니다, 바다에 하얀 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울타리가 있는거도 아니죠, 하다보면 아슬하게 남이나 북이나 경계선을 넘다 들죠. 장비가 월등한 남의 어선이 넘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 입니다.
이를 북의 허접한 경비선이 막기도 합니다.
남의 경우는 당시 함대를 동원하여 북의 어선과 경비선을 박살내어 수십명의 북의 인원이 죽었습니다, 분쟁도 아닌 일방적 도살이나 같았습니다.
문제는 북이 엄청 참아서 더 이상의 확대를 막은거죠. 당시 남북관계의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시기이었고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측이 있었습니다. 물론 누구라고는 지명 할수 없지만 미국임은 누구나 짐작 하고 있을 뿐이지요.
당시 포격을 한 현지 지휘관은 한국정부(청와대) 고위층에는 포격여부를 보고하고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모 측의 지휘만으로 포격을 단행 했다고 합니다,
즉 한국군의 지위계통에 의한 절차가 생략 되었다 합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된 청와대는 이를 조사 하였으나 책임자 문책을 없는 것으로 하고 흐지부지 하고 말았습니다. 군 지휘권이 대통령에게 없다는 사실의 확인만 했을 뿐 입니다,
당시에 포격 지휘를 단행한 자를 한국의 대통령이 문책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지위관은 모 측에만 사전 보고를 하고 지휘를 받아 포격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모측이란--- 알아서 짐작 하세요, 김대중님 임기 말년이었고 ---
군 측과 모 측 쌍방간에 서로간을 이해 할수 있는 사항이 존재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어렵사리 이룩한 6.15 정신을 훼손하지 않을려는 김대중과 김정일의 의지가 강해 서해 사건을 평화롭게 마무리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김(남북)간에 화해가 이루어진 건 중국의 중재가 아닙니다. 중간에서 약간의 가교역할을 했을지 몰라도--- 또한 지금도 그렇지만 서해에서의 중국 꽃게잡이의 불법 어획은 다반사 이었습니다, 한국언론이나 수구골통들이 말하는 북한의 도발이란 말도 되지 아니 합니다--- 도발할려면 그만한 준비나 장비(무기)를 가지고 최소한 방어준비라도 갖추고 했을 건데 공격은 커녕 반격 장비도 전혀 없이 죽기 위해서 도발합니까?
그렇게 도발해서 얻을게 뭐가 있습니까? 북한이니까 상식밖의 일을 한다고요?
아니면 북한은 정신병자라서요? 장난삼아 건드렸다가 반격받으면 도망기기 위해서요?
북의 민족끼리 라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민족에 대한 애착은 북에게는 생존이며 이념으로 살아 있지만 한국의 수골통들에게는 민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페기 대상이며, 침을 뱉아야 하는 혐오대상 입니다. 오직 사대만이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생명이며 이념입니다, 명박이는 여기에 하나 더 하여 친일사대까지 양손에 들기로 한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