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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룩소르 쪽으로 약 200㎞를 올라가면 나일계곡과 사하라사막이 만나는 접점지역에 엘 바나사(El Bahnasa, Behnesa)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 도시는 람세스 2세가 영화를 구가한 제19왕조의 한 행정구의 수도였던 고색창연한 옛 도시였는데, 옥시린쿠스(Oxyrhynchus, Oxyrynkhos)라고 불렸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이집트탐험기금(Egypt Exploration Fund)의 도움을 받아 영국의 고고학자 그렌펠(Bernard P. Grenfell)과 헌트(Arthur S. Hunt)가 이끄는 탐사팀이 옥시린쿠스를 발굴했는데 엄청난 파피루스서류 쓰레기 더미가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현장을 목도하기에 이른다. 이 옥시린쿠스 파피루스는 BC 250년경부터 AD 700년경에 이르는 문서들로서 주로 희랍어와 라틴어로 쓰여졌지만, 이집트 디모틱문자, 콥트어, 히브리어, 시리아어, 아랍어로 쓰여진 것도 있다. 이 옥시린쿠스 파피루스의 발굴로 인하여 우리는 그레코-로만 세계의 일상생활을 규탐케 만드는 가장 풍요로운 일차자료를 획득하게 된 셈이다. 이 자료는 1983년에 이르러서야 50권의 책으로 영역되어 출간되었다. 3400여 개의 항목에 해제와 주석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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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옥시린쿠스의 로기아가 빛을 보게 된 것은 물론 나그함마디의 도마복음서가 발견된 후의 사건이다. 옥시린쿠스 로기아 3편이 도마복음서의 희랍어 텍스트라는 것을 밝힌 사람은, 나그함마디 라이브러리를 최초로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 프랑스 대학원 학생 장 도레스(Jean Doresse)의 스승 앙리 샤를 퓌에슈(Henri-Charles Puech)였다. 에콜 드 프랑스의 종교사 교수였던 퓌에슈는 콥트어로 된 도마복음서의 완정한 모습을 보자마자 곧 옥시린쿠스의 로기아 파편과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양자를 대비한 결과 POxy (Papyrus Oxyrhynchus의 약호) 654는 도마복음서의 서론과 1~7번에 해당되고, POxy 1은 도마복음서의 26~29번, 30번, 77번, 31~33번에 해당되고, POxy 655는 도마복음서의 24번, 36~39번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따라서 옥시린쿠스 로기아 파편이야말로 도마복음서의 희랍어 판본의 존재를 더 말할 나위 없는 사건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콥트어 도마복음서는 옥시린쿠스 희랍어 도마복음서를 번역한 것일까?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우선 옥시린쿠스 파편 자체가 제각기 다른 시대에 성립한 것이다. POxy 1은 AD 200년경의 것이며, POxy 654는 3세기, POxy 655는 3세기 중엽의 것으로 제각기 다른 전승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서물을 동시에 베낀 파편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희랍어 판본과 콥트어 판본을 비교해 보면, 구조적으로 양자의 공통점은 충분히 인지되지만, 콥트어 판본이 희랍어 판본을 직접 번역한 것으로 간주되기는 어렵다. 우선 우리는 이러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희랍어 판본 자체가 다양한 전승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도마복음서는 초기기독교에서 인기가 높은 작품이었다. 콥트어 판본이 기초로 하고있는 희랍어 도마복음서와, 옥시린쿠스 파편이 기초로 하고 있는 희랍어 도마복음서는 제각기 다른 전승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콥트어 도마복음서에 관하여 다음의 7단계의 성립과정을 추론할 수밖에 없다.
제1단계: 도마복음서는 분명 “살아있는 예수(the living Jesus)”의 말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살아있을 당대에 그가 한 말들은 추종자들에 의하여 기억되었고 구전으로 전파되었다.
제2단계: 어느 한 저자가 그 많은 구전 중에서 선별하여 단일한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이때 이미 선별과정에서 저자의 목적과 관점이 배제될 수는 없다.
제3단계: 이 한 저자의 탁월한 작품은 다양한 초기공동체의 사람들에 의하여 낭송되고 또 리터지(liturgy, 祭儀)로서 활용되었다. 따라서 많은 사경자들에 의한 다양한 사본이 성립할 수밖에 없다.
제4단계: 초기공동체가 점점 기독교화되어 가면서, 기독교공동체의 삶과 가치에 부합되는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지고 창작이 첨가되었을 것이다.
제5단계: 텍스트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희랍어서기관의 역할이다. 희랍어서기관은 희랍어 텍스트를 최종적으로 확정짓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텍스트를 전사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주관에 따라 약간의 가필을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사본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유례가 없다. 서기관들은 존경받는 ‘랍비’들이었다.
제6단계: 콥트어 번역자들에 의하여 희랍어 맥락이 콥트어 맥락으로 번역되는 과정에
서 또 한 차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제7단계: 콥트어 사경자들에 의한 다양한 판본이 생겨난다. AD 4세기 후반에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27서 정경체제가 공표되면서 게벨 알 타리프의 사바크 더미 항아리 속으로 숨겨진 도마복음서는 바로 이 제7단계의 작품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누가 언제 도마복음서를 집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