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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9) 지혜담론이 먼저냐, 묵시담론이 먼저냐? - Q복음서의 저작연대

YOROKOBI 2009. 7. 11. 18:06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39) 지혜담론이 먼저냐, 묵시담론이 먼저냐?

Q복음서의 저작연대

 

도올 김용옥 | 제46호 | 20080126 입력

 

 

베들레헴 웨스트 뱅크 지역을 감싸고 있는 분리장벽 앞을 내가 걷고 있다. 내 뒤로 장벽이 계속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다윗이 태어나고, 예수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장벽 너머로 야곱의 부인 라헬의 무덤이 있다(창 35:19).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자지구의 분리장벽 봉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분리장벽이야말로 유대교의 상징이요, 구약의 상징이다. 예수에게는 인종과 계급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한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포용정책을 쓰지 않는 한 중동문제는 해결될 길이 없다. [임진권 기자]
도마복음서의 발견이 신학계에 일으킨 가장 커다란 파문은 뭐니 뭐니 해도 Q복음서를 가설 아닌 실체로서 등장시킨 사건이다. 도마복음서는 1945년 12월 나일강 상류지역에서 어느 이집트 소년의 곡괭이질에 부딪혀 우연히 발견된 고문서이지만, Q복음서는 신학자들이 문헌비평의 방법을 통해 공관복음서 속에서 150년 동안 발굴해온 가설적 문헌이었다. 마태·누가복음서 중에서 복음서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가자료를 제외한 부분 중에서, 마태와 누가에 공통된 부분을 그냥 자료(Quelle)라는 의미로 Q라고 불렀던 것이다. 마태와 누가가 한방에서 복음서를 같이 상의해 가면서 집필하지 않은 이상(물론 그런 가능성은 전무하다), 마태와 누가가 참고한 공통자료가 이미 문헌으로 성립해 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 가설적 문헌을 치밀하게 연구해본 결과, 그것은 단지 어록(로기온자료) 형식의 모음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즉 예수의 말씀(가라사대 파편)만으로 구성된 자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록자료인 Q를 자신있게 공관복음서 속의 또 하나의 복음서로서 제시할 수 있는 깡다구가 있는 신학자는 별로 없었다. 확고한 물증이 없는 데다 그 함의가 매우 혁명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생애 드라마를 펼쳐주는 설화복음서(narrative gospel)의 모든 이야기들이 누락되어버리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 갈릴리 사역, 이적, 예루살렘 입성, 수난, 십자가 죽음, 부활 등등의 이야기가 예수라는 역사적 캐릭터의 이해와 무관한 사건들이 되어버리거나 부차적인 잡담으로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Q에 관한 논의는 철저히 신학이론 전문가들의 연구영역 속에서만 머물렀고, Q의 모습이 일반에게 공개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도마복음서가 출현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성적 가설이 아닌 물리적 사실로서 우리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그 드러난 모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114개의 로기온자료로만 구성된, Q에 대하여 1세기 반 동안 구상해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도마복음서는 꿈에 그리던 어록복음서(sayings gospel)이었던 것이다. 이 어록복음서의 출현으로 Q는 단순한 자료가 아닌, 도마복음서와 똑같은 문헌양식을 지닌 또 하나의 어록복음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즉 Q는 Q자료에서 Q복음서로 승격되었고, 동시에 그 연구가 확고한 물증적 기반 위에서 힘차게 진행되어 나갔다. 도마복음서가 여타 나그함마디 문서보다 빨리, 1959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미 1960년대부터 신학계의 가장 참신하고 중요한 이슈로서 도마복음서-Q복음서 연구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여러 가지 행태로 말미암아,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신학계의 관심을 독점하던 그러한 시절이었다.

길목에 이유 없이 억류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룬다.
Q복음서는 저성(著成)연대가 비교적 확실할 수밖에 없다. 최초의 설화복음서인 마가복음의 저성연대를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로 한 AD 70년경으로 잡는 데 신학자들의 이견이 없다. 따라서 Q복음서는 AD 70년 이전의 문헌임이 확실해진다. Q복음서는 내용이 비교적 잡다한 갈래의 파편들이 복합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간이 이 곤혹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밝혀주는 지혜의 말씀들이다. 이 메타노이아(생각의 전환)적인 지혜담론을 Q1이라고 한다면 Q1자료는 이미 AD 50년경에는 성립했다고 본다. 예수시대 때부터 이미 예수운동(the Jesus Movement)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을 수도 있고, 예수의 사후 그를 진정으로 사모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어느 시점에 희랍어로 문서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불트만은 그 오리지널한 문헌은 아람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현대학자들은 그런 가능성을 제로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Q 속에는 예수가 당시의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며 그들을 비판하는 담론이나 또 하나님의 심판을 예시하는 담론이 들어 있다. 이러한 충돌담론·심판담론을 Q2라고 한다면 이것은 호교론적 냄새가 짙기 때문에 AD 60년 전후, 교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또 예수의 광야시험 장면과 같은 자기체험 고백이라든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규정하는 기독론적 냄새가 나는 파편들은 Q3에 속하는데 이것은 더 후대의 첨가로 보는 것이다.

고문헌은 어차피 이와 같이 한 시점의 저성(著成)을 말할 수 없고 시간을 두고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과연 Q복음서가 상기의 단계로 확연하게 구분되는지는 참으로 말하기 어렵다.

Q복음서의 저성연대에 의해 역으로 도마복음서의 저성연대도 확실해진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도마복음서의 프로토텍스트(proto-text)의 성립연대를 AD 50~70년이라고 확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같이 고려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도마복음서는 Q복음서보다도 그 성격이 전일하다. 즉 지혜담론이 거의 전부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의 핵심사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종말론적 암시가 전혀 없는 것이다. 종말론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종말론 하면 곧바로 이 세계의 파멸, 시간의 종언을 의미하는 묵시론적 사태로서 이해한다. 그러한 묵시론적 이해는 로마의 박해 속에서 순교로 쓰러져가던 초기 기독교회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모든 종말론적 로기온은 연대가 후대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마복음서에는 그러한 종말론적 로기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예수는 천국을 선포한 사람이며 역사적 예수의 모습 속에 이미 종말론적 관념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순수한 지혜담론은 묵시담론의 열기가 식어가는 어느 시기에 한가롭게 구성된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묵시담론이 선행하는 것일까? 지혜담론이 선행하는 것일까? Q복음서의 연구는 원시기독교의 진행순서가 지혜담론에서 묵시담론으로 발전했다고 확정짓는다. 그 역방향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마복음서의 연대를 후대로 내려잡으려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그것이 영지주의 문서라는 황당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이제 본문에 즉(卽)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나는 도마복음서의 이해로부터 지혜담론이 설화복음서의 다양한 문학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간 그 루트를 추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 (39) 지혜담론이 먼저냐, 묵시담론이 먼저냐? - Q복음서의 저작연대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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